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른기회전형의 대폭 확대 및 법제화 · 수능을 논술식으로 전환해야
도그마적인 제도는 현실을 허구의 세계로 조작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25일 교육개혁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의 학생부종합전형 비중을 줄이고 정시비중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교육부가 그 입장을 공식화하여 11월 중으로 정시상향비율과 적용시기를 발표하겠다고 하자 그 여파가 가시지 않는다. 굳이 대입제도가 아니어도 한국 교육에서 초중등교육이나 고등교육을 위한 대학입시와 관련된 교육적 갈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교육정책이나 제도에 대한 이념적 차이도 있지만 그보다는 자녀의 현재와 미래의 사회경제적 삶에 크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가끔은 극단적이기까지 하다. 또한 ‘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고전적 질문이나 ‘교육을 한다.’ 또는 ‘교육적 관점에서 판단한다.’에 대한 해석이 객관적이거나 가치중립적이지 않는 까닭이기도 하다. 즉 ‘교육’ 혹은 ‘교육적’이라는 용어는 특정한 가치나 상태를 지향하는 의도적인 활동으로 학생들이 특정한 계급이나 계층의 역사, 문화, 철학을 보편적이고 정당하다고 받아들이게 하는 규범적 역할을 수행한다. 결국 국가나 사회마다 교육적 갈등은 그 정도나 양상이 다를 뿐이지 자연스러우며 모든 국민을 만족하게 해결하는 교육철학은 없다. 교육의 가치는 상대적이기 때문에 교육 갈등의 당사자 간에 아무리 협상하고 화해해도 ‘공적인 합의(consensus)’는 거의 불가능하다. 어떤 경우에는 지배자나 그에 동조하는 집단이 기득권적 지위와 부를 지키기 위해 교육적 현실을 조작하는 등 대중을 조작하고 기만해 문제를 키우기도 한다. 이처럼 모든 개인이 교육문제에 대해 전체적인 ‘하나’로서 합의하거나 같은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공유할 수 없지만 ‘비판적이고 실천적인 이성’은 우리를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바람직한 교육적 가치에 근접하도록 한다. 그 외에 타자의 처지를 상상하고 더 깊고 넓게 공감할수록 갈등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인류사회는 불평등사회였는데 어떤 제도라도 완전하고 전혀 흠결이 없으며 국민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대입제도도 그 맥락에 있으며 지금 한국교육이 롤 모델로 정한 미국이나 유럽의 국가들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만인만색(萬人萬色)인 개인의 개성과 고유성을 고려하면 “교육이 개인 모두의 잠재력을 키워 존엄한 인간으로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해야 한다.”는 내재적 목적에 안성맞춤인 대입제도를 정할 수도 없고, 교육의 외재적 목적인 현실적 기능을 중시하여 사회적응과 직업선택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만 대입제도를 만들면 교육을 도구화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다. 이처럼 어떤 경우든 완전한 교육정책이나 제도는 없는데도 교육과 교육제도를 도그마 적으로 이해할 경우에 합리적이고 민주적이며 가급적 공정한 의사결정을 통해 사회통합을 이루는 길에서 점점 멀어진다. 도그마(독단적 진리)적인 제도는 사실을 특정한 권위에만 기대어 해석하도록 하거나, 아예 사실을 보려고 하지 않고 특정한 원리에 맞게 획일화하거나, 권력자의 의도에 맞게 멋대로 재단하여 현실을 왜곡하고 허구의 세계를 창조한다.
