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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교육권 회복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955 박제원, 전주 완산고등학교 교사 2023.09.06
“부디 이번 사태가 교육주체들에게 “지금 학교는 안녕한가?”, “국가가 교육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과제를 제시했음을, 그리고 더 나은 교육적 미래를 그려보고 도약하는 시련의 시간으로 기억되었으면 한다.” (본문 발췌)

 

 

지난 7월 서이초 교사의 죽음 이후에 지금까지 교육권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타오르고 있다. 교사들은 교육권이 땅에 떨어지고 교실 현장은 처참하게 파괴되었다고 호소하며, 국회가 아동복지법 등 아동 관련 법을 개정하고 교육부 등 관계 당국은 교육권이 실효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교육정책을 시급하게 바꾸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의 중심에는 그 원인 제공자로 학부모가 놓여있다.

 

 

교육은 국민이 자주적으로 생활하고 민주시민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교육권은 교육에 관한 권리·의무 주체의 권리관계를 의미하며 우리 헌법 제 31조는 교육에 관한 조항으로 ‘교육을 받을 권리’, ‘교육을 받을 의무’ 등을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교육 관련 법령인 교육기본법이나 초·중등교육법 등에는 교육의 목적, 교육 당사자 및 그들의 역할 등을 규정해 놓고 있다.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 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교육기본법 제 2조(교육이념)>

 

즉 교육의 목적은 국민이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는 데 있다.

 

또한 동법 제 12조, 13조, 14조를 보면 “학생은 학습자로서 윤리의식을 확립하고, 학교의 규칙을 준수해야 하며, 교원의 교육·연구 활동을 방해하거나 학내의 질서를 문란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교육기본법 제 12조 3항)”, “보호자는 보호하는 자녀 또는 아동이 바른 인성을 가지고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교육할 권리와 책임을 가진다.(교육기본법 제 13조 1항)”, “교원은 교육자로서 지녀야 할 윤리의식을 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학생에게 학습윤리를 지도하고, 지식을 습득하게 하며, 학생 개개인의 적성을 개발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교육기본법 제 14조 3항)”로 규정함으로써 학생, 보호자, 교원의 교육적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

 

당사자의 권리 또는 권한도 규정되어 있다. “학생은 학습자로서 학생을 포함한 학습자의 기본적 인권은 학교교육 또는 평생교육의 과정에서 존중되고 보호된다.(교육기본법 제 12조 1항)”라고 규정하며 학습권리를 인정하고, “부모 등 보호자는 보호하는 자녀 또는 아동의 교육에 관하여 학교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으며, 학교는 그 의견을 존중하여야 한다.(교육기본법 제 13조 2항)”로 보호자의 교육 참여 권한을 보장하고, 교원은 초·중등교육법에 교직원의 임무로서 “교장은 교무를 총괄하고, 소속 교직원을 지도·감독하며, 학생을 교육한다.(초·중등교육법 제 20조 1항)”, “교감은 교장을 보좌하여 교무를 관리하고 학생을 교육하며, 교장이 부득이한 사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교장의 직무를 대행한다. 다만, 교감이 없는 학교에서는 교장이 미리 지명한 교사(수석교사를 포함한다)가 교장의 직무를 대행한다.(초·중등교육법 제 20조 2항)”, “수석교사는 교사의 교수·연구 활동을 지원하며, 학생을 교육한다.(초·중등교육법 제 20조 3항)”, “교사는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초·중등교육법 제 20조 4항)”로서 교육 권한을 규정하고 있다.

 

 

교육권은 학생의 학습권을 뒷받침하기 위해 인정되는 하위 권한이다

 

교사의 교육 권한을 법에서는 수업권이라고 칭한다.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은 “수업권을 학생의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교사에게 필수적으로 주어진 권한으로 두며, 학습권이 수업권보다 우월하다.”라고 본다. 즉 교사의 수업권은 많은 교사들이 ‘교사에게 부여된 교육적 권리’라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학습권을 실현하기 위해 제한적으로 인정되는 직무상 권한’이다. 그러므로 직무권한의 내용 또한 학생의 학습권 실현을 위해 적합한 교육내용과 방법까지만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다. 요컨대 교사의 수업권이 헌법상 허용되지만, 초·중등학교에서 교사의 학생 교육은 교원 자신의 인격 발현 또는 학문과 연구의 자유보다는 교원의 직무에 기초하여 교육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고, 자연법적으로는 학부모에게 속하는 자녀에 대한 교육권을 신탁받는 것이고, 실정법상으로는 국가의 위임에 의한 것이므로 수업권은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인정되며 학습권을 위해 제한될 수 있다.

