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꽃피는 아이들]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은 사람
| 본 글은 2021년 ‘서울시교육청’의 학습성장스토리 공모전 사례집인 <사랑으로 꽃피는 아이들>에 게재되었습니다. |
독일어를 가르치다가 일본어를 가르친 지 벌써 20년.
히라가나조차 몰랐던 내가 초등학생 두 아이를 둔 엄마가 되어서,나이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반강제적으로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부전공 연수였다. 연수를 시작하기 전 집안일보다는 굳은 머리가 걱정되어 두려움으로 시작한 1년 연수였다. 밤이면 아이들 숙제 봐주랴,집안일 하랴 시간은 안 나고 몸은 녹초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날마다 보는 쪽지 시험과 숙제를 내팽개칠 수는 없는,고지식의 표본인 교사 집단의 일원인지라 지하철에서 남이 보든지 말든지 책을 펴들고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일본어가 쉬운 외국어이고 동료들끼리 경쟁하며 해서인지 일취월장한 실력을 가질 수 있었다.
1년 부전공 연수가 끝나고 학교로 돌아가 학생들에게 첫 시간에 나의 이야기를 해주며 40세에 시작한 나도 이렇게 잘하는데 말랑말랑한 뇌를 가진 너희들은 나보다 더 쉬울 것이라고 자극과 용기를 주며 첫 시간을 열곤 했다. 3월 한 달,4주 8시간을 히라가나만 익히는 시간을 가지며 내가 고등학교 때 했던 깜지 수준으로 연습장을 매시간 채우도록 쓰기 공부를 시켰다. 46개 히라가나만 익히면 일본어는 독학이 가능한,세상에서 가장 쉬운 외국어이고 그 표본이 ‘나’라고 강조하기에 학생들도 열심히 따라 온다.
그런데 매년 반에서 3~ 4명은 아무리 시켜도 그 시간만 지나면 매번 백지 같은 머리로 아무것도 생각 안 난다고 ‘배 째라’하는 얼굴로 모르겠다고 한다. 교실 뒤로 내보내 따로 공부하게 하고 그림으로 연상해 글자를 쉽게 암기할 수 있는 방법도 따로 가르치며 독려해 보았다. 하지만 내가 먼저 나가떨어지기를 기다리는지 막무가내로 안 외워진다고 버티며 시간마다 엎드려 있으려고만 한다. 이런 학생들을 매년 접하며 나의 능력 탓을 하면서도 뭐가 바쁜지 한 발짝 더 나가 해 볼 여유가 없었다.
그러던 중에 키다리샘을 접하게 되면서 ‘나도 특별 수업이 의무가 되면 포기하지 않고 끝장을 볼 때까지 해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었다. 공부는 머리보다 의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수업 중에 공개적으로 처음부터 나와 다시 시작해보고 싶은 사람은 찾아오라고 했다. 10월 중순으로 2학기도 많이 지나간 시점이고, 3학년이면 계속하지 않을 일본어라 희망자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3명이 가만히 찾아와서 해 보겠노라고 한다. 그 순간 난 얼마나 나 자신을 반성했는지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다음 단원으로 넘어가야 하기에 모든 학생들의 성취도를 헤아려 언제까지나 히라가나만 계속할 수는 없었지만, 그 중에는 알고 싶은데 머리가 안 따라줘서 참 답답하게 생각하는 학생들도 있었구나 싶었다. 그래, 찾아온 이 학생들을 반드시 일본어 문맹에서 탈출시켜서 일본 애니메이션을 좀 더 즐겁게 보고, 노래도 감정을 넣어 부를 수 있게 해 주리라 마음먹고 시작했다.
자발적으로 찾아온 학생들이지만 시작하자 또 1:1로 지도해도 히라가나를 돌아서면 잊어먹기를 반복하며 천진난만한 얼굴로 또 ‘모르겠어요.’를 연발한다. 그렇다고 내가 포기할 수는 없지, 다짐하며 도망가지 못하게 점심시간마다 불러 3분씩 히라가나를 외우게 하고, 간단한 단어로 쪽지 시험을 보며 10번쯤 공부했을 때이다. 사시미, 히로시마, 유카타와 같은 본인이 뜻을 아는 단어를 일부러 골라 반복해 단어 쓰기 시험을 보았더니 어느 순간 읽기도 어려워했던 히라가나들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평소 감정 표현을 잘 못하는 내가 그럴 때마다 “그래〜 맞았어, 잘했어!”를 연발하게 될 정도로 나도 흥분하고 학생들도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글자를 알고 나니 이제 유용한 표현이나 문법들은 일사천리로 따라온다.
가르치는 사람이 고비와 같은 어느 순간만 넘겨주면 그 다음에는 스스로의 힘으로 해낼 수 있는데,그동안 내가 너무 학생들을 일찍 포기했었나 보다. 기억력이 안 좋다고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기본만 잡아주면 천천히라도 따라올 수 있는데.
경력 30년이 되어서 또 한 가지 배운다. 운동이나 다이어트도 참고 할 수 있는 데까지만, 늘 그 지점까지만 하고 참기 힘든 순간이 오면 중단한다. 그런데 바로 그 지점을 넘겨야 비로소 살이 빠지고 성적이 오르는 것을 알면서도, 학생 지도에서도 난 늘 그랬었나 보다.
좀 더 버틸 것을……. 나는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은 사람이다.
“가르치는 사람이 고비와 같은 어느 순간만 넘겨주면 그 다음에는 스스로의 힘으로 해낼 수 있는데, 그동안 내가 너무 학생들을 일찍 포기했었나 보다. 머리가 안 좋다고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기본만 잡아주면 천천히라도 따라올 수 있는데……”
잠신고등학교 교사로, 2021년 서울시교육청이 실시한 학습성장스토리 공모전 사례집인 '사랑으로 꽃피는 아이들'에 글을 게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