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치료사와 함께 보는 마음 미술관 No.5] 부모 독립 만세!!

헬리콥터 맘
자녀양육과 관련된 신조어 중에서 ‘헬리콥터 맘’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는 다 큰 자녀 주위를 헬리콥터처럼 빙빙 돌면서 학업과 취업은 물론 결혼 후에도 일일이 간섭하는 극성스러운 모성을 빗댄 신조어다. 우리나라 어머니들의 높은 교육열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며, 대학입학이 엄마의 정보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도 이미 엄마들 사이에서는 당연한 이야기이다. 최근에는 대학생 자녀를 둔 부모가 교수와 직접 면담을 하는 일이 벌어진다고 한다. 부모가 취업 면접에 따라오는 경우도 있으며, 회사에 사직서를 대신 제출해 주는 부모도 있다고 한다. 부모님의 강요로 부부가 이혼을 하는 내용의 TV 드라마가 나올 만큼, 자녀에 대한 부모의 병적인 간섭과 개입은 그저 신기한 일로 치부하기엔 우리의 생활 가까이에 있다.
이런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면서, 자녀와 관련된 모든 것에 관여하는 부모와, 자연스럽게 부모에 의존하는 아이들의 악순환과 같은 관계구조가 시작된다. 최근에는 아이들의 자발적인 학습을 위해 자기주도 학습, 학습매니저, 코칭이라는 게 이슈가 되기도 하는데 쓴웃음을 짓게 된다. 일상의 대부분은 부모의 말에 순종하기를 원하지만, 학습은 주도적으로 하기를 원하고, 또 그 주도적인 학습이라는 것이 부모가 정해준 학원에 가서 관리를 받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런 헬리콥터 맘들은 아이의 친구관계, 담임선생님, 학원, 일상의 대부분에 관여한다. 물론 어머니들이 아이의 생활에 관심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아이 스스로 자신과 관련된 문제를 고민해 보기도 전에 어머니들이 알아서 척척 해 주는 것은 아이의 생명력을 갉아먹는다. 아이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잃게 되고, 주도적인 경험을 해보지 못한 아이들은 학습에서도, 일상에서도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부모의 관리가 없을 때 불안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방식으로 부모의 관리를 받아온 자녀들이 부모가 되어서도 본 대로 행동하여, 매니저로서의 엄마 역할이 자연스럽게 대를 잇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일곱 살 동준이의 스트레스 & 2년 뒤에 다시 만난 동준이
7살 동준이는 소아빈뇨증(평소보다 특별하게 이유 없이 화장실을 자주 가고 소변을 자주 보는 증상으로 스트레스, 긴장, 압박을 받는 심리적인 요인도 원인중 하나)으로 미술치료를 의뢰했다. 아이의 아버지는 의사였기 때문에 빈뇨증이 생긴 이후 여러 검사를 해 보았지만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심리적인 원인으로 여겨 치료실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아이는 영어유치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최근에 갑자기 유치원 가기 전, 외출 전에 화장실을 자주 가며 아이도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하였다. 동준이는 유치원을 다녀온 후에는 피아노, 미술, 한글, 체육 등 다양한 학원들을 순회하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이를 위해 기꺼이 운전사 역할을 자원했으며, 아이도 엄마의 말에 늘 순종적인 모습을 보였다. 치료사로서 학원이 아이에게 부담될 수 있으니 학원을 좀 줄여보시기를 권했고, 아이에게 혼자만의 충분한 놀이시간이 필요하다는 조언을 드렸다. 아직 마음껏 뛰어놀아야 하는 시기에 긴장과 압박을 줄 수 있는 학습시간이 많아짐으로 불안한 심리로 빈뇨증이 올 수 있으며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절대적인 놀이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치료실에서는 아이에게 의자에 앉아서 정적으로 하는 활동보다는 치료실 책상을 구석으로 밀어놓고 뛰고 춤추고 노래를 유도하는 활동뿐 아니라 몸을 움직이며 표현할 수 있는 미술활동을 제안했다. 정해진 프로그램을 아이에게 주기보다는 그때그때마다 아이가 원하는 재료, 주제를 선택하도록 제안하여 아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아이는 초반에 어색한 듯 긴장하고 무표정한 모습을 보이며 치료사가 준비하는 활동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아이 스스로 탐색해 볼 것을 권유받은 뒤부터는 조심스럽게 치료실 구석구석 좋아하는 재료들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어느 순간부터는 7세 아이답게 장난기가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깔깔대고 웃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주1회 규칙적으로 미술치료를 받은 동준이는 빈뇨도 눈에 띄게 좋아지고 치료가 종결될 즈음에는 아이도 신체적인 불편함을 더 이상 호소하지 않게 되어 기쁘게 이별할 수 있었다.
치료를 마치고 2년 뒤, 어느 날 전화로 “선생님 동준이가 다시 빈뇨증이 생겼어요. 자기가 미술치료를 해야겠다고 스스로 이야기하네요” 하는 동준이 어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다시 만난 동준이는 키가 훌쩍 자라있었고 더 차분해지고 의젓해진 모습이었다. 자리에 앉아서 활동을 할 때에는 집중력이나 표현도 매우 잘되는 편으로 그 모습만으로도 아이의 학교 적응력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활동 중에는 스스로 “저 이거 하려면 집중해야 해요.”라고 말할 정도로 아이답지 않은 열정과 냉정을 보여 주기까지 하였다.