 

교사의 교육권(수업권)은, 이것이 헌법상 권리인지 여부는 다툼이 있으나, 법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권리임에는 틀림이 없으며, 오늘날 각국의 교육법제는 교사의 학교운영, 교육과정 결정에 대한 참여를 확대하는 경향이 있다. (헌법재판소 2001. 11. 29. 선고 2000헌마278)

 

학교교육에 있어서 교원의 가르치는 권리를 수업권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교원의 지위에서 생기는 학생에 대한 일차적인 교육상의 직무권한이지만 어디까지나 학생의 학습권 실현을 위하여 인정되는 것이므로, 학생의 학습권은 교원의 수업권에 대하여 우월한 지위에 있다. 따라서 학생의 학습권이 왜곡되지 않고 올바로 행사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면 교원의 수업권은 일정한 범위 내에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고, 학생의 학습권은 개개 교원들의 정상을 벗어난 행동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 특히, 교원의 수업 거부 행위는 학생의 학습권과 정면으로 상충하는 것인바, 교육의 계속성 유지의 중요성과 교육의 공공성에 비추어 보거나 학생·학부모 등 다른 교육 당사자들의 이익과 교량해 볼 때 교원이 고의로 수업을 거부할 자유는 어떠한 경우에도 인정되지 아니하며, 교원은 계획된 수업을 지속적으로 성실히 이행할 의무가 있다. (대법원 2007. 9. 20. 선고 2005다25298 판결)

 

학교교육에서 있어서 학생의 학습권은 어디까지나 학생 개개인의 개인적 기본권이지 특정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 전체의 집단적인 기본권이 아니다. 그러므로 학습권의 주체인 학생들이 스스로 수업에 참석하지 아니하는 바람에 교원이 계획된 수업을 이행하지 못한 때는 원칙적으로 교원에게 그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을 것이나, 학생자치단체의 결의에 따라 일부 학생들이 수업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나머지 학생들에 대한 교원의 수업 거부 행위가 정당화된다고 할 수는 없다. (대법원 19893.7.27. 선고 93눈 8139 판결)

 

이처럼 교사의 교육권(수업권)은 학습권에 비해 제한적이더라도 법으로 보장되어 있다.

 

 

교육권 침해는 아동복지법, 아동학대처벌 특례법 때문이 아니다

 

최근 교사들이 거리로 뛰어나가게 된 까닭이 있다. 수업권이 교육 현장에서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 즉 “교사는 정당하게 교육 활동을 했는데도 학부모 등으로부터 무차별적으로 아동학대로 신고됨으로써 무고성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억울함(?) 때문이었다. 예컨대 수업을 방해하거나 소란을 부리던 아이들에게 잘못된 행동을 훈육했거나 수업 중에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놀았는데도 고소나 고발당했다는 것이다. 물론 학부모들의 입장은 다르다. 학부모들은 “교사가 교육 활동 중에 부당하거나 불법적으로 학생들을 지도해 자신의 아이가 신체적, 정서적, 성적 피해를 입었다.”라고 주장한다.

 

우선, 몇 가지 사실 확인(fact check)을 하자. 교사들은 가장 흔하게 겪었던 피해로 ‘직위해제’를 꼽는다. 교사들은 “자신들이 아동학대로 신고되거나 수사기관의 수사를 받으면 즉시 아동과 분리조치되었다.”라고 말한다. 즉 담임교사, 교과전담교사로서의 직위가 해제되며 수업 교체, 동선 구분 등이 뒤따라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아동복지법이나 아동학대처벌 등에 대한 특례법의 악법 조항 때문이며, 이는 시급하게 개정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아동복지법이나 아동학대처벌 특례법 때문이 아니다. 아동학대처벌 특례법 제12조(피해 아동 등에 대한 응급조치) ①항을 보면 “현장에 출동하거나 아동학대 범죄 현장을 발견한 경우 또는 학대 현장 이외의 장소에서 학대피해가 확인되고 재학대의 위험이 급박·현저한 경우에만 가해자와 피해 아동을 분리한다.”고 되어 있다. 또한 교육공무원법 제 44조 2항을 보더라도 “아동복지법 제 17조에 명시된 금지행위로 인해 교사가 수사를 받더라도 교육공무원으로서 품위를 크게 손상한 경우에만 직위해제를 할 수 있다.”고 되어있다. 즉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 제한에서 과잉금지의 원칙이 지켜져야 하고 법률로만 제한될 수 있으므로(헌법 제 37조) 교사들은 직위해제 등으로 학생들과 분리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법을 무시하고 그동안 학교장, 교육장, 교육감은 법을 무시하거나 부당하게 일방적으로 교사의 직위를 해제하여 수업교체, 담임교체를 해왔으며 동선을 구분하는 방법으로 학생으로부터 분리했다. 즉 교육 관료들이 멋대로 부당하게 또는 불법적으로 권력을 남용해온 것이 교사의 삶을 위태롭게 한 진짜 원인이라는 뜻이다. 요컨대 아동학대로 교사가 신고당하더라도 즉시 담임교사나 교과교사로서의 지위를 박탈하여 아이들과 분리하지 않아도 되는데도 교장, 교육장, 교육감은 사안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교사를 행정조치함으로써 교사의 자존감과 역할에 상처를 준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교사들은 “아동학대처벌 특례법 때문에 정당한 교육활동을 했는데도 학부모가 아동학대 민원만 제기하면 교장이나 교사는 어쩔 수 없이 지자체나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하므로 문제 학생의 생활지도마저 제대로 하지 못했다”라고 호소한다. 아동학대처벌 특례법 제10조(아동학대 범죄 신고의무와 절차) ①항을 보면 “누구든지 아동학대 범죄를 알게 된 경우나 그 의심이 있는 경우에는 특별시·광역시·특별자치시도·특별자치도(이하 “시·도”라 한다), 시·군·구(자치구를 말한다) 또는 수사기관에 신고할 수 있다.”로 되어 있고, ②항을 보면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이 직무를 수행하면서 아동학대 범죄를 알게 된 경우나 그 의심이 있는 경우에는 시·도, 시·군·구 또는 수사기관에 즉시 신고하여야 한다.”로 되어 있으며, 동 조항 20호에 보면 “「초·중등교육법」 제 2조에 따른 학교의 장과 그 종사자는 그 대상이다.”로 되어있다.

