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여기, 우리의 문제를 다룬다
| “지금 이 순간 푸코와의 만남을 기록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다. 권력과 지식 그리고 사회 통제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중요한 기여를 했던 푸코와 다시 만나며 감응한 지금, 영유아 교육정책을 함께 고민해 보도록 하겠다.” (본문 발췌) |
토요일 아침이면 요란한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선후배 교수님들과의 스터디를 위해서다. 이른 시간에 일어나야 한다는 약간의 부담감이 있지만,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 삶과 사유를 공유하는 행복한 순간이다. 사는 것이 왜 이리도 바쁜지, 우리가 함께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최근에 우리는 프랑스 현대철학을 흥미롭게 들여다보고 있다. 부스스한 상태에서 사르트르, 레비나스, 블랑쇼와의 만남이 다소 어색하기도 하지만 필자의 관심 분야인 영유아 교육정책에 이들의 관점과 사유를 더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다. 그리고 또 다른 시선으로 영유아 교육정책의 현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흥미로운 시간이다.
지난 주말 우리는 ‘미셀 푸코’1를 만났다. 사르트르 이후 프랑스 최고의 지성이라고 불리는 푸코는 아주 흥미롭고 매력적인 지식인이지만 다가가기가 쉽지 않았다. 철학자, 사회학자, 심리학자 그리고 역사학자이기도 한 푸코가 다룬 주제들의 폭과 깊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철학적 사유와 해박한 지식은 필자의 기를 죽이기에 충분했다. 특히 이성과 지식을 중심으로 객관성, 보편성, 절대성, 획일성 등을 강조한 근대적 학문과 교육 체계에 익숙한 필자에게 푸코의 주장은 신선함과 낯설음이 공존하였고, 권력에 대한 푸코만의 분석적인 통찰은 현대 철학의 지평을 논함에 있어 지나칠 수 없는 지점이었다.
이번 푸코와의 만남은 매우 강렬하였다. 특히 유아교육의 거시정책 변화를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필자에게 푸코는 또 다른 사유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이 세상에 달력도 지도도 없이 완성된 채로 하늘에서 떨어져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없다’라는 주장과 함께 ‘모든 것은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는 그의 말에 절절히 감응하였다. 푸코 철학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지금 이 순간 푸코와의 만남을 기록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다. 독자들이 필자의 욕망을 이해해 주길 조심스레 요청하며 글을 열어 본다.
푸코와의 재회
1990년대 초중반부터 학문적 인기를 얻은 푸코 철학은 2007년 웹 오브 사이언스 통계에서 인문학 학술논문 분야 인용 1위에 오르는 등 대단한 영향력을 보였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푸코와 관련한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자는 수십 명에 이르지만,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는 연구자는 소수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조차도 푸코에 대한 세밀하고 심도 있는 연구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부분은 향후 푸코 철학의 잠재성이 무궁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필자는 과거 비판이론에 관심을 가졌었다. 연구 분야인 영유아 교육정책을 평가함에 있어 경제성과 합리성의 원리에 중점을 둔 신자유주의적 사조에서 벗어나, 비판적 관점에서 영유아 교육정책과 이에 대한 평가를 바라봐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당시 필자는 본인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와 이론 찾기에 너무 빠져 있었고, 이를 비판이론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였다. 비판이론의 본질에 집중하기보다 연구의 이론적 토대로 활용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았다. 여성해방론, 참여연구, 신마르크스주의, 후기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등 일련의 대안적 패러다임들을 지칭하는 포괄적인 용어로서 사용되는 비판이론은 학문적 깊이가 상당하고 쉽지 않은 학문분야이지만, 이를 그리 높지 않은 수준에서 이해한 후 연구의 토대 이론으로 활용하였던 것이었다.
그 시절 필자는 비판이론에 푸코의 이론과 관점도 함께 연계하여 고찰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그 순간부터 푸코의 이론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사실 푸코는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마르크스주의, 비합리주의, 비판주의 일원에 포함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겠지만, 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필자는 그를 앞선 범주에 포함시켜 버렸다. ‘무식한 사람이 용감하다’를 증명한 ‘더닝크루거 효과’2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최근에 다시 만난 푸코는 예전에 알고 있던 그 철학자가 아니었다. 권력과 지식 그리고 사회 통제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중요한 기여를 했던 푸코와 다시 만나며 감응한 지금, 그 감응의 지점에서 영유아 교육정책을 함께 고민해 보도록 하겠다.
푸코의 역사성
푸코는 주체가 무엇인지에 관심을 두는 것보다, 어떻게 주체로 되어 가는가에 초점을 두었다. 인간이 어떻게 역사적·사회적·관계적으로 주체화가 되는지를 밝히고자 하였다. 그는 서구 합리성의 한계와 조건을 밝히고자 지식, 권력, 윤리의 세 가지 영역과 고고학, 계보학의 두 방법론을 조합하였다. 구체적으로 지식의 고고학, 권력의 계보학, 윤리의 계보학으로 나누어 바라볼 수 있다.