객관식 정시확대라는 구식으로의 회귀는 학생부종합전형의 우상화와 맹신 탓
정시확대를 반대하고 학생부종합전형을 옹호하는 상당수의 교사들은 교육의 본질을 지나치게 추상적이기 때문에 도그마에 빠지기 쉬운 내재적 목적에서 찾으려고 하며, 교사가 진정한 교육자라면 내재적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는 교육관을 갖고 있다. 즉 교사가 교육활동 중에 역할 갈등이 나타나면 교육의 도구적이고 외재적인 목적보다는 내재적 목적에 부합하는 교수학습방식이나 교육제도를 선택하여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학교교육이 지식교육에 치우쳐 새로운 세대에게 기존의 문화와 지식을 전수하는 지식중심의 교육과정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더구나 학교교육이 단순히 글을 읽고 쓰며 셈을 하는 기초학력이나 교과에서 사실적 지식과 체계적 지식만 이론적으로 학습하게 하여 고차적 사고능력의 발달에만 집중한다고 지적한다. 그보다는 학생의 자유로운 경험과 활동이 중심이 되어야 하며 교사의 권위주의나 강제성, 기존규범을 맹목적으로 순응하는 태도에서 벗어나는 방식이 교육의 본질에 더욱 적합하다고 말한다. 즉 교사는 지적학습을 위해 ‘엄격한 교육’을 하기보다는 ‘친절함’, ‘관용’, ‘협력’, ‘존중’과 같은 자유롭고 비형식적이며 우호적인 학교환경을 만들 때에 학생들이 개인적 흥미와 재능을 개발하여 자아를 실현한다고 본다. 즉 교과지식교육을 학생이 미래의 성인이자 시민으로서 공통적으로 배워야 하는 일반교육이라고 보지 않는다. 영국의 교육학자 G.H.Bantock(2009)에 의하면 “교과지식은 읽고 쓰는 능력에 기초한 소수의 상류계층의 ‘고급문화’로서 구술적 의사소통방식에 익숙한 서민문화에 속한 다수의 아이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과정이다.”라고 본다. 오히려 이러한 추상적인 개념위주의 교과 지식적인 교육과정이 학생들로 하여금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게 하고 일정한 성취수준에 이르지 못한 학생에게 실패와 좌절을 내면화한다고 본다. 즉 교과내용을 이해하기 어렵고 그 교과를 충분하게 배우기 위한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자본이 부족하며 무엇보다도 교과지식을 왜 배우는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의도된 교육과정을 실현하기 어렵다고 본다. 따라서 학교교육은 모든 학생을 위한 교육이 되어야 하는데도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아이들에게는 소외와 좌절의 경험만 남겨주고 그들의 삶과 무관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삶과 관련되는 내용으로 재구성되어야 하며 교육내용도 학생의 삶이나 방식과 관련된 것으로 사고와 감정이 결합되는 직접적인 경험과 활동, 학생의 직접적인 참여를 통한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또한 그렇게 할 때만이 초·중등교육이 심오하고 고차원적으로 세계를 만나는 일반교육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본다. 이렇게 보면 지식교육에 치우치는 정시확대를 찬성할 수 없으며 고작해야 그 효과는 고등사고력만을 키우는데 그치기 때문에 학교교육에서 ‘지성’ 이외의 ‘감성’과 ‘시민성’ 교육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따라서 교과와 비교과를 아울러 평가하는 학생부종합전형은 학생의 감성과 시민성마저 기를 수 있기 때문에 전인격적 성장에 기여하는 적합한 제도라고 본다.
정시확대를 찬성하고 학생부종합전형을 비판하는 교사들과 국민들은 교육의 내재적 목적을 인정하지만 역사적으로나 실재적으로 교육제도나 정책은 외재적 목적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이루며 변화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어떤 제도든 특정한 제도만으로는 모든 학생에게 ‘자아실현’이라는 추상적인 내재적 목적을 이루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여러 교육제도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공동체에 적합한 제도를 선택하는 방식이 합리적이라고 본다. 학생부종합전형이 긍정적 기능도 있지만 지금의 한국교육에서는 긍정적 기능보다는 부정적 영향이 매우 큰 상황이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그 제도가 학생을 위한 전형이지만 오히려 ‘정시 수능이 학생을 위한 전형’이고 나아가 ‘국민을 위한 전형’이라고 역설한다. 수능과 학종의 공정성을 비교하지 않더라도 지난 10년 동안 사교육비를 줄이려고 시도한 학생부종합전형이 오히려 사교육비를 증가시켰다고 지적한다. “수시비율이 2009년 56.7%였는데 2019년 76.2%로 크게 증가하는 동안 고교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1만 7천원에서 32만 1000원으로 크게 증가했으며 최근 3년간의 증가율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크게 늘었다.”고 말한다. 내신 성적으로 선발하는 학생부교과전형에 대한 비판도 이어진다. “내신 성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학생들이 학교별로 시험을 관리해주는 학원을 찾았고 내신 성적의 효과적인 관리를 위한 입시컨설턴트도 성행했다.”고 주장한다. 즉 학생부전형이 정시전형보다 사교육비 지출을 크게 했고 대학은 합격과 불합격의 기준을 발표하지 않은 등 불공정하기까지 했기 때문에 어떤 전형보다도 불합리하다고 덧붙인다. 그렇기 때문에 불평등사회에서 그나마 교육이 계층의 수직이동에 긍정적으로 작용해왔는데 그 기능마저 차단되었고 계층적 지위의 고착화를 강화시켜 ‘가난한 국민을 더욱 가난하게 했다’고 비판한다.
