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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중심평가로 살펴본 치명적 변이(lethal mutation), 그 원인은 무엇일까요?

#936 김새로나, 김해 삼문고등학교 수석교사 2023.08.01
“과정중심평가에 대한 치명적 변이는 어떤 단계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공식적 교육과정을 선생님들께 안내하는 교육부 및 시도교육청 주관 연수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본문 발췌)

 

 

장학사님, 연구사님, 수석선생님, 그 외 많은 선생님들, 모두 잘 지내고 계시지요?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니, 바쁘신 와중에도 꼭 건강 챙기시며 일하시기를 바라요.

 

오늘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2022 개정교육과정 관련 교사연수에 대해서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에요. 최근에 2022 개정교육과정 개발이 마무리되고 있고, 교육과정의 내실 있는 현장 안착을 위해서 다양한 연수가 이루어지고 있잖아요. 교육부에서는 전국 단위로 교육과정 핵심교원과 선도교원을 대상으로 한 연수를 대대적으로 진행했고, 각 시도교육청에서도 새로운 교육과정을 안내하는 연수를 진행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연수에 참여하시는 선생님들도, 연수를 기획하고 운영하시는 연구사님들, 장학사님들, 연수를 진행하시는 수석선생님과 강사선생님들도 모두 정말 고생이 많으세요.

 

고생이 되긴 하지만, 이렇게 새로운 교육과정의 내실 있는 안착을 위해서 적극적인 움직임이 있다는 것은 참 반가운 일이에요. 새로운 교육과정의 취지를 현장에 제대로 전달하고, 단위학교 차원의 교육과정 구성과 교사 개개인의 수업 및 평가 설계와 실행을 위한 지원이 충분해야지 우리 교사들이 학생이 학교교육을 통해서 보다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니까요.

 

교육과정 핵심교원양성을 위해 전국 4개 권역에서 실시된 연수 자료집에 포함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이주연 박사님의 원고에 안내된 ‘개정 교육과정 실행을 위한 지원 및 과제‘를 보면, 뭔가 현장의 선생님들을 위한 지원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조금 안심이 되기도 했어요. 특히 교사연수를 기획하고 운영하는데 있어서 학습의 주요 내용을 모둘 별로 나누고, 교사연수 로드맵 구성에 있어서 모둘 간 종적 연계(vertical alignment)와 횡적 연계(horizontal alignment)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한 내용이 보였거든요. 아, 이제야 비로써 현장의 선생님들께 체계적인 연수가 이루어질 기반이 마련되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어요.

2022 개정 교육과정 교사 연수 기획 운영 안 (이주연, 2022 개정 교육과정의 방향, 2022 교육과정 핵심요원 연수 자료집. 2023)

 

이런 안도감이 드는 이유는, 그동안 현장의 선생님들께 제공된 교육과정 관련 연수에 아쉬운 점이 많았기 때문이에요. 가장 아쉬웠던 점은 특정 개념을 소개할 때, 선생님들께서 해당 개념에 대한 충분한 개념적 이해(conceptual understanding)를 하실 수 있도록 안내를 하는 부분이 매우 부족했다는 것이었어요. 특정 개념의 원리와 활용의 취지에 대한 개념적 이해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해당 개념을 수업과 평가로 구현하다 보면 ‘치명적인 변이(lethal mutation)’가 발생할 수 있고, 결국은 학업 결손을 가져올 수 있으니까요. 여기서 치명적 변이란, 교사가 학습과학에 기반하여 도입된 교수학습방법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해당 교수학습방법에 너무나 많은 수정을 가하여 원래의 취지가 구현되지 못하는 상황을 지칭해요1. 이러한 변이에 의해서 의도한 학습효과가 발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상당한 학습결손이 초래될 수도 있기 때문에 ‘치명적’ 변이라고 지칭하는 것이지요.

