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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정부의 학교폭력 대책과 언론의 보도, 모두에 다시 실망하며

#898 강태중,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2023.04.20
정부가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근절’에 미치지 못할 게 뻔한 대책이고, ‘종합대책’이란 수식도 턱없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근본적인 지적도 없고 별다른 대안 얘기도 없다. 대입에 관련된 대책에 대해서만 토 다는 정도에 그치고는, 지나가는 ‘해프닝’ 다루듯 보도했다. 이 글에서는 정부 정책과 언론의 보도 행태가 여전히 편협하고 근시안적인 구태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번 계기에 우리가 성찰해야 할 점이 어떤 것일지도 짚어보았다.

 

 

정부가 내놓은 ‘근절’ ‘종합대책’

 

정부가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보도자료는 “학교폭력 전학 기록 4년까지 보존, 정시에도 반영”이라는 헤드라인을 달고 나왔다. 국무총리는 대책을 이렇게 요약했다. “학교폭력 대책 근절 종합대책은 어떤 이유로도 폭력은 용인되지 않는다는 상식이 뿌리내리도록 학교폭력 행위에 대한 엄정 대처, 피해 학생에 대한 빈틈없는 보호, 학교의 교육적 조정 기능 강화에 중점을 두었다.” 보도자료가 대책의 ‘3가지 추진 방향’이라고 정리한 내용 그대로이다.

 

보도자료의 ‘별첨2’는 정부의 대책을 비교적 자세하게 정리해 놓고 있다. 그 내용의 대강은 ‘3가지 방향’을 따라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먼저, 엄정 대처한다는 방향에는 학생부에 기록하는 것을 강화하고 그 결과를 대입에 반영한다는 대책이 들어 있다. 기록 보존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기록 삭제가 쉽지 않도록 심의 과정을 강화하며(피해자의 동의까지 얻도록 하며), 정시를 포함하여 대입에 필수 반영되도록 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둘째, 피해 학생을 보호한다는 방향에는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의 분리가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하고, 피해 학생을 ‘밀착 지원’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즉시 분리’ 기간을 늘리고 학급교체도 가능해지도록 하고, “심리상담·의료·법률서비스를 ‘맞춤형’으로 지원”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마지막으로, 학교의 기능을 강화한다는 방향에는 학교의 대응 역량과 여건이 충실해지도록 하고, ‘체육·예술 교육’과 ‘사회·정서 교육’을 통해 ‘근본적인 변화’도 유도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시도교육청에 ‘학교폭력예방지원센터’를 설치하고 학교전담경찰관 등으로 구성된 ‘컨설팅 지원단’도 구성해서 학교의 대응을 지원하고, 폭력 처리와 관련하여 교권 보호나 수업 경감 등의 조치를 보완하며, 학교스포츠클럽이나 예술동아리 활동 등을 증대시키고 ‘심리 안정 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한다는 것이 그 골자이다.

 

 

대책의 근본 문제 지적하지 못하는 언론, 지엽적인 논평만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제공하는 뉴스 분석 프로그램인 ‘빅카인즈’에서 ‘전국 일간지’로 분류하는 신문들을 둘러보면, 정부의 대책 발표에 대해 모두 빠르게 반응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신문이 정부가 배포한 보도자료를 바로 요약 보도했다. 관련해서 후속 보도를 내는 데서는 신문마다 조금 차이가 있다. 대책의 부작용이나 미흡한 점을 지적하거나 교육계나 ‘현장’의 우려를 보도하는 신문도 있고, ‘학교폭력 전문가’를 인터뷰한 신문도 있으며, 사설까지 내놓은 신문도 있다. 그러나 이런 차이들은 사소해 보인다. 보도의 양이나 구체성에서 차이가 있지만, 기사나 사설의 기조와 내용에서 질적인 차이는 거의 없다. 대체로 비슷한 기사들의 경향은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대책의 핵심이 ‘학생부 기록 강화’와 ‘대입 반영’에 있다고 보도하면서, ‘엄벌주의’를 택했다고 해석하는 데서 기사들 사이에 차이가 없다. 정부가 보도자료에서 잡은 헤드라인을 그대로 받아 보도하고 있다. 글머리에 언급했듯이, 보도자료는 “학교폭력 전학 기록 4년까지 보존, 정시에도 반영”이라는 표제를 달고 있다. 기사들은 대체로 “학폭 대입서 필수 반영… 학생부 기록 보존도 2년→4년”, “현 고1부터 모든 대입전형에 학폭 반영”, “학폭 기록 대입 5수까지 남아” 등과 같은 제목을 달고 있다.

