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 ‘2028 대입제도’] ‘문과 침공’ 논란이 가져오는 정책 실패의 기시감

| 이과생의 ‘문과 침공’이 큰 사달이라고 수능 논란이 거세다. 문과 침공의 이슈가 중요한 정책의제로 떠오를 징후이다. 이 글은 문과 침공 논란이 앞으로 예상되는 대입제도 개편을 오도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문과 침공이란 문제의식이 오류와 과장을 품고 있고, 그것을 둘러싼 논란은 피상적이고 근시안적으로 흐르고 있다. 그런 논란에서 부상한 의제는 필경 정책 실패를 초래할 것이라 예상한다. 이런 예상은 과정 정책들의 실패 전철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그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문과 침공이 제기하는 피상적인 문제에 매몰되지 말고, 그 아래 숨은 수능의 본질적인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제안한다. |
대입 정시 시즌의 구설에서 ‘문과 침공’이란 조어가 난무하고 있다. 그 말이 가리키는 사태가 정책상 무시 못 할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는 징후이다. 그런데다 교육부는 “올해를 교육개혁 원년으로 삼겠다는” 각오로 교육개혁을 벼르고 있고, 대입제도 개편도 2028학년도를 겨냥하여 이미 예고되어 있다. 이런 정황에 비추어 볼 때, 문과 침공이라는 말로 표출되고 있는 불평은 필경 정부가 우선 꼽을 해결 과제로 부상할 듯하다.1 그런데 문과 침공을 둘러싼 이야기들은 벌써 정곡을 벗어나고 있다. 문제 자체를 잘못 짚고 있고 (그래서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지만) 거론되는 해결책도 엉뚱한 방향으로 빠지고 있다. 이런 탈선과 혼선의 양상은 이전 교육정책 과정에서도 종종 보아 왔다. 그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정책들은 으레 무위로 끝나거나, 교육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켰다. 앞으로 대입제도 개편은 문과 침공 사안을 다룰 게 거의 확실해 보이는데, 그 전망이 벌써 흐리다.
과거 교육정책들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문제를 키웠다고, 지난 글에서 지적했었다.2 문과 침공의 사안이 예상대로 정책의제로 부상한다면 과거 교육정책들이 밟았던 ‘문제 악화’의 전철을 다시 밟을 게 뻔해 보인다. 이렇게 예단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여기에서 풀어보려고 한다. 문과 침공 논의가 지금과 같이 피상적이고 근시안적으로 계속 가면 결국 정책의 패착으로 귀결하리라고 경고해 보려고 한다. 이전 글에서 추상적으로 내놓았던 과거 정책 실패의 설명을, 미래를 예상하는 맥락에서지만, 실감할 만하게 부연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어떤 논란이 거세지면 정부는 ‘당면과제’라며 시급히 챙긴다. 논란에서 돌아가는 주장들을 ‘말 그대로’ 읽어 문제를 규정하고, 그것을 해소할 대책을 강구한다. 표면적인 논란 해소에 매달리면서 논란의 원천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를 정곡으로 정의하지 못하고, 결국 대책도 정곡을 빗겨 가게 된다. 문과 침공 이슈가 여전히 그런 사례를 만들 듯하다. 이런 조짐을 살펴보면서, 고질적인 정책 실패에서 벗어날 시사도 얻을 수 있길 기대한다.
