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바꾸는사람들

칼럼 검색
칼럼 모아보기
ERICK squareal Research & Innovation Center of Korea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배움은 그 아이를 이해하고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959 조순애, 학습종합클리닉센터 학습심리상담사 2023.09.19
“아이에 대한 정보들이 쌓일수록 더 즐겁고 성공적인 배움 과정을 꾸려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까’ 하는 질문의 답은 ‘내가 만나는 이 아이가 어떤 아이인가’ 하며 아이를 알려는 간절한 마음에서 발견된다.” (본문 발췌)

 

 

한 아이를 만나서 배움 과정을 펼쳐갈 때, 그 시작점은 지금 여기 내 앞에 있는 이 아이를 아는 것에 있다. 아이를 알아야 아이가 실패를 다시 반복하지 않으면서도 어느 정도 도전감과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수준의 목표를 설정할 수 있고, 아이가 즐길 수 있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고, 쉽게 포기하거나 무료해 하지 않고 배움을 지속해나갈 만하게 속도를 낼 수 있다. 아이는 배움 과정을 만들어가는 원천이고 핵심이다.

 

하지만 아이를 ‘제대로 아는 것’은 녹록지 않은 일이다.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아이를 아는 것은 과연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까? 이런 질문을 떠올릴 때면 덩달아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첫째는 과학 시간. ‘빛이 입자일까, 파동일까?’ 우린 그 질문과 관련된 실험들을 하나하나 배워가던 중 이중슬릿실험을 접하게 된다. 그런데 그 답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관찰자 효과1는 지금 생각해도 놀랍고 오묘하다. 이러한 현상은 결코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립자의 세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피그말리온 효과2나 스티그마 효과3가 그 실례가 될 것이다.

 

또 다른 시간 속으로 가보면, 나는 우리 학교 상담 동아리 아이들이 준비한 영상4을 보고 있다. 영상에는 검은 셔츠를 입은 사람과 하얀 셔츠를 입은 사람이 등장했다. 아이들은 이 영상을 보면서 하얀 셔츠를 입은 사람이 서로 패스하는 횟수를 세어보라고 했고, 난 공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며 열심히 숫자를 세었다. 하지만 진짜 질문은 패스 횟수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지나가는 고릴라를 보았나요?”, “배경의 커튼 색이 바뀐 것을 알아차렸나요?”라고 물었다. 난 분명 이 영상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그러나 난 보지 못했다.5

 

일전에 한 강의에서 오랫동안 상담을 해 오신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투사) 검사를 실시하고 나서, 혼자 추측하지 말고 아이에게 물어보세요.”

 

나 자신의 능력과 한계 모두를 수용하면서 소우주인 한 아이를 알아가는 과정은 신중함을 요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이를 만나면서 ‘아이가 어떻다’라는 정보를 쌓아갈 때에 스스로 다시 묻는다. ‘그게 진짜야?’ 그리고 아이를 아는 누군가에게 묻는다. “나는 OO이를 이렇게 보았는데, 어떤가요?” 또 인정한다. 나는 내가 보고자 하는 아이의 일부만을 볼 뿐이라고.

 

그럼에도 40대에 들어선 후부터는, 아이를 만나고 알아가는 일이 두렵기보단 설렌다. 새로운 앎을 선물해 준 아이와 세상에 대한 감사가 우선하기 때문이다. 때론 아이의 온 존재가 그저 오롯이 폭 안겨 와 아이를 알아가게 되고, 때론 하나하나 세세하게 분석적으로 파악하며 아이를 알아가게 된다. 그것은 불완전하다. 그렇지만 괜찮다. 우리는 완전한 존재로서 완벽한 만남을 이루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와 너로서 족하며 그것으로 충분히 재미난 순간들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배우려 하니까.

 

 

아이의 모든 것을 본다.

 

아이에 대한 정보들이 쌓일수록 더 즐겁고 성공적인 배움 과정을 꾸려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아이가 드러내는 모든 것을 통해 아이에 대해 배우려고 한다. 예를 들어보면 이러하다.

 

나는 어떤 아이를 처음 만나는 날, 주로 ‘보석 만들기’6란 활동을 한다. 이 활동은 보석과 같은 자신의 좋은 점을 나누는 활동이다 보니, 아이와 관계를 맺고 아이에게 따뜻한 기운을 불어 넣어주기에 참 좋다. 이 활동을 하고 나면 아이와 나 모두 행복 에너지가 높아진다. 이 활동은 아래와 같은 순서로 진행된다.

 

1) 원하는 색깔의 색종이를 고른다.
2) 색종이를 대각선으로 접었다 편다. 또 모서리의 한쪽 끝을 중앙선이 살짝 지나게 접어준다.
3) 보석 활동지를 살펴보며 내 안에 있는 장점들을 떠올려본다.
4)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접은 색종이 상단에 이름이나 별명을 쓴다.
5) 보석 활동지에서 내 안에 있는 보석을 찾아 오려 붙이고 이야기 나눈다.