 

그러나 학부모가 아무리 교사나 교장에게 아동학대 민원을 제기해도 실제로 아동학대 범죄를 의심할 여지가 없으면 교원들은 신고해야 할 의무가 없다. 그리고 현재 법령체계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오래전부터 필자가 주장해왔듯이, 학부모가 아동학대로 민원을 제기하려면 교육과정과 관련된 민원은 주요 민원이므로 민원처리법 제 2조에 따라 문서로 민원을 신청해야 하고, 정해진 서식에 민원을 제기하는 사유를 제시해야 하며, 그 제시한 사유가 아동학대라고 의심할 수 없는 내용이라면 교장이나 교사는 신고해야 할 의무가 전혀 없고, 그 이유를 민원을 제기한 학부모에게 학교장 명의로 발송하면 된다. 나아가 교사가 아동학대를 한 사실이 없는데도 아동학대로 몰아갔으므로 학부모가 제출한 민원처리 요구서는 학부모가 수사기관에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신고할 경우에 무고죄의 신빙성 있는 증거로서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도 교사나 특히 학교장은 학부모들로부터 민원을 받을 때 서류로 받지 않았다. 즉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지키지 못해 왔던 것이다. 여러 번 말하지만 국가에서 국민의 권리나 권한은 법을 통해 보호하지만, 당사자가 행사하지 않으면 설령 본인이 피해를 입더라도 국가에서 구제해주지 않는다. 또한 형사소송법 제 307조에 의해 피의자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합리적 의심이 들 정도는 되어야 기소되며, 합리적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는다. 그런 정도인데 민원의 내용이 합리적인 것은 고사하고 아동학대 의심도 들지 않았는데 학부모가 민원을 제기했다고 교사나 교장이 동료 교사를 무조건 수사기관에 신고해서는 안 된다. 즉 교사를 고통에 빠지게 한 진짜 원인은 그런 행정적 실무절차도 제대로 하지 않고 학교와 교육청을 운영했던 교장, 교육장, 교육감에 있으므로 그들의 책임이 매우 크다.

 

그러므로 교사가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분리되지 않도록 교육권 보장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교육권 침해를 아동복지법이나 아동학대처벌 특례법 탓으로 돌리고 관련 법령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럴듯해 보이긴 하지만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8월 8일 열린 ‘모두를 위협하는 윤석열 정권의 ‘교권’대책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토론회에서 이제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아동인권위 변호사는 아동복지법, 아동학대처벌 특례법과 관련해 아동학대 배제 조항 및 책임감면 조항에 대해 “현행법상으로도 정당한 범위에서의 교육활동·생활지도는 아동학대로 처벌되지 않기 때문에 아동학대 배제 조항이 법체계상 실익이 없을 수 있다.”라고 의견을 제시했다. 즉, 법률이 개정되더라도 단순히 확인적 규정으로만 남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뜻이다. 이는 “여전히 문제가 된 교사의 활동에 대해서 신고나 고소가 이루어질 수 있고, 이에 대해 기존처럼 교원의 행동이 아동학대에 해당하지 않는 ‘정당한’ 행위였는지를 법적으로 다투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많은 교원단체들이 주장하듯이 아동학대 배제 조항이 생겼을 때 미칠 영향 중에는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실제로 학대 행위가 발생했을 경우, “그것이 교육활동 중에 이루어졌다는 사유만으로 신고를 할 수 없게 만들거나, 아동이나 아동의 부모는 수사 단계부터 정당한 교육활동이 아니었음을 더욱 더 높은 정도로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교권에 대한 아동 관련 법 개정에 대한 논의보다 교육권 보장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재 교원활동·생활지도에 대한 전담 기구나 별도의 절차 마련에 대한 논의는 대부분 해당 교원의 행위가 아동학대에 해당하는지, 학생과 학부모가 무고성 고소를 한 것인지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한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 같다”며, 그보다 집중해야 하는 논의는 “각 당사자들에 대한 지원, 처분, 조치를 얼마나 다양하고 촘촘하게 설계할 것인지, 또한 그 과정에서 실효성 있게 작동할 수 있도록 관련 책임자들의 의무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라고 설명했다. 즉 학생, 학부모, 교원에 대한 책임과 권리를 더욱 명확하게 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책임을 지우고 권리를 행사하게 함으로써 교원의 교육권, 학부모의 교육참여권,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해 주며, 교육당국이 교육인프라를 더욱 촘촘하게 지원함으로써 교육공동체를 회복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장, 교육장은 교사의 교육권을 보호할 전문 지식이 부족하다

