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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편집실 논설] 교육정책의 터무니를 묻는다 – 고교학점제의 경과를 지켜보며

#1452 편집실, <교육 제4의 길> 편집진 2026.02.05

정부는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의 공조로) “고교학점제 안착을 위한 대책”을 마무리 지었다. 정부로서는 이제 한시름 놓게 되었다고 여길지 모르겠다. 그러나 고교학점제의 경과를 눈여겨보며 학교 교육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 온 입장에서는 걱정과 의문이 오히려 커졌다. 정부는 이 제도를 어디로 끌고 가서 어떤 결과를 얻으려는가? ‘고교학점제 안착’이란 어떤 상태에 가 닿는다는 뜻인가? 더 일반적으로, 교육 정책은 과연 교육을 위해 이루어지고 있기는 한가?

 

 

교육부가 내놓은 대책을 살펴보면

 

교육부의 ‘안착 대책’은 “학생 맞춤형 교육 내실화”를 위한 것이며, “교원·학생·학부모 등으로부터 [나온] 여러 개선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대책 발표 보도자료에는 아래와 같이 적혀 있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보장하여 학생별 특성에 맞는 학생 중심의 교육체제로의 전환을 위해 도입되었다. 고교학점제가 도입된 이후 학교 현장에서는 학생이 다양한 과목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고, 학업성취가 낮은 학생에 대한 학교의 교육적 관심이 커지는 등의 긍정적인 효과가 보고되고 있다. 그렇지만 올해 본격 시행된 이후 교원·학생·학부모 등으로부터 여러 개선 의견이 제기되어 왔다. 이에 교육부는 ‘고교학점제 자문위원회’와 논의하고, 학교 및 교육청 등 현장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개선 대책을 마련[했다].

 

고교학점제의 “긍정적인 효과”로 교육부는 두 가지 변화를 들고 있다. “학생이 다양한 과목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과 “학업성취가 낮은 학생에 대한 학교의 교육적 관심이 커”졌다는 점이다. 전자에 대해서는 선택 과목 수가 늘었고 제도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근거를 대고 있고, 후자에 대해서는 “성적 하위권 학생들에게 다양한 예방 지도와 보충지도[를] 실시”했다는 근거를 대고 있다.

 

교육부가 고교학점제를 안착(!)시키려 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긍정적인 효과’들을 살리려는 데 있으리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위에서 본 두 가지 변화가 교육부가 대표적으로 꼽는 긍정적 효과인데, 물론 고교학점제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모든 것은 아닐 터이다. 그러나 그 제도를 지속시키려는 이유 그리고 더 일반적으로 교육부 정책 행위의 터무니를 짐작해 보기 위해 이 두 효과가 무엇을 뜻하는지 곱씹어 보는 일은 유효해 보인다. 고교학점제가 추구하는 성과가 달리 더 있겠지만, 그것들이 여기에서 두 포인트를 되새겨보며 얻게 될 시사를 뭉개지는 못할 것이다.

 

 

선택 과목이 많아졌다는 ‘성과’에 대해

 

먼저, 교육부의 홍보대로, 고교학점제 덕에, 고등학교 교육에서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과목이 많아졌고 학생들도 그렇게 변화한 현실에 만족한다고 치자. 그 상태가 고등학교 교육이 발전한 모습인가? 학생이 고를 수 있는 과목 범위가 넓어졌고 그래서 학생들도 좋아한다면 학교 교육은 나아진 것인가? 늘어난 과목들이 어떤 가치를 지니며, 학생들은 왜 좋아하는지(더 근본적으로는, 학생들의 선호를 좇아 과목을 거듭 만들어 내는 것은 바람직한지) 충분히 검토하기 전에 교육이 좋아졌다고 단언하는 건 물론 섣부르다.

 

과목을 선택할 때 학생들은 여러 가지를 고민할 것이다. 대입에(수능 대비에, ‘내신’에) 도움 될지, 수업 수준이 맞을지, 어떤 교사가 가르칠지, ‘미이수’ 위험은 없을지, 친구가 함께 수강할지 등등. 학생들이 어떤 이유로 어떤 과목을 선택하는지(또는, 원하는지) 제대로 살피지도 않았으면서, ‘선택 과목이 늘고 학생들도 만족한다’며 제도가 성공적이라 주장할 수 있는가? 교육부의 홍보는 사실 근거가 약하다.

