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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성인 느린학습자를 위한 사회·정서교육도 필요하다

#976 최서윤,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2023.10.31
“이번에는 성인 느린학습자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 “성인 느린학습자들를 위한 사회·정서교육은 사실상 거의 없다. 그렇다면 성인 느린학습자들에게는 어떤 사회·정서교육이 필요할까?” (본문 발췌)                                                       

 

 

이번에는 성인 느린학습자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필자와 함께 만나고 있는 성인 느린학습자들은 일주일에 한 번 우리의 모임을 기다린다. 직장에 다니고 있거나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취업 준비라는 명목으로 아무 일 없이 지내고 있기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내기도 한다. 우리 모임의 명칭은 ‘멋진 청년 모임’이다.

 

멋진 청년 중 한 명은 컴퓨터 자격증이 있어서 사무 보조로 일하고 있다. 컴퓨터 자격증을 따기 위해 12번이나 시험을 봤다. 컴퓨터 책을 보고 또 보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끈기를 격려해 주었다. 느린 학습자들을 위한 컴퓨터 강의가 없어서 일반 학원도 다니고, 유튜브 강의도 보면서 겨우겨우 이해하며 배웠다. 직장에서는 4시간 일하며 엑셀 파일을 정리하고, 거래처에 팩스를 보내는 일을 한다. 문서를 다룰 줄 아니 그래도 여느 회사원처럼 제법 일을 해낸다. 이렇게 일을 잘 해내고, 실수가 없어도 누구 하나 우리 청년에게 회식을 가자는 말을 선뜻하지 않고, 혼자 있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다른 멋진 청년은 얼마 전 운 좋게 편의점 아르바이트 면접에 합격했다. 보통의 사람들에겐 별거 아닌 것 같겠지만, 우리에겐 합격 자체가 드문 일이라 필자가 커피를 사와 모두 다 함께 건배도 했다. 대인관계가 어려워 일부러 사람이 없는 시간대인 밤 11시부터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일하는 시간대에 지원했고, 다행히 합격되었다. 그런데 이 시간대는 사람은 없지만 물건이 들어온다. 편의점에 물건이 들어오는 시간대라 품목별로 분류하고, 정리하고, 다시 치우고 정리하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진열할 때도 같은 품목끼리 모아야 하는데 생각하느라 시간이 다 간다. 물건을 진열하고, 고리에 걸기도 하고, 열을 맞추어야 한다. 음식은 유통기한도 확인해야 한다. 물건 정리만 해도 8시간이 훌쩍 지난다. 한 번은 캔을 따다가 칼이 깊이 박히는 바람에 캔 하나가 터졌다. 큰일 났다 싶어 어찌할까 한 시간을 고민하다가 누군가가 와서 사 먹은 것처럼 자신이 돈을 내고 치웠다. 나름대로 고민 끝에 해결을 본 것이니 한시름 놓고 퇴근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물류보조를 하는 멋진 청년은 벌써 3년의 경력이 쌓였다. 그래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상자를 접고, 물건을 넣고, 다시 상자를 포장하고, 옆 라인으로 넘기는 작업이다. 단순하지만 단순하지가 않다. 리듬감 있게 착착착 하지 못하고 속도가 느려서 한쪽에 상자가 잔뜩 쌓이게 되고, 받는 쪽에서는 상자가 빨리 넘어오지 않아 답답해한다. 물건에 영어라도 써 있는 경우엔 더 어렵다. 읽지 못하고 무슨 뜻인지 몰라서 당황하다가, 물어봐야 하는데 괜히 모른다고 지적받을까 봐 묻지도 못하고 눈치껏 옆 사람을 보면서 해 내기는 한다. 겨우겨우 자신의 분량을 마치고 나면 혼자 남아있다. 모두 다 진작에 일을 끝내고 쉬러 간다고 한다.

