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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서울학생 세일링 프로그램의 부활을 꿈꾸며 -장보고의 후예양성과 해양강국 프로젝트-

#450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2019.05.02

언젠가부터 이맘때가 되면 한강에서 1인승 요트(돛단배)의 시원스런 질주를 보는 것이 낯설지 않다. 종이배처럼 작은 요트가 돛을 높이 세운 채 순풍을 가득안고 한강을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모습은 보기에도 상큼하다. 가끔 햇살에 반짝이는 강물을 요트가 가르고 지나갈 때는 너무나 아름다워 그림을 그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다. 서울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한강은 요트를 타기에 충분히 넓고 길다. 지금도 그렇지만 머지않아 한강은 서핑보드와 세일링의 요람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세일링으로 강화도 입구나 서해 섬까지 다녀오는 게 붐을 이룰 것 같다.

 

나는 교육감 시절 서울학생들에게 1인승, 2인승 요트를 가르칠 마음을 먹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절대다수의 학생들에게 요트는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선망의 대상일 뿐이다. 나는 학교에선 누구든지 가치 있는 무엇이든 해볼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고 골프나 요트, 승마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른바 고급스포츠에 대해서는 무조건 열악한 지역의 학교부터, 저소득층 아이들부터 우선접근권을 가져야 한다고 믿었다. 마침 서울교육청은 대천에 임해수련원을 운영하고 있었고 너른 한강을 끼고 있었다. 바다로 둘러싸이고 강과 호수가 많은 우리나라 어느 지역인들 그렇지 않으랴만 서울도 아이들에게 수상스포츠를 익히게 하는 데 좋은 조건을 갖췄다.

 

세일링은 최고의 수상스포츠다. 승마와 요트는 어느 나라에서나 국민소득 3만 불 시대부터 이용인구가 많아진다는 통계도 있다. 나는 밴쿠버에서 6개월을 지낼 때 1인승 요트에 관심을 갖고 2시간 5회 강습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다. 잡다한 지식을 배우고 다양한 체험을 했다. 그중에서도 한 가지 잊을 수 없는 게 있다. 돛과 사람이 한쪽으로 쏠려 배가 뒤집혔을 때 다시 뒤집어서 바로 세우는 방법이다. 이럴 때는 두 손을 벌려 뒤집힌 배의 정중앙을 잡고 머리와 몸을 뒤로 최대한 뒤로 젖혀 머리를 물속에 집어넣으며 힘껏 끌어당겨야 한다. 다른 어떤 방법도 안 통한다. 신의 한 수를 배우며 이런 생존지식은 누구나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돛단배 세일링은 기본적으로 바람과 물길, 밧줄의 과학을 몸에 익히는 과정이다. 강이건 바다건 호수건 돛단배를 띄우고 바람의 힘으로 운항하려면 무엇보다 바람과 물결, 기상조건을 읽을 줄 알고 밧줄을 풀리지 않게 묶을 줄 알아야 한다. 바람을 타고 물살을 가르는 짜릿하고 시원한 재미를 만끽하려면 먼저 날씨와 풍향, 물때와 물살에 대한 살아있는 과학지식을 길러야만 하는 것이다. 1인승을 타건 2인승을 타건 망망대해에 나가면 절로 겸손한 야성과 용기가 길러지고 2인승 이상을 타면 절로 팀워크를 익히게 된다. 그뿐 아니다. 무거운 배와 돛대를 창고에서 끙끙대며 옮겨서 조립해야 탈 수 있고 돌아와서는 다시 무거운 돛을 해체해서 배와 함께 창고까지 옮겨놓아야 해서 근력도 필수적으로 길러야 한다.

 

나는 세일링에는 교육적으로 아주 독특한 장점이 많다는 판단 아래  2011년 5월부터 한강 세일링 1일 체험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40인 버스 두 대를 임대해서 하루 80명의 학생을 한강으로 실어 날라 하루 4시간씩 첫 해에는 2천 3백 명, 둘째 해에는 2천 9백 명, 셋째 해에는 3천 2백 명에게 체험교육을 실시했다. 인기프로그램이 될 것이 틀림없으므로 서울의 가장 열악한 초등학교들에 우선권을 줬다. 4시간 중 첫 시간은 안전교육을 하고 2시간 반은 1인용 요트를 셋이 번갈아 타는 프로그램이었다. 풍속에 따라 달라졌지만 보통 40미터 떨어진 곳에 설치된 부표까지 갔다 돌아오기를 학생 1인당 10회씩 했다.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했을지는 상상에 맡긴다.