 

교육기본법 제 12조에서 학습자에게 책임을 두는 것 이외에 다른 법령으로도 교원의 교육권을 보장한다.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이하 교원지위법)이 존재한다. 교원지위법에서 보장하는 내용을 보면 국가, 지방자지단체 및 그 밖의 공공단체는 교원의 교육활동을 보호할 책무를 지니며(제 14조), 학교의 장은 학교의 학생 또는 보호자 등이 교원의 교육활동을 침해한 사실을 알게 된 경우에 즉시 피해를 입은 교원의 치유와 교권 회복에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제 15조)

 

제15조(교육활동 침해행위에 대한 조치) ① 제3항에 따른 관할청과 「유아교육법」에 따른 유치원 및 「초·중등교육법」에 따른 학교(이하 ”고등학교 이하 각급학교”라 한다)의 장은 소속 학교의 학생 또는 그 보호자 등이 교육활동 중인 교원에 대하여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이하 “교육활동 침해행위”라 한다)를 한 사실을 알게 된 경우에는 즉시 교육활동 침해행위로 피해를 입은 교원의 치유와 교권 회복에 필요한 조치(이하 “보호조치”라 한다)를 하여야 한다.

 

1. 「형법」 제2편 제25장(상해와 폭행의 죄), 제30장(협박의 죄), 제33장(명예에 관한 죄) 또는 제42장(손괴의 죄)에 해당하는 범죄 행위

2.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조 제1항에 따른 성폭력범죄 행위

3.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7 제1항에 따른 불법정보 유통 행위

4. 그 밖에 교육부장관이 정하여 고시하는 행위로서 교육활동을 부당하게 간섭하거나 제한하는 행위

 

교육활동 침해 행위 및 조치 기준에 관한 고시

 

제2조(교원의 교육활동 침해 행위) 교원의 교육활동(원격수업을 포함한다)을 부당하게 간섭하거나 제한하는 행위는 다음 각 호와 같다.

 

1. 「형법」 제8장(공무방해에 관한 죄) 또는 제34장 제314조(업무방해)에 해당하는 범죄 행위로 교원의 정당한 교육활동을 방해하는 행위

2. 교육활동 중인 교원에게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

3. 교원의 정당한 교육활동에 대해 반복적으로 부당하게 간섭하는 행위

4.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에 불응하여 의도적으로 교육활동을 방해하는 행위

5. 교육활동 중인 교원의 영상·화상·음성 등을 촬영·녹화·녹음·합성하여 무단으로 배포하는 행위

6. 그 밖에 학교장이 「교육공무원법」 제43조 제1항에 위반한다고 판단하는 행위

 

하지만 현실에서 교원지위법과 교육활동 침해 행위 및 조치 기준에 관한 고시에서 명시한 교육활동 침해에 대한 판단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가 비일비재하다. 그 까닭은 교원의 정당한 교육활동이나 생활지도 및 교육권과 교원의 전문적 지위나 신분에 영향을 미치는 부당한 간섭에 대하여 교원 특히 교장이 법적 식견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데 현실에서 그런 교원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이 법 조항이 현실성을 지니려면 학부모의 부당한 간섭이나 학생의 생활지도 불응에 대해 교원의 의사 판단을 보완할 수 있는 학교 변호사 제도나 교육지원청 변호사 제도를 통해 실질적 법률 서비스가 지원될 수 있는 방안 마련을 통해 보완되어야 한다.

 

