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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담소담 No.11] 문제 해결 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스스로 지식을 구성하게 하는 프로젝트 학습_정득년 선생님

2020.06.02

interviewer.  김명진

 

삶이란 자신의 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며칠 후면 실시될 대학수학능력시험처럼 큰 미래를 좌지우지하는 커다란 문제도 해결해야 하지만, 수능 고사장에 시간 내에 도착하려면 집에서 언제 출발해서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하는지와 같은 작은 문제도 동시에 해결해 나가야 하지요. 이런 문제들을 합리적으로, 또 효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인간은 ‘지식’을 활용합니다. 그런데 이런 지식은 어디서, 어떻게 얻는 것일까요? 또 그렇게 얻은 지식을 어떻게 활용해야 올바른 해결책을 찾는 길로 들어설 수 있을까요?

 

지식이란 학습자가 타인이나 환경과 상호 작용을 하면서 형성하는 의미라는 구성주의에 기반을 두어 학생들의 학습 방법과 환경을 고민하는 선생님들이 계십니다. 이번 소담소담에서는 그와 같은 교육 철학을 ‘프로젝트 학습’이라는 방법으로 실천해 오신 정득년 선생님을 만나러 갑니다.

 

정득년 선생님은 2006년부터 현재까지 서울시교육연수원, 서울시교육청, 교육인적자원부 등에서 PBL 관련 직무연수를 설계하고 직접 강의해 오셨습니다. 『PBL의 실천적 이해_PBL 수업을 위한 길라잡이』(2007), 『(교실 속 즐거운 변화를 꿈꾸는) 프로젝트 학습』(2011) 등의 책을 쓰기도 하셨으며, 현재는 서울 전곡초등학교에 근무하고 계십니다.


 

 

PBL과 프로젝트 학습

 

Q) 자기 주도 학습을 구현할 수 있는 학습 방법으로 프로젝트 학습(Project-Based Learning)과 문제 중심 학습(Problem-Based Learning ; PBL)이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두 가지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정득년) 국내에서 PBL이라고 하면 대개는 주제 중심의 프로젝트 학습을 말해요. 그런데 용어가 달라도 학습자를 중심으로 바람직한 학습 환경을 설계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두 학습 방법은 굉장히 유사해요. 다만 문제 중심 학습(Problem-Based Learning)이 구체적인 상황이 담겨 있는 문제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좀 차이가 있을 뿐이죠.

 

Q) 그럼 그 두 가지를 포괄해서 ‘프로젝트 학습’이라는 용어를 쓴다고 할 때, 보통의 모둠 수업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정득년) 요즘 ‘협동학습’ 많이들 하시잖아요? 협동학습은 모둠 단위로 함께 수업을 하는 형태로 일제식 수업이나 경쟁학습과 구별되는 학습법으로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는데요. 프로젝트 학습에서의 팀 학습은 의미상 강조하는 점이 조금 다를 수 있어요. ‘협동’이라고 하면 마치 한마음으로 한뜻으로 힘을 덜 수 있다는 편견을 가질 수 있잖아요? 그런데 프로젝트 학습은 서로 관점이 다른 구성원들이 팀 활동을 통해 다양한 관점을 공유하고 비교하여 보다 합리적인 문제 해결 방법을 도출하는 과정 중점을 두고 좀 더 풍부하게 지식을 구성할 수 있도록 학습 환경을 설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로젝트 학습은 ‘구성주의’라는 철학적 기반을 토대로 발생했거든요. 다시 말해 학습자가 자기 나름대로 스스로 지식을 구성하기 때문에, 교사가 완성된 지식을 전달하기보다 학습자가 학습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거죠. W 모양의 별자리 ‘카시오페이아’ 아시죠? 그런데 그 별자리는 지구에서만 그 모양을 지닌 별자리로 보이는 거잖아요? 그런 것처럼 지식이나 이론은 사람들이 잠정적으로 합의하고 구성한 것들이고 언제든지 관점에 따라 수정되고 재가공 될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팀이 네 명이면, 네 명 모두 다른 생각, 다른 관점, 다른 지식을 갖고 있는 거죠. 주어진 문제를 혼자 해결하려 하면 자기 혼자만의 관점에서만 보게 되겠죠? 그런데 팀을 이루면 다른 세 사람의 관점을 알게 되고, 다양한 시각에서 지식을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게 되는 거죠.