 

조금 더 나아가 생각해 보면, 학생들이 어떤 이유로 어떤 과목을 선택할지는 가정 배경이나 학업 성취도 등에 따라 다르리라 짐작할 수 있다. 과목을 고르면서 대입 전략을 고심하고 자신의 흥미나 적성 그리고 학업 준비도를 헤아리는 학생과 단순히 재미를 따지고 이수 가능성을 점쳐보는 학생은 같은 부류에 있지 않을 터이다. 한 학생이 두 경향을 함께 지니는 경우도 드물 듯하다. 말하자면,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넓히는 제도는 학교 간 서열화와는 다른 ‘학교 내’ 서열화와 차별(배제)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외양으로는 자발적인 선택에 따라 학생들이 갈리지만, 사실은 불리한 환경의 학생들이 구조적으로 퇴출 당하는 결과가 올 수 있다.

 

이런 위험은 이미 1980년대에 미국 교육에서 광범하게 지적되었다. 한국 교육부는 2010년대에 “미국과 같은 나라는 이미 고교학점제를 시행하고 있다”며 도입을 서둘렀지만, 정작 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그런 제도가 조장한 “소비자 중심 교육”이 고등학교를(장바구니 들고 돌아다니며 과목을 고르는) ‘쇼핑몰’로 만들어버렸다고 개탄해 왔다. 학교 교육과정도 결국엔 학생을 유혹하느라 달게 가당(加糖)되고 쉽게 물 타져 품격마저 잃게 되었고, 학생 차별은 과목(진로) 선택이라는 위장 아래로 숨겨져 버렸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성취가 낮은 학생에 대해 관심이 높아졌다는데

 

“학업성취가 낮은 학생에 대한 학교의 교육적 관심”이 고교학점제로 커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사실이라면 마땅히 반길 일이다. 고교학점제 같은 제도가 생겨서야 그런 변화가 일었다는 사실이 씁쓸한 만큼이나 반색할 일이다. 그렇지만 온전히 그럴 일만이 아닐 수 있다. 고교학점제에는 과목 이수가 어려울 듯한 학생들을 미리 돕거나 학기가 끝나서 ‘미도달’이면 보충시켜 이수를 지원하는 요소가 들어 있다. 교육부의 말은 그 덕분에 “긍정적인 효과”를 얻었다는 것인데, 이런 결론은 성급하다. 과연 긍정적일지 따져보아야 한다. 고교학점제가 요구하는 ‘예방·보충 지도’가 교사로 하여금 성취가 낮은 학생들에게 기울이도록 이끈 관심이 과연 ‘교육적’일지 의문이다.

 

교육부는 예방·보충지도 프로그램을 지지할 대책을 여럿 열거했는데 핵심은 교사(학교)의 부담을 줄여주는 데 두었다. 이를테면, 학점 이수 기준을 출석률만으로 후퇴시키면서 ‘보충지도’ 부담을 덜어주고, 출석률 기준마저 충족시키지 못하는 학생들에 대해서는 “100% 온라인 프로그램으로도” 해결할 수 있도록 돌리는 식이다. 행간을 읽어보면, 가르치기 버거운 학생들은 임시변통으로 처리해도 묵인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런 가식적인 대책(정책)으로는 이미 소외된 학생들에게 ‘교육적’ 관심을 쏟도록 이끌 수 없다. 오히려 그런 학생들을 ‘골칫거리’로 여기는 교육 문화를 조장할 것이다. ‘미이수’ 처리해 버리고 싶지만, 규정에 따라 지도할 수밖에 없는 그들을 ‘일거리’로 보도록 대책들이 암암리에 부추길 것이다.

 

 

지나치게 조밀한 대책들의 악영향

 

바람직하지도 못하면서도 국지적으로 지나치게 조밀한 대책(지침)들은 학교의 문화를 뒤틀 뿐 아니라 열의에 찬 교사들의 손발까지 묶는다. 교육부가 최종으로 발표한 대책을 읽다 보면 “학점제 업무 현장 착근 지원”이라는 항목을 만나게 된다. 그 안에는 아래와 같은 세부 항이 있다.

