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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인공지능 시대의 교육 담론 (11): 인간 목적의 네 차원

#506 권재원,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2019.12.19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결국 그 목적은 사람이 세운다고 했다. 사람은 목적을 만드는 존재라고 했다. 그렇다면 ‘목적’을 세우는 것이 사람이 자유로이 할 수 있는 일일까? 그렇기도 하면서 또한 그렇지 않기도 하다. 사람은 의외로 많은 부분에 얽매인 존재이며, 동시에 생각보다 훨씬 자유로운 존재다.

 

얽매인 부분은 자연이다.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하나의 종이며, 지구라는 환경에 결박 지워졌다. 이것을 벗어나는 것들, 가령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고 싶다.”거나 “영원히 늙지 않고 살고 싶다.” 같은 것은 목적이 될 수 없다. 자유로운 부분은 문화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람은 자연적인 한계를 사회적 협력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 냄으로써 생물학적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이것이 문화의 영역이다.

 

그런데 사람은 사회, 문화에 완전이 얽매이지도 않는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즉 자아를 가진 개인적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직 사람만이 개인의 취향이나 가치, 선호 따위를 주장할 수 있다. 심지어 사람 중에서도 문화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경우에는 개인이라는 관념이 희미한 경우가 많다.

 

이제 자연-문화, 사회-개인이라는 두 개의 축을 통해 목적을 네 개의 분면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이념형이지 세상의 모든 목적을 이 넷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2분면은 자연적-개인적 영역이다. 이것은 가장 원초적이고 자연적인 목적, 즉 개인의 생물학적 필요의 영역이다. 이는 구태여 목적을 수립할 것도 없이 이미 충동이라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다만 사람은 그 충동을 의식하며, 그것을 충족할 TPO를 고려할 수 있다.

 

1분면은 사회가 존속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자원을 획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영역이다. 공공 복리라고 부를 수 있다. 사회 전체를 하나의 단위로 보고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산출하여 그것을 획득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펄펄 나는 영역이다. 대량의 통계자료를 통해 인공지능이 지금 이 사회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확률적으로 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 발생한다. 사회는 하나의 단일한 실체가 아니다. 사회는 수많은 하위 집단, 구성원들의 중첩된 네트워크다. 이 네트워크의 중첩이 복잡하면 강건하여 어지간한 충격에도 잘 버티지만, 만약 단순하다면 한두 마디만 끊어져도, 즉 사소한 갈등만으로도 쉽게 붕괴된다. 사람이 모여있는 사회라면 크고 작은 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회를 이루고 있는 하위 집단이나 구성원들의 이해관계가 모두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A라는 선택이 사회 전체를 위해 가장 큰 이익이 될 확률이 67%라는 자료를 제시하는 것만으로 특정한 집단이나 구성원에게 손해나 포기를 강요하기란 어렵다. 인공지능은 도무지 이해 못할 것이다. 아니 왜 67%를 버리고 33%에 매달리는지.

 

사람은 합리적 행위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공정성에 대한 바이어스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33%가 손해를 봐야 한다면 차라리 다 같이 손해를 보자고 나서는 게 사람이다. 여기에 이런 저런 감정적인 문제까지 얽혀 있을 수 있다. 그러니 67%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갈등과 조정의 연속을 통해 합의하는 수밖에 없다. 당연히 이 과정은 인공 지능에게 불가능한 미션이다. 인공지능은 복잡한 이해 갈등, 공정성에 대한 편향, 감정적인 대립 같은 복잡한 갈등을 이해할 수 없다. 그냥 논리 회로가 엉켜버리고 말 것이다.