 

단순한 활동이지만 이 활동을 하면서 아이에 대해 알 수 있는 것들을 표로 나타내보면 다음과 같다.

 

활동 알 수 있는 것
색종이

고르기

 ◦ 아이가 현재 좋아하는 색깔, 과거에 좋아했던 색깔이 무엇인지

 ◦ 색과 관련된 아이의 감정 상태(단순한 선호도를 드러낼 수도 있고 어떠한 두드러진 정서 상태를 나타낼 수도 있다.)가 어떠한지

 ◦ 색과 관련된 성 고정관념이 있는지 없는지

 ◦ 선호가 뚜렷한지, 두루두루 좋아하는지

 ◦ 아이가 무언가를 선택할 때 꼼꼼히 보고 선택하는지, 대략 훑고 빨리 결정하는지, 선택지를 모두 살피는지 한두 가지만 보고 결정하는지

색종이

접기

 ◦ 보고 모방할 수 있는지

 ◦ 손끝의 세심함, 소근육 능력이 어떠한지

 ◦ 가능한 스스로 하려고 하는지, 도움을 요청하는지

보석

활동지

살피기

 ◦ 그림을 보고 내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지

 ◦ 자기가 파악한 것을 말로 얼마나 표현할 수 있는지

 ◦ 글자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는지

이름이나

별명

쓰기

 ◦ 자기 이름이나 별명 정도는 잘 쓸 수 있는지

 ◦ 필압이나 글자 크기는 어떠한지

 ◦ 획순에 따라 글자를 쓸 수 있는지

 ◦ 연필 잡는 법이나 글자를 쓸 때의 자세는 어떠한지

 ◦ 별명을 쓸 경우, 친구들 사이에서 아이의 모습이 어떻게 비춰지는지, 친구들의 시선을 아이 스스로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보석

오려

붙이기

 ◦ 가위질을 할 때 선을 따라 잘 오릴 수 있는지

 ◦ 풀을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

 ◦ 아이가 자신의 좋은 점으로 무엇을 꼽는지

 ◦ 아이의 자존감이 어떠한지

 ◦ 자아 발달 수준이 어떠한지, 자기 자신의 특성으로 어떤 것들을 선택하는지

 

‘아이돋보기’. 아이가 어떤 연유로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지 알아보는 과정에 이런 이름을 붙였다. 돋보기를 사용해서 사물을 보다 또렷하고 정확하게 볼 수 있듯이, 여러 가지 도구와 활동을 매개로 아이에 대해 들여다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진단하고 규정짓기 위해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봄’ 그 자체가 목적이고 그를 통해 앞으로 꾸려나갈 배움 과정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나름의 의지를 반영한 이름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표준화 검사에 대해 살짝 거부감이 있어서 사용하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그 또한 필요하다면 자유롭게 사용한다. 오롯이 이 아이에게 초점을 맞추어 ‘내적인 측면에서 아이의 현재와 성장과 변화를 알아가는 것’과 ‘외적인 측면에서 전체 속의 아이를 보는 것’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과 ‘차이가 애초에 없는 것처럼 무시하고 경홀히 여기는 것’은 전혀 다르다. 그래서 요즘은 지능검사나 기초학습능력 검사, 어휘력 검사 같은 도구들도 활용하고 있다.

 

아이에 대해 배우는 것은 초기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아이와 만나가는 매 순간마다 아이에게 집중해야만 교사가 세운 교육과정에 아이를 구겨 넣지 않고 아이에 맞추어 배움의 목표와 과정을 조절해나가는 것이 가능하다.

 

 

더불어 본다.

 

“선생님은 결혼을 안 해봐서…….”

 

나는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 그런 나를 의심의 눈길로 바라보시며 가끔 이런 말씀을 하는 부모님들이 계셨다. 막 교사가 되었을 땐 이런 이야기에 발끈하기도 했더랬다. 교사로서의 내 이야기를 무시하는 것 같기도 했고 내 애씀과 아이에 대한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기도 해서 서운하고 야속했다.

 

지금은 나 스스로 난 부모의 마음을 모른다고 인정한다. 난 여성만이 겪을 수 있는, 제일의 고통이라는 산고를 모른다. 몇 년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가고 자기 시간을 전혀 낼 수 없는,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생활을 해본 적이 없다. 내 청춘의 꿈과 내 멋대로의 성질을 누르고 져야 하는 책임의 무게에 눌려보지도 않았다. 부모가 되어야 비로소 겪을 수 있는 몸과 마음의 현실을 모른다. 그래서 지금은 당신들이 부모로서 산 시간 못지 않게 나 또한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애써온 절대적 시간들과 수많은 몸부림들이 있다고 말할 생각이 없다. 그건 서로 다른 것이다.