두 입장 모두 타당한 측면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이러한 갈등은 교육의 내재적 목적과 외재적 목적 간의 조화와 균형이 깨진 까닭이다. 교육은 두 목적을 모두 추구해야 하는데 지난 10년 동안 교육의 내재적 목적을 중시하는 ‘학생부종합전형’이 도덕적으로 목적론적이지만 문제점이 크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교육부나 교육청 및 교사단체는 이를 보완하는 목소리를 내지 않았고, 더욱 크게 확대하여 그 취지를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학생부종합전형은 교육이 ‘고립된 섬’처럼 독립적이지 않고 계층적 지위에 밀접하게 영향을 끼치는 상황에서 평가제도의 공정성이 무척 중요한데도 세밀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 다수가 객관식 수능을 가장 선호하게 되었으며 그동안의 정시수능의 병폐를 경험적으로 알지만 차악으로 수용하게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마찬가지이다. 시정연설에서 “정시확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단지 “지금 학생부종합전형의 문제점이 몹시 크기 때문에 정시확대가 불가피하며 그 범위도 서울소재 대학으로 한정한다고 밝혔다.” 대통령과 현 정부의 정시확대를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태도는 수긍하기 어렵다. 정부정책이 교육을 후퇴시켰다는 비난에 앞서 객관식 정시확대라는 구식의 대입제도로 회귀하는데 크게 영향을 끼친 지난 10년 동안의 학생부종합전형의 운영에 대해 침묵하고 그 전형의 장점만을 부각시킨 교육청이나 교사단체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더구나 가장 바람직한 대입제도는 여전히 학생부종합전형으로 학생부를 간소화하여 문제점만 고쳐야 한다고 말하지만 개선점에 대한 논란도 여전하며 가능할 것 같지도 않고 오히려 학생부를 간소화하면 공정성문제가 깊어진다는 시각도 있다.
고른기회전형을 법제화하고 기준을 소득 1.2분위로 통일시켜야
지금의 정시전형 확대와 학생부종합전형 유지에 대한 논란은 마뜩치 않다. 객관식 정시를 확대하든 학종을 유지하든 한국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 같지도 않다. 한국 교육의 문제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학종 찬성파든 수능 지지파든 크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문제가 있는데 그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갖지 않으면서 논쟁만 격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지금의 정시확대나 학종축소를 둘러싼 논쟁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스럽다. 교육은 사회적으로 빈부격차를 완화시키며 시대적 변화에 맞는 교육이 학교에서 이루어지도록 대학입학평가를 추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논쟁과 갈등은 치열하지만 그 어느 대목을 봐도 오직 학종과 수능의 전형비율에만 집중되어 있다.