 

제 생각에 ‘과정중심평가’는 2015 개정교육과정이 소개한 개념 중 치명적 변이가 발생되어 학습결손을 초래한 대표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과정중심평가가 중요한 이유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설명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인간 기억의 메커니즘 상 지식 구성의 주체가 학습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겠지요.

인간 기억의 구조. 감각기억을 통해 작업기억으로 진입한 새로운 정보는 장기기억으로부터 작업기억으로 진입한 유관 정보와 결합되는 과정을 거쳐 학습된다. 모든 학습자는 자신만의 배경지식을 갖고 있으므로, 각자의 배경지식과 결합된 새로운 정보는 개인별로 모두 상이한 형태의 학습결과물을 낳게 된다.

 

지식 구성의 주체가 학습자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인지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기억의 구조를 통해서 쉽게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인간은 새로운 정보를 감각기억을 통해서 작업기억으로 선택적으로 유입시키고, 장기기억, 즉 이미 구축되어 있는 배경지식에서 유관 정보를 작업기억으로 인출하여 새로운 정보와 결합시킴으로써 새로운 정보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해하며 기억하게 된답니다. 따라서 학습자가 학습 대상이 되는 정보와 논리적으로 연계시킬 수 있는 유관 정보를 장기기억에 갖고 있지 않다면, 혹은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해당 정보를 작업기억으로 인출할 수 없다면 적절한 형태의 학습이 발생할 수가 없지요.

 

과정중심평가는 이러한 현상에 적절하게 대처하기 위해서 도입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과정중심평가는 학습 과정 중에 학생 개개인의 정보 결합 양태를 파악하여 그것의 적절성을 판단하고, 필요한 도움을 수업설계 수정이나 피드백을 통해서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니까요. 이러한 측면에서 이해해 보면 과정중심평가가 수행평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지필평가를 포함한 모든 평가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도 알 수 있구요.

 

하지만 현장의 선생님들께는 과정중심평가와 관련된 학습의 원리와 이에 기반한 도입 취지에 대한 적절한 안내가 제공되지 않았어요. 과정중심평가를 하면 이러이러한 효과가 발생한다, 라는 점들은 반복적으로 안내되었지만, ‘왜’ 그런 효과가 발생하는지는 안내되지 않은 거지요. 선생님들은 이해에 기반하지 않은 광폭의 전이(far transfer)를 해야만 했었고, 이에 따라 학교 현장에서 과정중심평가는 많은 경우 도입 취지와 전혀 무관한 형태로 구현되었어요. 예를 들어, ‘과정’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 형성평가를 통해 피드백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보다는 최종 산출물이 나오기 전 수행 과정 중간 중간에 평가를 해서 중간 평가 결과를 내신에 반영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지요. 이상하게도 지필평가는 배제한 채 수행평가와만 연계해서 이해되기도 했구요. 사실 이러한 오개념은 종종 연수강사나 교육부, 시도교육청, 교육과정평가원이 배부한 자료 및 자료집에 의해서 강화되기도 했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은 공부하는 것이 더 힘들어졌어요. 수업의 많은 부분은 내신과 연동되는 수행평가로 채워졌고, 평가 결과가 피드백으로 활용되는 것은 드문 일이었기 때문에 학업에 특별한 도움이 되지도 않았지요. 교사는 교사대로 잦은 내신 연동 평가를 공정성을 담보하는 형태로 실시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였고, 학생은 학생대로 ‘과정’을 평가하기 위해 확대된 형태로 진행되는, 학습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것 같지도 않은 수행평가의 무거운 짐 밑에서 허덕이게 되었어요.