 

느린학습자들이 일반 성인에 비해 역량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지적 능력이 낮아서, 감정조절이 되지 않아서, 행동이 미숙해서 사회 적응을 못할 정도는 결코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 느린학습자들이 학습도 안 되고, 적응도 못해서 대인관계도 어렵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할 것이라고 미리 판단하여 일할 기회도 주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느린학습자들은 말 그대로 느리다. 영유아기 시기에는 부모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 조금 느린 정도이다. 그러다 점차 나이가 들고, 학년이 높아지면서 다른 사람들과 발달 속도에서 차이가 크게 나기 시작한다. 처음 배우는 내용을 공부할 때도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고,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지금 어떤 마음 상태인지 인식하고 생각하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낯선 사람을 만나면 먼저 다가가 자기소개를 하지 못하고, 반가운 인사를 건네는 것도 느리다.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 단어를 잘못 선택하여 오해를 받기도 한다. 이럴 때 다시 수정하지도 못하고 시간이 지나버려 오해를 풀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새로운 직장에 가려고 해도 잘 받아주지 않고, 취업이 되어 일을 하다가도 회사에서 원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여 나올 수밖에 없게 되는 일이 많다.

 

성인 느린학습자들를 위한 사회·정서교육은 사실상 거의 없다. 사회·정서교육의 목표 중 하나가 지역사회 연계이다. 온 동네와 사회와 나라가 사회·정서교육을 위해 함께 힘을 써주겠다는 것인데 이런 협력 체계의 기회가 성인 느린학습자들에게까지 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성인 느린학습자들에게는 어떤 사회·정서교육이 필요할까?

 

멋진 청년들에게 가장 큰 고민은 ‘나의 미래’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가 항상 고민이다. 진로 고민을 하는 모습을 보면 다른 청년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이들도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어떤 직업을 갖고 돈을 벌지, 직업을 갖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항상 고민한다. 그러면 우리 멋진 청년들은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 그 일을 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취업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은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 물어보면 된다. 그런데 우리 청년들은 참여하기가 어렵다. 배우는 기술의 내용도 어렵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집단상담을 하기에도 맞지가 않다. 그러면 장애인고용센터에 가야 할까? 느린학습자들은 장애인등록이 되어 있지 않아 이곳도 이용할 수가 없다.

 

다른 청년들처럼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고민하며 자기정체성을 찾고,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감정추론과 공감을 연습한다. 자신의 할 일이 무엇인지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면서 책임감 있는 행동을 보이고, 사회에 통합되어 자신이 해낼 수 있는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한다. 이 모든 것들이 사회·정서교육의 목표이며, 우리 멋진 청년들이 해내고 있다. 끈기 있는 마음으로 멈추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멋진 청년들이 필자에겐 최고의 청년들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멋진 청년들이 설 자리가 없다. 배우려고 하더라도 느린학습자의 심리적, 인지적, 행동적 특성을 알아주지 않으니 적절한 교육이 이뤄지기 어렵다.

 

청년들은 사회의 일꾼이며 재목이다. 멋진 청년들이 비록 느린학습자라 하더라도 그에 맞는 교육을 받는다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준비를 갖출 수 있다. 필자가 믿고 있는 부분은 느린학습자들이 갖고 있는 자기이해 능력이다. 스스로 본인들이 느리다는 것을 안다. 느리기 때문에 더 많이 배워야 하고, 배울 때 더 오랜 시간 학습을 해야 하고, 더 많이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지켜보는 어른의 마음은 안타깝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기특하다.

 

멋진 청년들에게 필요한 첫 번째 사회·정서교육은 정서인식 활동이다. 자신의 감정 상태를 상황과 맥락에 맞게 인식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감정의 변화를 느끼고 대처하는 과정에서 자기이해를 하게 된다. 그리고 나면 대인관계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개입이 중요하다. 두 번째는 의사소통 교육이다. 단순히 대화를 하기 위한 기술적 표현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는 직업적·사회적 상황의 스크립트를 활용해서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을 때 대처할 수 있는 표현들을 연습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러한 연습이 잘 되면 직업교육으로 연결을 시킬 수 있다. 세 번째는 협력이다. 협력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도와주면, 나도 도와줄 것이 없는지 찾아 도움 행동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 몸으로 움직이는 것만 도움이 아니라, 마음으로 협력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감정 공감이고, 위로이며, 마음을 나누는 이해와 표현이다. 성인 느린학습자들에겐 성인기에 필요한 다양한 상황에서 다각적으로 이해하며 유연한 행동을 익힐 수 있는 그런 사회·정서교육이 필요하다.

 

또한 느린학습자들에게는 반복 훈련과 교육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의 몇 배나 되는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갖고 있는 끈기와 순수함, 열정과 용기야말로 우리 사회에 필요한 진정한 청년 일꾼의 모습이 아닐까!