 

간단히 요약하면,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한 접근 방식으로 문제 상황을 분석하고 그렇게 나온 해결 방법 중 적용 가능한 의견, 타당한 근거들을 추려 선택하고 발전시키면서 스스로 더 합리적인 의견을 구성할 수 있게 하는 학습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프로젝트 학습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팀 학습, 협동학습의 의미라는 거예요.

 

Q)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프로젝트 학습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정득년) 제가 다른 직장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스물아홉이 되어서야 교대에 다시 입학을 했는데, 대학에서 구성주의 방식의 수업을 들은 게 시작이었어요. 그 수업에서 ‘어떤 종이비행기가 가장 잘 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주어졌어요. 모양, 크기, 또 종이 재질 등에 따라 어떻게 달라질까 고민하면서 수도 없이 비행기를 만들어 날렸죠. 교사가 정답을 제시하고 풀이 과정을 설명하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던 저는, ‘이게 진짜 공부하는 거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현장에 나와서 수업을 하면서도 안타까움이 있었죠. 예를 들어 어떤 역사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려면 교과서 진도를 나가는 것만으로는 너무 아쉬운 거죠. 학문이라는 게 원래부터 통합적인 거잖아요? 그래서 역사적 사실 하나만 가르치기보다 관련된 다른 과목, 다른 분야와 같이 가르칠 수는 없을까 이런 고민을 하다 프로젝트 학습의 통합적 접근을 떠올린 거예요.

 

경희대 대학원에서 교육공학을 공부하면서 실제 현장에도 적용하게 된 거고요. 사실 ‘구성주의’라고 하면 학습자가 주도적으로 지식을 구성하고 교사는 조력자 역할을 한다… 이게 정말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이야기거든요. 이런 철학적 기반을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구체화한 게 프로젝트 학습 즉 문제 기반 학습이라고 할 수 있어요.

 

Q) 선생님이 진행하신 실제 PBL 사례가 궁금해요.

 

정득년) 제 첫 PBL이기도 한데, 그때가 2005년이었을 거예요. 4학년 사회 시간에 축척을 가르쳐야 했는데 이게 아이들에게는 생소한 개념이고 어렵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아이들이 지도를 보는 건 어떤 상황일까?, 산에서 길을 잃은 상황은 어떨까? 이런 고민들을 하다가 ‘보물 지도’를 떠올렸어요. 그래서 학교 운동장에 보물섬을 가상으로 만들어 놓고, ‘축척이 표시된 지도를 보며 보물찾기를 해 보자’는 문제를 냈죠.

 

Q) 축척이라면, 사회 과목이지만 수학의 비례식 개념을 이해해서 풀어야 하는 거죠? 저도 굉장히 어려워했던 기억이 있는데요. 그때 아이들 반응은 어땠나요?

 

정득년) 당시에 다리를 다쳐서 수업에 참여하기 힘든 상황이었던 아이가 목발을 짚고 학교에 와서 그 수업에만 참여하고 다시 치료를 받으러 돌아갈 정도로 호응이 엄청났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전부 보물찾기에 성공했을까요?

 

Q) 글쎄요… 그렇게 직접 활동하기 전에 교실에서 축척의 개념을 배웠을 테니까 크게 어렵진 않을 것 같은데요?

 

정득년) 아니요! 딱 한 팀 성공했어요. 축척의 수식을 풀 줄 아는 것과 그걸 실생활에 적용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보물을 찾으려면 줄자와 나침반도 사용할 줄 알아야 하고, 축척도 계산할 줄 알아야 하잖아요. 단순히 책상에 앉아서 나침반이 북쪽을 가리킨다는 것을 아는 것, 지도의 1cm가 실제 거리에서 몇 km인지 교과서를 통해 아는 것과 실제로 지도를 보며 목적지를 찾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인 거죠. 그런데 시간 내에 찾지 못한 팀의 아이들이 ‘한 시간 더 하자’고 하더라고요. 상상이 되시나요?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열중할 뿐만 아니라 신이 나서 이 수업 한 시간 더 하자고 하는 모습이요.