 

둘째, ‘학생부 기록 강화’와 ‘대입 반영’이라는 대책의 기조에 대해 논평하는 데서도 큰 차이 없다. 모두 소송이 빈발할 것이라 우려하고 있고, ‘처벌 강화’만으로는 학교폭력 해결에 미흡하리라고 막연히 평하고 있다. 이런 논평에는 교육계 인사나 교원단체들의 의견(인터뷰)도 반영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인 논평들이 없지 않은데, 이 경우에는 대입 반영에 대한 구체적인 ‘감점 가이드라인’이 없다든가, 대입에만 초점을 두어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의 폭력에 대해서는 소홀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학교폭력에 대한 조치가 고등학교 입시에서도 비슷하게 이루어질지 묻거나, 학생부 기록 연장으로 취업에까지 영향을 줄지 묻는 기사도 보인다.

 

셋째, 이번 대책이 포괄하지 못한 점에 대한 지적은 주로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데, 피해자의 ‘회복’과 가해자의 ‘교화’에 대한 프로그램이 없거나 부족하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피해자를 위한 지원이 있다지만 형식적인 데 그치기 쉬운 대책들이고, 가해-피해 학생의 화해와 가해 학생의 반성을 강조하지만 그런 과정을 위한 대책은 미비하다는 지적들이 있다. 교육계(주로 교원단체)에서는 학교와 교원이 겪을 고충이나 피해를 막아줄 방책이 미흡하다고도 지적하는 것으로 보도됐다.

 

마지막으로, 위와 같이 정리하고 보면, 신문 보도들의 공통점을 소극적인(보도하지 않는) 측면에서도 확인하게 된다. 중요하게 두 가지를 얘기할 수 있다. 우선, 정부 대책에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기사는 없다. 다소 부족함이 있다거나 부작용이 예상된다는 지적은 있지만, 근본적으로 문제라는 기사는 찾아볼 수 없다. 기사들은 정부가 채택한 대책의 틀 안에 갇혀 있다. 대책이 전제하는 학교폭력의 의미와 정부가 제시한 대책의 정당화 논리 등, 말하자면 정부의 패러다임 자체를 건드리지는 않고 있다. 이런 보도의 소극성 측면에서 보이는 또 다른 공통점은, 3가지 방향의 대책 가운데 마지막 방향, 즉 ‘학교’ 또는 ‘교육’ 관련 대책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정부는 ‘사회·정서 교육’과 ‘인성·체육·예술교육’을 지원하고 활성화하겠다고 했으며, 이런 대책은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것이라 강조까지 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알리거나 대책들을 논평한 기사는 보이지 않는다.

 