 

얼핏 걱정하는 것과 달리 예산은 많이 들지 않았다. 2011년에는 예산이 잡혀있지 않았으므로 교육감전용예산(교육감쌈짓돈으로 불리는 일종의 특별활동비 예산)에서 1억 5천만 원을 지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울교육청 학생연수원은 이 돈으로 1인승 요트 10여 대를 구입해서 2천 3백 명을 교육했다. 2011년부터는 버스 임대비와 강사지원비만 들어가서 1억으로 3천 명 안팎의 학생에게 요트교육을 할 수 있었다. 학생 1인당 3만 원 꼴로 수상스포츠 체험 교육을 4시간 제공했으니 그 자체로는 고비용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초급과정을 다 익히려면 시간과 비용이 더 들어간다.

 

첫해 예산은 교육감특활비로 충당했으나 2012년에는 교육청 공식예산이 투입됐다. 2013년 예산안을 사실상 정해놓고 교육청을 떠났기 때문에 2013년에도 비슷한 규모의 예산지원이 이뤄져 참여인원 3천 2백 명으로 최대치를 찍었다. 나는 매년 1만 명의 서울초등학생들에게 세일링 1일 체험교육을 시켜볼 작정이었고 중학교에서는 방과 후 스포츠의 하나로 집중 지원할 속셈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해양재단, 대한요트협회, 생활체육인요트협회 등 유관기관들도 서울교육청의 수상스포츠 활성화정책에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의지를 보였다. 세일링이 주류스포츠의 하나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학교교육과정과 연계되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2014년 이래로 서울교육청의 한강 세일링 1일 체험교육 프로그램은 1년에 240명에게만 열려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는 소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박근혜 정권당시에는 누리과정 예산전가로 교육청 예산형편이 나빠졌기 때문에 규모를 대폭 줄였을 테지만 다시 예산사정이 나아진 이후에도 학교야영 같은 저비용 수련교육에 비해 고비용이고 교육우선순위가 낮다는 판단으로 맛보기로만 운영하는 게 아닐까 짐작한다. 이런 정책판단에도 일리가 없는 건 아니겠으나 이제는 세일링 학교교육이 세계로 뻗는 ‘장보고’의 후예와 해양강국을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점에서 새롭게 볼 때가 됐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서울교육청이 서울시청 및 유관스포츠단체와 긴밀히 협력해서 서울학생 누구나 수영이나 세일링을 원하는 만큼 배우고 즐길 수 있도록 한강 곳곳에 필요한 시설인프라를 구축해서 생존수영 활성화와 함께 수상스포츠 활성화에 앞장서기를 바란다. 한강변을 따라 수십 군데에 세일링 방과후학교가 생겨나서 우리 학생들이 저비용으로 세일링 등 수상스포츠를 맘껏 즐기며 야성과 근육, 과학지식과 팀워크를 동시에 키우길 바란다. 당장은 세일링 교육프로그램을 무기력에 빠진 아이들의 야성과 도전정신 회복 교육프로그램으로 사용하면 좋을 것 같다. 마침 한강에 몇 군데 대규모 수상스포츠센터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때를 놓치지 말고 서울학교들이 교육청의 지원 아래 수영과 세일링은 물론 카누, 카약, 조정 등 수상해양스포츠교육을 대폭 활성화하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말: 서울, 대구, 대전, 광주, 세종, 충북을 제외한 11개 시도 교육청은 바다를 끼고 있어서 세일링 등 해양스포츠 환경이 나은 편이지만 세일링 등 해양스포츠교육을 얼마나 체계화, 활성화했는지는 필자가 조사하지 못했다. 일단 바다를 낀 교육청들이 해양강국의 비전 아래 해양스포츠교육의 보편화에 앞장서는 담대한 실천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그래야만 대양으로 뻗어나가는 꿈과 용기, 야성을 지닌 장보고의 후예들을 양성할 수 있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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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서울시교육감 곽노현

서울법대와 펜실베니아대 로스쿨에서 수학한 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교수로 재직하며 노동법, 사회보장법, 공정거래법, 인권법을 가르쳤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과 사무총장을 역임했으며 5.18 시민상을 수상했다. '행복한 교육혁명'을 가치로 2010년 6월 2일 서울교육감으로 선출돼 공교육의 표준 교체와 교육행정 혁신을 시도했다. 대표적 교육정책으로는 체벌금지와 학생인권, 문/예/체 교육과 혁신학교가 꼽힌다. 인사, 사학, 시설, 구매 등 모든 교육행정에서 시민참여와 투명성을 북돋으며 사회적 책임을 불어넣기 위해 애썼다. 701일이라는 짧은 교육감 재임기간에도 불구하고 공교육 2.0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를 놓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2014년 4월부터 펙트TV에서 '곽노현의 나비프로젝트, 훨훨 날아봐'로 진보적 관점의 교육전문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징검다리 교육감> 등이 있다. 본래 강자를 법의 지배 아래, 약자를 법의 보호 아래 두는 법치주의의 전사였으나 이제는 교육계 사람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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