 

이렇게 의도된 교육과정과 실현된 교육과정 사이에 편차가 발생하는 것은 사실 상당히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John Goodlad라는 교육학자는 이러한 편차를 여러 층위에 거쳐서 분석할 수 있는 틀을 제안하기도 했지요2. 그에 의하면, 동시대의 사회 구성원이 공감할 수 있는 이상적인 교육과정이 존재하는데, 이러한 이상적 교육과정을 공식적인 교육과정으로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일차적인 편차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공식적인 교육과정을 현장 교사가 이해하는 과정에서 이차적인 편차가 발생하구요. 그리고 인식된 교육과정을 가용 자원이라는 측면에서 여러 가지 물리적 한계를 갖고 있는 현장에서 구현하는 과정에서 또 한 번의 편차가 발생하고, 교사에 의해서 구현된 교육과정이 학생이 주관적으로 경험한 교육과정과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편차가 발생될 수 있다고 합니다.

공식적 교육과정과 인식된 교육과정 간의 간극3

공식적 교육과정과 인식된 교육과정 간에 간극이 발생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문제는 이러한 간극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어떤 정보를 누구에게 언제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이다. 오개념을 초래할 수 있는 간극에 대한 부적절한 대처는 교육 현장에 혼란을 초래하게 된다. ‘학생 참여형 수업’, ‘핵심 개념’, ‘과정중심평가’와 같은 주요 개념과 관련하여 공식적 교육과정과 인식된 교육과정 간의 큰 간극이 존재했으나, 교사 및 관리자 대상의 ‘적절한’ 안내자료(연수)가 제공되지 못하여 현장 교사들은 불필요하게 긴 시간 동안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Goodlad의 교육과정 분류에 기반하여 작성함)

 

Goodlad의 분석적인 접근은 현상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해한 바에 기반하여 문제를 해결하는데 상당히 유용한 접근법인 것 같아요. 교육과정 구현과 관련된 치명적 변이(lethal mutation)가 발생했다면, 어떤 단계에서 그러한 변이가 발생했는지를 보다 정확히 파악함으로써 문제를 보다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과정중심평가에 대한 치명적 변이는 어떤 단계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공식적 교육과정을 선생님들께 안내하는 교육부 및 시도교육청 주관 연수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과정중심평가의 현장 안착을 위해서 수없이 많은 연수를 기획하고 실시하느라 고생하신 연구사님들과 장학사님들, 그리고 수업과 컨설팅을 하시면서도 많은 연수를 진행하느라 고생이 많으신 수석선생님과 강사선생님들께는 다소 죄송한 말씀이지만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과정중심평가의 근본 원리와 취지에 대한 명확한 안내가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학생이 학습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라는 안내는 있었지만 왜 학생이 학습의 주체가 ‘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설명은 찾아볼 수가 없었고, 과정중심평가를 하면 어떠한 ‘효과’가 나타나는지에 대해서는 안내하는 내용이 있었지만 ‘왜’ 그러한 효과가 나타나는지에 대한 안내는 찾아보기 어려웠지요. 이러한 상황은 정말 아이러니한 것 같아요. 학생이 학습 내용을 ‘이해’함으로써 새로운 상황에 ‘전이’시킬 수 있도록 하는 교수학습법을 강조하면서도 이러한 교수학습법을 실행해야 하는 교사 학습자에게는 과정중심평가와 같은 중요한 교수학습방법을 ‘이해’할 것을 기대하지 않고 ‘실행’할 것만 기대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거든요.

 

다음으로,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수와 안내 자료집은 교사가 자기주도 학습을 할 수 있는 자료제공에 큰 한계를 보였어요. 사실, ‘과정중심평가’라는 용어 자체가 학술용어라기보다는 정책용어이기 때문에, 용어가 안내된 뒤 한참 동안 과정중심평가를 더 알고 싶어도 찾아볼 만한 학술자료가 거의 없었어요. 학술자료를 찾아서 읽어보고 싶었던 이유는, 교육과정 문서가 매우 방대한 이론적 배경을 압축한 형식으로 기술하고 있는 문서이기 때문이었어요. 교육과정 문서를 읽고 그 취지에 맞게 수업과 평가를 구현하는 것은 마치 10권짜리 대하소설을 10페이지로 요약한 문서를 읽고 10권짜리 대하소설을 충분히 이해할 뿐만 아니라 이해를 바탕으로 또 다른 창작물을 만들어내야 하는 과제와 같았어요.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자 한 것은 10페이지짜리 요약본으로는 도저히 소설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으니 소설 자체를 읽어보려는 시도를 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특히 용어가 도입된 초창기에는 더욱더 그러했어요. 관련된 것 같은 학술자료를 찾아본다고 할지라도, 그 자료는 과정중심평가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자료가 교육부에서 이야기하는 ‘과정중심평가’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하는 자료인지를 확신하기가 어려웠거든요. 물론, 교육부나 시도교육청에서 팸플릿이나 자료집의 형태로 다양한 안내 자료를 만들어서 배부했고, 온라인 연수와 오프라인 연수를 설계해서 실시했지만, 많은 경우 교육부의 교육과정 문서를 요약 정리하는 수준에서 자료가 제공되었죠. 오히려 더 압축된 정보를 제공한 것이에요.

