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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대통령이 당긴 수능 논란

#920 김경범, 전 서울대학교 교수 2023.06.18
“대통령의 수능 발언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논란의 본질은 ‘쉬운 수능’이고, 여기에 현 정부가 추진하는 교육개혁의 성패가 달려 있다.” / “대통령에게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봉사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본문 발췌)       

 

 

지난 6월 15일(목) 대통령은 교육부 장관의 업무보고를 받고 “과도한 배경지식을 요구하거나 대학 전공 수준의 비문학 문항 등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는 부분의 문제를 수능에서 출제하면 이런 것은 무조건 사교육에 의존하라는 것 아닌가. 교육 당국과 사교육 산업이 한편(카르텔)이란 말인가”라고 말하면서 “최근 사교육비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정부는 사교육비 경감 방안을 강력히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날 대통령실이 전한 대통령의 말씀은 이게 전부이다. 대통령 지시의 핵심은 사교육비 경감이고, 교육부 장관은 수능 문항 개선을 사교육비 경감을 위한 수단으로 보고했다.

 

당연히 언론은 대통령의 지시를 “쉬운 수능”으로 보도했고, “쉬운 수능이 사교육 부담을 줄이면서 공교육에 힘을 싣는 윤석열 정부 교육개혁의 신호탄”이라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학교 수업에서 벗어난 내용이 출제되면 학원을 다녀야 하고 이는 결국 부모 경제력으로 교육의 격차가 대물림된다는 게 대통령의 인식”이라면서 “특정 학원을 다녀야만 수능을 잘 치를 수 있는 현재의 제도는 사교육의 이권 카르텔이나 마찬가지인 만큼 확실히 타파하라는 것”이라고 했다. 과학 같은 국어 문제, 전부터 폐해로 지적되던 “꼬아낸 문제”와 킬러 문항을 없애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지시는 다음 날 큰 파문을 만들었고, 당장 11월 16일 수능을 앞둔 학생과 학부모는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업무보고 다음 날 이어진 후속 조치 그리고 대통령실과 교육부의 설명이 혼선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6월 16일 교육부에서 대학입시를 담당하는 인재정책기획관이 면직되었고, 교육부와 사교육업계의 카르텔이라는 말도 사람들 입에 떠돌았다. 대통령이 올 초부터 일찌감치 교육부 장관에게 수능 문제를 “쉽게 내라고 지시”했는데 담당 국장이 따르지 않았다는 게 교육부가 직접 밝힌 면직 및 대기 발령의 이유였다. 구체적으로 교육과정평가원의 6월 수능 모의평가 문항이 어려웠다는 것이다. 교육과정 밖에서 출제해서가 아니라 문제가 어려워서 경질되었다. 수능 모의평가 난이도가 국장급 고위공무원의 면직 사유가 될 수 있는지 매우 놀랍지만, 그게 대통령과 장관의 권한이자 인사 스타일이라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대통령실은 대통령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게 이권 카르텔의 가장 강력한 증거라고 했다. 인사 스타일과 이권 카르텔 설명은 고압적이고 독단적이며 궁색하고 초라하다. 그런데 이슈는 ‘쉬운 수능’이 아니라 ‘교육과정 내 출제’라고 대통령실이 다음 날 말을 바꾼다.

 

