한껏 느끼고 놀며 배우는 우리 한글 1 – 기본 모음 편
| “이번 글에서는 아이들에게 기본 모음을 소개하는 일련의 흐름 가운데 이루어지는 활동들을 담으려고 한다. 이 활동들은 빠르기보다는 담뿍 느끼고 충분히 곱씹어가는 절차를 따른다.” (본문 발췌) |
어떤 아이들은 그림책이나 간판, 그밖의 다양한 자극들을 통해 어느 날 문득 한글을 깨쳐 글자를 읽게 되지만, 느린 학습자의 경우 좀 더 세부적이고 명시적인 안내를 필요로 한다. 이 아이들에게 낱글자를 소개할 때, 자음과 모음 중 어느 것을 우선하는 것이 좋을까? 일반적으로는 모음을 먼저 익히도록 하는 것이 유용하다고 본다. 모음은 독자적으로 소리 낼 수 있고, 이후 자음을 배우게 되면 자연스럽게 합성하는 과정까지 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글에서는 아이들에게 기본 모음을 소개하는 일련의 흐름 가운데 이루어지는 활동들을 담으려고 한다. 이 활동들은 빠르기보다는 담뿍 느끼고 충분히 곱씹어가는 절차를 따른다. 글자를 읽어내는 것만 아니라 아이 스스로 생각해 보고, 소리글자라는 특성에 따라 한글을 좀 더 생생하게 만나길 바라서이다. 또 천천히 배우는 학생들의 특성을 고려해 다감각을 활용하게 하거나 기억하기 쉽게 이야기를 부연하는 등 깊이 있는 인지 처리 과정을 촉진하고자 했다.
활동 중에는 꼭 해당 글자를 익히는 시간뿐만 아니라 내용을 살짝 변형하여 다른 시간에 적용해도 되는 것들이 더러 있다. 이 아이들은 똑같은 놀이를 서너 번 반복하면서 능숙해짐의 묘미를 즐기기도 하는 탓이다. 한편 목표한 자소를 익히는 데에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지만, 아이의 감수성을 풍부히 하거나 마음을 어루만지는 활동, 확장적 사고와 창의성을 북돋는 활동도 몇 가지 간략하게 다루었다.
한글과 첫 번째 만남 · ㅡ ㅣ
오래전의 일이다. 안타깝게도 어느 선생님께 들은 말씀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한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더랬다. ‘영어는 ‘I am a boy. You are a girl.’부터 배우기 시작하는데(영어권 사람들도 제 나라 말을 배울 때 그리 시작하는지 모르겠지만) 동양 사람들이 익혔던 천자문은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 집 우 집 주 넓을 홍 거칠 황’으로 시작된다며, 이는 단순히 언어의 차이가 아니라 세계관과 철학의 차이를 담고 있는 것이라 하셨다. 서양 사람들은 인간 또 나와 너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반면, 동양 사람들은 하늘과 땅, 우주에 대한 것부터 마음에 심는 것이라고.
이러한 정신이 그립다. 사람이 온 우주 안에 있는 자신의 존재를 겸허히 바라볼 수 있었다면 작금의 세계가 이렇게 흘러가진 않을 터이다. 지구가 망가지고, 최근 1년간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를 넘어섰다는 관측이 나온 오늘날1, 하늘과 땅을 우리들 배움의 출발점으로 삼고 싶다. 하늘과 땅의 광대함과 엄숙함 아래 머리 숙일 줄 아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 하늘, 땅, 사람을 담은 글자 짓기
1) A4 용지 세 장을 준비한다.
2) A4 용지 한 장마다 아이가 생각하는 하늘, 땅, 사람을 그려보게 한다. 단, 30초 안에 간단하고 빠르게 그려야 한다고 말해준다.
3) 아이가 그린 것을 함께 보며 그림을 하나의 선으로 나타내어 본다.
지금까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아이들은 ‘하늘’을 무지개 모양이나 원, 용지 윗부분의 가로선으로 나타낸다. ‘땅’은 대부분 용지 아래쪽의 가로선으로, 가끔 네모로 나타낸다. ‘사람’은 함께 작업해 본 모든 아이들이 세로선으로 나타냈다.
어떤 모양이든 우선은 아이가 지어낸 글자에 대해 인정하는 말을 해준다. 아이가 우리 글자와 다른 모양으로 형상을 그렸을 때, 하늘의 경우 누워서 보는 하늘을 떠올리게 하면 동그라미를 유도할 수 있다. 땅을 네모로 표현했다면 함께 좀 더 단순화시키는 작업을 해본다.