요컨대 학교장, 교육장, 교육감이 교사의 교육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전력을 다해 책임져야 하며, 부당하거나 불법적으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그 책임을 교사에게 미룸으로써 교사가 아무런 의무가 없음에도 이를 감당하게 만들지 않아야 한다. 교장은 교원지위법에 의해 보장된 교권보호위원회 등이 제대로 열릴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며, 민원처리법에 의해 학부모의 민원을 받을 때도 서류로 받고, 부당한 민원에 대해 교사를 보호하도록 해야 한다. 교육지원청은 학폭 심의 의결기관이므로 이에 대한 민원을 책임져야 하며, 교육감은 교육부나 학부모만을 의식하여 교사를 직위해제하지 않아도 되는데 직위해제를 하는 등의 부당한 행정조치를 학교 구성원들에게 취하지 않음으로써 교사의 교육 권한이 침해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교육권 침해는 제도 개선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지금 이 사태에 대해 국가가 법과 제도로써 부당한 교육행정을 바로잡는다고 해도 지금 교사들이 겪는 교육권 침해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따라서 교사들이 겪는 고통 또한 단기간에 사라진다고 볼 수 없다. 주요 원인이 교육기본법이나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학부모나 학생의 권한이 과거보다 커진 데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그것들이었다면 교사의 교육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교원의 권한을 높이거나 학부모나 학생의 의무를 강화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학생에 대한 생활지도권 강화, 학생징벌의 강화, 학부모의 교육참여권 제한 등이 이번 교육권 회복을 위한 투쟁에서 실효적 대안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권 침해의 근본 원인은 좀 더 깊숙한 곳에 숨어 있다.

 

 

학교마저 돈이 지배하는 시장의 영토로 점령되었다

 

교육권 침해의 근본 원인으로는 첫째, 교육을 공공재로 본 탓에 상품사회의 속성이 상대적으로 제한되었던 학교가 급속도로 공공성을 상실한 점을 꼽을 수 있다. 즉 학교 안이든 밖이든 학습자 중심, 수요자 중심이라는 미명 하에 교육과정에서 개별적 유용성이 그 질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사회이다. 즉 개인의 소유권, 영리 추구, 경쟁을 인정하고 시장 가격이 생산, 분배, 교환, 소비를 결정하는 기준치로 작용한다. 자본주의는 가장 발달된 상품생산체제이며 상품생산의 최고 형태로서 모든 사물은 상품이 되고, 도처에 매매의 원칙이 지배한다. 여기에서는 노동의 생산물이 상품이 될 뿐만 아니라 인간의 노동력, 인간의 피와 땀, 인간의 양심, 명예, 위신, 존경심마저 모두 매매의 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인간관계 또한 일정한 대가(비용)를 지불하면 수익을 누리는 교환 가능한 상품일 뿐이다. 특히 그 관계에서 한쪽이 지불하는 비용이 많을수록, 강제적으로 비용이 지불되도록 제도화되어 있다면 비용을 지불하는 쪽의 기대 편익도 커지게 되어 상대에게 등가의 교환을 요구하게 된다. 그러므로 비용에 비해 편익이 적은 부등가 교환이 발생하면 인간관계라는 상품은 더 이상 시장에서 정상적인 거래 관계에 놓여있지 않게 된다. 즉 한 당사자가 손해를 보면서까지 그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지 않는다. 나아가 현재의 불평등한 관계보다 더 큰 편익을 주는 새로운 상품이 등장하거나, 대체재가 존재하면 기존 관계의 절연은 비용 지불자로서 당연한 권리 행사일 뿐이다.

 

근대 이래 학교는 학생이나 학부모가 기대하는 개인의 목적 달성을 위한 사적 공간이기보다 국가 교육이 추구하는 목적을 달성하려는 공적인 공간으로 인식되어 왔었다. 그래서 학교교육은 단순히 학생과 학부모의 교육수요를 만족시켜주는 사설학원과는 다른 공공적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국가와 사회적 관점에서 이해되고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배워서 남주나?”라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이 자본주의가 고도화되고 시장경제가 그 영토를 확장함에 따라 교육은 사적 상품으로 인식되고 교육투자로 얻어지는 사회경제적 지위인 사적 수익에 대한 관심은 점점 더 높아져 갔다. 즉 학생은 학부모의 지원 하에 자신의 능력과 노력을 다하여 학력 또는 학위를 취득하고 그렇게 획득한 사적 상품을 활용하여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라는 더 우월한 사적 수익을 얻으려고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학부모가 교육에 투자한 비용은 학생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실제 가구 당 자녀 교육비는 늘어나고 있다. 지난 5월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구의 1분기 월평균 교육비 지출은 3만 4,282원으로, 1년 전보다 8,899원인 35.1%가 더 늘었다. 그리고 이러한 증가는 한국 교육에서 올해 1분기만이 아니라 추세적이고 지속되었던 일이기도 하다.

 