 

3분면은 개인적이면서도 문화적인 영역이다. 이른바 취향의 영역이다. 오늘날 가치를 창출하는 영역이 대부분 여기에 몰려 있다. 가령 우리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음식 재료의 원가를 따지지 않는다. 그 재료비 위에 얹어진 것이 가치이며, 이 가치는 유형의 것이 아니라 무형의 취향의 영역에서 발생한 것이다. 여기에는 미적, 도덕적, 역사적 가치가 모두 포함된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생산과정에 대거 투입될 경우 한계생산비용은 극도로 낮아진다. 여기에 잉여가치를 붙일 수 있는 것은 미적, 도덕적, 역사적 가치 뿐이다. 인공지능이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영역이 바로 여기다. 이 영역에서는 예측가능성보다는 의외성과 이를 보편적 맥락 속에 통합시키는 창조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런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 무슨 대단한 예술적 천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여기에 필요한 능력은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이다. 그 이야기라는 것이 소설이나 드라마 같은 것은 아니다. 사소한 것들 속에서 거기 깃들어 있는, 그것과 연관된 사람들의 삶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다. 이는 특별한 예술적 기능이 아니라 일상적인 공감의 누적에서 비롯되는 능력이다. 이 공감은 일상적인 사회생활 속에서도, 또 여러 예술작품, 특히 서사가 있는 예술작품을 향유하는 속에서도 계발할 수 있는 능력이다.

 

가령 낡은 일제시대 풍의 건물이 많이 남아있는 몰락해가는 도시 군산을 근대사 체험 공간으로 탈바꿈 시킨 힘이 여기 있다. 일제시대 풍의 건물이 많이 남아있다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가치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당시 쌀의 집산지로 부의 중심이었던 도시가 가진 이야기들, 그리고 이를 소재로 한 채만식의 소설들이 있기에 단지 낡은 건물들에 불과했던 것들에 생명과 가치가 붙었다. 이런 가치는 인공지능을 수백만 시간을 돌려도 생각해 낼 수 없는 것이다.

 

4분면은 사회의 문화, 가치를 형성하는 것이다. 파슨스에 따르면 사회에는 목적 달성의 기능 뿐 아니라 통합의 기능과 긴장 완화의 기능도 있다. 목적 달성의 기능은 1사분면에 해당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을 획득하기 위한 활동을 구성원들에게 마냥 요구할 수 없다. 사회는 하나의 기계처럼 작동하지만 실제로 부속들이 기어나 벨트로 연결된 기계는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를 이루는 부분, 즉 사람들은 각자 ‘자아’를 가진 개인이라는 점에서 맹목적으로 전체를 위해 일하는 개미나 꿀벌 같은 사회성 동물과 다르다.

 

사람이라는 구성원은 서로 간에 같은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유대감, 그리고 그 공동체가 자신의 삶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소속감을 공유해야만 공공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이 유대감과 소속감은 자연적 규모를 넘어선 거대한 인간 사회에서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사회는 새로운 구성원에게 이러한 유대감과 소속감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이것이 통합의 기능이다. 사회는 통합을 목적으로 하는 여러 활동과 작용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사람은 기계와 달리 피로해지며 지루해진다. 또 의미를 생각하며 회의에 빠지기도 한다. 따라서 이러한 피로, 지루함, 회의감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긴장완화 역시 인간 사회가 달성해야 할 중요한 목적이다.

 

이 네 종류의 목적들 중 1, 3, 4 분면에 해당되는 목적은 미리 정해 놓고 달성할 수 없다. 수시로 발생하는 갈등을 조정해야 하고, 계속 이야기와 미적 가치를 발견하거나 만들어야 하며, 사람들에게 공동체의 가치와 의미를 확인하고 활력을 되찾게 해야 한다. 이는 인공지능이 쉽사리 넘볼 수 없는 영역이다. 이런 일들에는 매 순간 무엇이 필요한지, 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하고 적용하고 변형할 수 있는 유연한 존재, 즉 사람을 필요로 한다. 이런 유연한 존재는 사람으로 태어나지만, 그 유연성을 발휘할 능력은 교육으로 키워진다. 여기서 바로 인공지능 시대의 교육의 목적이 드러난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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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권재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독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 사회교육과를 졸업하였다. 중학교에서 24년간 사회를 가르쳤고, 서울대, 상명대, 방송대 등에서 강의하였다.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에서 정책연구를 담당했고, 현재 계간 우리교육 편집위원이다. '학교라는 괴물', '그많은 똑똑한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등의 교육 비평서, '민주주의를 만든 생각들', '거짓말로 배우는 10대들의 경제학', '세상을 바꾼 질문' 등의 청소년 교양서들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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