 

교사에게 자기주도학습을 할 수 있는 참고문헌 목록이 제시되지 않은 것은 참 이상한 현상이었어요. 학생들의 학습에 있어서는 탐구를 통한 자기주도학습을 중요시하면서, 교사인 학습자에게는 탐구학습을 기대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만약에 교사인 학습자에게도 탐구학습을 할 것을 기대한다면, 적어도 교육과정 문서를 보고 궁금한 점을 찾아볼 수 있도록 교육과정 문서의 기저 원리를 추출하기 위하여 활용된 주요 참고도서의 목록을 제공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용어조차 생소한 (학술자료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정책용어를 사용하여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왜 교사의 탐구학습 자체를 막아버렸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현장의 선생님들은 과정중심평가를 이해하기 위해 이해중심교육과정에서 이야기하는 백워드 디자인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현장에서 과정중심평가의 취지에 대한 오해는 어느 정도 해소가 된 듯도 해요. (하지만 아직도 치명적 변이는 종종 발견됩니다. 심지어 교육부나 교육과정평가원, 시도교육청에서 배부하고 있는 자료에서도요)

 

연수 설계가 부적절한 세 번째 이유는 사례 안내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연수 설계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많은 연수가 과정중심평가를 성공적으로 구현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다수의 사례를 안내하는 것을 중심으로 설계되었는데, 특히 실습형이 아닌 연수의 경우에는 이런 경향이 매우 강했지요. 그런데 이렇게 사례를 중심으로 연수를 설계하는 것에는 두 가지 큰 한계가 존재할 수 있어요.

 

첫 번째 한계는, 우리 인간이 다수의 범례에서 개념을 추출해내는 것을 매우 어려워하는 존재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답니다. 성공사례 제공을 중심으로 한 연수는 연수를 들으신 선생님들께서 다수의 성공사례를 접한다고 할지라도, 성공사례들이 성공사례가 될 수 있도록 만든 교수학습의 원리를 스스로 추출해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설마?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수 있지만, 인간이 다수의 범례를 경험함으로써 개념을 추출하는 것에 매우 큰 어려움을 느끼는 존재라는 사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너무나 많은 과학적 연구를 통해서 입증된 사실이랍니다. 인간은 구체적이고 표면적인 특징에 주의를 기울이고, 표면적 특성을 넘어선 심층구조를 파악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거든요. 존스홉킨스대학과 하버드대학의 교수였으며 미네르바대학의 초대 학장을 지낸 Stephen Kosslyn은 그의 저서 『Building the Intentional University』에서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어요. 그가 교수로 근무했던 하버드 대학에서 한 물리학과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불공정한 시험문제를 출제했다’라는 원성을 들었던 사례인데요. 이 교수님이 물리학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수업시간에 야구를 주구장창 예로 들으셨던 거예요. 그런데 시험문제에서는 축구를 예로 활용한 거죠. 그랬더니 학생들이 야구와 축구의 운동 역학상의 심층적 속성의 공통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수업내용과 완전히 다른 내용을 문제로 출제했다고 생각한 거예요. 하버드대학생들이었는데 말이죠!4.