교육부 대입 담당국장 면직의 여파는 6월 모의평가를 출제한 교육과정평가원 감사로 이어졌다. 감사 주체인 교육부도 난감하고, 감사 대상인 평가원도 난감하다. 그래서 그냥 조용한 푸닥거리에 그칠 전망이지만, 평가원장의 사임으로 끝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대통령 지시가 쉬운 문항 출제인지, 학교 교육과정 내 출제인지 불분명하다. 무엇을 감사해야 하는지 알 수 없고, 감사 지적할 근거 즉 어떤 문항이 교육과정 밖에서 출제되었는지 입증하기는 매우 어렵다. 교육부가 평가원으로 “쉬운 문항”이든 “교육과정 내 출제”든 새로운 출제 원칙을 문서로 보내지도 않았을 것이며, 그래야 할 이유도 없다. 수능 모의평가는 “수험생에게 수능 준비도 진단 및 보충, 그리고 문항 수준 및 유형에 대한 적응 기회 제공하고, 6월 모의평가 출제, 채점 과정에서 개선점을 찾아 2024학년도 수능에 반영”하는 게 목적인데, 본 수능도 아닌 모의시험에서 어려운 문항을 출제했다는 게 징계 및 감사 사유가 되겠는가. 더구나 평가원이 출제하는 수능 문항은 국회가 만든 「선행학습금지법」에 저촉되지도 않는다. 이 법은 학교(고등학교와 대학교)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정말로 대통령의 ‘쉬운 수능’ 지시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서 정말로 사교육비를 줄이려면 정부와 여당이 앞장서서 법 개정을 추진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번 업무보고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런 조치는 없다. 이번에도 말뿐으로 끝나는 교육부의 사교육비 경감 방안을 예고하는 듯하다. 더구나 교육부의 「2024학년도 수능 기본계획」에서 국어는 “출제과목을 바탕으로 다양한 소재의 지문과 자료를 활용하여 출제”한다고 밝히고 있다. 교육부와 평가원은 이런 수능 출제 기준을 공식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대통령도, 교육부도, 평가원도 앞으로는 교육과정 내에서 문항을 출제한다고 별도로 학생에게 알리지 않았다. 문항 출제범위가 교육과정 내 교과이므로 교육과정 내 출제는 당연한 원칙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교육부 장관에게 그렇게 지시했다는 사실도 담당 국장 면직 건으로 이번에 처음 알려졌다. 정부 스스로 수능 문항이 교육과정 밖에서 출제되었다고 감사를 통해 밝힐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책임져야 할 사람이 늘어난다. 그래서 평가원 감사는 요식으로 보는 게 합리적 추론이다. 대통령이 교육과정 내 출제를 주문했는데, 어렵게 출제해서 국장이 바뀌었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논리가 맞으려면 교육과정 내 출제 문항은 쉽고, 교육과정 밖 출제 문항은 어렵다는 전제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번 대통령 업무보고 이후 벌어진 논란의 숨은 핵심은 무엇일까? 그것은 ‘쉬운 수능’이다.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 학교 교육과정에서 출제한다는 지극히 당연하고 원론적인 대통령의 지시는 현실에서 변별력이 낮은 ‘쉬운 수능’을 의미한다. 언론 보도에서도 대통령이 올 초부터 수능을 쉽게 내라고 지시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킬러 문항이나 교과서에서 배우지 않은 내용이 수능에 출제되지 않으면 문항은 쉬워지고 변별력은 낮아진다. 그걸 몰랐다면 대통령(실)은 현실 감각이 없는 거다. 그런데 언론이 ‘쉬운 수능’이라고 보도한 다음 날 대통령실은 말을 바꿔서 “변별력은 갖추되 공교육 외의 요소는 배제”한다는 뜻이라고 정정했지만, 이 말은 상황과 논리를 더욱 꼬이게 했다. 학생과 학부모의 혼란은 여기서 시작되었고, 여기서 야기될 정책적 혼란은 앞으로 다른 정책으로 계속 파급될 수밖에 없다.

 