 

○ (최성보 자율 운영 및 내실화) 최소 성취수준 보장지도 방식 등 세부 사항은 시도 규정에 따라 과목 및 학생 특성을 고려하여 학교 자율적으로 운영
※ (예) 방과후·방학중 대면 지도(실시간 쌍방향 온라인 포함), 온라인 콘텐츠 활용(EBSi 등), 보충 과제 학습 멘토링 예방 지도 자율적 연계, 정서적 지원 등(단, 대면 보충 지도는 반드시 포함 운영) [밑줄 추가]

 

서술의 겉만 보면, 위 지시는 최소 성취수준 보장을 위한 지도에서 학교(교사)의 자율을 허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시도 규정에 따라”라는 단서가 있어서 애매하긴 하지만, 어쨌거나 “학교 자율적으로 운영”하도록 여지를 열고 있다. 예까지 들면서, 대면 지도, 온라인 콘텐츠 활용 등등의 대안 가운데 적절하게 골라 활용하라고 허용하는 듯하다. 그런데 ( ) 안의 “대면 보충 지도는 반드시 포함 운영”이라는 단서를 곱씹어 보면 사실은 매우 조이는(교육상 바람직하지도 않을) 족쇄를 채우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게 된다.

 

여러 학생에 대해 최소 성취수준 보장 지도의 책임을 맡게 된 성실한 교사를 상상해 보자. 그(녀)가 지도해야 할 학생 중 몇 명은, 그야말로 이수 기준의 ‘경계선’에 있어서, 온라인 자료를 소개해 주고 스스로 보충하도록(‘대면 지도’ 없이) 처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겠다고 판단이 섰다고 치자. 이런 학생들에 대해서도 교사는 자신의 전문적인 판단대로 일을 처리할 수 없다. 교육부 문서에 박힌 ( ) 안의 단서 때문에, ‘대면 지도’를 적어도 한 번 이상 시행해야 할 것이다. 그 단서 조항을 이행하면서 필경 교사는 ‘쓸데없는 일’을 한다며 좌절감을 느껴야 할 것이다.

 

매우 사소한 일을 문서 귀퉁이에서 찾아내어 시비를 걸고 있다고 여길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 문제 사태를 보여줄 수 있는 예를 찾다 눈에 띈 경우를 들었을 뿐이다. 비슷한 경우는(제도가 덧칠하듯 누적되면서 학교와 교사의 일만 늘리는 사례는) 수없이 찾아볼 수 있다. 고교학점제 자체가 그런 사례라고 말할 수도 있다.

 

 

고교학점제도 결국 정책의 덧칠

 

가만히 생각해 보자. 학교 공부를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이 선택한 수업에서 낙제하지 않도록 미리미리 도와주는 것은 ‘학점제’를 도입해서라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 아니다. 교육부는 기존의 ‘학년제’가 경직됐다며 학점제로 바꾸어야 ‘책임 교육’이 가능할 것처럼 주장했지만, ‘학년제’ 아래에서도 충분히 가능했다. 실지로 적지 않은 교사들이 학년제 아래에서도 이미 해내고 있었던 일이라고 믿는다. 학점제를 들먹이기 전에 그런 교사들에게 재량을 주고, 그런 교사들의 수를 늘 수 있도록 꾸준히 성원하는 정책을 펴 왔다면, 지금쯤 고교학점제가 빚은 바와 같은 혼란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 정부는 굳이 새롭게 ‘학점 이수’ 조건을 걸어 교사들에게 책임을 다하라고 요구하고, 교사들은 그런 책임이 과중하다 버티는 사태와 같은 현실 말이다.

 

고교학점제가 버티도록 교육부가 내놓은 대책들은 거꾸로이다. 자신이 맡은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정확히 진단하고 적절히 처방할 수 있고 또 그렇게 노력해 온 교사를 두고 생각해 보면 역행하는 것이다. 이미 열성적인 교사들이라면 고교학점제 아래에서 쓸데없는 일을 하며 시간을 낭비해야 한다. 결국 열의도 소진하고 사명감도 잃어갈 것이다. 앞에서 보았던 예에서처럼, 대면 지도의 처방이 필요 없다고 판단되는 학생에 대해서도, 대책의 경직성을 한탄하며 ‘규정 때문에’ 대면 지도 시간을 부러 가져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정부는 학생 맞춤형 교육을 지원하는 정책이라 힘주어 말했지만, 고교학점제가 실지로는 학생에게 맞추는 수업을 저해하고 있기도 하다. 진정 학생 맞춤인 교육은 교사의 전문적 자율이 충분히 허용될 때, 말하자면 학생의 어려움에 직면한 현장에서 바로 수업을 조율할 수 있을 때 이루어질 수 있다. 2024년 OECD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교사들이 수업과 관련하여 느끼는 자율권은 조사 대상국들 가운데 바닥 수준이다. 고교학점제가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보다는 악화할 듯하다.

