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 ‘2028 대입제도’] 경박한 문과 침공 논란과 무거울 폐해

| 문과 침공 논란이 대입제도 개편 논의를 좌우할 기세이다. 그 논란의 가벼움과 폐해를 묵과할 수 없어서, 지난번에 이어 다시 다뤘다. 그것이 왜 부박한지, 그리고 그대로 두면 교육에 왜 해로운지 부연했다.
그런 논란을 털어 버리고 대입제도를 제대로 논의하기 위해서 어떤 문제에 대들어야 할지도 생각해 보았다. 경박한 논란이 정책을 헤집어 망치는 양상이 이번 수능에서만 빚어진 게 아니라 교육정책의 실패사에 일반적인, 그래서 늘 경계해야 하는 현상이라는 점도 시사했다. 실패에서 벗어나려면, 교육의 본연을 궁구하는 길 외에 달리 길이 없다고 얘기했다. |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문과 침공 논란은 졸렬해지고 있다. 대입제도 기저의 ‘암 덩어리’는 놔두고, 없어야 할 패를 갈라가며, 옹졸하게 점수 득실만 따지고 있다. 이대로 가면 문제 해결은커녕 문제를 덧씌우고 덧나게만 할 것이다. 사실 문과 침공이라는 말이 만들어지는 데서부터 논란은 이미 길을 잘못 들어섰다. 혹시나 하고 바로잡히길 기대했던 게 순진했다. 문제의 촉발이 삐끗했더라도, 이어지는 논의에서 제 길을 잡아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기대했지만, 그럴 가능성은 안 보인다. 논란의 가벼움과 해로움을 일깨워주는 반론은 들리지 않고, 잇속에 밝은 ‘대입 전문가’들이 논란을 부추기려 두들기는 ‘북소리’만 요란하다. 대학들도 ‘대책’이라면서 유불리(문·이과) 균형 맞출 제안이나 하고 있다. 교육부장관까지 나서서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여론에 부화뇌동하고 있다니1 안타까운 일이다. 문과 침공 논란이 어째서 참을 수 없게 경박한지, 한 번 더 짚지 않을 수 없다.
문과 침공 주장은 전제부터 허약
문과 침공의 주장은, 경박한 주장들이 으레 그렇듯, 많은 전제를 의심할 여지 없다는 듯이 받아들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문과 침공이란 말 자체를 보자. 그것은 문과 영역과 이과 영역이 확고하게 분리되어 있고 또 그 분리는 지속되어야 한다고 전제하며, 또 그 경계를 넘나들면 안 된다고 전제한다. ‘문과 침공’은 이과 영역에 머물러야 할 대입 지원자들이 문과 영역으로 ‘침략했다’고 고발하고 있다. 그러나 소위 문과와 이과 진로가 넘나들 수 없는 장벽으로 나뉘어 있다는 전제는 사실에서도 늘 맞지는 않으며, 그런 전제로 논의를 끌고 가면 교육에 큰 해를 가져온다.
문·이과 진로를 분리한다면, 그 일은 고등학교 교육과정이나 대학의 입학 자격 규정에서 이루어질 터이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문과와 이과 과정(課程)을 분리하고, 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선택할 수 없게 되어 있거나, 대학이 문과와 이과 영역의 전공들을 나누고, 두 범주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 요건을 중첩 없이 배타적으로 규정할 때 문·이과 구분이 넘나들 수 없게 성립된다. 그러나 현재 이 두 어느 쪽에서도 그렇게 고착시키고 있지는 않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문·이과 구분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제6차 개정(1992년 고시)에서부터 지우기 시작했고,2 수능과 관련해서는 제7차 교육과정을 적용하면서부터 ‘계열 해체’를 공언했다.3 이런 정책은 이후 교육과정이나 수능 변화에서도 바뀌지 않았다. 대학들도 오래전부터 ‘교차 지원’을 두루 허용했고, 교차 지원을 제한하더라도 문·이과 진로를 넘나들어선 안 되도록 완강하게 분리하지는 않았다. 대학들의 전형 요강을 살펴보면,4 오래전부터 문·이과 경계에 투과 여지를 두었다.