 

달라서 서로가 필요하다. 부모는 자녀와 유전자를 공유하고 많은 시간을 함께 해왔다. 교사가 알 수 없는 내밀한 상황과 아이에게 영향을 미친 영유아기의 절대적인 사건들은 부모를 통해서만이 알 수 있다. 오늘 아침 아이가 왜 이렇게 짜증이 나 있었는지, 요즘 아이가 왜 이렇게 시무룩하고 기운이 없는지도. 하지만 부모도 아이의 전부를 알지는 못한다. 부모는 자기 경험치에 의해 자기 눈으로 아이를 보고 해석한다. 또 부모는 아이가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드러내는 면만 안다. 가끔 학교와 집에서의 모습이 전혀 다른 아이들도 있고, 개인적인 관계와 집단 상황에서 사뭇 태도를 바꾸는 아이들도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교사가 부모와 적극적인 협력을 하려 해도, 천천히 배우는 아이들의 부모와는 아이에 대해 의미 있고 충분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쉽지 않을 때가 있다. 학습이 더딘 원인이 가정과 불가분의 경우에 있을 때 그러하다. 다문화 가정의 경우 어머니가 우리 말에 익숙하지 않으셔서 대화가 어려울 수 있다. 한부모 가정의 경우 부모가 생계에 매진하느라 아이를 방치하고 아이의 교육에 별 관심이 없을 수 있다. 지적인 어려움을 가진 아이의 경우 부모 역시 같은 어려움을 갖고 있을 수 있고 아이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 부모를 적절한 협력자로 세우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조손 가정의 경우 부모 둘 다 아이와 함께 살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아이를 잘 알기 위한 보완과 협력 관계를 다양하게 맺는 것이 필요하다. 또 다른 부모, 또 다른 교사, 또 다른 전문가 등. 아이를 만나본 여러 사람들이 아이에 대해 이해했던 이야기들을 감추지 않고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가 보는 아이의 모습이 상반될 때 내 눈과 판단이 옳다며 배타적인 입장을 취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그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지 찾아 나가야 한다. 주관과 객관의 교차점이 다채롭고 풍부할수록 아이에 대해 더 풍성하고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알고 사랑하며 깊어지는 배움의 길

 

“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지즉위진애 애즉위진간)”
: 알면 진실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제대로 보게 된다.

 

정조 때의 문장가인 유한준이 당대의 수장가 김광국의 화첩에 부친 발문의 일부이다. 이 말은 한 때 베스트셀러였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로 좀 고쳐 쓰여 알려지기도 했다. 두 문장 속에서 ‘아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선후가 서로 반대로 놓이긴 했는데, 아는 것이 먼저든 사랑하는 것이 먼저든 이 말은 아이를 만나는 순간에도 썩 잘 통하는 말이라 생각된다. 아이와 만들어가는 배움 과정의 정수가 이 말속에 녹아 있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까’ 하는 질문의 답은 ‘내가 만나는 이 아이가 어떤 아이인가’ 하며 아이를 알려는 간절한 마음에서 발견된다. 아이를 알고 사랑하게 될수록, 아이와 어떤 내용을 어떤 방법으로 풀어갈지, 또 어디에서 출발해서 어떠한 속도로 나아갈지 가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앎과 사랑이 아이와 함께 하는 사람들과 나누어질수록 아이를 통합적이고 총체적인 관점에서 지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아이와 나, 우리의 배움이 깊어져 갈 것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 인쇄(Print)하기

각주

  1. 실험자가 어떤 미립자를 입자라고 생각하고 바라보면 입자의 모습이 나타나고, 관찰하지 않으면 파동의 특성을 나타내는 현상
  2. 자신이 만든 조각상을 사랑한 피그말리온에 대한 신화에서 유래하였으며, 긍정적인 기대나 관심이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효과를 말한다. 1964년 미국의 교육심리학자 로버트 로젠탈에 의해 실험되었으며 ‘로젠탈 효과’라고도 불린다.
  3.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낙인이 찍힘으로 인하여 더 나쁜 쪽으로 변해 가는 것
  4. 1999년 크리스토퍼 차브리스와 대니얼 사이먼스라는 두 심리학자의 연구 과정에 의해 하버드대학교에서 진행한 실험. 피험자들은 영상을 보며 이것이 주의력에 관한 실험이라고 안내를 받는다.
  5. 무주의 맹시: 대상이 시야 속에 들어 있지만 주의가 기울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간과해버리는 현상
  6. ‘버츄프로젝트’를 알린 권영애 선생님의 활동을 천천히 배우는 아이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변형한 것이다.
학습종합클리닉센터 학습심리상담사 조순애

현재 전라남도 장흥교육지원청 학습종합클리닉센터에서 학습심리상담사로 또래보다 천천히 학습 과정을 밟아가는 친구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이전글 [핀란드 교육] 현직 교사 재교육 및 신규 교사 양성 과제 – 학습 어려움을 지원할 책임과 의무 (특수교육과 통합교육) 다음글 공교육 현장의 ‘폭언 방지 연결음 도입과 녹음 의무화’의 필요성
칼럼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