요컨대 언론은 정부의 대책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언론의 입장은 모호하다. 어쩌면 입장이 없다고 말하는 게 더 적절할지 모르겠다. 기사들은 일차로 정부의 발표 내용을 문건대로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뒤에 따르는 기사들에서 대책에 대해 부연하거나 토를 달고 있긴 하지만, 그것들은 대체로 전문가나 교육계(현장, 교원단체 등)의 의견과 논평을 전달하는 데 그치고 있다. 언론 매체가 독자적인 입장을 드러내는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사설을 낸 언론사의 경우 공식 입장을 확인해 볼 수 있기는 한데, 보도 기사들과 주조에서 큰 차이 없다. 대체로 정부의 ‘엄벌주의’ 대책을 수긍하면서, 불복 소송의 증가나 대입전형에서의 혼선 등 예상되는 부작용을 우려하며 보완을 요청하고 있다. 비교적 비판적인 사설이라 해도 정부 대책에 대해 일반적인 우려를 표명하는 데 그치고 있다. 다급하게 처벌 위주 대책을 내놓기보다, 좀 더 ‘거시적’이거나(서울신문) ‘교육적’인(한겨레신문)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 충언하는 정도이다. 그런 충고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파악하긴 어렵다. 짧은 사설에서 충분히 말하기 어려웠다 하더라도, 언론사가 학교폭력에 대해 생각을 분명하게 발전시켜 왔다면 더 명료하고 자세한 기사를 따로 내보낼 법한데, 그런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언론은 학교폭력에 관심을 크게 두지 않았거나, 관심을 두었더라도 또렷한 정책 안목을 구축해 지니지 못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언론 매체들은 정부의 학교폭력 정책을 매우 만족스럽게 여기고 있지는 않아 보이지만, 그렇다고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지도 않는 듯하다. 보도에서 근본적인 비판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정부의 조치를 그런대로 수긍하고 있다 보아야 할 것이다. 아니면, 사회의 다른 모든 사건과 마찬가지로 학교폭력도 계속 일어나기 마련이고, 그때마다 요란하게 보도하여 논란하고 정부가 ‘프로토콜’을 따라 매듭지으면 그만이라고 여기고 마는지 모르겠다. 그저 지나가는 ‘해프닝’이자 사회면 기삿거리 정도로 여기는 것일 수도 있겠다.

 

정부가 ‘사건’ 마무리를 위한 대책 발표도 했고 언론도 그것을 받아 보도의 푸닥거리를 끝냈으니, 이제 우리는 학교폭력 문제를 잊어갈 것이다. 사건이 다시 불거질 때까지는 잊고 지낼 것이다. 정부의 대책은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우리가 학교폭력 문제를 잊고 살 수 있게) 보장해 주어야 하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다. 정부는 폭력을 근절시키겠다고 공언했지만, 그 말을 곧이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학교나 사회의 일상에서 겪는 폭력 문제의 뿌리는 이번의 대책 정도로 근절될 만큼 얕게 있다 느껴지지 않는다. 정부는 문제의 뿌리를 더욱 깊이 캐서 처리했어야 했고, 언론은 그렇지 못한 정부를 철저하고 냉엄하게 꾸짖어야 했다. 잊을 만하면 겪게 되는 가뭄에 기우제 지내듯, 이번에도 우리 사회는 학교폭력 문제를 ‘형식적으로’ 처리했다.

 

 

정부의 대책과 얄팍한 정당화, 구태 못 벗고 되풀이

 

이번 사건을 둘러싼 논란과 정부의 대응 그리고 언론 보도 등 일련의 흐름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교육정책 결정의 전형적인(일반적인) 특성을 감지할 수 있다. 이번 사례는 하나의 학교폭력 사건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어떻게 처리했는지 보여주는 외형 이상의 내포를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 정부가 교육 문제를 어떻게 규정하고 어떤 방향에서 그리고 무슨 근거로 그 해결책을 구안하는지, 교육정책의 전반적인 경향을 보여준다. 불과 한 달 남짓한 시간에 일어났지만, 이번 사태는 우리나라의 교육정책 행태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이를테면 교육과정이나 사교육 또는 대입제도와 같은 굵직한 교육 문제들에 대해서는 정부가 좀 더 긴 시간을 두고 다뤄오긴 했지만, 그 정책 과정은 이번의 것과 성질상 다름없었다. 이번 일에서 우리나라 교육정책의 고질적인 타성을 다시 확인할 수 있으며, 결국 교육정책이 왜 그렇게 거듭 실패하게 됐는지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번 대책의 굵은 줄기를 따라 그 고질적 양상을 살펴보자.