 

지난 주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한 지 한 달이 되어 첫 월급을 탄 멋진 청년이 모임에서 커피를 샀다. 졸음을 이겨내며 밤새 물건 정리를 했을 청년을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다. 그래도 자신이 열심히 일하고 받은 대가에 대해 뿌듯해하고, 기쁨을 함께 나눌 줄 아는 그 마음이 기특해서 그 어떤 커피보다 더 맛있게 느껴졌다. 비록 느리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모습이 한없이 대견스럽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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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최서윤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상담교육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며, 사회정서교육의 현장 적용을 위한 연구와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또한 예비교원, 현직교사, 학부모 교육을 통해 학교 현장의 한국형 사회정서교육의 안착을 위해 힘쓰고 있다.

  • 이메일 : wejo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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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1. 이창향 수정 삭제

    안녕하세요~
    글을 읽으면서 제 아들이 생각납니다. 얼마전 제아들도 편의점 야간 알바에 면접을 보고 합격했다고 좋아하면서 전화로 소식을 전했줬거든요 .저도 축하해주고 대견해 했었어요 .
    아들이 함께할 수 있는 이모임이 지방에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

    그리고 전 느린학습자관련 박사논문을 준비하고있습니다
    느린학습자들에게 도움이되는 논문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정보와 자료를 찾고 있어요

    1. 교육을바꾸는사람들 수정 삭제

      댓글 감사합니다^^ 저희도 선생님의 바람이 이뤄지고, 박사논문도 잘 준비하시길 응원하겠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저희 칼럼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2. 이한나 수정 삭제

    성인 느린학습자에 대해서 언급해 주시고 관심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태 adhd와 경계선지능인인줄 모르다가 못하는 것이 모두 제 탓이라 생각하고 무조건 열심히 하면서 열심히만 하면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앞만 달려온 거 같습니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9년간의 직장생활과 신입 때는 기억이 잘 안나는 부분은 계속 기록하면서 제가 기억 안날 때 주변의 도움 덕분에 또한 관심 때문에 너무 잘 버텨온 거 같습니다. 억울하게 덮어 씌일뻔 할 때마다 기억을 못해서 말을 잘하지 못할 때.. 옳게 얘기해주신 상사분 때문에 이 시간 동안 행복하게 지냈던 거 같아요. 요번 코로나 지나면서 권고사직으로 9년간 익숙했던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새로운 일을 배우려는데, 이직하는 직장마다 너무 힘들고, 방대한 양의 정보를 받아들이기 힘들고, 새로운 사람과의 적응도 여러가지가 힘들게 다가오더라구요. 그만두고 한동안 깊은 우울증도 겪었는데, 새로운 일, 저랑 맞는 일을 찾아가면서 조금씩 회복되고 있어요. 부족한 사람들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사회에 적응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주고 애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릴 때부터 좋은 얘기를 듣지 못하고 자랐어서 자존감도 낮고, 불안감도 너무 높지만, 저도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adhd 약을 먹고, 심리치료를 받고 하루 어떻게 계획하고 살아야 하는지 배우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어릴 때 소외감과 자책감과 외로움과 괴로움에 매일매일 시달렸고, 사람들에게 미움이나, 놀림 안받으려고 이해하는 척 모르는데 안다고 넘어간 일도 많았던 거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어린 시절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던 저인데, 긍정적인 생각 때문에 뒤늦게 20대 후반에 몰아친 거 같습니다. 이제 자라는 아이들의 미래, 저처럼 마음이나 정서적으로 다치지 않았으면 하고, 성인들도 심리치료 받는데 많은 금전적인 부담이 있어서 지원을 받고 싶구요, 사회에 나와서 잘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어려서부터 지원해주어야 한다는 목소리와 관심에 감사합니다. 요즘 느린학습자에게 맞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말도 자주 나와서 알아주시는 분들이 많아지는 거 같아 따뜻한 관심을 많이 느꼈어요. 작년에는 결혼도 했는데요, 앞으로 아이가 생기면 아이를 잘 케어할지도 여러가지 고비와 큰 산이 있겠지만, 그때그때마다 저의 어린 시절처럼 도움을 피하거나 나의 부족함을 계속 숨기지 말고,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저도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1. 교육을바꾸는사람들 수정 삭제

      저희 칼럼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또 어렵고 힘드셨던 과거의 이야기를 댓글로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도 더욱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 결혼을 축하드리며 앞으로도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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