이러한 과정을 갈무리하며 아이가 생각한 것과 비슷하게, 세 가지 글자 모양이 ‘•, ㅡ, ㅣ’이고, 각 글자가 ‘하늘, 땅, 사람’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요즘 아이들은 핸드폰에 익숙해서 ‘•, ㅡ, ㅣ’를 보면 핸드폰에서 봤다는 아이들도 있다. 선생님의 핸드폰 글자판을 보여줄 수도 있다.
이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옛이야기나 퀴즈 형식으로 한글이 만들어진 배경과 한글 제자 원리에 담긴 철학을 나누며, 사전 지식을 구축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좋다.
♣ 으이 놀이
1) ‘ㅡ’와 ‘ㅣ’가 쓰인 카드를 꺼내놓는다. 아이와 한 장씩 나눠 가지며 “으” 소리 낼 사람과 “이” 소리 낼 사람을 정한다. “으” 소리 낼 사람이 술래이다.
2) 술래는 다섯을 세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술래는 두 팔을 벌리고 땅바닥에 쪼그려 앉은 자세로 “으으으으” 소리 내면서 상대방을 잡으러 다닌다. 상대방은 정해진 구역 안에서 두 팔을 몸에 딱 붙이고 깨금발(또는 아이의 운동 능력에 따라 모둠발)로 콩콩 뛰어 도망 다니며 “이이이이” 소리를 낸다. 술래에게 잡히면 역할이 바뀐다.
3) 놀이를 마치면 ‘ㅡ’ 카드를 가로로 세로로 바꾸어 놓아가며 여러 번 읽고, 한 줄 네모 칸 띠에 쓰는 연습을 한다.
‘ㅡ’와 ‘ㅣ’를 배운 뒤에도 아이들이 한동안 두 글자의 소리를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다문화가정을 배경으로 하거나 조음이 부정확한 아이들에게서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래서 놀이를 시작하기 전에 선생님과 거울 속 자기 입 모양을 확인하며 정확하게 소리내기를 연습한다. 또 소리와 형상을 일치시키기 위한 작업(아파서 누워 있는 사람이 “으~”하며 신음하는 모습을 흉내 내본다거나 뱀이 “스으으으” 소리를 내며 기어가는 그림을 그리는 등)을 다양하게 거치는 것이 좋다.
♣ 한글상자 만들기
1) 민무늬 상자를 각종 재료로 정성껏 꾸민다. 아이가 자유롭게 꾸밀 수 있도록 한다.
2) 상자에 아이가 원하는 이름을 붙여 준다.
3) 오늘 배운 글자 카드를 상자에 넣어 보관한다.(이후 시간에 마무리할 때마다 글자 카드를 만들어 넣어 카드가 점점 쌓여가는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한글과 두 번째 만남 ㅏㅓ
♣ ㅏ와 ㅓ 소리 느끼고 형상화하기
1) [ㅏ]와 [ㅓ] 소리를 길게 내본다.
2) 어떤 소리를 낼 때 어떤 느낌인지 이야기를 나눈다.
3) 소리의 느낌에 따라 글자꼴을 그린다.
위의 2)번 과정에서는 [ㅏ] [ㅓ] 두 소리 중 어떤 소리가 더 편하고 밖으로 잘 뻗어나가는 것 같은지 이야기를 나눠본다. 보통 아이들도 [ㅏ] 소리내기를 편히 여기고, [ㅓ] 소리가 더 빨리 끊기며 길게 소리 낼수록 좀 답답해짐을 호소한다.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해줄 수도 있다.
| [ㅏ] 소리는 멀리멀리 퍼지고 뻗어나가는 성질이 있어요. 옛날 내가 어렸을 적에는 TV에서 ‘타잔’이라는 영화를 보여줬었어요. 타잔이라는 아저씨가 주인공인데, 이 타잔은 갓난쟁이 아기였을 때부터 숲속에서 동물들이랑 살았어요. 타잔이 자라서 어른이 됐을 땐, 굉장히 용감하고 지혜로워서 숲속 모든 동물들의 대장이 됐지요. 그런데 이 타잔이 숲속에 무슨 큰 일이 생겨서 동물을 다 불러 모아야 할 때면 어떻게 한 줄 알아요? 이렇게 외쳤어요. “아~~~~~” 하고. 그럼 그 소리가 숲속에 멀리멀리 퍼져서 수많은 동물들이 막 몰려들었지요. (동영상으로 보여주면 더 재밌어 한다.) 이렇게 [ㅏ]는 앞으로 앞으로 나가는 소리예요. |
위의 3)번 과정에서는 사람에게서 소리가 뻗어나가는 모습을 형상화한다. 크레용을 사용해서 먼저 ‘사람’을 나타내는 글자 ‘ㅣ’를 써보도록 한다. 그런 다음 “아~~” 소리를 내며 사람(ㅣ)에게서 선을 오른쪽으로 길게 그어 나간다. 소리 내며 갖가지 색의 크레용으로 반복해서 글자꼴을 그린다.