 

이런 사태가 교사나 학교의 수준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국가(정부 정책) 수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를테면, 고교학점제가 추진되는 과정에 ‘기초학력보장법’이 제정되었고 기초학력을 보장하기 위한 지도가 학교 교육의 필수 업무가 되었다. ‘기초학력 보장’과 ‘최소 성취수준 보장’의 과제가 중첩되리란 점은 쉽게 알아챌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자명해 보이는 ‘중첩’도 고교학점제를 시행해 오는 과정에서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

 

뒤늦게(2026년 1월 29일) “안착을 위한 대책”을 내놓아야 하는 형국에 와서야 비로소 “기초학력 지도와 최소 성취수준 보장 지도를 연계·운영”한다는 “학점제 업무 현장 착근 지원”책을 내놓았다. 교육이란 일의 성질상 하나로 이루어져도 충분했을 많은 업무가, 그동안 정책이(제도, 법규가) 별개로 덧칠되었기 때문에, 곱절로 불어나 있었을 것이다. 교사와 학교의 재량 여지는 거듭 좁혀져 왔을 것이다.

 

 

정책의 터무니를 갖추자

 

고교학점제만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와 현재 많은 정책(개혁)에서 비슷한 행태의 시행착오를 수없이 찾아볼 수 있다. 정부는 때때로 교육의 ‘대전환’을 외치고 기존 체제를 턱없이 무시하면서 장밋빛 미래 교육으로 가자고 기치를 휘날렸다. 그러나 그 대부분 시도에서 실지로 얻은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지난 수십 년 새 우리 교육이 과연 나아졌는가 자문해 보면, 잃은 게 오히려 많았으리란 생각이 든다.

 

이제라도 멈춰서서 묻자. 이제 와서 정책을 어떻게 물리냐며 무턱대고 ‘안착’이니 ‘착근’이니 하며 밀어붙이지 말자. 교육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정책을 위한 정책이 될 뿐이다. 학교 교육을 더욱 곤경에 빠뜨리지 말고, 근본으로 돌아가 정책의 교육적 이유를 갖추자. 교육 정책의 터무니를 갖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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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제4의 길> 편집진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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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1. 궁금이 수정 삭제

    선택 과목이 많다는 것이 만능키는 아닐 거라는 부분에 동의합니다. 내가 만약 학생이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역으로 생각하면, 나는 내신이나 수능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선택을 할 것이고 거기에서 밀려난다면 차선책으로 도움이 되는 걸 선택할 것 같다. 이것저것 다 밀려나면 그제서야 흥미 있는 과목을 선택하겠지. 이게 뭘까? 결국 난 과정을 한번 꽈서 결국 같은 맥락의 선택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나는 다양한 선택지에서도 결국 나의 선택은 그곳을 향해 갑니다. 성적을 잘 받을 수 있는 그것. 입구와 출구가 바뀌지 않는 한 다들 한곳을 향하게 될 것 같아요~

  2. 장석민 수정 삭제

    정부가 바뀌면 뒤집어 엎기 위해 그럴싸한 말로 포장하여 정책을 바꾸는 것이 관행화된 지금, 고교학점제 또한 그런 폐단의 사례에 지나지 않다. 교육 근본에 관한 검토에서 시작하여 할 수 있는 역량과 여건 만큼 하도록 조치하면 될 것이다. 교육에 정치가 개입되어 부작용을 많이 낳고 있는 것 같다.

  3. 교사 수정 삭제

    한국 교육은 어떠한 그럴싸한 정책을 내밀어도 결과적으로 ‘입시’라는 병목현상 앞에서 경쟁을 거쳐야 하는 점에는 절대적으로 변화가 없습니다. 과목선택권이 늘어난다? 현장에서는 과잉대응하여 (대학의 권장과목이수기준과 과목선택을 선발평가에 반영한다는 일종의 엄포가 조장) 학과별로 미세하게 특정 과목들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면 변별력을 높인다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그게 권리를 주는 겁니까? 우리나라 입시에서 학생들이 선택할 과목이 적어서 불만족한다는 객관적으로 드러난 데이터라도 제시한 적 있나요? 오히려 문,이과 구분 시절 특정 과목을 수강해야 한다는 것에 부담을 호소하던 터에 이제는 학생 스스로 미세하게 과목을 선택해야 한다는 ‘책임’을 던져주는 꼴이 되어 몇 배는 더 큰 부담을 주는데요? 도대체 교육부 그리고 한국의 중견대학들은 무슨 몽상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던지는 모든 변화는 결국 또다른 경쟁의 변별요소가 될 뿐입니다. 진짜 한심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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