 

성공사례를 위주로 연수내용을 구성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합니다. 연수에 참여하시는 선생님들은 대부분 원리에 대한 설명보다는 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구체화된 사례를 많이 접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범례를 통해서 원리를 추출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게다가 다수의 성공사례에서 정확한 성공의 원리를 추출하지 못했다는 것은 사실 부정확한 원리를 추출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리고 부정확한 원리를 수업과 평가 설계에 적용하게 되고, 이러한 과정이 종종(사실은 자주) 치명적 변이를 낳았던 것입니다. 물론, 연수 중에 사례와 관련된 학습 기제를 명료하게 정리해 주는 것이 병행되었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과정중심평가와 관련된 명확한 학습의 원리를 소개해 주는 연수는 찾아보기 어려웠답니다.

 

사례 안내를 중심으로 하는 연수 구성의 두 번째 한계는 생존자 편향(survivorship bias)과 관련이 깊습니다. 생존자 편향의 전형적인 예는 2차 세계대전 폭격기 연구에서 찾아볼 수 있어요. 미국의 폭격기 개발자들은 전투를 마치고 본부로 돌아온 비행기(즉, 살아남은 비행기)를 연구하여 어느 부분에 보강이 필요한지 파악하고자 했답니다. 그리고 탄흔이 가장 많은 부위를 보강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한 엔지니어가 최악의 피해를 입은 비행기는 격추되어 아예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기하였고, 연구자들은 그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탄흔이 없는 부위를 집중 보강하도록 방향을 수정하였답니다.

붉은색 점은 살아 돌아온 폭격기에서 관찰된 탄흔을 나타낸다. 전투기를 보강하려 한다면 오른쪽 그림의 붉은색 박스 부분을 보강하여야 할까 혹은 파란색 박스 부분을 보강하여야 할까? 보강해야 하는 부분은 바로 파란색 박스에 의해 표시된 부분이다. 이 부분에 손상을 입은 폭격기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고 추락하였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저작권 때문에 AI로 그림을 그렸더니 비행기가 이상하게 생겼네요.)

 

성공사례를 통해서만 학습하는 것은 전투에서 살아 돌아온 비행기만을 염두에 두고, 추락한 비행기는 고려하지 않는 것과 같은 오류를 범하게 할 수 있습니다. 즉, 현장에서 과정중심평가의 적절한 구현을 어렵게 하는 요소들을 간과하게 함으로써, 보다 내실 있는 현장 안착의 속도를 늦추게 되었던 것이지요. 다수의 선생님들이 현장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들을 고려하여 보다 실천 가능하며 지속 가능한 과정중심평가 방법을 개발하는 데에 필요한 정보가 수집되지 않았으니까요.

 

과정중심평가의 치명적 변이를 발생시킨 연수의 네 번째 특성은 경험과 학습을 동일시하는 연수 설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러한 오류는 실습형 연수에서 빈번하게 관찰이 됩니다. 실습형으로 연수를 진행하는 것 자체는 매우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실습을 통해서 경험한 것이 배움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보다 정교하게 학습결과(learning outcome)를 설정하는 것과, 학습자의 근접발달영역을 고려한 비계 설정, 산출물의 적절성에 대한 평가 기준 설정과 공유, 적시에 제공되는 피드백, 모든 연수 참가자가 함께하는 수렴적 사고과정을 포함하는 것 등이 필수적인데, 대부분의 실습형 연수에서는 이러한 요소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답니다.