문과 침공 논란의 맥락
문과 침공이란 말은 지난 두 번의 ‘통합’ 수능에 결부되어 생겨났다. 통합된 수능을 시행한 결과, 수학 성적에서 소위 이과생이 문과생을 압도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높은 점수를 얻게 된 이과생들이 (자신의 영역이 아닌) 문과 영역 학과(전공)에 지원하여 문과생들을 밀어내고 있어서 문제라는 것이다. 한 신문 기사는 문과 침공이란 조어를 “이과 학생들이 수학 점수를 무기로 인문계열 전공에 교차지원하는 현상”이라고 정의했다.3 이런 정의는 요즘 논란에서 이의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교육부장관도 “수능 과목으로 인해서 입시에 불리함이 발생하는 문제”라고 발언했다는 걸 보면,4 그런 정의를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문과 침공이란 조어는 ‘달라붙게’ 만들어졌지만, 그 의미는 얕으면서 복합적이다. 우선 그 말은 수능의 일면을 드러내는 것이지만 수능이 표방하는 성격과는 모순된다. 적어도 정책상 현재 수능은 ‘문·이과 통합’을 표방하고 있다. 그렇지만 신조어는 문과 이과가 분리된 수능을 이야기하고 있다. 수능에서 통합은 없었던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논리로 보면 새로운 수능을 과거의 틀로 보고 있고, 사실로 치면 통합 취지는 관철되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요컨대 문과 침공이란 말은, 표면적으로 문과생이 불리하지 않도록 수능을 고치라고 지적하고 있지만, 암묵적으로는 수능이 문·이과 통합을 이루는 데 실패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 말을 둘러싼 논란은 숨겨져 있는(후자의) 지적(통합 실패)에 대해선 간과하고 있다. 표면적인 지적에 시선을 고착시키고 ‘유불리’ 문제에만 몰두하고 있다. 앞에서 인용했던 신문 기사에서 보면, 수능이 이과생들에게 “수학 점수를 무기로” 준 게 문제이고, 교육부장관의 생각에서 보면, “수능 과목으로 인해서 불리함이 발생”해서 문제라고만 들쑤시고 있다.5
문과 침공이란 말이 비난하는 유불리 문제를 검토해 보려면 먼저 그 비난에서 문과 이과를 어떻게 구분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수능에서 수학 과목은 하나이고 또 문과와 이과 구분 없이 치게 되어 있는데, 이과생에 비해 문과생이 불리하다고 얘기하고 있으니 그 출발점을 우선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문과 침공 논란에서 문·이과 구분은 단순 명료하다. 현재 수능에서 수학은 공통과목과 선택과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선택과목 가운데 ‘확률과 통계’를 선택했으면 문과생이고 ‘미적분’이나 ‘기하’를 선택했으면 이과생이다. 이런 구분은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비추어 볼 때 합당하지 않고, 수능이 제도상 그렇게 상정하고 있지도 않다.6 그렇지만 학교에서나 사교육 시장 그리고 대학에서는, 이전의 통념적인 구분을 완고하게 유지하고 있다. 의약이나 이공 계열로 진학할 학생들은 미적분이나 기하 같은 과목을, 그리고 인문 사회 또는 예체능 계열로 진학할 학생들은 확률과 통계를 선택해 이수하는 게 여전히 마땅한 것처럼 여긴다. 문과 침공이란 말과 그 논란은 이런 관성과 통념의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다.
문과 침공 주장의 내막
이과생이 문과생보다 유리해졌다는 말은, 다름 아니라, 미적분이나 기하를 선택하여 수능을 친 응시생들이 확률과 통계를 선택한 응시생들보다 높은 점수를 받게 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주로 사교육 업체 종사자들인 이른바 대입 전문가들의 ‘분석’에서 나왔고, 교육부나 언론에서도 사실로 받아들여 증폭시키고 있다. 장관, 기자, ‘전문가’ 포함해서 너 나 할 것 없이, 많은 사람이 문과 침공 현상이 의문의 여지 없는 불의이고 또 그것은 수능 때문이라고 소리 높이고 있다. 뒤에서 차차 밝혀지겠지만, 이런 주장은 피상적이고 사실을 곡해하고 있다. 과목 ‘선택’의 사실 만으로 유리해지거나 불리해지지는 않는다. 이 점을 살피기 위해서, 먼저 현재 수능에서 수학이 어떤 체제에 있는지부터 뜯어보자.
