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꽃피는 아이들] 조금 천천히 가는 아이들
| 본 글은 2021년 ‘서울시교육청’의 학습성장스토리 공모전 사례집인 <사랑으로 꽃피는 아이들>에 게재되었습니다. |
같은 교실,다른 공부
‘오늘은 고등학생이 되어서 처음 시행되는 진단평가의 날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보세요.’ 아직도 중학생의 앳된 모습을 한 아이들이 자못 진지하게 시험을 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몇몇 학생들은 시험지를 받으며 어두운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펜을 들어 답안지에 용감하게 한 줄로 쑥 그어대고는 엎드려 잠을 잡니다. 분명 같은 고등학교의 같은 학년이지만, 과연 이 아이들이 같은 반에서 같은 내용의 공부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만 20년 넘게 해온 게 사실입니다.
학교라는 공간에서는 수업을 통해 교사와 학생 간의 지적 상호작용을 나누게 됩니다. 학업적 성취가 뛰어난 학생들은 자존감이 높아서 학교생활도 밝게 하며, 학교생활의 어려움도 잘 극복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기본학력 미성취 학생들은 학기 초 열의를 보이다가도 수업 시간의 내용이 외계어처럼 들리게 되어버리면, 스스로 외계별로 떠나간 듯 멍한 눈을 보입니다. 같은 교실에 있는 같은 학년이지만,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의 차이는 너무나 확연히 달라져 있기에, 서로 다른 공부를 하고 있는 것과도 같습니다.
저는 한국사 과목을 가르치기에 활동 수업을 통해 토론, 개인발표, 협동학습지 활동으로 학생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노력은 한 학년이 끝나고 나면 연계성이 떨어지고, 교사의 관심과 열정만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었습니다. 물론 기초학력 부진 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지만,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거나 낙인효과가 나타나면 학생들이 이내 포기하고 맙니다.
체계적 시스템과 열정이 이루어낸 성과
과연 어떻게 학생들의 정서적 지지, 학업적 성취의 의지를 북돋을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만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올해 1학년 부장을 맡게 되면서 교장 선생님께서 기본학력 책임지도제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다가올 고교학점제를 대비하여 성취율 40% 미만의 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학교 시스템으로 정착시키자고 하셨습니다.
우리 학교에서는 대상 학생을 두 그룹으로 편성하였습니다. 학기 초 진단평가를 실시한 후 성취율 20% 미만의 학생집단인 기초학생과 성취율 20〜 40%의 기본학력 학생으로 구분하였습니다. 기초학생 학생군은 교장, 교감 선생님이 중심이 된 교원학습공동체가 맡았습니다. 학생들의 학교 내 부적응 상담, 정서적 지원을 위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수학, 영어의 초중의 교재를 선정하여 기초학습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고등학교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영어, 수학 교과의 내용을 감당하기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절로 들었습니다. 하루 종일 외계어를 듣는 심정으로 우두커니 교실에서 한쪽 자리만 지키고 아무 말 없이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던 아이들의 학업적 현실이었습니다. 학생들에게는 수업에 대한 필요성의 설명과 함께 수업은 1주일에 2회 정도 실시되었습니다. 교장, 교감 선생님과 친밀감도 형성되고, 교과 선생님과의 유대감이 형성되니 학생들이 점차 표정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기본학력반 학생들은 학업적 열의는 있으나 공부에 대한 방법, 가정형편 등의 어려움이 있어서 보충학습이 어려운 학생들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학생들이 기본적인 열의가 있기에 담임 선생님들과의 충분한 면담, 지지 등을 통해 기본학력 학생들의 수업은 1주일에 국어, 수학을 중심으로 각 2회씩 4회를 실시했습니다. 학생들의 출석률은 90% 이상이 되었으며, 여름방학에도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수업을 계속 실시했습니다.