 

학생들이 즐거워하면 교사도 즐거워진다는 걸 알았죠. 또 ‘보물찾기’처럼 구체적인 맥락이나 상황이 주어질 때 아이들이 얼마나 집중할 수 있는지도요.

 

흔히,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할 때는 복잡하지 않게 세분화해서 전달해야 한다고 해요. 그런데 학생들은 분리된 지식을 만나게 되면 주체적으로 생각을 하기보다는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게 돼요. 오히려 조금 복잡하거나 도전적인 과제가 제시되면 학습에 대한 자발적인 동기가 생겨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참여하게 되지요.

 

 

프로젝트 학습의 놀라운 힘

 

Q) 프로젝트 학습에서는 교사도 학생도 수업에서의 위치랄까 역할이 많이 달라져야 할 것 같은데, 실제로 어떤가요?

 

정득년) 그렇죠. PBL을 처음 시작하면 아이들이 아무래도 학습자 주도의 학습 방법에 익숙하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까 교사를 자주 찾아와서 문제와 관련된 질문을 하기도 하고, 팀원 중 누가 제대로 참여를 안 한다고 고자질도 하고 그래요. 또 초기에는 학생들이 그냥 선생님이 설명하는 수업을 하는 게 더 좋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PBL 수업을 하다 보면 아이들이 수업 방식에 익숙해지면서 점차 달라지더라고요.

 

또 PBL에 익숙해지면 교사는 답을 주기보다 이것저것 고민의 방향을 질문의 형식으로 던져 주게 돼요. 아이들이 낸 의견에 대해 제 의견을 말해 주기도 하면서요.

 

Q) 프로젝트 학습, PBL을 통해 아이들이 달라지는 모습도 많이 보셨죠? 구체적으로 어떤 효과가 있는지 궁금해요.

 

정득년) 일단 다른 사람과 부딪히면서 생겨나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배우는 것 같아요. 처음엔 교사인 제게 의존을 많이 하지만 점차 아이들끼리 해내는 법을 알게 되거든요.

 

한번은 인사동에서 팀별로 과제를 수행하는 활동을 하는데, 아무래도 학교 밖이다 보니 걱정이 되어서 제가 인사동 거리 한복판에서 애들을 지켜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4학년 아이들이었는데도, 지도를 들고 우루루 몰려다니면서 저는 쳐다보지도 않더군요.(웃음) 나중에 ‘선생님 어디 계셨어요?’라고 할 정도로요. 요즘 몰입 교육 이야기도 많이 하지만,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이 그렇게까지 뭔가에 몰두할 수 있다는 것 즉 학습에 대한 주인 의식을 갖게 되는 것이 PBL의 큰 장점이에요.

 

그래서 ‘붉은 악마’ 관련 PBL을 할 때 한 아이가 그러더라고요. 밥을 먹을 때도 붉은 악마, 컴퓨터를 할 때도 붉은 악마 온통 붉은 악마 생각만 난다고요. 그렇게 집중해서 깊이 있게 공부를 하게 되니까 졸업하고 저를 찾아온 아이들이 7, 8년 전에 어떤 PBL을 했는지 줄줄 읊을 수 있을 만큼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거겠죠?

 

Q) 『프로젝트 학습』이라는 책에 보니까 애들이 PBL 한다고 점심도 안 먹는다는 내용이 있던데 사실인가요? 그 정도로 학생들이 학습에 열의를 보이나요?

 

정득년) (웃음) 교사 연수를 하다 보면 그런 질문을 많이 하시고, 또 경험담으로 자주 듣기도 해요. 진짜로 밥도 안 먹고 준비해요. 그 정도로 자발적으로 참여를 한다는 게 놀랍죠?