수능의 수학 문제 세트는 세 개이다. 공통과목은 모든 응시생에게 부과되고, 그 위에 선택과목으로 ‘미적분’, ‘기하’, ‘확률과 통계’ 가운데 하나가 얹힌다. 선택과목이 세 개라, 수험생들은 세 개의 다른 문제 세트 가운데 하나에 응시하게 되는 셈이다. 이렇게 응시생 집단이 세 개로 갈리지만, ‘수학’ 점수는 모든 수학 응시생을 하나의 잣대로 변별할 수 있도록 단일하게 표준화된다. 실지로는 같은 문제로 시험을 치지 않지만, 세 집단이 마치 같은 문제지로 시험 친 것처럼 ‘조정하여’ 표준점수를 산출한다. 이때 조정 과정에서 확률과 통계를 선택한 문과생들이 불리해지게 되어 있고, 그래서 이과생들의 ‘침공’을 받게 된다는 게 논란 속의 주장이다.
그런 주장의 근거는 원점수 만점자들을 비교하는 사례에서 온다. 공통과목과 선택과목 모든 문제에 정답을 맞힌 응시생이 있을 때, 미적분 또는 기하를 선택한 응시생이 확률과 통계를 선택한 응시생보다 높은 표준점수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똑같은 (원점수) 만점인데 확률과 통계를 선택한 응시생에게 낮은 표준점수가 주어지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모든 문제의 정답을 맞혔으니 같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언뜻 듣기에 옳아 보이지만, 거기에는 과장과 오류가 있다.
우선, ‘똑같은 만점’이란 말을 들여다보자.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수학 응시생들은 세 개의 다른 문제 세트에 응시한다. 미적분을 선택한 응시생과 확률과 통계를 선택한 응시생이 받게 되는 문제지는 다르다. 다른 문제지에서의 만점은 그냥 서로 다른 것이다. 이전 수능에서 수학이 ‘가형’과 ‘나형’으로 구분되어 있었을 때, 가형에서의 만점과 나형에서의 만점을 똑같이 취급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없었던 이치대로, 두 만점은 다른 것이다. 미적분, 기하, 확률과 통계의 문제가 수학 교육과정의 위계에서 위상에서 차이가 있거나, 난이도에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이런 가정은 물론 타당한 데가 있는데), 각 문제 세트에서의 만점이 같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런데도 똑같은 만점이란 말이 호소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것은 역설적이게도 수능 수학이 과거와 달리 이제는 ‘통합’되어 있기 때문인 듯하다. 계속 얘기해 온 것처럼, 현재의 통합 수능에서는 수험생들이 선택과목에 따라 서로 다른 문제 세트의 시험을 치지만, 그들의 점수는 문제 세트 차이와 관계없이 서로 비교가 가능하게 표준화된다. 한 잣대 위의 표준점수를 얻게 된다. 이 경우에는 선택과목 차이가 표준점수 차이를 가져오는 게 불합리하다고 여겨질 법하다. 수학 과목의 구조만 보면, 공통과목의 토대 위에 선택과목인 미적분, 기하, 확률과 통계를 같은 위상으로 얹혀놓았다. 이런 구조는 세 선택과목을 대등하게 취급하겠다고 전제하는 것이라 여겨질 수 있다. 이 점에서, 공통과목 점수와 선택과목 점수를 합쳐 최종(표준) 점수를 산출할 때, 세 개 선택과목에서의 원점수를 대등하게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춘 듯 보일 수도 있다.
문과 침공을 방조한 통합 수능?
반면, 실제 수능은 수학 점수의 표준화에서 선택과목 원점수를 대등하게 대우하고 있지 않다. 원점수가 같더라도 서로 그것들이 다른 선택과목에서 왔다면, 같은 수학 실력을 표시한다고 보지 않는 것이다. 이를테면, 미적분의 만점자와 확률과 통계의 만점자를 같은 수준의 수학 실력자라고 전제하지 않는다. 수능에서는 그들도 변별 대상이다. 현재 적용되고 있는 조정 공식(표준점수 산출 공식)에는 이런 ‘변별’ 입장이 함축되어 있다.7 그 공식은 공통과목에서의 성적을 기준 삼아 선택과목에서의 만점(동점)도 변별하도록 고안되어 있다. 선택과목으로 구분되는 세 집단이 공통과목에서 나타낸 성적 분포(평균과 표준편차)가 조정에서 핵심적인 변수이다. 이 변수(분포 경향)는 같은 선택과목 원점수라 하더라도 선택집단에 따라 다른 크기로 최종점수에 반영되도록 작용한다.