 

무엇보다도 먼저, 정부의 언사부터 보자. 정책 문건을 수사(修辭)와 과장(誇張)으로 덮는 관성을 확인하게 된다. 대책의 제목부터 과장이다.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이다. 10년여 전(2012년) 발표한 대책의 제목도 ‘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이었다. 띄어쓰기만 달라졌을 뿐이다. 구체적인 대책들의 서술을 살펴보아도 양상은 비슷하다. “학교폭력 없는 ‘안전하고 정의로운’ 학교”, “피해학생에 대한 ‘빈틈없는’ 보호”, “2차 가해 ‘원천’ 차단”, “피해학생 ‘맞춤형 통합지원’”, “‘언제, 어디서나 참여가능한’ 온오프라인 연계형 신체활동 동아리”(작은따옴표는 덧붙임) 등 과도한 수식은 곳곳에 있다. 폭력은 어떻게 해도 근절할 수 없을 테고, 학교를 안전하고 정의롭게 만든다는 ‘비전’도 공허할 뿐이다. 피해 학생을 빈틈없이 보호한다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문제든 원천적인 차단도 불가능할 테고, ‘맞춤형’이나 ‘언제 어디서나’라는 표현도 흔하지만 지나치게 부풀린 것이다. 이와 같은 언사는 정부가 이제까지 발표한 모든 교육정책 문건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문서를 찾는다면 놀라운 발견일 것이다. 정부는 늘 ‘이번 정책이 집행되면 어마어마한 효과가 날 것’이라 공언한다. 발표하는 정부도 그 정도 효과가 날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을 듯하다. 정책 문건은 ‘과대포장’해야 마땅한 것처럼 되어 있다.

 

정부가 문서를 꾸미고 과장하는 데 따라 정책에 대한 사회적인 신뢰는 엷어지고 무너져 간다. 정책에 대한 냉소가 우리 사회에 흔한 것도 정부의 그런 행태와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이번 문건에서도 보이는, 사소해 보이지만 그냥 지나치기에는 심각한, 관행적(관료적) 증상을 짚고 넘어가자. 이번 발표 자료에는 “학교폭력 대응 선도학교 운영”이라는 대책이 들어 있는데, 그런 학교에 대한 이름은 나중에 ‘선정’하겠다며 후보들을 예시하고 있다. 예시가 왜 필요했는지 모르지만, “‘친구 지킴 학교’ ‘ABC(Anti-Bullying Campaign) 학교’ ‘NO폭 학교’ 등”이 그것이다. 무리하게 영어 단어를 섞어가면서까지(우리 말을 부숴가면서까지) 이목을 사로잡을 만한 조어를 찾을 셈인 듯하다. 어쩌면 공모까지 할지 모른다. 정부의 정책 행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교육부가 지원하는 사업들의 이름을 한 번 살펴보라). ‘홍보’에 목마른 ‘정치적인’ 행위로 여겨지는데, 과연 그런 작태가 정책의 실질과 효력에 어떤 힘을 얹을지 의문이다. 정책이나 정부의 움직임을 가식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냉소하며 돌아서도록 만들 뿐일 듯하다.

 

