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치료사와 함께 보는 마음 미술관 No.6] ‘경험’과 삶과 나

경험의 힘
지하철을 타고 가다 보면 쉽게 볼 수 있는 광고 중 하나가 성형외과 광고이다. 사람들에게 확실한 성형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병원에서는 성형 전⋅후의 사진을 비교하여 보여주는 광고를 게시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광고를 보면 성형 전⋅후의 사람이 동일인이라고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달라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외모가 이렇게 변하면 가까운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한 번에 알아보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이야기를 하다보면 곧 알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외모는 변했지만 그 사람이 가진 생각과 마음이 변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성형으로 인해 외모에 자신감이 낮았던 사람이 자신감을 되찾고 자신에 대한 만족감이 높아지는 심리적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모든 사람이 외모의 성형이 마음의 성형을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많은 성형중독자들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우리는 어떤 경험이나 사건으로 인해 그 경험을 하기 전과 후가 완전히 달라진 사람들을 주변에서 종종 보게 된다. 이들의 변화는 주로 내면의 변화이기 때문에 한눈에 알아보는 것은 쉽지 않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알 수 있다. 말 속에 담겨 있는 그 사람의 가치관, 목소리에 담긴 내면의 힘, 눈빛의 강도라든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그 사람의 분위기가 달라져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신기한 것은 경험한 일의 강도가 크면 클수록, 좋은 일보다는 고통스러운 일일수록 변화의 정도와 비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경험이 그 사람의 정서에 정비례하는 경우도 있지만 반비례하는 경우도 있다.
삶과는 멀게만 느껴지는 ‘암cancer’ 그리고 ‘암’과 삶
미술치료 현장에서 만난 대상 중에 암 환우들과 함께했던 시간은 필자에게도 많은 의미와 지혜를 깨닫게 되는 경험으로 그들과 함께 한 경험만으로도 전과 후가 달라지는 심리적 변화를 느끼곤 한다. 암 환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암 진단’이라는 사건이 그들의 인생에 before & after를 가져다 준 사건이라고 한 목소리로 말한다. 암 치료율과 생존율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암은 ‘죽음’과 직결될 수 있는 무섭고 두려운 병이다. 암과 관련된 주제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더라도 투병하는 시간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운지는 암에 걸리지 않더라도 조금씩은 알고 있을 것이다. 다른 암과는 달리 전이나 재발의 위험성이 높은 암은 기존의 일상생활을 유지하며 투병을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많은 암 환우들이 암 진단을 받은 후에 일시적으로라도 휴직을 하거나, 아예 일을 그만두고 치료에 전념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암 환우 중 회계사였던 한 여성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쉴 틈 없이 일하며 앞만 보고 달려왔었다고 하며, 암 발병 후 휴직한 이후에 비로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있었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제 삶을 생각해 보면 저는 그냥 말 잘 듣는 착한 딸이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공부를 잘하면 칭찬받고 인정받으니까 그게 좋아서 열심히 공부했었고, 또 공부를 잘하니까 부모님과 선생님들은 이 실력이면 00대 00과 정도는 가야한다고 해서 그 과에 진학하고, 또 회계사가 되면 더 인정을 받을 수 있겠구나 해서 회계사 공부를 하고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가 원하는 삶, 내가 원하는 결정을 해 본적이 없었구나…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된 것 같아요. 암에 걸린 후에 내가 정말 이렇게 죽을 수도 있구나 하고 생각하니까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가 않아요. 투병 후에 다시 회사에 복직하게 될 텐데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 두렵기까지 해요. 또 내가 나를 잃어버릴 것 같아서요”.
나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이기에 그녀의 고백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암이라는 고통스런 일을 경험하였을 때 이런 것을 동일하게 느끼는 건 아니다. 이전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모두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순조롭게 인생을 살아오던 이 여성이 암이라는 고통을 겪지 않았다면 이러한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맘때쯤 깨달을 수 있었을까?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라도 우리는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마음으로 깨닫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 삶에 찾아오는 경험들의 힘은 대단하다. 어떤 경험들은 그 전과 후의 삶에 엄청난 변화를 남기곤 한다.
암 환우 중 한 중년의 여성도 살아온 인생을 표현하는 시간에 고백한 이야기이다.
“평범하게 자라, 아이 낳고 살림하며 살다가 갑자기 암에 걸렸어요. 처음에는 나는 아무 잘못한 게 없는데 내가 왜 이런 몹쓸 병에 걸렸을까? 울기도 하고 하늘에 원망도 하고 힘들었던 시간이었어요. 이제 자식들 다 키워 놓고 좀 편해지나 싶었는데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했는데…이렇게 되고 나서 한동안 너무 좌절하고 우울해서 많이 힘들었어요. 그런데 내가 이렇게 힘들게 되니까 그동안 내가 보살피고 내조했던 남편과 자식들이 이제는 나를 돌봐주기 시작하는 거예요. 늘 내 손길을 필요로 하던 사람들에게 이제는 내가 보살핌을 받게 되니 그 전에 느끼지 못하던 가족 간의 결속력도 생겼고 모든 가족들의 우선순위가 나의 건강에 집중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나 감사하게 느껴져요. 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가족들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마 이렇게까지 느끼지는 못했겠죠.”
힘든 경험, 어려운 경험으로서 변하고 성숙하는 나
우리의 모든 경험은 소중하고 의미가 있다. 암이나 불의의 사고처럼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일처럼 느껴지는 일들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스스로 찾아오는 경험 앞에 선택권이 있다거나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 앞에 주어진 크고 작은 모든 경험은 우리에게 숨을 불어넣은 창조주의 선물과도 같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깨달았으면 하는 무언가가 있기에 보내주는 경험이라고 생각해 보자. 아마 신은 이 경험을 겪어낸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와 성숙이 있기를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겪는 모든 경험에 before & after를 만들어 보자. before의 ‘나’와 after의 ‘나’의 차이를 발견하는 사람은 삶이 주는 참된 행복의 의미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 경험이 고난일수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