 

대부분의 실습형 연수의 진행 방식은 다음과 같아요. 먼저 새로운 접근에 대한 대강의 안내가 있은 후, 선생님들은 조별로 과정중심평가를 설계하고, 설계한 결과물을 공유하며, 서로에 대한 조심스러움과 존중을 섞어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나누고, 예의바른 미소와 서로를 격려하는 박수로 마무리하는 식으로 연수는 진행이 되지요. 그 결과물이 의도한 학습결과와 일치하는지, 실습 산출물에 새롭게 학습하고 있는 개념이 적절하게 구현되었는지, 어떤 점에서 잘 구현되었고 어떤 점에서 부적절한 구현인지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토론하는 시간은 거의 없거나 아예 없답니다.5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전통적으로 수업과 평가는 매우 개인적인 영역으로 여겨져서 다른 사람이 관여하는 것에 대해 큰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는 영역이라던가, 학습자 주도적(student-directed) 접근 방식으로 수행된 활동의 산출물에 대한 분석과 평가를 꺼리는 학교문화, 비판적 사고력 가동을 금기시하는 일부 교사 배움의 공동체 문화 등이 떠오르네요.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고, 이러한 이유들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지만, 이러한 요소들이 교사의 실습 경험을 학습으로 연결시키는데 방해요소가 된 것만은 분명해요. 명료하게 연수의 학습결과(learning outcome)를 설정 하는 것과, 학습자의 근접발달영역을 고려한 비계 설정, 산출물의 적절성에 대한 평가기준 설정과 공유, 적시에 제공되는 피드백과 수렴적이고 성찰적인 사고과정이 결여된 실습형 연수는 교사 학습자들이 연수 경험을 학습으로 전환시키는데 큰 도움을 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인간의 학습 기제가 그렇고, 인간의 학습의 기제는 교사 학습자에게도 적용이 되니까요.

 

새롭게 도입되는 교육과정 개념에 대한 개념적 이해를 유도하는데 실패하는 연수 설계의 다섯 번째 특징은 ‘연수 간 종적 연계성(vertical alignment)의 부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 2022 개정교육과정과 관련해서 핵심교원과 선도교원연수를 하는 것처럼 과정중심평가도 개념어 도입 초창기부터 핵심교사나 선도 교사를 선발해서 훈련시키는 여러 가지 연수가 있었고, 일반 선생님들이 참여할 수 있는 수많은 연수가 개설되었지만, 이들 연수 간의 종적 연계는 어디서도 찾아보기가 어려웠어요. 어떤 연수를 가더라도 과정중심평가에 대한 대강의 안내를 한 후 사례를 안내하거나 과정중심평가 설계를 하는 연수포맷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고등학교 시절 수학의 정석 맨 앞에 나와 있는 집합 부분만을 무한대로 풀고 있는 저 자신을 보고 있는 느낌을 준다고나 할까요. 개인적으로, 과정중심평가에 대해서 보다 심화되고 세분화된 초점을 두고 깊이 있게 연구하며 동시에 큰 맥락을 함께 볼 수 있는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연수는 경험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제공하는 연수가 전문가를 키워내기에 적절하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그래도 현장의 평가 전문성은 계속해서 향상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전문성 향상은 교육청이 지원하는 평가 연구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현장에서 교육과정 주요 개념의 치명적 변이를 불러온 연수 설계의 한계점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봤어요. 너무 많은 한계점들을 나열하는 바람에 연수에 참여하시는 선생님들께 연수 자료와 사은품까지 일일이 챙겨 주시면서 연수를 진행해 주시는 연구사님과 장학사님들, 교육부와 교육청에서 제시한 연수 틀에 맞추어 연수 진행을 위해 애쓰신 많은 수석선생님들과 선생님들께는 송구한 마음이에요. 하지만 2022 개정교육과정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서는 꼭 개선되었으면 하는 사항들이어서 한번 정리해 봤어요.