‘지식의 고고학’이란 발굴된 유물의 시대 구분을 지층 사이의 시간 단절로 파악하듯이 시대마다 사용하는 담론도 단절된 시대마다 다른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법론이다. 예를 들어 르네상스 시대의 ‘광인’은 예언자로 여겨졌고, 고전주의 시기에는 비이성적인 괴물과 같은 존재로 여겼지만, 근대에는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되었다. 이처럼 푸코는 지식의 고고학에서 각 시대의 지층마다 다른 진리 체계이자 생각의 바탕인 ‘에피스테메’3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고고학 이후의 계보학은 당대 진리로 받아들여졌던 담론의 역사를 따라가며 그 담론이 진리로 인식되어지는 과정을 밝혀내는 방법론이다. 우선 푸코는 ‘권력의 계보학’으로 시간 속에서 어떻게 권력의 의지에 의하여 진리 체계인 담론이 형성되어 가는지를 밝혀내고자 하였는데, 이와 관련한 대표작은 ‘감시와 처벌’이다. 이후 생명 정치와 주체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병상에 누워 마지막까지 집필한 ‘성의 역사’는 자신에 대한 배려와 통치에 관심을 기울이며 주체를 연구한 업적으로 평가된다. 이것은 ‘윤리의 계보학’으로 불린다.
이처럼 푸코는 새로운 사유체계를 제안함으로써 기존 연구방법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하였다. 그는 ‘소유’나 ‘억압’의 개념으로 인지되었던 권력을 ‘효과’이자 ‘생산’의 개념으로 재개념화함으로써 권력이 생산하는 담론의 형성 방식에 주목하게 했다. 특히, 권력의 재개념화에 활용한 기법은 ‘누구’의 지식이 유통되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던 시선을 ‘어떻게’ 지식이 생산되었는지로 전환시키게 된다. 이러한 관점 전환은 담론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담론을 통해 어떤 유형의 앎이 진리로 생산되고 유통되는지, 그리고 이 과정에서 사용되는 권력 기술들은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할 수 있는 틀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방법론적으로, 그리고 교육학적으로 높은 시사성이 있다.
감시와 처벌
푸코는 형벌 체계 변화에 따라 감시와 권력구조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는 형벌이 단순히 범죄 행위를 처벌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사회전체에 대한 규범으로 작용한다고 주장하였다. 예를 들어, 근대 이전에는 형벌이 주로 범죄자의 죄를 처단하고 고통을 주는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지배자는 공개 처형이라는 방식을 통해 대중들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심어주며 자신의 힘을 과시하였고 이를 통해 지배력을 강화했다. 하지만 근대 자본주의 이후 형벌은 신체형에서 감금형으로 변화하였고 이에 따라 권력 구조 또한 변화하게 되었다.
감옥은 단순히 범죄자들을 감시하고 교정하는 것에서 벗어나 범죄자들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하는데 더 큰 역할을 한다. 권력은 교묘한 방법으로 인간과 사회를 더욱 강하게 통제하는데, 푸코는 벤담의 ‘파놉티콘’4 개념을 이용하여 감옥의 감시체제를 설명하였다. 죄수들은 감시의 시선 속에서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며 규율에 복종하고 권력을 내면화하게 되는데, 이는 학교, 공장, 병원, 군대의 시스템과도 유사하다.
이처럼 우리는 누군가에게 항상 감시되고 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으로 대표되는 영유아 교육기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즉, 권력은 보이지 않게 모든 생활영역에서 아이들을 관리하고 통제하고 있다. 이와 같은 환경에서 규율과 훈육으로 길들여진 아이들은 그 상태를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될 것이고, 자신이 권력에 복종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게 될 것이다. 상기의 지배 과정이 우리 사회를 효율성 높은 방향으로 유지하기 위해 일견 필요할 수도 있겠으나, 지배 과정을 통해 배제당하는 아이들의 존재에 대해서는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아울러 아이들이 피해당하지 않게 막는 과정 역시 필요하다.
여기에 대한 해답은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다를 것이다. 최종적인 결정은 개인 각자의 몫이겠지만,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당연하게 원래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이것 역시 특정한 과정을 거쳐 생겨났다고 보는 것이 푸코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익숙하지만, 그 당연한 것이 왜 생겨났는지 그 과정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을 때가 많다. 왜냐하면 권력관계를 유지하는 규율은 대부분 교육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때 교육의 목표는 미시적 상황에서의 권력 생성에 있을 것이다.
권력은 고전시대와 달리 겉으로는 민주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결국은 신체의 기계화로 작동한다. 이와 같은 과정의 반복으로 개인은 권력의 한 부분이 되는데, 이는 교육의 재생산 개념과 연관하여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이다. 영유아 교육현장이 교사 주도의 활동과 수업에서 벗어나 아이와 놀이가 중심이 되는 만들어가는 교육과정을 잘 실행하는 것은 기존에 형성된 영유아 교육 분야의 권력 관계를 푸코 방식으로 풀어내는 주요한 과정이자 정책적 지점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영유아교육, 푸코와의 만남
교육기관은 이 시대에 필요한 지식과 따라야 할 제도, 삶의 양식을 아이들에게 전수한다. 아이들은 여기에서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사회의 통합된 가치관을 주입받는다. 이 과정에서 제각기 날뛰던 아이들의 개성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둥글게 다듬어지게 된다. 아이들의 성격과 가치관이 일정 부분 획일화되는 것이다. 마치 영화 ‘모던 타임스’에서 묘사된 것처럼 개인의 개성을 말살하는 현장인 공장처럼 말이다.