수능의 표준화 공식은 왜 그렇게 만들어졌을까? 수학에서 공통과목 점수를 감안하여 선택과목 점수를 조정하려는 아이디어는 수능을 규정해 온 전통적인 통념과 관성에서 나왔을 것이다. 수능은 으레 ‘변별력 있는’ 점수를 제공해야 한다고 인식된다. 선택과목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어도 그것들이 (수학이나 탐구에서와 같이) 하나의 영역에 속한다면, 그 모든 과목의 점수가 하나의 잣대에서 나온 것인 양 비교할 수 있게 만들어 왔다. 백분위 점수나 표준점수 등이 바로 그런 관성에서 생겨났다. 수능의 용도를 감안할 때, 그 체제가 변별에 치중하는 경향을 나무라기 어렵다.8 선택과목이 다르더라도 그 경계를 초월해서 변별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통합 수능을 고안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했을 법하다. 수학의 점수 조정 공식도 그런 맥락에서 만들어 도입했으리라 짐작된다.9 아울러, 선택과목 점수를 조정할 때 공통과목 성적을 기준으로 삼은 것도 이해가 된다. 공통과목의 비중이 75% 내외로10 클 뿐만 아니라, 선택에 따른 집단 사이의 차이를 조정할 공분모 잣대는 공통과목에서 찾을 수밖에 없을 테기 때문이다.
현재 수능의 맥락을 이상과 같이 헤아리고 나면, 문과 침공의 주장을 더 깊이 검토해야 할 이유를 보게 된다. 수학에서 서로 다른 선택과목의 원점수를 조정의 명분으로 차별하지 말라는 문과 침공의 주장에 대해, 수능의 맥락에서는 그게 차별이 아니라 변별이라고 항변할 것이다. 조정은 원점수가 드러내지 못하는 실력의 차이를 추정하여 드러내는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문과 침공의 주장에서처럼, 수능 수학에서 확률과 통계를 선택한 수험생(문과생)이 미적분이나 기하를 선택한 수험생(이과생)에 비해 불리했던 것으로 보이는 결과는 문과생 집단이 공통과목에서 평균적으로 낮은 점수를 얻은 데서 비롯된 점이 크다. 공통과목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는 사실은, 조정 공식상, 집단과 개인의 두 차원에서 수학(표준) 점수를 낮추게 된다. 집단 차원에서는 평균 점수가 이과생 집단보다 낮은 게 표준점수를 낮추고, 개인 차원에서는 선택과목의 3배 비중을 차지하는 공통과목의 점수가 낮은 게 (평균의 영향과 별도로) 공통과 선택과목 점수를 합산하는 표준점수를 낮추게 된다. 이런 사실은 문과생의 낮은 점수가 단순히 과목 ‘선택’ 때문이 아니란 점을 보여 준다. 확률과 통계에 대한 차별(그 과목 선택의 불리함)을 지적하는 문과 침공의 이야기는 사실은 수험생 개개인의 수학 실력 차이를 수능의 차별로 오해한 데서 오는 것일 수 있다. 적어도 ‘문·이과 통합 수능’의 공식적인 입장에서는, 문과생을 차별하지(불리하게 만들지) 않았고 실력 차이를 변별했다고 주장할 터이다.