 

이제 각 시도교육청에서 교육과정평가원의 이주연박사님이 소개해 주셨던 모듈형 연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겠지요? 사실 교육부가 진행한 2022 개정교육과정 핵심교사, 선도교사 양성 연수가 위에서 나열한 것들을 기준으로 분석해 보면, 사실은 상당히 아쉽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불안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앞으로 진행되는 교육부 주관, 시도교육청 주관 개정교육과정 연수는 보다 내실 있게 진행되어서 현장의 선생님들께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무더운 여름, 항상 건강하시구요. 남은 하루도 평안하시길 바라겠습니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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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Brown, A.L., & Campione, J.C.(1996). Psychological theory and the design of innovative learning environments: On procedures, principles, and systems.
  2. Encyclopedia of Curriculum Studies, Volume 1 (Edited by Craig Kridel, 2010, SAGE Publications, Inc.)
  3. 김새로나(2021) . 공통 언어(common language)로서의 교육과정. 2022 개정교육과정 공청회 자료집
  4. Kosslyn, S. M., Nelson, B., & Kerrey, B. (2017) Building the Intentional University: Minerva and the Future of Higher Education.
  5. 이러한 현상은 오히려 전국 단위 연수에서 빈번하게 관찰된다. 최근 다양한 시도 단위 교육청에서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김해 삼문고등학교 수석교사 김새로나

이화여자대학교 교육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의 대학원에서 인지심리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리서치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였고 이후 영어 교사로 교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EBS의 ‘최고의 영어 수업’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바 있으며, EBSi의 고등학교 심리학 강의를 맡아 하기도 하였다. 현재 김해삼문고등학교에서 수석교사로 근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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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교사 수정 삭제

    제 생각에 교사들이 ‘개념적 이해’의 바탕없이 시도하도록 강제되어서 문제보다 그 ‘개념적 이해’라는 것이 현실감각에 맞게 수업현장에서 과연 제대로 적용되고 효과가 있는지 여부부터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하네요. 지금까지 온갖 설익은 교육이론을 교실현장에 적용하라고 마치 ‘급습’하듯이 연수를 통해 확대재생산 하려는 시도가 굉장히 많았지만 실제로 교육현장에서 바뀐게 있습니까? 이론의 학문적 바탕과 현장의 적용가능성에 대해서 오랜시간을 두고 고민하고 연구해서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교육이론과 정책 입안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가 ‘현장과의 괴리’입니다. 탁상공론식으로 도입해서 현장에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키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일선 학교의 교실에서 과정형 평가에 내장된 ‘형성평가’의 실행이 가능한지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로지 생기부 적을 거리의 수행평가와 ‘총괄’평가로서의 시험에 대해서만 골몰해야 하는 현장분위기에서 과연 그런 이론적인 형성평가 가능할까요?

  2. 교사2 수정 삭제

    선생님 말씀과 의견에 동의합니다. 교사가 개념과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겪어야할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를 고려하지 않고, 좋은 키워드만 남발하는 방식으로 일이 진행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숙고 없이 키워드만 남발하는 것이 성과가 되고, 그런 사람들이 인사고과를 잘 받더라고요. ㅎㅎ, 형성평가를 통해 피드백을 주어 학생들이 성장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진짜 교육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시다시피 현장에서 진짜 교육을 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수업과 평가 외의 행정업무들이 몰아쳐 학생의 개별적인 성장에 관심을 가지고 피드백을 제공할만한 시간이 충분치 않습니다. 또한 9등급으로 학생을 줄세워야 하는 제도가 변하지 않아, 학생들의 성장에 관심을 두면 변별이 어려워집니다. 성장하는 과정을 생기부에 적어주려고 하면, 성장 이전의 부족했던 부분에서 글을 시작해야 하는데, 학생과 학부모는 그것을 부정적인 평가라고 생각하고, 생기부에 좋은 말만 적어달라고 합니다. 생기부만 보면 다들 신적인 존재죠.. 제대로된 교육을 하려고 하면, 니가 애들인생 책임질꺼냐며 비난합니다. 좋은 대학에 보내는게 교사가 아이들 인생을 책임지는 걸까요? ㅎㅎ 참고로 저는 특목고에 있어서 더 비관적인 것 같습니다.ㅎㅎ 명문 대학에서의 선발도 결국 내신 등급이 가장 중요하더라고요…ㅎㅎ 이젠 무엇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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