공공의 영역이 상품경제로 급격히 영토화됨에 따라 학교와 교사들은 학교 밖의 국가와 사회로부터 그리고 학부모와 학생으로부터 교육에 대해 요구받는 책무성의 강도가 높아져 갔다. 또한 학교와 교사가 제공하는 교육서비스의 질적 수준에 대한 의문과 회의가 잦아들면서 학교 책무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와 정책들이 경쟁적으로 학교에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즉 대규모의 획일화된 공교육은 더 이상 학부모와 학생의 다양한 교육적 욕구를 충족하기 어려웠고 학교 현장에서는 학생들의 저조한 학업성취도와 학교 부적응 및 중도 포기 현상들이 자주 목격됨으로써 공교육의 위기에 대한 많은 비판과 지적이 이어졌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공장에서 주문형 맞춤형 상품을 공급하듯이 수요자 중심, 학습자 중심인 소위 맞춤형 교육으로 이어졌다. 예컨대 국가와 학교가 학생과 학부모에게 교육과정에서 흥미, 진로, 적성에 따른 선택을 보장해 주는 것이 좋은 교육의 출발점이라고 받아들여졌으며, 학부모와 학생의 학교 선택은 지역별이든, 획일적 평가지표(점수)에 따른 수준별이든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허용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방향이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고 믿어졌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이명박 정부 때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를 실시하여 고등학교 교육을 다양화하고 특성화된 교육을 실시하였다. 이는 구체적으로 자율형 고등학교 100개, 기숙형 공립고등학교 150개, 마이스터교 50개 마련 및 운영을 목표로 추진되었다. 대입에서는 학생부종합전형이 지배 전형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쟁과 효율 중심의 시장주의적 교육이 지배담론이 되어 학교의 공공성을 무너뜨린 사건은 당연히 인간의 의식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학부모와 학생의 교사에 대한 인식 또한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의 의식은 ‘사회적 산물’로서, 물질적 생산 활동이나 사회적 조건을 기반으로 하여 형성되었다. 의식은 가장 단순한 감각적 단계에서부터 시작하여 아주 추상적인 이론적 단계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다양한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물질적, 사회적 삶에 의해서 조건 지워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정치 경제학 비판』의 서문에서 이러한 점을 강조하여 “인간의 의식이 인간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인간의 존재가 인간의 의식을 규정한다.”(9쪽)라고 말하였다. 이처럼 사회적 의식은 물질적인 생산 활동을 토대로 하여 사회적 환경에 의해 형성된 사회적 산물로서, 이러한 사회적 존재에 의해서 규정된 것이다. 즉 의식은 처음부터 이미 하나의 사회적 산물이며, 무릇 인간이 존재하는 한 영속적으로 존재한다. (독일 이데올로기 31쪽/71쪽)

 

과거 한국 사회에서 교사는 스승이었다. 단순하게 지식을 전달하는 전달자가 아닌 닮아가야 할 모범이나 본보기의 전형이었다. 한국을 포함한 동양 문화권에서 “스승은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을 삼고초려라는 고사는 잘 보여준다. 삼고초려(三顧草廬)는 “초가집을 세 번 찾아간다”는 뜻인데 중국 촉한의 창립자인 유비가 제갈량의 초옥을 세 번 찾아가 간청(懇請)하여 드디어 제갈량(諸葛亮)을 군사(軍師 군대의 우두머리)로 맞아들인 사건이다. 워낙 유명한 고사이니 아마 거의 모든 교사나 또는 교사가 아니어도 잘 아는 이야기이다. 진나라의 역사가였던 진수가 쓴 정사(正史) 삼국지에는 삼고초려라는 글자만 나오지만, 나관중이 쓴 소설 삼국지(삼국지연의)에는 유비가 제갈량을 모시기 위해 애쓰는 과정이 상당한 분량으로 나온다. 즉 정사에 없던 허구적 내용이 삽입되어 있다. 나관중이 위작을 한 까닭은 여럿이지만 동양 사회에서의 교사의 존재나 가치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동양 사회에서 최고의 호칭은 ‘선생(先生)’이었다. 군주, 관료, 평민, 천민은 모두 선생의 후보자였다. 심지어 남녀나 노소도 가리지 않았다. 선생은 지위, 계급에 관계없이 특별한 사람에게만 붙이는 최고의 찬사였고, 그 위상과 영향력은 군주나 최고의 관직보다 컸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또한 동양 문화에서 선생의 존재와 자격 그리고 선생을 대하는 권력자를 포함한 사람들이 갖춰야 할 태도를 부각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다시 말하면 “선생이 누구이며, 선생을 대할 때는 어떻게 대해야 하며, 선생의 삶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교훈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선생은 동양 사회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였다. 하지만 지식이나 기술에서 기능적 전문가가 아니라 그 내면에 담긴 뜻을 깨닫고 실천하는 자들이 바로 선생이라고 불렸다. 즉 인간의 존엄함과 생명 존재의 숭고함인 천리(天理)를 깨닫고 거스르지 않고 행하는 자들이 바로 선생이었다. 나관중이 삼국지연의에서 삼고초려와 관련된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위작한 까닭도 거기에 있다. 유비는 제갈량을 찾아가서 만나는데 제갈량을 시부(선생)라고 부르면서 허리를 조아리고 심지어 무릎을 꿇어 배움을 청한다. 그런 유비의 자세는 촉나라를 세우고도 바뀌지 않는다. 이처럼 동양 사회에서 선생은 서양의 ‘티쳐(teacher)’와는 다른 맥락에 있다. 선생은 어떤 지위로도 대체되지 않는 그야말로 ‘전인적 인간을 표상하는 존재’였다. 요컨대 교사는 지식을 제공하는 도구가 아니라 학교든 사회적으로든 지성, 감성, 시민성, 도덕성에서 학생이 현재와 미래의 삶에서 닮아가야 할 상대이자 관계였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자유주의가 지배적인 형태로 확산되자 그나마 공공의 영역으로 남아있던 초·중·고 교육에서조차 학교 밖 시장원리는 물밀듯이 들어오게 되고 학생, 학부모가 교육주체로서 지켜야 한다고 믿었던 권리와 의무에 대한 기존 관념이 신자유의주적으로 바뀌면서 임계점을 넘자 기존의 교사의 영역은 깨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즉 학교는 더 이상 스승(선생)으로부터 지식과 인성을 배우는 공간이 아니라 학원의 기능과 사실상 똑같은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변질되었다. 교육과 관련된 학생과 학부모의 인식에서 학교는 마트(mart)처럼 생활용품을 구매하는 하나의 시장으로, 교사는 마트에 근무하는 직원처럼 거래 상대자로 바뀌었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무의식적이라도 학부모나 학생의 내면에 잠재화된 것이다. ‘내돈내산’이라는 용어가 있다. “내 돈 주고 내가 샀다”라는 신조어이다. 원래 이 신조어는 SNS 상에서 인플루언서가 협찬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이기 위해 사용된 용어이다. 즉 자기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놓고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해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의식의 중심에 신뢰할 수 있는 증거로서 바로 ‘내 돈’이 들어있다. 언어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어떤 신조어가 등장하였다고 당장 그 사회의 하위문화로 자리잡지는 않는다. 나아가 주류문화로서 지배적 지위를 누리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내돈내산’이라는 언어로 자신의 행위를 보증받고 인정받으려는 문화가 일상화된 현실이라면 교사를 대하는 태도를 결정짓는 주요 요소는 이미 ‘돈’으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즉 교사들은 이제 인격적 스승이 아니라 거래화된 인간관계에서 자신이 지불하는 돈으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거래 상대자일 뿐이며, 학생이나 학부모 중 그 일부는 자신들이 세금이든 뭐든 돈을 지불했으니 더 많은 권력을 가진 자로 스스로를 인식하고 교사를 만만하게 보는 것이다. 그런 의식의 변화가 “우리 아이를 이 자리에 배치해 주세요.”, “우리 애 약 좀 먹여주세요?”, “이러려고 학교 보낸 줄 알아?”, “우리 아이에게 큰 소리로 말하지 말고 잘 설득해 주세요.”라는 직접적이든 우회적이든 갑질의 언어들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고, 교사의 교육권을 추락시킨 것이다. 요컨대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교사를 바라보는 학부모 의식의 왜곡은 교육권 침해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교사 수 감축은 교육권 침해에 기름을 부었다