통합 수능을 옹호하는 변론이 합리성을 지녔더라도 문과 침공을 지적하는 주장을 충분히 잠재우기는 어렵다. 공통과목과 선택과목 모두에서 만점을 받은 극소수의 학생들의 경우, 현재의 표준점수 산출 방식은 실지로 부당할 수 있다. 기술적인 설명을 피해 구체적인 사례를 만들어 본다면, 예컨대, 미적분을 선택했어도 만점을 받았을 수험생이 확률과 통계를 선택해서 만점을 받았을 경우(아울러 공통과목에서도 만점을 받았을 경우), 그의 수학 점수는 확률과 통계 집단에 속했다는 사실 만으로 미적분 집단 만점자의 점수보다 낮아진다. 확률과 통계 집단의 공통과목 평균 점수가 미적분 집단보다 낮기 때문이다. 현재 조정 방식으로는 그의 실제(미적분 만점자와 동등한) 실력을 점수로 나타내주지 못한다. 조정 공식이 집단의 점수 경향을 토대로 하는 것이라 만점자의 개별적이고 예외적인 속성을 감안해주지 못한다. 조정 공식은 집단적인 ‘경향’에 크게 의존하는 것으로, 극단 사례에서는 타당성을 현저하게 잃는다. 그렇지만 극소수 사례를 제외하고 보면, 물론 추정이지만, 공통과목에서의 점수를 근거로 조정한 점수가 대체로 수학에서의 실력 차이를 반영할 것이다. 문과 침공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이런 일반적인 사실에 대해서는 눈감고 극단 사례를 가지고 차별이라 일반화한다. 그런 주장은 그만큼 과장이고, 또 오류를 안고 있다.11
문과 침공 논란의 걱정스러운 파급
통합 수능이 문과 침공 논란이 빚어지도록 빌미를 만든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문과 침공 주장이 타당하지는 않다. 그 주장과 주장 관련 논란에는 그냥 넘어가선 안 될 과장과 오류가 있다고 확인해 왔다. 이 지점에서, 문과 침공 논란이 앞으로 정책을 실패로 끌고 갈 위험을 경계하는 뜻에서, 최소한 두 가지 점을 재확인해 둘 필요가 있다.
우선, 확률과 통계를 선택하는 수험생(문과생)들이 ‘무조건’ 불리하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미 앞에서 시사된 점이지만, 단순하게 정리하면, 응시생들의 과목 선택 경향이 바뀌면 확률과 통계 선택 집단이 ‘유리해지는’ 결과도 나타날 수 있다. 수학을 잘하는 수험생들이 대거 확률과 통계를 선택한다면 그렇게 된다.12 요컨대, 문과 침공의 주장과 논란은 수능의 본질 문제를 지적하지 못하고 있다. 맥락에 따라 오락가락할 부수적인 문제를 부각시키는 데 그치고 있다. 이런 논의에서는 수능 문제의 요체를 건드리지 못한다.
다른 하나는, 수능이 채택한 점수 조정 공식이 논란의 근원인 것처럼 얘기들 하지만, 왜 그런 공식을 수능이 채택하게 됐는지가 본질적인 문제라는 점이다. 이전 개편에서 문·이과 통합을 온전하게 추구했다면, 점수 조정과 같은 ‘확률적인’(논란이 일 수 있는) 조치가 따라붙지 않는 수학 과목을 만들 수도 있었다. 이를테면 고등학교 수학 교육과정을 포괄하는(미적분, 기하, 확률과 통계 등을 선택으로 두지 않는) 수학 시험 과목을 구성할 수도 있었고, 아니면 교육과정 위계에서 문·이과 분기가 이루어지기 전 수준의 과정에만 바탕을 둔 기초 공분모의 시험 과목을 만들 수도 있었다. 더 근원적으로는 변별 지향의 속성을 수능에서 완전히 들어낼 대안을 강구할 수도 있었다. 이런 방향으로 대안을 찾는 게 더 자연스럽고 마땅한 길이었을 테지만, 그렇게 더 직접적이고 충실한 통합의 길을 가지 않았거나 못 갔다. 그래서 결국 오늘날 문과 침공 논란을 낳게 되는 것과 같이 좌초하기에 이르렀다. 앞으로 수능(대입제도)을 제대로 개편하려면 이런 착오를 면밀하게 성찰하고 극복해야 한다. 그렇지만 문과 침공 논란은 벌써 대입제도 논의에 엉뚱한 회오리를 만들고 있다. 그대로 휩쓸리면 새로운 개편 시도도 과거의 실패 전철을 한 치 벗어남 없이 되밟게 될 것이다.