대입전형에서 비중은 크지 않지만 ‘고른기회전형’이 있다. 고른기회전형은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하기 위해 소득과 지역 등의 차이를 고려하여 선발하는 전형이다. 그 대상은 국가보훈대상자,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 계층자, 농어촌 학생, 서해 5도 학생, 장애인, 특성화고교 졸업자, 한 부모 가족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2019학년도에 전체 모집인원에서 4만 3371명(12.4%), 2020학년도 4만 6327명(13.3%), 2021학년도 4만 7606명(13.6%)을 선발했거나 선발할 예정이다. 그 비중은 늘어나지만 미미하다. 그러나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서울의 주요대학만을 볼 경우에는 전혀 다르다. 2019년을 보면 4∼5%에 그치고 있어 전국 4년제 대학의 평균인 11.1%에도 한참 미치지 못한다. 그 범위를 확대하여 서울의 20개 대학까지 넓혀도 2019년 10%, 2020년 10.1%, 2021년 10.6%로 역시 전국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

지금처럼 수시와 정시에 대한 논란이 뜨거운데도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고른기회전형에 응시하려는 학생은 경제적으로 취약한 집단인 경우가 많아 학생부종합전형이라고 해도 수시일반전형보다 ‘엄마찬스’를 쓰기 어렵고 수능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고등사고력 학습에도 접근하기 어려운데도 주목받지 못하는 현실은 아이러니하다. 즉 그들은 대입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어 대입진학 기회에서 불공정한 상태에 놓여있고 그 불공정이 후대에까지도 이어지는 사회구조를 갖는 한국에서 교육의 내재적 목적인 자아실현이나 외재적 목적인 지위획득에 모두 불리한데도 그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불꽃 튀는 논쟁은 없다. 무척이나 아쉬운 지점이다. 교육부는 미루지 말고 고등교육법을 개정해서라도 정원 내든 정원 외든 고른기회 선발비중을 크게, 의무적으로 늘리는 방향으로 법제화해야 한다. 또한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과 고른기회전형을 연계하여 재정지원을 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공정한 사회라면 그 사회가 불평등한 사회라도 사회적 약자가 가장 우선적으로 혜택을 받아야만 정의롭고 권력이나 지위 및 부의 차등적 분배마저 정당화될 수 있다. 대학평준화는 지금 당장 할 수 없을 정도로 국민적 저항이 거세지만 국가가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불평등을 완화시킬 수 있는 교육 정책을 검토하고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일이 ‘좋은 정부’이자 ‘최선의 정책’이라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렇지 않고 교육의 내재적 목적을 구현하겠다고 학생부종합전형이라는 도그마적이고 이상적인 전형에 매몰되게 되면 그 의도와는 다르게 사회적 갈등을 깊게 하고 우리 사회를 파국적 상황으로 몰아갈 수 있다. 또한 고른기회전형을 고등교육법에 의무비율을 명시할 경우에 형평성 논란과 대학 자율성 침해라는 논란이 있을 수 있어 불가능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한국 사회의 빈부격차나 교육을 통한 계층사다리의 차단은 더할 나위 없이 심각한 상황이다. 굳이 제언을 하나 하자면 고른기회전형 대상자에 대한 기준을 통일시켰으면 좋겠다. 소득분위와 연관지어 1분위나 2분위 등 소득분포 상 하위 20% 계층의 자녀로 한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농어민학생으로 위장 전입하는 등의 모랄 헤저드(도덕적 해이)를 차단하고 고른기회전형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 따라서 고등교육법을 개정할 경우에 고른기회전형 대상자의 자격을 소득을 기준으로 1,2분위로 한정하여 단순하고 명확하게 재지정하기를 바란다.
