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이 느린 주원이 이야기
“선생님, 주원(가명)이가 어제 처음 왔는데요, 이제 5학년이 된대요. 그런데 공부가 좀 모자란 것 같고, 학교에서 담임선생님이 특수반에 보내야 할지 고려해 보신다고 해요. 수학은 어느 정도 하는지 선생님이 한번 봐 주세요.”
나는 지역아동센터에서 학습 지도를 하는 아동복지교사이다. 아동복지교사란 구청에서 채용해서 관할 지역아동센터에 학습 지도를 위해 파견하는 교사이다. 이곳 지역아동센터에서는 일주일에 두 번 수학을 가르치고 있고, 이 센터에는 나와 같은 아동복지교사가 1명 더 오는데 다른 요일에 학습지도를 하고 있다.
주원이는 산만하고 집중력이 약해 돌봄의 손길이 부족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3, 4학년 수준의 간단한 연산 문제 몇 개를 테스트해 보았는데 구구단-보통 2학년 때 외우는-을 다 못 외웠고, 덧셈 뺄셈도 3학년 수준에 못 미치는 상태였다. 학습이 많이 모자랐지만 전체적으로 의사소통은 잘 되었고 인지 기능엔 문제가 없어 보였다.

‘22년 2월 진단테스트 일부
다음 시간엔 구구단 외우기부터 시작했다. 2단도 못 외우는 게 있어서 2단부터 외우게 했다. 덧셈을 여러 번 하는 것이 곱셈이고 이걸 외워서 사용하는 게 구구단이라고 알려주고 덧셈을 해서 구구단을 만들었다. 한 번 하더니 다른 단도 하나씩 만들어서 모두 외우는 데 성공했다.
구구단 외우기를 시켜 보니 주원이가 특수반에 갈 아이는 아니고 오랫동안 학교와 가정에서 방치되어 아무도 학습을 돌봐주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구구단을 외우지 못하고 이렇게 산만한 5학년이라니, 온라인 수업의 한계와 가정의 문제가 특별히 심각했음을 살피지 않는다면 특수반을 고려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원이는 구구단에서부터 약분과 통분(현재 5학년 진도에 맞는)에 이르기까지 배워야 할 것들이 많았기에 곱셈, 나눗셈 등 연산의 선수과정부터 차례로 학습해 나갔다.
내가 주원이랑 지역아동센터에서 만나는 날은 일주일에 두 번이고 내가 가지 않는 요일엔 주원이가 다른 선생님과 수학 공부를 이어서 하기도 하고, 상담을 가느라 못 오는 날도 있다. 6살인 동생이 있는데 엄마를 대신해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동생을 돌보느라 집에 일찍 가는 날도 있다. 그래서 주원이는 일주일에 3~4일 정도 수학공부를 하는 셈이고, 집중력이 약한 편이라 하루의 수학 공부 시간은 30분을 간신히 넘는 수준이다.
주원이는 학습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5개월 동안 구구단과 3, 4학년 과정의 곱셈, 나눗셈, 5학년 과정의 기초 개념을 배우고 연습했다. 주원이는 산만한 편이지만 집중을 하면 계산을 꽤 정확하게 한다.
동생들이나 또래 친구들이 주원이가 공부하는 걸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너무 쉽다. 선생님 저도 구구단하면 안 돼요?”
“오빠 이거 몰라? 정말? 이거 완전 쉬운데.”
그러면 나는 그동안 우리가 모두 온라인 수업을 하고 학교를 많이 안 가서 공부를 조금밖에 못 하지 않았느냐, 주원이도 그랬기 때문에 그동안 밀린 공부를 하는 거라고, 주원이의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주원이의 기분이 좋지는 않겠지만 다행히 상처를 많이 받는 것 같지 않다. 아니면 내색을 하지 않는 것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이제는 5학년 수준의 분수의 덧셈과 뺄셈도 한다. 아직은 그동안 배운 것들의 개념을 충분히 이해하고 활용할 수준은 못 되지만 그래도 학교 수업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 게 많아졌고 낙오감을 조금은 회복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22년 6월 학습 내용 일부
지난 2년간 온라인 수업이 진행되면서 주원이처럼 방치된 아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이곳 지역아동센터에도 주원이처럼 학습 결손이 심한 아이들이 많다. 중학교 1학년인데 초등학교 5, 6학년 중요한 2년 동안 꼭 필요한 것을 익히지 못하고 중학생이 된 친구도 있다.
