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만 5세 조기취학 학제 개편’안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지난 주 정부가 발표한 ‘만 5세 조기취학 학제 개편안’에 대한 반대 여론이 매우 거세다. 특히 유아 관련 시민단체, 학부모 단체와 학회 등의 전문가 단체의 반대가 가장 큰데 유보통합을 대선 공약으로 내건 대통령이 공감하기 힘든 이상한 정책을 제시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국정과제에도 포함되지 않았던 취학연령 하향 정책의 갑작스런 등장에 대한 비판에 정부는 유보통합과 교육격차 해소를 그 이유로 들었다. 오랫동안 유보통합을 기다리며 이번 정권에 기대를 걸었던 영유아 교육 관련 전문가 단체와 학부모 단체는 예상치 못한 개편 방향에 당황하여, 황급히 기자회견, 집회와 토론회 등을 자체적으로 열며 학제 개편안 철회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강력하게 내고 있다.
만 5세 조기취학 학제 개편안에 대해 반대하는 핵심적인 이유를 종합적으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조기 취학 및 학제 개편은 유아의 인지·정서·신체 발달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조치이다. 유아의 집중력 시간과 학습방식을 고려해 볼 때 40분을 앉아 수업을 받는 초등학교의 시간 운영 방식은 만 5세 유아에게 적절하지 않다. 영유아기의 어린이들은 교과가 아닌 충분한 자유 놀이시간을 통해 스스로 성장해 나간다.
둘째, 교육현장의 혼란을 심각한 수준으로 가중시키며 그 피해는 담당 교사와 어린이들이 입게 될 수 있다. 교육부가 7월 29일에 발표한 바에 따라 계획대로 순차적으로 4년에 걸쳐 입학 연령을 앞당기게 되면 최대 15개월의 차이가 나는 어린이들이 동급학년에 배치된다. 영유아기를 둔 학부모나 영유아 교사가 어린이들의 월령, 즉 몇 월 생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는 발달에 따른 차이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같은 연령이라도 1월생과 10월생은 신체적 능력, 기본 생활습관, 사회성, 문제해결력, 자기주도성 등에 있어 큰 차이를 보이므로 교사에게 업무가 가중될 수 있다.
셋째, 초등학교의 돌봄 체계의 미흡과 준비되지 않은 돌봄 정책에 대한 우려가 심각하다. 돌봄 공백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커지자 박순애 사회부총리는 8월 1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6세에서 5세로 1년 앞당기는 학제 개편안 추진과 관련해 학교에서 돌봄 공백에 대한 대안으로 초등학교 1, 2학년은 저녁 8시까지 학교에서 돌봄을 보장할 계획과 보조교사를 두고 보충학습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안을 언급하였다. 현재 돌봄과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어린이집의 역할과 보육 전문성의 초등 도입 가능성에 대한 연구가 우선되어야 한다.
넷째, 의견 수렴을 비롯한 사회적 합의 도출 등 추진과정에서 민주적 절차가 생략되었다. 박 부총리는 8월 1일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적인 의견 수렴 과정이 부족했음을 언급하며 “지금부터 학부모, 각 영역 교육전문가 등 각계 각층의 의견을 듣고 정책 연구를 통해 시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국가교육위원회 구성 및 전문가 간담회 등의 공식적인 의견 수렴과정을 통한 개편안의 적절성에 대한 확인이 시급하다.
다섯째, 입시경쟁과 사교육의 시기를 앞당겨 영유아 단계부터 선행학습을 위한 과잉사교육 열풍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만 5세는 충분히 놀면서 세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해야 할 시기로 초등학교를 준비하는 시기가 아니다.
여섯째, 교육격차가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 초등학교 취학 준비가 된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 간의 차이로 교육 양극화가 심화될 우려가 있다.
일곱째, 교육부의 막대한 예산 투입에 대한 우려가 있다. 정책 시행 시 과도기를 고려한 보조교사와 돌봄교사를 포함한 교사 수급 확대와 교실 확충 등 막대한 재정 투입의 문제가 남아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은 2007년 연구 보고서에서 다양한 학제 개편안 형태를 검토하면서 취학연령을 1년 하향시키는 학제 개편에 드는 순수비용이 2008년 기준 2020년까지 45조 40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추산하였다.
여덟째, 법 개정의 문제가 남아있다. 2025년부터 초등학교 취학연령을 낮추려면 2024년까지는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현 상황에서 거센 여론 반발을 뚫고 법을 개정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 있다.
이와 더불어 과도기의 학생들이 겪을 ‘연령 차이로 인한 학습 격차 증가, 학생 수 증가에 따른 경쟁 증가’에 대한 우려와 ‘육아로 인한 학부모들의 부담 가중’에 대한 우려 등도 남아 있다.
2019년 기준 OECD 38개 회원국 중 26개국(한국 포함)의 초등학교 입학 연령이 만 6세이다. 2021년 KEDI 이슈페이퍼 ‘학습자 삶 중심의 학제개편’을 살펴보면, “취학연령 하향화가 개인의 선택에 따라 조기 입학의 방식으로 허용되고 있음에도 대부분 선호하지 않는 방식으로 드러났으며, 일반 국민의 인식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근거 자료를 살펴보면, 조기입학 아동은 2011년 4천89명, 2012년 3천86명, 2014년 1천848명으로 급격히 줄었고, 2019년부터는 500∼600명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7월 31일 기준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육통계를 보면 2021학년도 초등학교 조기입학 아동은 537명으로 전체 초등학교 입학인원(42만8천405명)의 0.125%에 불과했다. 즉 초등학교 조기입학에 대한 사회적 선호가 매우 낮다는 것이 이 연구의 결과이다.
이에 ‘만 5세 조기취학 학제 개편’안에 대한 사회적 우려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재검토할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 영유아기 아이들은 온 몸과 감각으로 세상을 배우는 가장 유능하고 풍부하며 귀한 존재들이다. 왜 그 시기를 어린이들이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보호하지 않고 국가가 앞장서서 침해하는가? 자유놀이가 보장되는 질 높은 영유아 보육과 교육, 이를 위한 유보통합이 실현되기를 희망한다.
“진정한 격차 해소를 위해서는 유보통합을 이루어 내고 누리과정의 질을 높여 누리과정에서부터 격차를 완화하는 것이 우선이다.”
참고자료
• 박순애, “취학연령 하향, 사회적 합의 도출하겠다”
https://moneys.mt.co.kr/news/mwView.php?no=2022080114513297587
• 40여 개 교육단체 “만 5세 초교입학 철회하라” 대통령실 앞 집회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801/114756586/1
• 유아의 발달 특성을 무시한 조기취학 정책 철회해야
http://news.bbsi.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76281
•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 : 티스토리
https://chamstory.tistory.com/4378
컬럼비아 대학에서 국제교육을 전공했으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에서 연구원으로도 근무했다. 현재는 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이름과 뜻을 같이하며 교육을 바꾸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