발표 문건의 장식(粧飾)을 덮어두고 구체적으로 내놓은 대책들을 살펴보자면, 예나 지금이나 보게 되는 것은 ‘편협한 근시’의 정책 안목이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학생부 기록 연장’과 ‘대입 필수 반영’이다. ‘엄정한 조치’라며 채택한 것인데, 그런 대책에는 어떤 전제가 들어 있는가?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지 못하도록 막는다면 학교폭력 행위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제이다. 모든 고등학생에게는 대학 입학이 매우 중대한 사안이므로, 폭력에 대한 처벌을 대입에 걸면 큰 효과가 날 것이라 여기고 있다. 이런 전제는 오직 ‘정순신 아들 사건’만 염두에 둘 때나 가능한 것이다. 학교폭력에 가담할 잠재성을 지닌 학생이 어떤 학생들이며, 그 가운데 얼마나 대입을 중요하게 여길까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깊고 넓게 생각해 본다면 집어 들 수 없을 전제이다.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에서 잠재적인 가해 학생이 어떤 학생인지 알려주는, 정책에 쓸만한 연구 결과는 없다. 정부가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려고 10년 이상 공들여 왔다는데, 더욱이 대학에 ‘중점’ 연구소까지 설치해 관련 연구를 해왔다는데도, 그런 기초적인 ‘프로파일’조차 마련해 놓지 못했다는 게 놀랍고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확고한 논거는 없지만, 폭력의 잠재성을 지닌 학생 대부분이 대입 사안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할 것이라 전제하는 것이 무리라는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여러 나라에서 그리고 여러 측면에서 이루어져 온 연구 결과들을 감안하면, 물론 확고하게 결론 낼 수는 없지만, 자기 뜻을 폭력으로 관철하려고 들 가능성이 큰 학생들이 대입을 중대하게 여길 가능성보다는 오히려 가볍게 여길 가능성이 크리라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일 것이다. 폭력의 기록이 대입의 장벽이 되도록 만들면 사건이 크게 줄어들리라 추론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이다. 정부는 당장 논란되고 있는 사건을 다급히 처리하는 데 매몰되어, 장기적으로 면밀하게 원인을 찾는 연구를 추진하지도 않았으며, 결국 문제 사태를 제대로 읽어내지도 못하고 있다. 과거 정책 행위에서도 으레 볼 수 있었던 모습이다.

 

눈앞의 사건이나 논란을 잠재우는 데 급급할 때 정책의 근거는 빈약하고 논리는 비약하게 마련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다. 정부는 이번 엄벌주의 대책을 합리화하는 근거로 두 가지를 중요하게 언급했다. 하나는, 지난 2012년 입안했던 엄벌주의 정책이 그동안 완화되면서 학교폭력이 크게 늘어 왔다는 통계이고, 다른 하나는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로 확인된 압도적인 지지율이다.

 

전자에 적용한 논리는 이렇다. 2012년 대책(현재 교육부장관이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으로서 마련한 대책)에서 학생부 기록을 졸업 10년 후에야 삭제될 수 있도록 해서 ‘무관용 원칙을 정립’했었는데, 지난 10년여 사이에 제한을 2년까지로 축소했을 뿐만 아니라 ‘중간 삭제’도 가능하도록 바꾸는 바람에 폭력이 더 빈번하게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추론하려면 최소한 폭력 발생 건수의 통계부터 믿을 만해야 하고, 학생부 기록과 폭력 행위 사이의 인과관계가 분명하게 검증되어야 할 것이다. 그 어느 조건도 충족되지 않는다. 2012년의 대책으로 시작된 ‘학교폭력 실태조사’는 ‘전수조사’라는 무리한 절차와 방법 때문에 그 결과의 ‘신뢰성’이 종종 의심되어왔다. 학교 현장에서는 종종 있었던 논란이다. 그리고 학생부 기록이 폭력을 막을 것이라 낙관하는 것은, 처벌의 세기가 비행을 줄이지 못한다는 이제는 일반화된 연구 결과에 비추어서라도 경계해야 마땅하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잠재적인 가해 학생이 자신의 학생부 기록에 얼마나 신경 쓸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 기록과 폭력 행위가 인과관계로 묶인다고 단정하는 것은 당연히 비약이다. 이번에도 정부의 정책 논리는 전형적인 ‘확증편향’의 경향을 띠었다.

 

대책에 대해 국민의 의견을 물었다는 ‘대국민 설문조사’도 빈약하고 선입견에 차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조사 결과 “대입 정시 반영”에 찬성하는 국민의 비율은 91.2%였으며, “학생부 보존기간 연장”에 찬성하는 비율은 95.3%였다. 숫자만 보면, 민주사회에서 보기 힘든, 말 그대로 압도적인 ‘합의’이다. 이런 여론을 따랐다고 정부는 대책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그 조사가 어떤 질문으로 어떤 시기에 이루어졌는지 따져보면, 정부의 주장을 곧이 받아들이기는 어려워진다.