 

수학 같은 과목에서 필요에 따라 강의식 수업을 하면 아이들이 마치 텔레비전 시청하듯이 저의 수업을 시청자 입장에서 방관하듯 바라보는 느낌을 자주 받아요. 그런데 프로젝트 학습에서는 구체적인 상황과 과제가 주어지고 자신이 해야 하는 역할이 있으니까, 학교에서든 집에서든 주인공이 되어서 거기에 푹 빠지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PBL을 하면 아침부터 아이들과 학문적인 대화를 하게 돼요. 평소에는 “선생님 오늘 점심 스파게티래요!”, “오늘 체육 시간에 뭐 해요?” 이런 질문을 하던 아이들이 다른 팀 애들에게 안 보여 주려고 비밀스럽게 저한테 뭘 가져와서 이건 어떨까요, 저건 어떨까요 이런 질문을 해요.

 

새로운 지식에 대한 욕망이랄까 이런 건 사람의 본능이잖아요. 누구나 뭔가에 대해 알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프로젝트 학습이 아이들 속에 있던 그 본능을 깨운다고도 볼 수 있죠.

 

Q) 굉장히 소극적이거나 학습 의지가 좀 떨어지는 학생들도 PBL을 하게 되면 열정적으로 변하나요?

 

정득년) 당연히 PBL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에요.(웃음) 다만 아이들이 쓴 성찰일기를 통해 팀에서 자신의 역할이 뭔지, 어떻게 그걸 수행했는지, 하면서 무얼 느꼈는지 제가 변화 과정을 볼 수 있는데, 점진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확인하곤 해요.

 

또 굉장히 소심한 아이들의 경우, 대개는 내면에 깊이 있는 자기 세계를 갖고 있어요. 그래서 PBL에서 주어진 역할을 굉장히 성실하게 수행하죠. 평소에는 즉흥적이고 순발력 있는 아이들이 눈에 띄기 쉬운데, PBL에서는 좀 달라요. 내성적이고 소심한 아이들도 성실하고 치밀하게 준비할 수 있으니까 가끔 그런 친구들이 새로운 PBL 스타로 떠오르기도 하죠.

 

Q) 학생들이 점차 적극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교사도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밖에도 프로젝트 학습을 통해 어떤 긍정적 영향을 기대할 수 있나요?

 

정득년) 저를 포함해 많은 교사들이 아이들이 재미있다고 평가한 수업이 성공적이고 좋은 수업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물론 수업은 재미있어야죠. 그런데 그게 어떤 재미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깔깔 웃으면서 신나게 수업을 진행한 것과 아이들 머릿속에서 수업의 내용이 이전의 지식과 잘 조화를 이루어 자리 잡았는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거든요. 프로젝트 학습이 의미 있는 이유가 그 지점이에요. 중학교를 가고, 고등학교를 가면 물론 다시 교사가 전달하는 지식을 받아들이는 상황에 처할 가능성도 크지만 스스로 “선생님, 머리가 빠개지도록 어려운 문제로 내주세요!”라고 할 만큼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지식을 구성해 보는 기회를 주는 거잖아요. 프로젝트 학습 과정은 진지하고 무척 심각한데 학생들은 재미가 있는 거죠.

 

그래서 이러한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교사도 덩달아 좋은 수업에 대한 관점이 달라지죠. 예전에는 많은 지식을 짧은 시간에 아이들에게 효율적으로 설명하고, 시험을 봤을 때 성적이 좋게 나오면 ‘잘 가르쳤다’라고 평가했어요. 그런데 프로젝트 학습에서는 결과보다 아이들의 학습 과정에 주목하게 돼요. 공부와 거리가 멀었던 아이들이 팀 안에서 자기 역할을 척척 해내고, 친구들 앞에서 말하기를 주저하던 아이들이 근거를 갖춰 자기 생각을 발표하는 모습을 보면 그 자체가 성과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현재 우리나라 교육과정도 구성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다만 교육 현장에서 실제 구현되는 게 어려운 거죠. 그런데 프로젝트 학습, PBL을 하게 되면 교육과정과 수업의 내용, 형식이 조화롭게 맞아떨어지는 걸 교사 스스로 느낄 수 있어요. 덧붙이자면 프로젝트 학습을 여러 번 진행하면 아이들이 오히려 시험도 잘 보게 돼요. PBL 자체가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고민하는 과정이니까요.

 

 

PBL 준비와 진행 노하우

 

Q) 프로젝트 학습이나 PBL 관련해서 교사 연수도 하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처음 시도해 보고자 하는 교사들에게 어떤 조언을 주로 해 주시나요?