이쯤에서 많은 ‘전문가’는 무슨 당찮은 소리냐고 비웃을 듯하다. 공식적으로 어찌 되었건, 현실에서 문·이과 구분이 번연한 게 보이지 않느냐고 코웃음 칠 듯하다. 고등학교에서 과목 선택 지도나 학생들의 학습(특히, 대입 준비)에서 문·이과 구분을 전제하는 습관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고, 적지 않은 대학 또한 그 구분을 전제로 전형방안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지 않는다. 다만 여기에서 지적하려는 것은, 문·이과 구분은 확고하게 그어져 있다고 전제하고 넘어갈 사안이 아니라, 그런 구분을 왈가왈부하게 된 게 어떤 영문인지 들여다봐야 할 사안이라는 것이다. 과연 문·이과 구분이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어떤 양상으로 있는지, 그리고 그런 양상은 그대로 두어야 할지 아니면 손봐야 할지, 깊이 논의해야 할 사안이라는 점이다. 이 점은 덮어두고, 문·이과 구분이 ‘현실’이라(당연하다) 전제하면서, 그 구분에 따른 유불리만 따지는 것은 경솔하고 무지한 행태라는 것이다.
문·이과 구분의 관성이 여전히 영향력을 지니고 있지만, 적어도 공식적인 교육과정은 그런 관성을 용인하고 있지 않다. 세심히 보면, 대학들도 그 구분을 유리할 때만 받아들이고 불리하다고 여길 땐 뭉개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이를테면 대학들은(특히 ‘명문’ 대학의 경우) 수능에서 ‘높은 수준’의 수학 과목(그리고 과학)을 선택한 학생들이 ‘인문 사회’ 분야 전공에 지원하는 것은 허락하면서 ‘낮은 수준’의 수학 과목(그리고 사회)을 선택한 학생들이 ‘이공 분야’ 전공에 지원하는 것은 막곤 했다. 반면, 학생들을 충원하는 게 급선무인 (많은) 대학(학과)들은, 지원 자격을 제한할 형편이 아니기에, 수능에서의 과목 선택을 불문하고 ‘개방적으로’ 지원을 허용해 왔다. 요컨대 문·이과 구분이 확연하고 보편적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과장이고, 확증 편향의 편협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 주장의 진위는 상황에 따라 오락가락한다.
문·이과 구분을 당연시하는 논란은 결국 현재 수능이나 대입 체제에 문과 침공보다 더 중대한(근본적인) 문제는 없다고 떠드는 셈이다. ‘문과생’이 불리하게 돌아가는 점에 대해서만 조금 손보면 수능이나 대입제도 개편은 무난하겠다는 식이다. 최근 돌아가는 이야기가 다 그런 식이다. 수학에서 확률과 통계를 선택하고 탐구에서 사회를 선택했더라도, 대학들이 의약이나 이공 계열 등의 학과(전공)에 지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게 어떻겠냐, 확률과 통계를 선택한 학생들이 불리하지 않게 난이도나 점수 산출 방식을 조율하면 되지 않겠느냐, 정 아니면, ‘이과생’이 ‘문과’ 전공에 지원하는 것을 아예 차단하는 건 어떠냐는 식이다. 요컨대, 문·이과 사이의 점수 ‘수지(收支)’만 맞추면, 지금 체제를 유지해도 큰 문제는 없다고 암암리에 전제하고 있다. 대학들도 덩달아 그렇다는 듯 ‘균형 대책에 부심’하고 있단다. 매우 실망스럽다.
거듭 ‘조령모개’로 가는 징후
새로운 교육정책이나 대입제도 개혁이 추진되는 대로 번번이 실패하는 양상을 지적할 때, 흔히 ‘대증적(對症的)’이어서 그렇다고 말한다. 말 그대로, 근본적인 원인은 찾지 않고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에 대해서만 조처하려 들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문과 침공 논란이 바로 그런 꼴을 보여주고 있다. ‘문과생’과 ‘이과생’으로 구분된 두 집단이 대입 경쟁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지에 대해서만 승강이하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과연 대학 수학 능력을 제대로 재고 있는지, 또 대학들은 입학전형에서 수능을 합당하게 활용하고 있는지, 궁극적으로 학교나 대학 교육에는 대입제도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논급할 기미조차 보이지 못한다.
