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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미술치료사와 함께 보는 마음 미술관 No.4] 당신의 마음 ‘안녕(安寧)’ 하신가요?

2020.05.29

 

강요받는 ‘안녕’

 

‘안녕’이라는 말의 사전적인 의미는 어떤 상태가 아무 탈이 없이 편안하다는 것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일상적으로 쓰이는 인사말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샬롬’, 아랍에서는 ‘샬라함’이라는 인사말을 쓰는데 이 인사말들 또한 우리의 ‘안녕’과 마찬가지로 평화를 의미하는 말이다. 좋은 의미이지만, ‘안녕’과 ‘평화’는 이런 방식으로 우리 각자가 지켜야 하는 하나의 규율이 되기도 한다. 규율은 강제성을 띠기 마련이다. 강제성은 왜곡을 낳는다.

 

최근 한 대학생이 학교 내에 붙인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대학가를 시발점으로 하여 사회 전체적인 이슈가 되었다. 이 대자보는 사회문제와 상황에 대해 나는 결코 안녕하지 못하다며, 당신은 정말 안녕한 것이냐는 불편한 의문과 감정을 드러내었다. 나는 이 대자보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은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안녕하지 못한 현실 앞에서, 안녕하냐고 인사를 나누며, 안녕하자고 애써 온 우리 마음속에는 겉으로 드러내는 표현과 사뭇 다른, 솔직한 감정들이 따로 자라나게 된다. 그런데 대자보는 바로 그 지점을 가감 없이 드러내 보였고, 대자보의 내용뿐만 아니라 대자보의 그 솔직함 자체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안녕이나 평화와는 거리가  먼 부정적인 감정들, 입 밖으로 제대로 펼쳐 내 보이지 못했던 이 감정들을 서로 표현하고 나눔으로써 모두가 감정적으로 어루만짐을 받은 것이다.

 

만약 우리의 감정에도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질문을 건네 본다면 어떨까? 우리 감정은 정말 안녕한지…, 아무 탈 없이 든든하고 편안한지…, ‘안녕’을 강요받은 우리 감정에 오랫동안 숨겨져 온 진짜 솔직한 감정은 혹시 따로 있는 것은 아닌지, 허상과 같은 미래의 안녕을 위해 눈에 보이는 현실의 안녕을 포기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말이다.

 

부정적인 감정 표현, 그 솔직함의 힘

 

초등학교 6학년의 집단 프로그램 시간에 있던 일이다. 첫 시간에 만난 6학년 아이들은 치료사와의 첫 만남이 다소 낯설었는지 긴장한 듯 보였다. 담임 선생님이 아닌 새로운 누군가가 낯설기도 할 것이고, 무엇인가 표현해야 한다는 부담도 느꼈을 것이다. 어린이 테를 슬슬 벗기 시작하면서 철이 나려고 하는 이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흰색 도화지가 더 이상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아마 이 시기가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첫 시간은 미술활동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앞으로의 미술활동이 감정을 표현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는 의미로 ‘소중한 우리의 감정’이라는 주제의 프로그램 활동을 제안했다. 먼저 아이들에게 우리가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적은 종이를 나누어 준 후에 그 종이들을 살펴보면서, 지금 이 순간 어떤 느낌이 드는지 다양한 색과 모양으로 그 감정을 표현해 보게 하였다. 아이들은 이런 활동에 마음의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아이들의 표정과 움직임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긴장감은 무표정과 무응답 같은 냉소적인 반응으로 표현되기도 했고, 다소 무기력한 행동으로 변하기도 했다.

 

긴장과 부담이 조금씩 풀리자, 머뭇거리던 아이들도 한참 감정단어를 지켜보더니 현재의 감정을 골라냈고 감정과 어울리는 색, 모양을 선택해 도화지에 표현해 주기 시작했다. 아주 낮은 의욕을 보이던 아이들도 어느 순간 자신의 감정을 골라 색칠하고 글로 적기 시작했다.

몇 가지 감정을 선택하지 않은 아이도 있었고,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상태를 표현한 아이도 있었다. 누구나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있지만, 초등학생들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감정들을 선택한 것을 보았을 때 지금 새로운 내 수업을 맞이한 아이들의 마음이 얼마나 불안하고 힘든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새로운 환경에 대한 번거로움과 불편함을 표현한 마음들을 수용해 주며, 첫 시간이지만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해준 아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동일한 시간, 공간에 있지만 각자 느끼는 감정은 이처럼 모두 다름을 표현하고 서로의 마음을 이해해 보는 시간도 가졌다.