대를 잇는 헬리콥터 맘 & 아이를 잊는 헬리콥터 맘
훌쩍 자란 동준이와 몇 회기의 치료를 진행했을 때, 부모 상담을 하게 되었다. 이미 어머니와는 상담을 여러 차례 한 상태였기 때문에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자연스럽게 어머니가 생각하는 자녀양육에 대한 고민들을 나누게 되었다. 어머니가 음악을 전공했던 것은 이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동준이의 외할머니가 당시 동준이 어머니의 학업과 대학 진학을 위해 지극정성으로 관리하셨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동준이 어머니 자신도 굉장히 순종적인 편이었기 때문에 내 아이가 내 말을 잘 따라주는 것이 당연한데 이렇게 갑자기 문제행동을 보이면 너무 당황스럽고 자녀양육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동준이의 친할머니 또한 동준이 아버지 의대진학을 위해 당시로서 하기 힘든 엄청난 사교육들을 투입하셨다는 ‘사교육의 역사’가 이어졌다. 게다가 동준이 친할머니는 지금도 당신이 동준이 아버지를 교육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며느리에게도 손주 교육에 대해 조언과 도움을 아끼지 않으신다고 했다. 동준이의 학교 선택에서부터 학원, 앞으로 동준이의 진로에 대한 부분까지 세세하게 관여하신다고 했다. 동준이 어머니는 시어머니가 말씀하시는 것을 따르는 게 어렵지만 그래도 그 말씀에 순종하며 따르고 있다고 했다.
동준이 어머니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힘들게 시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과도하게 참견하시는 대로 따르는지 말이다. 동준이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시어머니처럼 내가 동준이를 잘 키우면 애가 아빠처럼 의사도 될 수 있는데 만약 어머니 말씀대로 하지 않으면 잘못 키운 책임을 내가 지게 될 것 같아서요. 아이의 성적표가 제 성적표 같아요. 어린 시절 부모님의 말씀을 잘 따르고 평범하게 자랐던 것처럼 지금도 시어머니의 말씀대로 잘 양육하면 문제가 없을 것 같아요. 아이를 생각하면 학원을 안 다니게 하고 싶은데 당장 왜 학원을 안 보내느냐고 하실 것 같거든요? 그런 말 들으면 내가 또 잘 될 애를 잘못 키우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거예요.”
어머니에게 들었던 이야기는 2년 전 초기상담에서 듣지 못한 이야기였다. 결혼 전 순종적인 딸이었던 어머니는 결혼 후에도 시어머니의 말을 잘 듣는 착한 며느리로 살아오며 적어도 지금처럼 어머니 말씀대로 하면 잘못되지는 않을 것이라 믿어 왔다. 그러나 아이는 이중으로 헬리콥터 맘의 압박을 견뎌야 했다. 그로 인한 엄청난 스트레스가 빈뇨증이라는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났다. 두 명의 헬리콥터 맘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반응이 아이에게 나타난 것인데 아이의 이런 반응은 헬리콥터 맘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아이가 자신의 투입을 제대로 소화시키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실제 동준이의 어머니는 굉장히 불안해했다. 무엇보다 할머니의 기대에 부응하는 손주를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
어머니 자신이 먼저 부모님의 간섭과 개입에서부터 심리적인 독립을 이루고 독립된 인격체로 아이의 기질과 재능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치료사의 조언을 이해는 하지만 학원을 안 보낸다면 시어머니가 아마 엄청 놀라실 것이라고 하시면서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하였다. 당장 동준이 어머니의 확고한 의지를 만들어 내지는 못했다. 자신의 자녀양육방식에 대해서 고민해 보겠다는 말을 듣는 데에 그쳤다. 하지만 아이의 문제만 바라보던 시선을 어머니 자신으로 돌렸다는 것만으로도 작은 성과를 이루었다는 생각을 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동준이 어머니의 심리적 독립을 마음으로 깊이 응원해보았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독립을 외치던 기미 독립선언문을 ‘부모 독립 선언문’으로 수정해 보았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부모님들과 함께 생각을 나누고 싶다.
부모 독립 선언문
우리는 이에 우리 부모들이 독립한 부모임과 자주적인 부모임을 선언한다. 이로써 세계 만국에 알리어 사랑으로 자녀양육의 큰 도의를 분명히 하는 바이며, 이로써 자손만대에 깨우쳐 일러 자녀의 독자적 생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려 가지게 하는 바이다.
우리의 본디부터 지녀온 부모권리를 지켜 온전히 하여 자녀의 왕성한 번영을 실컷 누릴 것이며, 우리부모의 풍부한 독창력을 발휘하여 봄기운 가득한 천지에 순순하고 빛나는 자녀들로 자라나게 할 것이로다.
우리는 이에 떨쳐 일어나도다, 사랑이 우리와 함께 있으며, 믿음이 우리와 함께 나아가는 도다, 남녀노소 없이 어둡고 답답한 강압적인 양육으로부터 활발히 일어나 삼라만상과 함께 기쁘고 유쾌한 부활을 이루어 내게 되도다, 먼 조상의 신령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우리를 돕고, 온 세계의 새 형세가 우리를 밖에서 보호하고 있으니 시작이 곧 성공이다. 다만 자녀의 행복한 미래를 향하여 힘차게 곧장 나아갈 뿐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