문과 침공 논란에 가담한 사람들이 제안하는 대로, 이를테면, 문과생 점수가 불리하지 않도록 조정해주고, 그들이 이과 영역에 지원할 수도 있게 해준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수학 점수를 조금 높여 받게 된 수험생은 ‘대학 수학 능력’을 그만큼 더 갖추게 된 것인가? 그 정도 점수면 의과나 공과 대학 등에 입학할 조건을 갖춘 셈인가? 고등학교에서 ‘미적분’을 수강하지 않았고, 과학에서도 ‘물리학Ⅱ’나 ‘생명과학Ⅱ’ 같은 과목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던(사회 과목에 주력했던) 학생이어도 ‘이과’ 전공에 받아들이는 게 합당하다는 뜻인가? 중론에 밀려 대학들이 실지로 그렇게 전형한다면 교육에(대학만 아니라 학교 교육에도) 문제는 없는가? 국가 교육과정은 30년 넘도록 문·이과 구분을 없앴다고 공언해 왔고, 수능도 2022학년도에는 문·이과를 진정으로 통합했다고 내세웠는데, 여전히 문·이과 타령이 나오니 도대체 무슨 변고인가? 문과 침공을 떠들기 전에 답을 찾아야 할 질문은 무수하다. 이런 피할 수 없는(피해선 안 될) 질문들을, 문과 침공 논란에서는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 시중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고등학교나 대학에서도, 언론이나 교육부에서도, 남의 일(질문)인 양 무시하고 있다.
문과 침공이라 불거진 지금의 사태는 수능과 대입제도에 잠복해 온 뿌리 깊은 문제들을 노정하고 있다. 이제까지는 깊이 못 보고 그것들을 지나쳤더라도, 사안이 터지고 논의가 불거진 계기에, 이제라도 문제의 원천을 조명하며 근본적인 발전을 모색해야 할 터이다. 수능의 가장 겉면에 있는 점수 산출 문제만 가지고 아옹다옹한다면, ‘조령모개’니 ‘조삼모사’니 비아냥 당해 온 수십 년의 개혁 아닌 개혁을 여전히 답습하게 될 뿐이다.
문과 침공이란 사태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정책상 직접적이고 역사적인 연원을 찾자면, 2013년에 교육부가 내놓은 수능의 ‘문·이과 통합’ 계획에서 그 싹을 볼 수 있다. 당시 교육부는 “문·이과 체제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도를 모색하고 있었다. 문·이과 분리의 틀을 지닌 수능이 학생들의 ‘과목(지식) 편식’을 초래하고 있어서 ‘융복합적인 인재 양성’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판단했던 교육부는 수능의 ‘문·이과 융합안’을 시안으로 제시했다.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방안을 확정해 가려고 했다.
추진되는 과정에서 정권이 바뀌고 교육부장관도 네 차례나 바뀌는 등 우여곡절을 거쳤지만, 2013년 계획은 적어도 정책상의 결실은 보았다.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과정 개정이 이루어졌고, 그 교육과정에 일관시키려고 시도한 ‘문·이과 통합’ 수능 개편도 이루어졌다. ‘2015 개정 교육과정’과 ‘2022학년도 대학입학제도 개편방안 및 고교교육 혁신방향’(2018년 발표)이 그 핵심 산물이다. 문과 침공 논란은 이때의 대입제도(수능) 개편 결과로 불거졌다.
이렇게 정책 역사를 거슬러 특정한 지점의 연원을 찾고 보면, 그 연원은 또 다른 연원의 후계이며, 더 올라가 궁극의 연원을 확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모든 역사가 그러하듯, 제도의 역사도 솔기 없이 이어질 뿐만 아니라, 하나의 제도를 낳는 요인들은 그 모두를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또 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추상해서 정리한다면, 통합형 수능 체제를 위한 개편은 오랫동안 ‘학교 교육의 정상화’라고 일컬어져 온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고부담’의 입시는 입시 위주 교육을 낳고, 그것은 곧 교육과정 왜곡을 뜻하며 학교 교육의 ‘비정상화’를 뜻한다.5 그런 비정상의 교육을 정상화하려는 정책 시도는 우리나라에서만도 100년 넘는 역사를 걸어왔다. 수능에서의 문·이과 통합 시도는 이 역사의 한 부분이고 갈래이다.