문과 침공을 거론하는 논란 와중에 부상하고 있는 수능(대입제도) 대책들은 걱정하던 대로 지엽적이다. 해결해야 할 주요 문제를 ‘문과 불리’로 (잘못) 규정하고, 그 불리함을 상쇄시키거나 제거할 대책들만 더듬대고 있다. 크게 세 가지로 개괄할 수 있는 안들을 손에 놓고 꼼지락거리고 있다. 첫째, 문과생(확률과 통계를 선택한 응시생)에게 불리한 점수 산출 방식을 바꾸는 안, 둘째, 이과생이(미적분이나 기하를 선택한 학생이) 교차(문과 전공에) 지원하지 못하게 막는 안, 셋째, 문과생도 의과 대학이나 이공 계열 전공에 지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안 등이 그것들이다. 심지어 교육부장관까지도 문제를 “확률과 통계를 선택한 아이들과 기하와 미적분을 선택한 아이들 간에 난이도 조절이 쉽지 않아” 생기는 것으로 규정하면서, 선택과목 간 난이도 조절을 통해서 문과생의 불리함을 해결하겠다는 의견을 비쳤다.13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게 부상하는 대안들은 사실이 아니거나 교육상 바람직하지 못한 전제를 품고 있다. 계속 살펴온 것처럼, ‘문과생이 불리하다’는 문제 제기는 무시 못 할 오류를 품고 있고 또 과장됐다. 그런데도 그런 주장을 받아들여 불리함만 해소하려 든다면 정책이 제대로 갈 리 없다. 점수 표준화 공식을 바꾸거나 폐기하고, 문·이과 장벽을 다시 세우는 대안들이 대입제도나 수능을 발전시킬 가능성은 없다. 그런 대안은 학교 교육 전반을 더욱 황폐하게만 몰아갈 것이다.
문과 침공을 막을 묘책만 찾는다면
문과 침공의 논란으로 대입제도와 수능을 다시 성찰할 계기를 맞은 바에, 어떤 의제를 핵심으로 채택해야 마땅한지 찾는 일이 시급하고 중대하다. 간과해선 안 되리라 여겨지는 과제 두 개를 간략히 제안하고 글을 매듭지으려 한다.
무엇보다도, 현재 논란은 수능이 문·이과 통합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통합을 이루려 했다면 수능을 더 근원적으로 개편했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있다. 아울러 통합 수능이 대학들이 채택한 전형 제도나 고등학교에서의 교육과정 운영과 겉돌았다는 사실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새삼 부각시켰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그리고 정말 수능을 통합해야 한다는 과제가 여전히 타당하다면, 이제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셈이다. 대입제도 개편에서는 수능을(사실은 대입제도 전체를) 근본적으로 다시 논의해야 마땅하다. 아울러 대학들의 정책 관성이나 전형 방식도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하고, 고등학교에서의 명목적인 교육과정 ‘통합’도 문제 삼아야 한다.
현재 논란이 시사하는 또 다른 교육정책 문제는 학생들의(우리 사회의) 대학 진학(진로) 결정 행태이다. 문과 침공이란 현상에는 ‘대학 이름’ 위주의 진학 행태가 담겨 있다. ‘이과’ 진로를 가던 학생들이 느닷없이(진로에 관련된 숙고 없이) ‘문과’ 진로로 길을 바꾼다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다. 사람들에 따라 얘기가 다르긴 하지만, 적어도 50% 이상의 학생들이 그렇게 유불리를 따져 진로를 바꿀 수 있다고 본다고들 말한다. 교육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이런 현실이 수능의 문·이과 유불리 문제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학생들이 진로를 찾거나 개척해 나아가는 양상은 우리 교육의 과정과 지향을 표상하는 것이다. 문과 침공 논란에 함축된 진로 양상은 우리 사회의 교육적 빈곤을 부인할 수 없게 보여주고 있다.