사교육비 원인의 하나는 변별력을 가진 수능이다. 그런데 정부는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면서도 변별력은 유지하겠다고 한다. 지각하면 안 되지만 아침잠은 충분히 자겠다는 아이처럼, 정부 정책은 모순적이다. 언론이 칭찬했던 ‘쉬운 수능’이라는 사교육비 경감 방안을 하루 만에 스스로 부정했다. 대통령실은 “어려운 문제를 빼라는 게 아니라 교육과정 내 출제하라는 뜻”이며 그것이 “공정한 수능”이라고 했지만, 현실에서는 그게 바로 모순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교육과정 내에서 출제하지 않아서 사교육비가 늘어났다면 역대 평가원장과 교육부 장관 모두가 책임져야 할 일이다. 오히려 학부모는 교육과정 내에서 출제된다는데 변별력을 유지한다니 뭔가 새로운 문항 유형이 나온다고 생각해서 사교육을 더하지 않겠는가. 학교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한 학생에게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묻게 되면 당연히 정답을 고르는 학생이 많아져서 지금보다 변별력이 낮아진다. 변별력이 낮아지면 문항 한 개의 영향력이 커지게 된다. 그래서 그 정도로는 사교육비가 줄어들지 않는다. 더구나 학교 교육과정에서 문항을 출제하되 높은 변별력을 유지하고 사교육비도 줄이라는 요구는 실현 불가능하다. 사교육비 대책으로 연목구어(緣木求魚)같은 정책을 내놓으니 현실감도 정책 전문성도 떨어진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혹시나 교육과정 내에서 변별력 높은 수능 문항을 출제할 수 있더라도, 그런 문항 출제를 지속할 방법은 없다. 교육과정의 범위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사교육비 경감 대책으로 내놓은 변별력 높은 교육과정 내 수능은 그 모순성으로 인해 수능과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다른 교육정책들까지도 난맥상으로 흐르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이번 대통령 업무보고가 교육개혁은커녕 평지풍파를 만든 셈이다. 수능은 내신과 함께 대학입시의 핵심축이고, 대학입시는 고등학교 교육과정과 초·중학교 사교육을 사실상 좌우하고 있으며, 조만간 정부가 발표할 새 교육과정의 내신 체제, 2028학년도 수능과 대학입시, 고교학점제 지원방안, 사교육비 경감 대책, 고교체제 등 주요 교육정책과 연계된 결정적이고 핵심적인 사안이다. 수능의 문제점은 교육과정 출제 여부가 아니라 과도한 변별력이다. 사교육비를 줄이려면 수능 변별력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수시모집을 폐기하며 기존 8개 수능 응시영역을 3개 이내로 확실하게 줄여야 한다. 수능 변별력을 낮추려면 평가 체제를 절대평가 등급제로 단일화하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고, 그러면 사교육비는 분명 줄어든다. 바람직한 입시는 수능 성적으로 줄을 세워 합불을 결정하는 게 하니라, 학교 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미래를 살아갈 힘을 기르도록 도와주는 입시이다.

 

고교학점제 실현을 위한 새 교육과정을 작년 12월에 발표해 놓고 수능은 여전히 변별력이 높을 거라고 한다. 변별력 높은 수능은 고교학점제와 양립할 수 없는데, 정부가 뭘 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다. 교육과정 내에서 출제한다면 쉬운 수능인데, 쉬운 수능은 아니라니 혼란스럽다. 대통령은 교육 현실과 정책을 모를 수 있지만, 대통령 주변에는 교육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할 교육전문가가 있어야 한다. 이제 대통령이 시작했으니 대통령이 학생과 학부모의 질문에 답하여야 한다. 올해 수능은 쉬워지나요? 교과서에서 출제하나요? 교과서 외 다양한 자료를 활용하는 교육과정에서 출제하나요? 어떤 문항이 교육과정 내에서 출제하면서 변별력도 높고 사교육비도 줄이는 문항인가요? 변별력 높은 수능과 새 교육과정은 어떻게 양립할 수 있나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6월 모의평가에서 어떤 문제가 교육부 국장이 경질될 만큼 심각하게 교육과정을 벗어났나요?’ 그걸 공개해야 그런 문항이 11월 본 수능에 나오지 않으므로 학생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 빨리 답해야 학생과 학부모의 혼란을 줄일 수 있다. 수능 사안은 대통령이 시시콜콜 나서지 않는 게 마땅하고, 만약 그랬더라도 그런 사실은 공개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이런 논란을 만들었다. 대통령은 결정해야 한다. 쉬운 수능인지 어려운 수능인지.

 

2022년 7월 29일 교육부 장관은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5세로 1년 앞당기는 방안을 내놓았고, 대통령은 “초·중·고 12년 학제를 유지하되 취학 연령을 앞당기는 방안을 신속하게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국가가 책임교육을 강화하여 사회적 격차를 줄이고, 입직 연령을 낮추어 저출생 시대에 사회적 생산성을 높이려는 좋은 취지였으리라. 그러나 대통령의 지시 이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온 국민이 알고 있다. 2023년 6월 15일 교육부 장관의 대통령 업무보고도 이와 닮아있다. 준비되지 않은 설익은 정책, 정책의 여파와 연관성을 보지 못하는 비전문성, 말 바꾸기와 비현실적인 해명들. 대통령에게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봉사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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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서울대학교 교수 김경범

스페인 마드리드 꼼쁠루뗀세 대학 박사 (중세 및 황금세기 문학), 페루카톨릭 대학 석사,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학사, (전)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기금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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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1. raspberr.y0 수정 삭제

    Wow스펙이정말멋져요^^7
    본받고싶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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