물론,중간에 포기하려고 했던 학생들이 있었고, 무단으로 수업에 빠지고자 하는 학생들이 있었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특히 교장, 교감 선생님이 담당하신 기초반 학생들의 경우는 교장 선생님께서 직접 전화, 학급으로 방문, 상담 등을 통해 지속적인 관심과 열정을 보여주셨습니다. 아울러 기본학생반의 경우는 부장인 저를 중심으로 학급담임들과 함께 수업에 빠진 학생들을 직접 면담하며 학생들에게 용기와 동기를 부여했습니다. 이러한 체계적인 시스템이 정착될 수 있었던 요인 중에는 교육청에서 지원하는 여러 사업경비로 가능했습니다. 강사님의 강의료, 학생들 간식비, 교재구입비, 물품 구입 등이 무료로 이루어지면서 원활하게 기본학력 지도체제가 정착되었습니다 . 학교 전체의 분위기가 기본학력지도 학생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보니, 학생들은 학습 미성취라는 낙인효과보다는 오히려 자신에 대한 성취감과 선생님들의 친절함으로 인해 학교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주었습니다.
소통으로 만들어낸 연대감
“선생님,수학 수업 시간에 이제 풀 수 있는 문제가 생겼어요!”라며 가끔씩 학생들이 지나가면서 저에게 자랑을 합니다. “선생님, 제가 얼마나 공부를 안 했는지 알겠어요.”라며 자신의 학업성취가 부족한 부분을 가끔씩 말해주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기본학력 책임지도제를 실시하고 10개월 정도가 지난 후 학생들은 과연 얼마만큼 성장했을까? 각반 담임 선생님들께서는 학생들이 전반적으로 학업적인 면에서 성취를 이루어내고, 학교에 대해 성실하게 노력하는 자세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고들 하십니다. 학력 증진 행사 중 중간층의 학생들의 성취를 칭찬하기 위해 각반별로 열심히 노력해서 성취가 두드러진 학생들을 2명씩 선발하여, 교장 선생님의 격려 및 간단한 선물을 증정했습니다. 학생 생활 성취를 높인 학생 중에는 기본학력 책임지도제에서 열심히 수업한 학생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교장 선생님께서 따스한 격려사 이후, 저에게도 간단한 격려사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저는 “여러분은 지난 기간 동안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한 점을 담임 선생님께서 인정한 학생들입니다. 선생님도 여러분과 늘 마주하는 수업 시간, 복도에서, 자율학습시간, 그 외 방과 후 활동에서 얼마나 많은 열의를 가지고 생활했는지 경험했기에, 여러분이 자랑스럽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기본학력 책임지도제는 각 학교마다 전담부서를 따로 설치하여 학년별 연계성을 가지고 정착돼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일반 학생의 업무 외의 기초학생 책임제도를 부가적으로 한다는 것은 형식화되기가 쉽습니다. 하나의 생명이 올바르게 커나가는 과정은 많은 고통과 인내를 수반합니다. 잠깐의 단비로 메마른 땅을 온전히 적실 수 없듯이, 아이들의 갈라진 정서와 학습 결손을 쉽게 채울 수 없습니다. 오랜 기간의 학습적 결손을 경험한 학생들에 대한 교육적 성장을 위해 각 학교별 전담부서와 외부 프로그램의 지원이 현실적으로 교육 현장에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또 경쟁만을 강요하는 듯한 우리의 교육 현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금 천천히 가는 학생들에 대한 배려와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격려와 지지가 필요합니다. 학교에 대한 학생들의 긍정적 믿음을 바탕으로 자신의 꿈이 생길 수 있을 때까지를 교사의 소명으로 꿈꿔봅니다.
“교장, 교감 선생님과 친밀감도 형성되고, 교과 선생님과의 유대감이 형성되니
학생들이 점차 표정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한서고등학교 1학년 부장을 담당하며 기초학력 책임지도제와 과련하여 2년여 동안 업무를 수행하였다. 현재 서울시교육청 기초학책임지도제 컨설팅위원단, 정책운영팀에서 활동 중이다. 아울러 대원외고, 이화고, 성남고 등에서 기초학력 책임지도와 관련된 컨설팅을 하였고, 남부교육청의 요청으로 동일고, 금천고 등에서도 컨설팅을 담당하였다. 기초학력 책임제와 관련하여 교육부 주관의 두드림연찬에서 '한서고 기초책임지도제 운영사례 발표', 교과서 연구가을호에 기초학력제와 관련된 내용을 집필하였다.
중1인 저희 큰아이가 생각나네요.
정말 도움이 필요한데 어디에서 도움을 받아야할지 너무 힘든 날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