“원격수업에 수준별 학습 ‘스톱’…중위권 붕괴 두드러졌다”(국제신문, 2021.11.29.)에 따르면 코로나 기간 동안 온라인 수업으로 학습 격차가 더 커졌고 사교육 의존도도 더 높아졌다고 한다. 이 같은 보도에서도 드러나듯이 이미 악화된 상황이 드러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정교한 처방은 부족한 형편이다. 많은 학생들이 2년간 수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못하고 학교생활을 지속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험을 안고 있는지 아직 우리는 이 사태의 미래를 알지 못한다.
“서울시교육청 기초학력 보충 ‘키다리샘’ 1765명 운영”(아시아경제, 2022.05.04.)에서 볼 수 있듯이 기초학력을 보충하기 위한 정책은 마련되고 있지만 정교한 처방 속에는 인력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투입되는 인력에 효과적인 도구가 들려 있어야 한다. 5학년 주원이가 구구단(2학년 수준)을 다 외우지 못하고 덧셈·뺄셈 실력이 3학년 수준에 미치지 못하니 다른 선생님의 제안으로 2학년 문제집을 들려준 것을 본 적이 있다. 5학년 주원이에게 2학년 문제집부터 3, 4학년 문제집을 가지고 그 안의 모든 내용을 살피며 공부해야 한다는 상황은 얼마나 절망적으로 다가올 것인가. 초등 수학 6개 학년 과정에는 5개 영역(연산, 도형, 측정, ..)이 골고루 섞여 있다. 따라서 교사는 필요한 부분만 선택해 학습하게 하면서 현재 학년 진도와 병행할 수 있도록 전략을 마련하여 가르칠 필요가 있다.
나는 지난 15년 가까이 수학교재 전문개발자로 일했고, 지금은 주원이 같이 수학에서 결손이 많아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위한 학습도구로 수학문제 웹사이트를 기획하고 있다. 또한 웹사이트를 만들기에 앞서 시범적으로 작년에 수학문제 블로그(blog.naver.com/alpedu)도 만들어 보았다. 그동안 주원이가 공부한 교재들은 내가 마련한 전략을 기반으로 블로그에 공유했거나 즉석에서 만든 것들이다. 웹사이트가 완성되면 주원이처럼 결손이 심한 아이들뿐 아니라 선수과정에 보충이 필요한 많은 아이들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수학은 위계성이 강한 과목이라 앞의 내용을 잘 모르면 다음 내용을 공부할 수 없다. 현재 학년의 학습에 어려움이 있다면 이전 학년/학기 또는 그 이전 학년/학기의 선수과정을 공부해야 한다. 많은 아이들에게 수시로 앞서 배운 걸 보충해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럴 때마다 이전 학년 문제집을 사서 푸는 것은 효과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못하다. 주원이처럼 5학년에게 2학년 문제집을 들려준다면 학생이 겪는 낙오감이 심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문제집은 책으로 되어 있어서 필요한 단원이나 주제만 골라서 학습하기도 어렵다. 즉 학습 도구로서의 유연성이 부족하다. 필요한 단원이나 주제만 골라서 공부하면서 현재 학년 진도를 함께 병행할 수 있는 보충 학습 도구가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무료 수학 동영상 웹사이트인 ‘칸아카데미’(khanacademy.org)는 좋은 도구라고 생각한다. 칸아카데미는 미국 웹사이트인데 45개국 언어(한글 포함)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서 사용되고 있다. 다만 한글 웹사이트의 경우 국내 교육과정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고 문제가 충분하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한국의 칸아카데미 같은, 즉 국내 교육과정을 반영하고 문제를 충분히 제공하는 웹사이트를 만들고자 하며, 이를 통해 많은 학생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잠재력 개발이 제한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내가 지역아동센터에서 아동복지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느낀 점은 예산을 배정하고 인력을 투입하는 것만으로도 소정의 효과를 거둘 수는 있겠지만, 정책의 심도와 수준 측면에서 학습프로그램이나 교재 개발 등이 포함되어 보다 체계적이고 통합된 지원과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학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학생들에게 지금보다 더 효과적인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지난 15년 동안 수학교재 전문개발자로 일했고, 현재는 지역아동센터에서 학습 지도를 하는 아동복지교사로 활동 중이다.
선생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우리가 마음만 먹고 노력한다면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아이들의 학습에 도움을 줄 곳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게 참 어려운 일인지… 여전히 현장은 외로운 곳이 많은 것 같습니다.
선생님, 한국교육학술정보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e학습터를 사용해 보시면 어떠실까요? 과목별로 볼 수 없는 것이 조금 아쉽지만 학년별 학습 영상을 제공하고 있고, 필요한 부분을 골라서 보실 수도 있으십니다. https://cls7.edunet.net/cyber/pm/prta/pprt000a00.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