그러고 나서 칠판에 크게 써보기도 하고, “아” 소리를 내며 벽을 따라 가로획을 손끝으로 그리며 움직이기도 한다.
♣ 아이클레이로 ㅏㅓ 만들기
1) 아이가 적당량의 아이클레이를 뜯어낸다.
2) 아이클레이를 활동지 위에 놓고, 소리를 내며 글자 모양을 만들어간다. 모양을 만들 때는 반드시 글자의 생김새를 말로 설명해 본다.

어떠한 매개물로 글자 모양 만들기 활동을 할 때는 글자의 생김새를 말하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아이가 직접 설명하는 것이 어렵다면 선생님이 말해주는 것을 따라 하면서 작업하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글자를 더 세부적으로 보게 되고 글자의 모양을 의식하며 더 잘 기억하게 된다. 말로 하는 설명이 생략되면 그냥 모양 만들기 공예 활동이 되어버린다. 즐겁기는 하지만 글자의 생김새를 기억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활동을 하다 보면 방향성에 대한 인식이 좀 더 뚜렷해지기도 한다. 아이가 방향성에 주목하여 차이를 구분할 수 있도록 하고 ‘ㅏ’, ‘ㅓ’ 쓰기 연습을 할 땐 특히 획순을 꼭 지키도록 하는 것이 좋다.
♣『한 아이』 이야기책 만들기
‘아’와 ‘이’ 딱 두 글자만 알아도 아이와 함께 책 만들기 작업을 할 수 있다. (물론 이후에 여러 가지 주제로 다양한 책을 만들 수 있다.) 아이가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를 아이가 직접 지어 보는 것이다.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라고 운을 떼어줄 수도 있다. 일단은 아이가 하는 이야기를 모두 받아 써본다. 그것을 다시 읽어보며 아이와 말을 좀 정리해서 아이와 함께 이야기글을 쓴다. ‘아이’는 아이가 쓰고 나머지는 어른이 쓰면 된다.
책 크기는 아이와 의논해서 정할 수 있다. 책틀은 단순하게 원하는 크기의 종이를 반 접어 만들 수도 있고 옛날 책처럼 지끈으로 왼쪽을 엮거나 지그재그로 종이를 접는 등 여러 북아트 기법을 활용할 수도 있다. 요즘 시판되는 무지 스크랩북을 활용해도 된다. 그림은 아이가 직접 그리도록 한다.
아이는 자기 이야기가 글자로 형상화되는 것을 신기하게 여기고, 제 손으로 그린 그림까지 더해 책이 완성되면 참 뿌듯해한다. 아이가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는 아이의 생활과 마음 상태, 아이의 관심사와 꿈을 반영한다. 아이에 따라 일상에서 겪는 일을 간결하게 담을 때도 있고, 눌리고 속상한 마음을 풀 때도 있고,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기도 한다.