공식적인 교육과정은 문·이과라는 관습적인 경계를 넘어 ‘균형적이고 융합적인’ 교육을 주문하지만, 수능 고득점 전략에서는 문·이과 구분을 전제하는 ‘과목의 편식’이 불가피하다. 이 맥락에서 수능은 교육의 비정상화를 초래하는 원인이라 지목되고, 수능을 개편해 정상화를 도모하려는 정책 시도가 일어나게 된다. 이런(입시제도를 바꾸어 교육을 정상화하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많았고, 2022학년도 수능을 위해 이루어졌던 개편도 그런 시도 가운데 하나였다. 요컨대, 문과 침공이란 논란이 일기까지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그것이 교육 정상화를 추구했던 수많은 정책의 실패 역사로 이어진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말하자면 문과 침공 논란은 단일한 연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여러 원인이 얽히고설킨, 종횡으로 무한한 연원을 지니고 있다.
문과 침공 논란은 이런 연원 탐사가 시사하는 문제를 무시하거나 보지 못하고 있다. 문제의 뿌리를 간과하고 있다. 오랫동안 학교 교육을 뒤틀어 왔고 또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남아 있는 뿌리 깊은(‘비정상’) 문제에 피상적으로 덤볐던 정책이(2022학년도 수능 개편이) 실패한 데 대해 다시 피상적으로 해결하자 나서고 있다. 개편 자체의 실패 근원에 대해선 논급할 이유도 없다는 듯이 눈감고, 개편 결과로 게임이 누구에게 유리하고 누구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는지만 따지고 있다. 교육에 대한 걱정은 안중에 없다. 수박 겉핥는 저급한 논란이다.
수능으로 좁혀서 보더라도, ‘문과 침공’이 회자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통합을 위한 개편이 실패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 점만 보더라도, 점수 산출에서 누가 유리하고 누가 불리한지만 타산(打算)하고 조정하면 될 일이 아니란 걸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통합은 왜 시도했으며 그 시도는 왜 실패했는지 되돌아 검토하고, 만약 통합이 마땅한 길이라면, 그 실패를 극복할 대안을 찾기 위해 새롭게 모색해야 마땅하다. 문과 침공 논란에서는 이런 최소한의 모색 기미마저 보이지 않는다.
다름 아닌 우리 ‘상식’을 성찰해야
흥미롭게도, 수능은 출발 당시 ‘통합형’이었다. 1994학년도 대입을 위해 처음 시행된 수능은 문·이과 구분 없이 모든 수험생이 같은 시험을 치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그렇게 ‘통합교과적’이고 공통적이었던 시험은 이듬해에 바로 계열별(인문, 자연, 예·체능)로 차이를 두는 시험으로 바뀌었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내용과 수준에 맞[추려는]” 개편이었다.6 그렇지만 개편된 수능이 경직된(문·이과의 시험과목 구성이 서로 배타적인) 분리형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어느 계열의 수험생이건 당시 ‘사회탐구’와 ‘과학탐구’ 영역에 모두 응시해야 했다. 각 ‘탐구’ 안에서 문항은 25% 정도만 계열별로 구분되는 것이었고, 75% 정도는 모든 계열에 공통으로 부과되었다.
수능에서 문·이과의 배타적인 분리는, 이상하게도, 계열 구분을 없앴다고(선택을 확대해 다양한 진로를 보장한다고) 표방했던 제7차 교육과정 때문에 처음 빚어졌다. 그 교육과정을 적용하기 위해 2005학년도 수능을 개편했는데, 결과는 문·이과 구분이 사후적으로7 확연해지게 만든 개편이 됐다. 이전까지는 수능 응시 원서에서 인문, 자연, 예·체능 계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응시 계열’을 밝히도록 했었다. 2005학년도 수능에서는 원서의 계열 선택 표시 항을 없앴다. 그러나 정작 시험과목에서는 수학에서 ‘가형’과 ‘나형’ 과목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했고, 사회탐구와 과학탐구는 두 영역 가운데 하나를 배타적으로 선택하게 강제했다.8 수학에서 어떤 과목 그리고 탐구에서 어떤 영역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수험생들이 문과 또는 이과로 분류될 수 있게 만들어 버렸다. 공식적으로 교육과정에서는 문·이과 구분을 없애놓고, 수능에서는 넘나들 수 없도록 완고하게 갈라놓은 셈이다. 그 모순적인 정책 행태를 납득하기는 어렵지만, 당시로는 그것이 최선의 대안이었다고 할 것이다. 2005학년도 개편 이후에 수능은 선택 과목 수를 줄이는 등의 변화를 거쳤지만, 그런 기형적인(사실상의) 문·이과 분리 체제는 2022학년도의 ‘통합’ 이전까지 유지되었다.
