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결’ 없는 핀란드의 성공적 교육
1943년, 핀란드는 한창 2차 세계 대전에 휘말려 국내외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놀랍게도 바로 그해 핀란드에서는 세계 최초로 모든 학생에게 무료로 급식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지난 76년간 한 해도 쉬지 않고 계속된 이 무료 급식제도는 핀란드 학생들에게 커다란 긍정적 영향을 주었다. 특히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좀 더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나폴레옹도 “군대는 위장(胃腸)으로 행진한다(An army marches on its stomach)”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필자도 핀란드를 세계 교육 선진국으로 이끄는 데 공헌한 공신 중 하나가 소박하지만 따뜻한 한 끼의 학교 급식이었다고 믿는다. 하지만 잘 먹었다고 다 잘 싸우고, 공부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핀란드가 OECD 국제학업성취도(PISA) 순위에서 여러 번 상위권을 차지한 데는 다른 이유도 물론 있다.
핀란드는 수백 년간 독특한 역사적 배경을 거치며 ‘평등’이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았다. 사람들 마음속에는 부모의 재산, 지위, 주거지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다 같은 교육을 받을 평등한 권리가 있다는 믿음이 자리 잡았고, 지금도 그런 믿음에는 흔들림이 없다. 하지만 이런 믿음만으로 핀란드 교육의 성공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 시점에서 나는 핀란드 학교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내는 선생님들을 이 이야기에 등장시키고 싶다. 사람들의 평등 교육에 대한 믿음은 바로 이 선생님들로 인해 현실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핀란드는 어떻게 훌륭한 선생님의 양산국(量産國)이 되었을까? 결론부터 먼저 말하면 큰 비결은 없다. 교사들은 그저 매일매일 ‘모든’ 학생을 한 명도 낙오자 없이 다 이끌고 가려 했을 뿐이다. 그 길은 때로는 지루하고 단조로운 일상의 연속이었다.
핀란드 선생님들이 학습부진아를 지원하는 방법으로는 소규모 수업, 개별화 수업, 역순 학습(逆順學習, flipped learning) 등 강의보다는 학생과의 상호작용에 수업 시간을 더 할애할 수 있는 다양한 교수학습 방식을 택하고 있다. 하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그 방법은 사실 학생 수만큼 무수히 많을지 모른다.
세계 각국은 몇 년 전 개정된 핀란드 교육 과정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학생의 적극적 수업 참여, 현상기반학습(phenomenon-based instruction), 간교과적(interdisciplinary) 혹은 범교과적(multidisciplinary) 접근 방식 등이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최근에 교육 과정을 통해 공식화된 것일 뿐, 사실은 오랫동안 비공식적으로 핀란드 학교에서 가르쳐온 방식들을 집대성해 놓은 것이다. 디지털시대에 맞춰 혁신적인 새로운 교육법이 마치 하룻밤에 탄생한 듯 보이지만, 그 뒤에는 산고의 고통과 수고를 오랫동안 감내하며 효과적인 교육 방법을 고민했던 많은 교사들의 땀과 정성이 녹아 있다.
훌륭한 교사보다 더 혁신적인 교육법은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것이다. 지난 세기 내내 핀란드는 좋은 교사를 양성해낼 수 있는 사범 대학 제도를 꾸준히 발달시켰다. 이를 통해 석사학위를 소지하고 교육에 통찰력을 지닌 교사들이 배출됐다. 하지만 이들을 자격 있는 교사로 만든 것은 석사 졸업장만은 결코 아니다. 이들 마음속에 일렁이는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충만한 내적 동기가 이들을 진정한 교사로 탄생시켰다.
그런데 내적 동기와 책임감을 지난 교사가 만들어지려면 중요한 선행 조건 하나가 있다. 바로 교사에게 주어진 광범위한 자율권이다. 핀란드 교사는 적어도 그들의 수업에 있어서는 거의 전권을 행사한다. 계획부터 평가까지. 모든 것이 그들의 손에 달려 있다. 권한은 책임감과 헌신으로 이어졌다. 이런 무한한 자율권은 교사를 존경하는 핀란드 사회의 따뜻한 시선이 있기에 가능했다. 핀란드에서 교사는 다른 어떤 직업보다도 존경받으며 전문가로 대우받는다.
이렇듯 핀란드 교육은 사회, 제도, 사람이 합심해서 큰 비결없이 만들어진 꽤 괜찮은 작품이다.
[부록]
<2014년 발표된 핀란드 최신 교육과정에 명시된 학습부진아 예방 및 지원방법>
∎ 3단계 학습 지원
1. 정기 지원(Regular Support)
• 교사의 학생 관찰(이전 자료도 포함 가능)에 기초한 학습 개별화
• 교실의 구조 변환 (예: 앉는 자리 순서, 공간의 정리 정돈, 협력학습 강조 등)
• 배움이 다음 배움(learning -to-learning)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는 능력 배양
• 구체적인 예 제시
• 다양한 교수법, 교구, 교재 (예: 오디오북, 교과서 외 다양한 독서)
• 유연한 학습 그룹 형성, 공동 교수법
• 시간표 블록화
• 개별 지도
• 학생 복지 담당 팀(학교 사회복지사, 의사, 상담교사, 양호교사)으로부터의 임시적 지원
• 발전적이고 교육적인 토론 활성화
• 학교와 가정 간의 긴밀한 협력
• 보정 교육(Remedial teaching), 강제성을 지닌 보정 교육도 가능
• 방과 후 숙제 도와주기
• 시간제 특수 교육
• 보조 교사 임시적 사용
2. 추가 지원
• 각 학생에 맞춘 개별화
• 명시화된 목표 기록(자아 평가를 포함한 지속적 평가의 도움)
• 여러 동시적 지원 및 중재
• 정기적이며 다양한 보정 학습
• 다양한 맞춤형 지원 자료
• 소규모 그룹으로 임시적 이동
• 학습과 학교 출석에 문제점이 있는 학생들은 반복적 지원 필요
• 학생 복지 담당 팀으로부터의 장기적 지원
• 더 빈번하고 정기적인 학교와 가정의 협력
• 사회복지제도로부터의 지원
• 여러 단계에 걸친 집중적인 팔로우업
• 핵심 요구사항에 집중(예: 개별적 시험)
• 무학년제 수업
• 보조 교사의 더 많은 활용
3. 특별 지원
• 학생의 진척 상황에 따른 수업의 지속적 개별화
• 학습과 학교 출석에 문제가 있는 학생에 대해 다각적 지원
• 재활적 지원 혹은 교육적 재활
• 긴밀한 협력 네트워크
• 강의안 개별화
• 의무 교육 연장
• 더 활발한 보조 교사 활용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카리 살미넨(Kari Johannes Salminen), 핀란드 교육위원회 이사회 회장, 전 중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