 

정득년) 프로젝트 학습이라는 게 진행하면 정말 좋지만, 이런저런 어려움이 많아요. 특히 PBL 같은 경우 교사들이 학교 다닐 때 경험해 보지 못한, 쉽게 상상이 안 되는 형태의 수업이거든요. 그래서 많은 선생님들이 시도해 보는 걸 어려워하시죠. 저는 우선 ‘일단 해보시라’고 권하고 싶어요.

 

무엇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학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교사 내면에서 일어나야 프로젝트 학습을 준비하고 진행할 때 그 의미를 제대로 살릴 수 있다는 점이에요. 학생에게 교사가 교과서의 지식을 그대로 전수해 주어야 하나? 문제에는 꼭 정답이 있어야 하나? 학습이 학습자가 스스로 나름대로 지식을 구성하는 과정이라면 교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이런 점에서 교사의 관점이 제대로 서야 한다는 거죠.

 

Q) 그럼 처음 PBL을 시도할 때 학생들에게나 학부모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안내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한가요?

 

정득년) 저는 학생들의 경우 Pre-PBL 과정을 거쳐요. 아이들 성향이나 성장 환경에 따라 이해 능력이나 발표 능력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3월 한 달 정도는 정보 검색하기, 글 요약하기, 발표하기, 토론하기 등을 훈련하는 거죠. 굉장히 가벼운 PBL을 하면서요. 이미 그런 것에 능숙한 아이들은 자신과는 다른 관점을 지닌 아이들과 조화롭게 문제를 해결하는 훈련을 하고요.

 

학부모님들 같은 경우는 학기 초 학부모총회에서 미리 안내를 해요. PBL을 진행하게 되면 교과서 진도를 그대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재구성하여 수업하게 될 것이라며 이전 수업사례를 들어 설명하지요. 물론 PBL이나 프로젝트 학습이 무엇인지도 말씀드리고요. 그리고 학기 중에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이용해서 요즘 아이들이 어떻게 PBL을 하고 있는지 그때그때 알려 드려요. 학기가 끝나면 ‘PBL 통지표’를 보내드리기도 하고요. 부모님들이 굉장히 좋아하시는 편이에요. 내 아이가 학교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또 어떤 역할을 잘 해내는지 구체적으로 아실 수 있잖아요.

 

Q) 아무래도 프로젝트 학습은 과목별로 통합이 필요하기도 하고 수업 차시 구성도 일반적이지 않아서 학교급별로 적용이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정득년) 제가 연수에서 PBL 사례를 말씀드리면, 중고등학교 교사들이 정말 그게 가능하냐고 물으시곤 해요. 초등에서도 어려운데, 시험 성적이 중요한 중고등학교에서는 더 어려운 거죠. 아이들이 배워야 하는 지식의 양이 많기도 하고요. 그래서 중등에서는 창의적 체험활동이나 시험이 끝난 직후에 시간을 활용하신다고 들었어요. 중고등학교에서는 교사가 한 과목만을 담당하고 그 분야에서 전문성을 띨 수 있으니까 프로젝트 학습을 몇 가지 구상해서 매년 진행해 보면서 노하우를 쌓으면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들어요.

 

Q) 교육과정을 프로젝트 주제나 PBL의 문제로 잘 녹여낸다고 해도 아이들끼리 계획하고 진행하도록 하면, 실제 학습하는 내용이 교육과정 성취기준에서 너무 멀어지진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해요.

 

정득년) 처음 시도하는 교사들이 그 점을 두려워하시죠. 그런데 PBL에서는 구체적인 문제 상황을 제시해 줘요. 예를 들어 ‘태안 반도에 기름이 유출되었습니다. 당신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원봉사 총괄 팀장입니다. 어떤 준비물이 필요한지, 자원봉사자들을 어떻게 관리하여 효율적으로 기름을 제거할 것인지 계획해 보세요.’ 이렇게 문제 상황을 주는 거죠. 물론 문제에 따라 아이들의 해결 방향은 달라져요. 그래서 교사가 예상하는 방법과 조금 다른 방향으로 나갈 수도 있죠. 그렇지만 아주 무관하게 진행되지는 않아요. 실제 해 보면 학생들이 상당히 깊이 있게 들어가기도 해서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교육과정까지 나가는 경우도 있어요.