 

조사에 대해서, 보도자료는, 학교폭력 정책을 지원해온 대학의 ‘정책 중점’ 연구소(학교폭력예방연구소)가 맡아 했다고만 밝히고, 조사 문항 자체는 밝히고 있지 않다. 그러나 문건의 맥락에 미루어 짐작건대, ‘대입 정시 반영’과 ‘학생부 보존기간 연장’ 등으로 대책들을 이름하면서, 하나하나 찬성/반대 여부를 물은 듯하다. 그리고 조사는 지난 3월 13일에서 17일에 걸쳐 이루어졌다고 했다. 사건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활활 타오르던 때 조사한 셈이다. 피해 학생은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는데 가해 학생은 서울대에 입학했다는 사실이나, 당시 검사였던 가해 학생 아버지가 자녀의 그런 진로에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했을 듯한 정황이 알려졌던 시기이다. 가해 학생을 매우 가증스럽게 여길 만한 때였다. 의견을 구하는 질문까지도, (그런) 가해 학생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대책에 찬성하는지, ‘콕 짚어서’ 했다. 90% 넘는 찬성을 받아내기에 그리 어렵지 않은 분위기였고 또 방법이었다. 그런 조사 결과를 인용하면서 국민이 원하는 대책을 채택했다고 설득하려는 문건을 보면서는, 정책 결정자들의 역량이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국민을 우롱하는 것인지 혼란스럽게까지 느껴진다. 그런 유의 조사는 대책 합리화를 위해 전략적으로 시행한 것이라 의심 살 만하다.

 

 

‘패러다임 전환’을 예고했던 정부, 대책의 패러다임이랄 것도 없어

 

구체적으로 보자면 앞에서 지적한 것 외에 문제는 더 많지만, 더 시시콜콜 따져보기보다, 이쯤에서 정부 정책의 근간(패러다임)이 지닌 결정적인 문제를 살펴보기로 하자. 이것 역시 고질적인 것이다. 거듭 얘기하거니와, 정부가 편협하게 눈앞의 소란을 해소하는 데만 신경을 쓰는 탓에, 내놓은 대책들의 근거는 빈약하고 그 효력은 의문스러울 수밖에 없어 보인다. 대책들이 그러한데도, 이번에도 정부는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이라고 간판을 내걸었다. 근절의 효과를 낼 가능성도 없고 구도가 종합적이지도 못한데 말이다. 내건 간판이 무색하게도, 정부의 발표 문건에서 학교폭력을 보는 안목의 깊이나 대책의 포괄성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두 가지만 짚어두기로 한다.

 

우선, 정부의 대책들은 학교폭력을 개인의 심리 문제로만 보고 있다. 학생 개인의 성향이 비틀렸거나 사회 정서 역량이 부족해서 폭력을 쓰게 된다고 전제한다. 그래서 엄한 처벌로 ‘경각심’을 일깨우거나 ‘인성교육’으로 성향을 순화시키면 그런 학생의 폭력은 사그라들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나 학교폭력에는 ‘인성’ 밖의 많은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작용하고, 특히, 학생들이나 학생-교사 사이의 ‘관계’가 중대하게 작용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학교폭력에는 가해자와 피해자만 엮여 있는 게 아니다. 가해 학생에 동조해 가담하는 학생들도 있고, 구경하면서 암암리에 폭력을 부추기는 학생들도 있다. 그리고 못 본 체 현장을 외면하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나서서 폭력을 제지하는 학생들도 있다. 사회적 맥락에서 보면, 학교폭력은 학생의 심리적 병리에서 분출되는 것이기보다 적극적이고도 영악하게 지위나 위세를 추구하는 행위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행위에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사들도 중요하게(제어하든 부추기든)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이 적잖은 연구로 밝혀져 왔다. 학교폭력 문제를 다루는 정책은 ‘학교 사회’의 역학을 당연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학교폭력이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학생이 연루된 문제라는 사실, 더 나아가 교사들도 깊숙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과거에도, 정부의 정책에는 다면적이고 포괄적인 안목이 스며있지 않았다.