근대의 공교육 시스템은 근대 국가의 한 장치로 고안되고 기능하면서 개개인을 복종적이면서 유능한 ‘유순한 신체’를 형성하는 데 매진했다. 즉, 근대의 교육정책은 ‘정치적으로는 복종, 경제적으로는 유능한 신체’를 만들어내는 장치로 작동하였다. 이러한 장치는 영유아 교육정책 분야에서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유치원 평가, 어린이집 평가 등을 국가수준에서 일방향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와 같은 제도는 결국 장기적·반복적인 관리와 통제, 결과에 기반한 보상과 제재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이는 푸코가 제시한 권력 및 통제 기제들을 설명하는 매우 적절한 예시가 될 것이다.
이렇듯 이미 거시적 차원에서 권력은 영유아 교육정책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푸코는 거시적 차원에서의 변화보다는 미시적 차원에서의 자기 변형이 보다 중요함을 주장하였다. 이 부분은 윤리로 설명되는데, 스스로 어떻게 행위를 실천할지를 결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푸코에게 있어 윤리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규범이 아니라 실제적인 삶이자 자신을 배려하는 일상의 생활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영유아 교육정책을 어떻게 사유하고 어떻게 실천할지를 결정하는 주체가 된다. 푸코의 윤리는 실행의 주체가 영유아 교육정책을 어떤 윤리적 지침에 의해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를 통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영유아 교육정책 실행의 주체로서 가져야 하는 실천적 전략을 검토할 수 있게 한다.
푸코의 관점이 주는 시사점은 일상의 미시정치가 변화해야 영유아 교육정책이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실행 주체자들의 작은 변화 자체가 동기로 작동해야 된다는 의미이다. 변화의 원인을 거시정치적 관점과 이론적 측면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실행 주체자의 일상생활 및 미시정치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푸코의 시선에서 진리는 삶에서의 실천과 자기 배려를 통해 구현될 수 있는 무엇일 것이다. 그리고 자기 배려는 자신의 사유를 실제적 행동으로 이끄는 힘이 될 것이다. 끝으로 아직 오지 않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미래에 대한 상상을 가능하게 해주는 푸코의 주장을 되새겨 보며 글을 닫는다.
“하루의 매 순간이 인생의 중요한 날의 순간이고, 또 하루의 마지막 순간이 실존의 마지막 순간인 것처럼 하루를 조직하고 체험해 보자! 그리고 오늘, 여기, 우리의 문제를 끈질기게 사유하고 끊임없이 변형하자!”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각주
- 미셀 푸코(Michael Foucault, 1926-1984)는 프랑스의 철학자이다. 그는 1926년 프랑스의 푸아티에(Poitiers)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후 심리학, 병리심리학에 흥미를 가지고 그 이론과 임상을 연구하였다. 스웨덴, 폴란드, 독일, 프랑스 등 다양한 국가에서 강의를 했고, 1960년대 파리대학교 벵센 분교 철학 교수를 거쳐 1970년 이래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를 지냈다. 푸코는 권력·지식·담론과 같은 개념을 바탕으로 고고학·계보학적 방법론을 사용하여 사회를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그의 연구물들은 권력 구조에 대한 새로운 방식의 비판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사회학·여성학·문화인류학·역사학·퀴어학 등 학문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푸코는 1984년 파리의 한 병원에서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으로 사망하였다.
- 미국 코넬대학교의 데이비드 더닝(David Dunning) 교수와 대학원생 저스틴 크루거(Justin Kruger)의 연구에서 나온 이론으로 능력이 없는 사람이 자기 능력을 과신하고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판단하는 경향을 ‘더닝크루거 효과’라 한다.
- ‘에피스테메(episteme)’는 모든 사상과 학문분야를 넘어서 한 시대의 사람들이 사물을 바라보는 무의식적인 틀이자 공통적인 사고방식을 일컫는다. 푸코는 한 시대의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는 틀이 있는데 이를 ‘에피스테메’라고 불렀다.
- 파놉티콘(panopticon)은 영국의 공리주의 사상가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이 제안한 원형감옥으로 최소한의 감시자로 많은 수감자를 감시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감시와 통제의 방법인 파놉티콘의 개념은 이후 미셸 푸코에 의해 근대국가의 권력 작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아동학과 유아교육학을 전공한 후 현재는 경남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영유아 교육정책을 주로 연구하며 관심분야를 확장하고 있다. 구성원의 참여와 상생을 추구하는 공동선의 가치가 영유아 교육정책에 반영되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상향식 영유아 교육정책 수립 및 평가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