 

주의할 점이 프로젝트 학습을 할 때는 수업 목표를 재조정하거나 혹은 물음표로 남겨두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프로젝트 학습에서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교과서의 내용에 대한 학습도 포함되지만 흔히 학습 역량이라고 하는 의사소통 능력, 협업 능력, 정보 활용 능력과 같은 지식 구성을 위한 능력들이라는 거예요.

 

Q) 그렇게 구체적인 문제를 제시한 후 다양하게 피드백을 주고받으면서 학습 목표에 도달하게 되는 건가요?

 

정득년) 어떤 선생님들은 방학 내내 과목별 단원 차시 제목을 늘어놓고 이걸 결합해서 순서를 재배치하시기도 해요. 그런 방법도 여러 의미가 있죠. 그런데 저는 학습목표를 한번 크게 흔들어서 다시 통합을 해요. 선생님들이 그 과정을 힘들어하시는데, 구성주의에 그런 말이 있어요. ‘교사들은 학생들이 수업에서 배운 것을 잊어버린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학생들은 전혀 잊은 게 없다. 한 번도 학습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교사가 어떤 지식을 학생에게 전달한다고 해서, 학생들이 그 지식을 ‘학습했다’고 보지 않는 거예요. 단원 차시 하나하나에 매몰되지 말고, 학습 목표 문구나 교과서 내용에 집착하지 말고,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생각하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Q) 실제로 어떻게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시는지 궁금해요.

 

정득년) 같은 6학년을 맡아도 학생들의 성향이나 관심사에 따라 매년 달라집니다. 올해는 생활 친화적인 PBL을 주로 진행하고 있는데, 요즘은 학교에서 텃밭 농사를 짓고 있어요. ‘착한 무 착한 배추’라고 이름 붙였는데, 배추랑 무를 심고 가꾼 뒤 수확해서 프란체스코 나눔의 집의 김장 재료로 쓸 거예요.

 

조별로 물도 주고 잡초도 뽑고 신나게 농사를 짓고 있어요. 자신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일지를 쓰고 나중에 ‘농사의 달인’도 선정할 건데요, 이걸 교육과정과 연결하면 이렇게 돼요. 국어에서는 ‘무, 배추 키우는 법’에 대해 설명문을 쓰거나 농사 과정을 뉴스로 제작할 수 있죠. 또 사회에서 빈곤의 문제를 인권과 연결할 수도 있고, 도덕에서는 ‘봉사’와 관련된 단원과 연계하여 학습이 가능한 거죠.

 

이렇게 어떤 소재든 프로젝트 학습과 연결할 수 있어요. 단원이나 차시에 집착하면 오히려 어려워요. 아이들의 관심사나 성향을 고려해서 소재를 정한 뒤 과목별로 관련 단원을 연결해 보는 게 더 효과적일 때도 많아요.

 

Q) 한정된 시간에 PBL도 하고 다른 교육과정 성취기준도 전부 수업을 하는 게 어렵지는 않나요?

 

정득년) 중요한 걸 더 많이, 공들여 가르치고 배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모든 교사들이 스스로 판단해서 비중을 조절하고 있다고 봐요. 모든 차시를 정확하게 지키기는 거의 불가능하죠. 그런데도 PBL을 접한 교사들이 유독 ‘진도 나가기가 어렵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많이들 하시는 건, 어찌 보면 프로젝트 학습을 하는 건 정말 어렵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또 올해 2학기부터는 핵심성취기준 제도가 도입되어서 핵심인 차시를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구성하면 충분히 프로젝트 학습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Q) PBL의 경우 구체적인 문제 상황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문제를 만들어야 아이들이 흥미를 느끼고 몰입해서 학습할 수 있는지 궁금해요. 또 진행하는 과정에서 피드백을 할 때 어떤 점에 주의해야 하는지도요.