 

둘째, 교사 수 감축이다. 정부는 출생률 저하를 빌미로 학습자 중심, 수요자 중심의 시장친화적 교육정책을 확대했지만, 교사 수를 늘리려고 하지 않았다. 이런 탓에 교사 정원은 소폭으로 늘어왔거나 동결되었다. 그러던 추세는 2022년부터 감축으로 전환되었다. 매년 교원 정원의 규모는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교육부가 협의하여 정하는데 2023년의 교원 정원은 약 3천 명이 감축된 342,388명으로 확정되었다. 교원 정원은 지난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 때도 줄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감축은 놀라운 변화이다.

 

<최근 10년간 교원 정원 현황 그래프>

지난 8월 9일 교육부가 발표한 교원 수급 계획도 이 기조를 반영한다. 내년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은 공립학교 교사를 8,939명 뽑는다고 한다. 이는 올해보다 무려 약 1,500명이 줄어든 수치이다. 특수교사는 680명을 뽑아 올해의 549명보다 130명 정도 늘리기는 했지만 다른 교사들이 줄어들면서 온갖 업무들이 특수교사들에게 분담될 지경이다. 교육부가 발표한 2027년까지의 중장기 수급 계획에 따르면 앞으로도 지속적인 교원 감축이 예상된다. 교육부는 2027년까지 초등교사 선발을 올해보다 최대 1,000명, 중등교사는 최대 1,400명 감축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정부의 교사 수 감축 정책은 교사가 수업과 생활지도만 하는 것은 아닌 점을 고려할 때 적절치 않다. 교사는 학부모의 민원을 포함한 다양한 행정업무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교사 수를 감축하게 되면 학교의 행정업무 총량에는 별 변화가 없고, 결과적으로 남은 교사들의 업무 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권 회복을 위해 장밋 빛으로 보이는 여러 제도적 조치를 취한다고 해도 순기능이 살아날지는 의문이다. 학급당 학생 수를 감축하고, 교사의 업무를 감축하고, 상담이나 특수교사를 증원하며, 고교학점제와 같은 새로운 제도가 학교에 뿌리를 내리려면 교과 교사의 증원은 불가피하다. 요컨대 전반적인 교육 상황이 개선되지 않았는데도 교육부가 이제 법과 제도를 통해 교사의 교육권을 보장해 주었으니 교사 개개인이 알아서 수업과 생활지도를 하면서 학부모 민원 등 행정업무를 처리하라고 하면 교육권 침해와 이로 인해 교사가 고통받는 현실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현재의 학교와 교사들은 교육부와 교육청으로부터 학교교육 서비스에 대한 관료적 행정적 책무성을 요구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학부모의 민원에 답하라는 시장적 책무성을 함께 요구받고 있는데 교육재정 확대 없이는 교육권 회복을 위한 제도 개선이 실제적인 효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최근 문제가 된 주호민 작가 특수교사 고소 사건만 해도 그렇다. 정부는 연초부터 지방재정교육교부금이 남아돈다고 하면서 교부금 일부를 고등교육 재원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해당 예산을 활용해 일반 학급에도 약 2명 정도가 포함되었다고 알려진 분노조절 장애, 정서 장애, 주의력 결핍 장애를 겪는 경계선상의 아이들을 위해 학급 보조교사를 배치하여 지원하거나, 특수학교에 추가적으로 특수교사와 특수교육전담사 등을 배치하여 맞춤형 교육을 실시했다면 그 결과는 매우 달라졌을 것이다.