 

더 근본적으로, 정부의 정책은 학교 교육의 핵심적인 실제(practices)를 안중에 두고 있지 않다. 학교 교육의 핵심은 교과수업에 있다. 시간 양으로 보나 실천의 가치로 보나, 교과수업의 핵심성을 부인할 수 없을 터이다. 그러나 이번 대책에서 교과수업을 고려한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거듭 강조하는데, 전에도 흔히 그랬다. ‘학교’ 문제를 다루면서 학교의 핵심 맥락을 털끝만큼도 고려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기이하게까지 느껴진다. 그만큼 정부의 정책 바탕과 구도는 엉성하고 궁색했다.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사물과 사회의 이치를 읽고 판단할 안목을 틔울 뿐만 아니라,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생과 학생 사이의 관계도 암암리에 구성된다. 관계 네트워크가 엮일 뿐만 아니라, 그것의 성질과 그 안에서의 위계까지도 만들어진다. 훌륭한 수업에서라면 학생들은 폭력을 자신의 행위 스펙트럼에서 제거할 이유를 발견할 수 있고, 다른 학생의 폭력을 막고 나설 지성적 뱃심도 키우게 된다. 학생들끼리 서로 가르치고 배울 기회가 많다면 학교 사회의 공동체적 속성이 강화될 수 있고, 그만큼 학교폭력의 가능성은 ‘문화적으로’ 제어될 수도 있다. 반면, 점수 경쟁이 치열하고 문제 풀기 위주로 흐르는 빈궁한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공부의 의미를 찾을 수 없어 형기(刑期)를 마치듯 버텨야 하며, 교실 안의 사회적 관계는 공동체적 연대와는 거리가 먼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양상을 띠게 된다. 날 선 경쟁으로 학생들의 사이는 험악해지고, 경쟁에서 밀려나도 도움받지 못하고 소외되는 학생들의 절망과 분노는 폭력의 출구를 찾아 늘 꿈틀댈 수도 있다. 교사가 학생들의 일상에 적극적이고도 따뜻한 관심을 두지 못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다른 모든 교육 문제도 그렇고, 학교폭력 문제도 교과수업의 양상에 관련되지 않을 리 없다. 교과수업은 학생이 세상을 읽어갈 안목(scheme)을 구축해 주고 그 안목은 사유와 처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 전제는 인류의 교육 행위에 꾸준히 내재해 온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교육정책은 이 숭고한 전제를 늘 가벼이 여겨왔다. 교과수업은 으레 점수를 얻기 위한 훈련이고 단편적인 ‘지식교육’일 뿐이라 치부했다. 인성이나 창의성 그리고 심층적인 사고력 같은 ‘바람직한’ 교육 산물은 교과수업이 아닌 다른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내야 할 것으로 여겼다. 교과수업은 지레 포기해왔다. 좋은 수업이 어떤 것이고 그런 수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제대로 모색하고 실천했던 시도는 한국 교육정책 역사에 사실상 없었다. 교육과정 총론에 유행 따라 한두 번 개념적으로만 채택했던 정도가 고작이다. 그리고는 교과수업은 ‘입시 위주’나 ‘지식 위주’가 되기 마련이라 단정해버렸다. 교육정책에서 교과수업은 비난(‘개혁’)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 학교 교육의 핵심인 교과수업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 기이한 교육정책 행위가 지속되어 왔다.

 

잠깐만 되돌아보라. 입학전형 정책은 시험의 타당성(교육내용을 제대로 반영하는지)보다 변별력(등급을 세밀하게 가르는지)을 중시해 왔다. 사교육 정책에선 교육의 성질(‘시험 위주’는 아닌지)보다 교육에 지출되는 돈(사교육비 조사 결과)만 따져왔다. 정부가 늘 우선시해 온 ‘교육’ 정책들이 부차적인 것들만 붙들고 정작 교육의 핵심은 주변으로 치웠다. 정책 하나하나에 대해서 더 세세한 이야기가 필요하겠지만, 잠깐 곱씹더라도 우리 교육정책이 얼마나 어이없는 본말전도의 행태를 보여왔는지는 짐작하고 남으리라 믿는다.