 

정득년) 문제 만드는 방법은 사람마다 달라서, 몇 번 해 본 사람들은 ‘신내림’에 가깝다고들 해요.(웃음) 다만 아이들의 성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과 처음부터 너무 크게 계획하지 말 것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짧은 시간에 해결할 수 있는 작은 문제부터 시도해 보시라고요. 또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면 아이들한테 “이런 주제로 프로젝트 수업을 해 보려 하는데 즐겁겠니?”라고 직접 물어보는 것도 좋아요.

 

제가 2005년도에 처음 시작할 때는 참고할 만한 PBL 문제들이 거의 없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책이나 연수를 통해 참고할 만한 다양한 사례를 접할 수 있어요. 처음에는 그런 사례의 프로젝트 주제나 PBL 문제를 활용하되 교사 자신만의 색깔을 입혀서 시도해 보는 거죠.

 

진행할 때 주의할 점은 굉장히 주의를 기울여서 허용적인 분위기,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거예요. 또 아이들에 대한 믿음과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이 ‘이런 말을 해도 될까?’, ‘이렇게 해도 될까?’ 이런 고민을 하면 그 프로젝트나 PBL은 성공하기 어려워요. 아이들이 어떤 말을 하든 어떤 방향을 잡든 교사가 존중해 주고 믿으면서 기다려 줘야 한다는 거예요. 원래 교사들이 정리나 규칙 같은 거에 익숙해져 있어서 쉽지 않지만요.

 

처음부터 질 높은 결과를 기대하다 보면 교사가 많이 개입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아이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뒷전이 되기 쉬워요. 오히려 아이들 수준에서 계획하고 진행하는 걸 지켜본 후에, 아이들의 학습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를 교사가 되짚어 주고 평가해 줌으로써 격려하는 게 좋아요.

 

Q) 오랫동안 PBL을 실천해 오신 만큼 고민의 깊이도 남다를 것 같아요. 요즘은 어떤 고민 하고 계시나요?

 

정득년) 많은 선생님들이 21세기가 요구하는, 새로운 상황에서의 문제 해결력을 키우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하고 계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제가 남다른 건 아닐 거예요. 반드시 프로젝트 학습을, PBL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초반에는 교과서 내용을 어떻게 프로젝트 학습 형태로 구성할까에 고민이 집중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아이들의 생활 속에서 가치 있는 주제로 어떤 PBL을 할 수 있을까에 자꾸 관심이 가네요.

 

얼마 전에는 ‘생활 속 민주주의 실천’과 관련해서 프로젝트 학습을 했는데 학교에 칠판지우개를 터는 장소가 밀폐되어 있고 지우개 털이가 수동식이라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문제를 아이들이 스스로 떠올렸어요. 그리고 자료 조사와 설문 조사를 통해 나름대로 대안을 마련하여 교장 선생님께 편지를 써서 드렸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전동 지우개 털이를 구비할 예정이에요. 화이트보드를 원하는 학급은 그걸 신청해도 되고요. 물론, 학생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교장 선생님이기에 가능한 일이죠. 사회나 도덕에서 민주적인 시민 되기를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지만 거의 이론적인 접근이었지요? 실제로 생활 속의 문제를 이러한 방법으로 해결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우리가 살면서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사회책에서는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 말은 또 얼마나 추상적인가요? 그런데 프로젝트 학습을 하니까 특히 실생활과 관련된 콘텐츠를 건드리다 보니까 그 내용도 특별해지더라고요. 프로젝트 학습 방법이 ‘스페셜’한 만큼 그 내용도 ‘스페셜’하게 만들어 가고 싶어요!


 

 

생활 속에서 ‘나’를 둘러싼 문제들을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어야 한다고 내심 믿어 왔으면서도, 실제로 생활 속의 문제를 직접 해결해 본 적이 있느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저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올랐습니다. 꽤 오랜 시간 어른으로 살면서 주변의 문제를 얼마나 합리적으로 평화롭게 해결하려 노력했는지 돌이켜보면 부끄러워집니다. 한편으로 ‘아! 나도 저렇게 배웠다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 정득년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샘도 납니다. 교육의 내용과 형식을 조화롭게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 학습과 PBL의 힘을 확인할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더불어 11월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는 중요한 문제를 앞둔 수험생들에게 ‘그동안 애써 학습한 지식을 믿고, 이번 문제도 현명하게 해결하시라’고 응원의 메시지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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