 

 

교사 스스로 교육의 공공성을 회복하려고 적극 행동해야 한다

 

수십만의 교사가 광장에 모였다고 하더라도 이미 시장 중심주의로 기울어진 한국 교육 지형에서 교육권 회복 또는 보장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교육권 침해의 내적이고 구조적 원인은 분명하지만, 이 문제의 해결은 쉽지 않다. 어떤 시장도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고 있으므로 이미 시장화된 학교를 둘러싸고 여러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는 겹겹이 뭉쳐 있다. 그래서 당사자 간의 소통도 쉽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있다. 국가나 교육주체들은 소통이 쉽지 않다고 해서 교육권을 침해하는 학생을 분리하거나 불편한 교육 당사자와 소통을 단절하는 쪽으로 운전대를 돌려서는 안 된다. 그런 방식으로 대응하면 할수록 교육주체 간에 문제 떠넘기기 즉, ‘폭탄 돌리기 게임’은 지속될 뿐이고 학교는 불안을 내재한 채로 겨우겨우 굴러갈 뿐이다. 그러면 그 대안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 교육의 시장화에 맞서 교사 스스로 자주적이고 능동적으로(의도적으로) 공공성을 회복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국가는 학교 교사를 늘려줘야 한다. 인간은 불멸의 존재가 아니며 유한하므로 개체 유지와 종족 본능이라는 원초적 본능 속에 살아가며 자신의 에너지가 소진되었거나 생존위험을 느낀다면 본능적으로 상대를 배타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그처럼 강조하는 교육권은 인간만이 갖는 고유한 특징으로 원초적 본능이나 감정적 편안함을 유지하지 않고서는 발휘될 수 없다는 뜻이다. 내 말은 인간의 뇌 구조가 그처럼 되어 있으며, 이러한 뇌 구조적 틀 안에서 인간은 살아왔고 문화를 창조하며 역사를 지탱해 왔다는 것이다. 시장주의가 교육과 학교를 지속적으로 압박하는 현실 속에서 교육의 자주성이나 전문성을 추구하는 교육기본법의 목적에 따라 교사 스스로가 최대한 교육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서는 학생과 학부모의 교육권 침해를 막지 못할뿐더러 원인 제공자에 대한 논란만 키우게 될 것이다. 또한 이 상황에서 정부가 제시하는 수습책은 교육주체 간 갈등을 잠시 쉬게 하는 미봉책에 불과하며, 결국 내적으로 더 곪는 상황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부디 이번 사태가 교육주체들에게 “지금 학교는 안녕한가?”, “국가가 교육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학교는 내 자식만이 아니라 모든 아이의 존재를 인정하고 함께 성장하는 사회화의 광장이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과제를 제시했음을, 그리고 더 나은 교육적 미래를 그려보고 도약하는 시련의 시간으로 기억되었으면 한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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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완산고등학교 교사 박제원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전북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일반사회교육을 전공하여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예탁결제원에서 10년 동안 근무한 뒤 전주 완산고등학교에서 사회 교사로 재직 중이다. 전북 교육청 사회문화 집필 위원, KDI 경제교육교재 집필 위원, 중앙일보 공교육 논술자문단, 충남 지방공무원 임용시험 출제위원, 전북 및 전남 교육연수원 강사, 전북대학교 교사 연수 강사, <새전북신문>, <열린 전북>, <전북교육신문>, 인문 웹진 <아홉시>, 네이버 비즈니즈 블로그 <인터비즈>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지금은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의  교육저널인 「교육 제4의 길 」에 칼럼을 쓰고 있다. 저서로 <미래 교육의 불편한 진실, EBS, 2021>, <학교 속 문해력 수업, EBS, 2022>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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