문과 침공 논란이 뜨겁고 또 수험생들 사이의 유불리 문제를 적시하고 있다고 해서 그 손가락질에만 주목하여 정책을 논의하고 결정하면, 과거 숱하게 보아온 실패를 답습하게 될 뿐이다. 사회적인 논란거리를 다루더라도, 피상적으로 표면의 흠을 때우는 데 머물지 말고, 논란 밑에 숨은 근원 문제들을 캐내서 다뤄야 한다. 그런 본질적인 노력으로 찾게 되는 대안은 필경 정치적 기대에 부응하는 묘책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묘책은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생각지 못했던 방책이어야 되는 만큼, 근시안적으로 단기적인 해결을 도모할 때 나오기 마련이다. 묘책은 궁극적으로 바람직한 정책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 당장 효과를 볼 대안을 찾는 데 파묻혀서는 교육정책이 교육 발전의 긴 역사를 만들 수 없다. 지금 문과 침공 논란은 표면에 드러난 점수 차이에 호들갑을 떨 뿐, 그 점수를 산출하고 활용하는 체제 자체의 문제는 덮어두고 있다. 거듭 보아왔듯, 실패한 정책들의 초기 조짐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각주
- 기획칼럼 네 번째 글(‘2028학년도 대입제도 개편 예상-③)에서 ’문과 침공‘이라 불리는 이슈가 대입제도 개편에 결정적인 변수가 될지 모른다고 예상했었다. 그 경우에 대입제도가 근본적으로 개편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었다. 이때 관건은 이른바 문과 침공을 어떤 문제로 규정하고 해결에 달려드느냐에 있게 된다. 그만큼 문과 침공 현상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논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었다.
- 2023년 1월 5일 게재. ‘학교에서 입시 위주 교육은 어떻게 버젓해질 수 있게 됐나?’
- 한겨레, 2023년 1월 12일. “이과생 ‘문과 침공’ 대책 마련한다…어떻게?”
- 뉴시스, 20023년 1월 12일. 대입 ‘문과 침공’ 보완책 나오나…‘의대 지원’ 허용 관심
- 현재 수능이 문·이과 통합을 시도한 것이라면, 그것을 시행한 후 논의는 다른 무엇보다도 통합의 성패를 따지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문과 침공 논란에서는 그런 관심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마치 통합 시도는 없었던 것처럼, 여전히 문·이과 구분을 전제로 유불리 계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유불리 문제가 먼저 불거져 논의 지평에 떠올랐다면, 하다못해 유불리 논란이 왜 생겼고, 그런 논란이 수능 통합에 대해 무엇을 시사하는지라도 같이 논의해야 할 마련이지만, 그런 쪽 관심도 찾아볼 수 없다. 눈앞의 표피적인 문제(이해 충돌)에 정신 팔려 정작 중요한 문제를 도외시하고 있다. 뒤에서 얘기하겠지만, 이 점이 문과 침공 논란의 결정적인 흠이다.