아이가 쓴 이야기책은 읽기 활동을 촉진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내용을 외워서 기억한다 할지라도 다양한 글자들이 눈에 익숙해지는 것은 읽기에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한글과 세 번째 만남 ㅗ ㅜ
‘ㅗ’와 ‘ㅜ’도 ‘ㅏ’와 ‘ㅓ’와 마찬가지로 소리의 느낌과 형상을 연결하는 시간을 가지며 시작한다.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 • 샘: ○○아, 오늘 만날 소리는 칭찬하거나 응원할 때 많이 내는 소리예요. 자, 제 손을 잘 보세요. 사람들이 누가 뭔가 잘할 때 손가락을 이렇게 (엄지를 세우고) 하면서 내는 소리가 있죠. 두 가지 중에서 골라 보세요. [오~], [우~] 어떤 걸까요? • ○○: 오~ • 샘: 맞아요. 사람들이 (엄지를 세운 상태로) [오~] 그러죠? 사람들이 [오~]하면 기분이 어때요? • ○○: 좋아요! • 샘: 그렇죠. 저도 그래요. [오~] 소리는 소리도 올라가는 느낌이 나고 듣는 사람 기분도 올라가죠. 발이 여기 땅에 붙어 있지만 마음은 둥둥 떠오르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ㅗ’는 땅에서 소리가 올라가는 모양을 닮았어요. 땅은 어떻게 썼더라. (종이와 크레용을 주고 ○○이가 쓰면) 맞아, 그리고 거기에서 올라가는 소리 (세로획을 그으며) 이렇게 쭉쭉쭉. 그래서 이렇게 생겼어요. ‘ㅗ’는 이렇게 기분이 올라가게 하는 소리인데, 반대로 친구들이 팀전을 할 때 상대팀한테 힘 빠지라고 손가락을 이렇게 (엄지를 아래로 내리며) 하면서 어떤 소리를 내더라? • ○○: 우~ • 샘: 그렇죠. [우] 하면 소리도 내려가는 느낌이고 듣는 사람 기분도 내려가죠. 땅속으로 푹 꺼지는 느낌이야. 그래서 ‘ㅜ’는 ‘ㅗ’랑 반대로 생겼어요. ‘ㅗ’를 뒤집으면 ‘ㅜ’가 되는 거야. 그럼 ‘ㅜ’는 어떻게 생겼을 것 같아요? |
♣ 손으로 맞혀요
1) 아이와 함께 종이에 띠골판지를 붙여 ‘ㅗ’, ‘ㅜ’ 카드를 만든다.
2) 누가 먼저 문제 낼지 정한다.
3) 문제 맞히는 사람이 눈을 감으면, 문제를 내는 사람이 상대방 쪽으로 ‘ㅗ’ 또는 ‘ㅜ’ 카드를 놓아준다.
4) 문제를 맞히는 사람이 띠골판지의 결을 손끝으로 만져보며 무슨 소리가 나는 글자인지 생각하고 말한다.
‘손으로 맞혀요’ 놀이는 입체감이나 촉감이 두드러지는 재료라면 무엇이든 활용할 수 있다. 어느 낱글자를 익힌 뒤 짧게 이 놀이를 하면 즐겁게 글자와 소리를 기억할 수 있다. 시판되는 교구인 ‘빅사이즈 자석 글자’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글자를 종이가방에서 스스로 꺼내거나 상대방이 골라주고 맞혀 보도록 한다.
♣ 글자판에서 모음 변별하기
1) 색연필을 바꾸어가며 아래 글자판에서 ‘ㅗ’, ‘ㅜ’ 또 지금까지 배운 모음들을 찾아 동그라미를 표시해 본다.
2) ‘아이’, ‘우’ 등을 가리키며 ‘ㅏ’, ‘ㅣ’는 혼자서도 [아이] 소리가 나고 앞에 ‘ㅇ’ 모양이 있어도 똑같이 [아이] 소리가 난다고 알려준다.
| 아버지 | 아이 | 포도 | 가지 | 나무 |
| 아기 | 아파트 | 모기 | 쿠키 | 타조 |
| 나라 | 버스 | 우유 | 다리 | 까치 |
| 기타 | 고기 | 나비 | 우리 | 파리 |
| 허리 | 오리 | 바구니 | 코끼리 | 라디오 |
| 어머니 | 소리 | 치즈 | 뿌리 | 비 |
아이와 함께 이야기 나누며 글자판을 만들 수도 있다. “오, 오, 오자로 시작되는 말~” 노래를 불러줄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가 쓸 수 있는 글자는 직접 쓰게 하고, 나머지는 선생님이 써주면 된다. 그러면 세상에서 하나뿐인 글자판이 만들어진다. 아이가 자연스레 쓰기 연습을 하게 되고, 아이가 알고 있는 낱말 및 가깝게 느끼는 낱말을 확인할 수도 있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각주
현재 전라남도 장흥교육지원청 학습종합클리닉센터에서 학습심리상담사로 또래보다 천천히 학습 과정을 밟아가는 친구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

성인 외국인을 대상으로 온라인에서 한국어 수업을 가르치고 있는데, 소리의 느낌과 형상의 연결을 연습하는 것이다, 이 부분이 정말 유익했어요. 자세한 예문 & 친절한 설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