정시전형에서 논술식 문항을 크게 늘려야
정시확대 논란과 별개로 정시 전형에 서술형 논술형 문항의 조속한 도입이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는 2028년도를 말하지만 한국의 정치적 교육적 상황에서 그 시기가 지켜질지도 의문이다. 정시확대의 근간이 단순하게 객관식 문항의 확대에 머문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정시확대가 불가피하다’는 발표는 교육적으로 사회적 호소력을 상실하거나 정치공학적인 선택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지금 학교에는 그의 의견을 단 300자의 글마저 논리적으로 쓰지 못하는 학생들이 다수이다. 게다가 글을 쓰지 않더라도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방식이 무엇인지 조차도 모르는 학생이 태반이다. 학생들에게 토론은 ‘누가 말을 많이 하는가?’ 내지는 ‘배경지식의 소유 정도를 드러내는 상황’이지 주제에 대해 일관성 있게 의사표현을 하는 시간이 아닌 경우가 많다. 지금 학교에서 배우는 국어, 영어, 수학 등 각 교과는 교육부가 승인한 검정교과서이고 그 단원의 마지막에 ‘형성평가문항’으로 논술형 문제가 수록되어 있으며 대학도 그 문제를 표준으로 대학별 고사를 치루고 있는데도 학교현장은 논술을 오직 ‘사교육의 영역’으로 치부하고 가르칠 수 없다고 조작한다. 시대적으로 고등사고력을 지향하는 교육이 공교육 현장인 학교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교사들이 스스로 그 교육을 외면하는 현실은 아이러니하며 참담하다. 지난 10년 동안 학생부교과나 학생부종합전형의 비중이 크게 늘어서 대입전형에서 거의 80%에 이르렀고 객관식 정시전형의 비중이 크게 줄었는데도 교사들이 교과서에 나온 서술형과 논술식의 문제마저 제대로 다루지 않고서 대학별 논술고사를 공교육을 벗어난 평가방식이라고 비난하는 태도는 자기모순이다. 더구나 학생이든 아니든 그의 사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의사소통방식은 인간의 고유성이다. 그런데도 학생부종합전형을 유지해야 한다든지, 단순객관식 정시전형에 머무르는 형태로 정시전형 확대를 받아들이려는 방식은 2015개정 교육과정에도 어긋나며, 도대체 교육의 방향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국민과 학생을 속이는 조삼모사(朝三暮四)이다. 객관식 수능확대에 머무르는 대입제도의 변경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가 2028년에 서술형 논술식 문항을 수능에 도입하고 그 의도가 진정하다면 지금의 대학별 논술고사를 고교교육과정에서 출제하도록 감시하는 대신에 반드시 확대해야 한다. 교육부가 “교사가 이를 감당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어렵다.”고 말하면 유죄이다. 교육부는 서술형과 논술식 문제를 교과서에 실은 출판사의 책을 인정하거나 보증하지 않았어야 했다. 학교가 교사들이 고등사고력을 지향할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오직 객관식 문제로 형성평가 문제를 구성해 실었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학교에서 서술형과 논술식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제도적으로 추동해야 한다. 교육부가 학생들이 분절적 사고로 세상을 이해하게 하거나 급변하는 환경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교수학습이나 평가방식을 학교에서 유지하도록 한다면 국가기관으로서 공적인 책무를 다하지 못하는 행위이며 그 책임은 교육부에, 그 피해는 국가와 국민에게 돌아간다. 흔히 ‘공교육의 정상화’라는 구호가 유행하지만 그 뒤에는 공교육이 강화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여럿 있다. 그런데 공교육을 강화하는 구체적인 대안을 정책으로 강제하지 않고서 공교육 정상화라는 진부한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면 지금의 ‘수능파’와 ‘학종파’ 간에 벌어지는 비생산적인 논쟁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지금 수시와 정시를 둘러싼 논쟁은 두 가지 중요한 의제가 빠져 있다. 고른기회전형 확대를 통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공교육을 강화하고, 고등사고력을 향상하기 위해 정시수능에서 조속하게 논술형 고사를 도입하거나 한시적으로 지금의 대학입학논술고사 확대를 통해 학교에서 사고력 신장의 교육이 활성화되도록 교수학습방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서 학종의 유지나 객관식 정시비중의 확대는 국민의 삶을 바꾸거나 학교교육을 개혁하는 토대라고 할 수 없다. 단지 어떤 제도의 비중이 확대되는가에 따라 개인이나 집단의 이해관계와 권력의 주도권은 바뀔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전북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일반사회교육을 전공하여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예탁결제원에서 10년 동안 근무한 뒤 전주 완산고등학교에서 사회 교사로 재직 중이다. 전북 교육청 사회문화 집필 위원, KDI 경제교육교재 집필 위원, 중앙일보 공교육 논술자문단, 충남 지방공무원 임용시험 출제위원, 전북 및 전남 교육연수원 강사, 전북대학교 교사 연수 강사, <새전북신문>, <열린 전북>, <전북교육신문>, 인문 웹진 <아홉시>, 네이버 비즈니즈 블로그 <인터비즈>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지금은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의 교육저널인 「교육 제4의 길 」에 칼럼을 쓰고 있다. 저서로 <미래 교육의 불편한 진실, EBS, 2021>, <학교 속 문해력 수업, EBS, 2022>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