 

6학년, 열세 살 정도만 나이를 먹어도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에게 ‘이 수업시간이 사실은 나른하고 귀찮아요, 지루하고 배가 고플 뿐이에요’라는 걸 표현하는 게 다소 무례할 수 있다는 걸 안다. 어쩌면 그 예의를 지키고자 눈빛을 죽인 채 감정을 숨기고 단지 무기력한 모습 정도만 표현하고 있는 것일 거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그걸 가장 표현하기 어려운 상대(나)에게 드러내고 잘 수용받은 아이들의 눈빛은 수업을 마칠 때쯤엔 처음보다 아주 조금 더 편안하고 깊어져 있다고 느꼈다. 부정적인 감정이 솔직함과 맞닿아 있을 때, 그런 부정적인 감정의 표출은 이어질 만남을 좀 더 진실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내가 나의 감정을 챙겨보는 것은, 내 삶의 궤적을 짚어보는 것

 

6학년 아이들과 진행했던 것과 동일한 프로그램을 암 환우분들과 함께 진행했던 적이 있다. 성인집단프로그램의 경우에는 미술표현 후 각자의 느낌과 생각을 이야기하는 시간의 비중이 높다. 그리고 그때에 굉장히 많은 감정과 경험, 장면과 순간의 교류가 일어난다. 감정카드를 찬찬히 살펴본 환우분들은 다음과 같은 그림과 말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다.

“이렇게 많은 ‘감정’이 있다는 것을 그동안 미처 생각지 못했어요. 그동안 불행하다, 우울하다, 짜증난다 같은 말들은 자주 하며 살았지만, 설레인다. 개운하다, 편안하다와 같은 감정은 왜 그리 표현하지 않고 살았나 몰라요.”

 

“우울하다, 슬프다, 두렵다, 불안하다’라는 감정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억지로 즐겁게 살았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에게 나의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두려웠어요.”

 

“기쁨, 사랑과 관련된 단어가 이렇게 많은지 몰랐어요. 앞으로 얼마를 살게 될진 모르겠지만 감정을 느끼는 대로 표현하고 살고 싶어요.”

 

이처럼 힙겹게 자신의 감정을 회피하며 살아왔던 모습을 고백하거나, 제대로 돌보아주지 않았던 감정의 영역들을 새삼스레 인식하며 그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리고 감정단어가 적힌 종이를 복사해서 가져가시는 분들도 계셨고, 많은 분들이 감정을 색이나 글로 표현해본 이 낯선 활동에 진지한 관심을 보였다.

삶에서 ‘죽음’이라는 문턱을 심각하게 고민해 본 사람들에게 이러한 자기감정 표현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그들에게 ‘소중한 우리의 감정’은 그동안 놓치고 살았던 감정 하나하나를 느껴보고 기억을 되살려 보는 시간이자, 삶의 되돌이켜 보는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살아온 시간을 모두 엮으면 삶이 되는 것처럼, 이제껏 겪어온 감정을 모두 엮어도 역시 삶이 된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서로의 감정을 다독이며 살아가기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또 나이 들게 되면서 다양한 감정의 분화를 경험하며 감정의 표현이 성숙해지는 발달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감정표현방법이 나이와 비례하여 발달하는 것은 아니다. 성인이 되었음에도 이 표현이 서툴러서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종종 보게 된다.  또한 이러한 사람들로 인해 힘들어 하고 있는 사람도 상담을 요청하기도 한다. 실제로 상담실이나 치료실을 찾는 사람들 중 많은 비율이 이러한 감정표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데, 이는 그만큼 우리가 얼마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표현하며, 자기감정을 수용받거나 공감받지 못했는지를 알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 우리 주변 세상의 움직임을 뉴스를 통해 보듯이 이제는 우리 감정의 움직임도 마음을 통해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어떤 일에 대해서 무엇을 느끼는지, 내 안에 오래 머물러야 하는 감정인지, 조용히 다독여주고 풀리기를 기다려줘야 하는 것인지, 좀 더 지켜봐줘야 하는데 너무 서둘러서 내보낸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내 마음의 ‘안녕’을 위해 나의 감정을 색깔, 그림, 노래, 글과 같은 것으로 표현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독자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얼마나 많은 감정을 느끼셨나요? 그리고 표현하셨나요?

여러분의 감정, 그리고 여러분의 곁에 있는 사람들의 감정.

정말 안녕들 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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