- 고등학교 교육과정상 이제 문과생과 이과생 구분은 없다. 과거 문과생은 국어나 사회 과목들을 더 많이 깊이 수강해야 했고 이과생은 수학과 과학 과목들에 치중해야 했었지만, 이제는 과정 이수가 그렇게 구획되어 있지 않다.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이 커져서, 이를테면, 수학의 심화(미적분, 기하 같은) 과목들을 수강한(과거라면 이과생이었을) 학생이 과학보다 사회 과목에 치중하여(과거라면 문과생이 그랬을) 과정을 이수할 수 있다. 거꾸로 과학 영역에서 심화(물리학Ⅱ, 화학Ⅱ 같은) 과목들을 이수한 학생이 국어에서는 깊게 수강하면서 수학에서는 얕게 수강할 수도 있다. 현재 수능도 이런 가능성을 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전자와 같은 학생은 수능 수학에서 미적분이나 기하를 선택하면서 탐구에서 사회 과목들을 선택할 수 있고, 후자에 드는 학생은 수학에서 확률과 통계를 선택하고 탐구에서 과학 과목들을 선택할 수 있다. 물론, 고등학교 현장의 오래된 문·이과 구분 관성 때문에, 실지로는 여기 예와 같은 학생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2015 개정 교육과정과 그것에 맞춘 ‘통합’ 수능은 학생들이 그럴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매년 배포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이렇게 준비하세요’라는 책자에는 으레 그 공식이 실려 있다. 어떤 사교육 ‘전문가’는 그것이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하면서 마치 무엇인가 은폐하고 있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지만, 사실 그것은 기초적인 ‘표준화’ 공식이다.
- 바람직하다는 뜻은 아니다. 제도적 통념에 구속된 상태에서 수능이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게 된다는 뜻일 뿐이다.
- 시험 과목의 구조가 중층으로(공통과목+선택과목 구조로) 되어 있을 때, 선택과목 점수를 조정하기 위해 현재 수학에서 적용하고 있는 것과 같은 표준화 공식을 채택한 사례는 전에도 있었다. 1994~2004학년도의 사회 과학 탐구에서 그랬고, 수학에서도 2005~2011학년도 ‘가’형에서 그랬다. 그만큼 그 조정 공식을 채택하는 게 자연스러웠을 듯하다.
- 두 번의 통합 수능에서 실지로는, 100점 만점의 원점수 체제에서 76점을 차지했다. 수능에 대한 공식적인 안내에서는 공통과목 75% 내외, 선택과목 25% 내외로 공표하고 있다.
- 문과 침공의 문제 제기를 수능의 입장에서 반박할 수 있다고 해서 통합 수능이 시험으로서 바람직하다거나 수능이 채택한 변별(조정) 방식이 충분히 타당하다는 뜻이 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수능이 비판받고 개혁되어야 할 점은 여러 측면에 매우 많이 있다. 여기 반박이 뜻하는 것은 ‘문과 침공’이란 표면의 비판은 수능이 받아야 할 비판의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그 논지가 견고하지 못하다는 것일 뿐이다.
- 이런 일이 일어날 리 없다고 얘기할지 모른다. 확률과 통계는 상대적으로 수학이 약한 수험생들이 선택하기 마련이라고 전제하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자가당착이다. 미적분이나 기하를 선택하는 수험생들이 확률과 통계를 선택하는 수험생보다 으레 수학 실력이 낫다고 인정하면서 선택과목에 따라 실력 차이가 없는 것처럼 점수는 조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모순적이다. 더 나아가, 확률과 통계 집단의 평균 점수가 더 높아지는 경우가 실지로 생겨날 수도 있다. 만약에 대학이 과목 선택에 개의치 않는 전형 방식을 채택한다면 충분히 일어날 법하다. 대입제도의 다른 부분에 변화가 생기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요컨대, 확률과 통계를 선택했을 때 점수를 받게 되는 양상은 수능 자체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대입제도 전반에 종속된 현상이다. 수능과 대입제도의 다른 부분이 마찰하여 생기고 있는 현상을 두고, 수능(또는 점수 조정)이 원인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오류이다.
- 노컷뉴스. 2023년 1월 6일. [인터뷰] 이주호 장관 “이과의 문과 침공, 통합 수능 부작용 손본다.”
‘교육사회학’ 선생으로 일했다. 부족했던 점을 성찰하며, 조금이라도 메우기 위해 더 공부하고 있다. 한 사회가 교육과 학교에 대해 어떤 신화(상식)를 만들고 품는지, 그리고 그런 신화는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분석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인류 역사와 사회의 구분을 따라, 교육의 관습과 제도로 드러나고 또 변전해 온 신화들을 캐며 비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