 

 

정부나 언론의 행태에는 우리의 상식이 투영돼

 

이번에도 정부는 교육 문제를 너무 가볍고 얕게 다뤘다. ‘근절’ ‘종합’ 대책이라지만, ‘명문’ 학교에서 검사 아들과 그 부모가 위세를 떤 데 맞춰, ‘사회적인 경각심’을 일깨운 정도에 그쳤다고 하면 지나칠까. 학교폭력 문제는 매우 심각하고 만연한 현상이다. 두말할 나위 없지만, 폭력에 휘말린 학생들은 오랫동안 심하게 그 아픔을 앓으며, 삶을 포기하기까지 한다. 그들만이 아니다. 폭력을 목격하고도 침묵하거나 사건 이야기를 건너 들으면서, 모든 학생이(교사들까지도) 암담한 사회화의 길에서 치이며 비틀거릴 터이다. 이대로라면 얼마 안 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믿음과 상생보다 경계와 견제를 일상 관계의 문법으로 품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정부나 언론은 어째서 교육 문제를 늘 그렇게 좁게 보고 낮잡아볼까?

 

정부와 언론을 손가락질하는 것은 마땅해 보이고 쉬운 일이지만, 그들의 행태가 우리 모두의 생각이나 기대와 무관하지 않다. 정부와 언론은 우리 상식을 따르고 있을 터이다. 교육정책은 우리의 교육관을 보여주는 거울일 뿐이다. 우리가 학교를 어떻게 보고 무엇을 기대하는지 그 행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학교에 다니지 않아도 ‘서울대’에 진학할 수만 있다면 교육은 충분하다 여기지 않는가. 학교의 교과수업은 점수 전략을 전수하는 ‘사교육’ 훈련과 다름없다 취급하고, 학교에서 자녀가 다양한 급우들과 부딪치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가. 여유가 있는 부모들은 학교 보내는 것보다 ‘재택 학습’이 오히려 낫다고 계산하면서, 학교생활에서 얻게 될 암묵적 깨우침을 얕잡지 않는가. 선생님을 내 아이를 위해 고용한 교복(敎僕) 정도로 여기고, 달리 본대도, 경쟁 게임의 기록관이자 심판으로만 여기지 않는가. 자녀의 인격을 위해 함께 의논할 상대로 여기지는 않지 않는가.

 

우리의 ‘교육’ 습성이 학교폭력과 무관할 리 없고, 교육 문제를 다루는 정부와 언론의 행태에 투영되지 않을 리 없다. 학교는 ‘각자도생’의 생존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경쟁의 운동장이기도 하겠지만, 그런 경쟁이 서로에 대한 혐오나 배제로 번지지 않도록 결속을 다져 갈 커뮤니티이기도 하다. 경쟁에서의 ‘성공’만으로 우리의 삶이 총체적으로 성공일 수는 없다. 사회의 연대(連帶)가 전제되지 않으면 구성원 개인의 충만한 삶이 보장될 수 없다. 학교는 이 점을 우리의 ‘공적 양심’(collective conscience)에 각인하는 성장 지대(地帶)이다. 정부와 언론은 이번에도 여전히 학교(교육)의 본질을 간과했다. 어쩌면 이번 계기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경쟁에서 ‘성공한’ 개인이 어떻게 사회를 부수며 타락시키고 이웃을 불행에 빠뜨릴 수 있는지 확인했다는 점일지 모른다. 정부와 언론은 늘 그 점을 놓쳐왔지만 말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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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학교 명예교수 강태중

‘교육사회학’ 선생으로 일했다. 부족했던 점을 성찰하며, 조금이라도 메우기 위해 더 공부하고 있다.  한 사회가 교육과 학교에 대해 어떤 신화(상식)를 만들고 품는지, 그리고 그런 신화는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분석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인류 역사와 사회의 구분을 따라, 교육의 관습과 제도로 드러나고 또 변전해 온 신화들을 캐며 비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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