2005학년도에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까닭을 전혀 짐작할 수 없는 바는 아니다. 여러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암암리에 수능 관리에 주어지는 ‘하루’라는 ‘시간 제약’은 사회탐구와 과학탐구(당시는 각각 4과목)를 종렬하는 시험 시간표를 감당할 수 없게 만들었을 것이고, ‘8과목 선택’을 요구했을 때 (‘과도한’ 부담에 대해) 쏟아질 비난 여론도 무시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선택 과목의 수를 줄이는 것도, 여러 집단의 이해충돌과 논란을 예상할 때, 쉽게 채택할 수 있는 대안이 아니었을 것이다.
짐작에 수긍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짐작해 보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그런 짐작에는 깊이도 없다. 수능 문제를 제대로 다루자면, 2005학년도 수능이 그렇게 되도록 이끌었고 이후에도 그런 수능을 별다른 생각 없이 묵인해 온, 대입제도에 대한 우리의 ‘상식’을 성찰하는 게 관건이다. 수능은 하루 안에 치러져야만 하는지,9 과목을 수능에 걸어 놓는 것이 ‘미래 세대’를 공부시키는 정도(正道)인지, 수능 점수로만(그것도 ‘합산 점수’로) 전형하는 관행은 공정한 기회 배분이나 대학 교육의 질을 보장하는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우리의 교육 상식과 습관은 한둘이 아니다. 수능이나 대입제도가 어떻게 문·이과 분리라는 기형 체제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아직도 문·이과 유불리 타령이나 하게 됐는지 밝히고 바로잡으려면, 우리는 근본적인 점검을 피해선 안 된다.
거듭 지적하건대, 수능은 적어도 20년 이상 통합해야(근본적으로 고쳐져야) 할 필요를 내포하고 있었고, 그 점을 교육부나 교육계가 모르지 않았다. 교육과정과 수능이 꾸준히 서로 엇갔고, 앞에서 얘기했듯이, 그런 양상은 지금도 여전하고 또 비정상이라 여겨지고 있다. ‘교육 정상화’는 이 고질적인 사태를 극복하려는 노력의 지향이고, 지금도 그야말로 학교 교육을 살릴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수능 개편은 그 역사 내내 교육 정상화를 표방해 왔지만, 정작 정상화는 진전시킴 없이 시행착오만 거듭해 오고 있다. 그리고 문과 침공 논란은 또 한 번의 개편 착오를 향해 여봐란듯이 여론을 몰고 있다. 수능이 교육에 끼치는 폐가 막대한데도 그 죄과를 묻고 바로잡을 요량은 없이, 부패한 ‘게임’에서 누가 유리하고 불리한지만 계산하고 있다.
문과 침공 논란에서 벗어나 수능의 통합을 모색하자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오직 근본적으로 논의하자는 것이다. 통합형 수능이 과연 필요한지, 통합의 시도는 왜 번번이 실패해 왔는지, 좀 더 근본적으로, 교육의 정상화는 어디를 향해야 하며, 그 방향에서라면 교육과정과 수능은 어떤 성질과 형식을 갖추어야 하는지, 원점(연원)으로 돌아가 성찰하고 궁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제는 순진하게 교육의 본연을 이야기할 때
당장 들끓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런 거창한 연구와 논의가 가당하기나 하냐고 말할 것이다. 지난 오랜 세월 정책 과정에서도 그런 말은 꾸준히 설득력을 발휘했다. 그래서 ‘당면 과제’를 해결할 묘책을 찾는 데 급급했고, 그 결과는 거듭되는 정책 실패와 교육 문제의 ‘일상화’였다. 많은 교육 문제는 이제 문제로 여겨지지도 않는다. 교육이란 으레 그런 것이라 지나쳐 버려지고 있다. 문과 침공과 같은 이야기가 하나도 이상하지 않게 우리 사회에 번지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일상화의 모습이다. 우리가 뒤틀린 교육 이야기를 ‘살고’ 있다는 징표다.
그런 삶의 와중에서 문과 침공 이슈는 대입제도 개혁의 의제로 확실하게 부상하고 있다. ‘교육개혁’에 온 힘을 기울이겠다는 정부도, 심지어 교육을 누구보다 더 걱정한다는 교육계에서도, ‘침공’ 분쟁에만 정신 팔고 있다. ‘밝은 미래로!’의 교육개혁이 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역설은 여전히 댕돌같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각주
- 교육부장관은 문과 침공이라 불리는 사태가 수능 출제에서의 난이도 조절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있고, 문과생의 불리함을 보전해 주는 쪽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식의 의견을 내놓았다고 보도됐다. 이런 보도는 이전 글(“‘문과 침공’ 논란이 가져오는 정책 실패의 기시감”)에서 이미 확인했었다.
- 제6차 교육과정은 “학생의 개성, 능력, 진로 등을 고려하여 교육 내용과 방법을 다양화한다.”는 구성 방침을 채택했고, 고등학교에 대해서는, 교육과정 구조를 ‘계열별 고정 폐쇄형’에서 ‘통합 개방형’으로 ‘개선’한다고 표방했다. (제7차 교육과정 총론 해설서, 83쪽)
- 제7차 교육과정은 ‘수요자 중심’을 내걸고 고등학교 2~3학년 단계에서는 전면적인 ‘선택’을 허용했다. “학생의 진로와 관련한 엄격한 과정을 따로 두지 아니하며, 개별 학생은 자신이 선택하여 이수한 과목들을 모아 자신의 과정을 만들어 가는 것을 원칙”으로 채택했다(1997년 고시, 총론). 이런 원칙의 교육과정을 적용하게 된 2005학년도 수능에서는 문·이과 구분을 폐기한다고 공식적인 안내자료에 명시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배포한, “2005학년도 수능에서 새롭게 달라지는” 점을 안내한 문답 자료는 “인문, 자연, 예·체능 계열 구분이 없어짐”이라고 명시하였다(한국교육과정평가원,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예상 질의·응답 자료’, 2003년 7월 9일). 이런 공식적인 해체에도 불구하고, 수험생들은 시험과목을 어떤 구성으로 선택했느냐에 따라 ‘문과’인지 ‘이과’인지 구별될 수 있었다. 문·이과 통합이 실제로 완성되지는 못했다. 뒤에 더 자세하게 설명하게 된다.
- 이때 눈여겨볼 대학들은 이른바 상위권 밖에 있는 대학들이다. 숫자로 많은 대학이(특히, 학생 충원을 걱정해서) 문·이과 사이 넘나듦을 막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보면, 문과 침공 논란은 소수 ‘주요’ 대학들에 국한된 가십인 점이 있다. 학생이나 학교 또는 대학 전체를 걱정하는 것이 아닌, 매우 편향된 논란이다. 문과 침공 논란은 이래서도 해로운데, 여기에서 더 논급하지는 않는다.
- 이 점에 대해서는 이전 글(‘입시 위주 교육에 승자는 없다’와 ‘학교에서 입시 위주 교육은 어떻게 버젓해질 수 있게 됐나?’) 참조.
-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발간한 ‘대학수학능력시험 20년사’ 참조.
- 공식적으로 문과생이나 이과생이란 범주는 없앴지만, 수능에서 어떤 영역이나 시험과목을 선택했는지에 따라 사후에 ‘문과생’ 또는 ‘이과생’으로 분류될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주 3) 참조.
- ‘사회’와 ‘과학’ 영역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했고, 두 영역의 과목을 섞어 응시할 수 없게 응시 원서 서식에서 차단했다. 여기에서는 논외로 두고 있지만, 별도의 응시 자격을 요구하는 ‘직업탐구’ 역시(같은 시험 시간대에 배치되어 있는데) 사회나 과학 영역과 섞음 없이 선택하게 되어 있다.
- 수능 시험 시간이나 날짜를 늘리는 일이 대수롭지 않아 보일지 모르지만, 그러기 위해서 충당해야 할 인력과 자원 그리고 행정 지원은 막대하다. 수능이라면 마땅히 갖추어야 한다고 우리 사회가 암묵적으로 규정하는 요건들을 충족시키려면, 적어도 현재와 같은 체제로는, 이틀 이상 걸리는 수능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입시’에 대한 우리의 통념이 바뀌기 전에는 그런 시도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런 현실에 대해서는 이전에(‘2028학년도 대입제도 예견-②’)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했다.
‘교육사회학’ 선생으로 일했다. 부족했던 점을 성찰하며, 조금이라도 메우기 위해 더 공부하고 있다. 한 사회가 교육과 학교에 대해 어떤 신화(상식)를 만들고 품는지, 그리고 그런 신화는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분석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인류 역사와 사회의 구분을 따라, 교육의 관습과 제도로 드러나고 또 변전해 온 신화들을 캐며 비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