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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2021년, 대학 파산의 시작

#432 김경범, 전 서울대학교 교수 2019.03.06

통계청이 지난 2월 27일에 2018년 출생아 수를 발표했다. 326,900명! 새로운 최저기록이다. 2016년 출생아는 406,243명이었고 2017년 출생아는 357,771명이었으니까 지난 2년간 48,472명 + 30,871명 = 79,343명이 적게 태어났다. 현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는 전부 다시 만들어야 한다. 저출산 사회,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 우리 사회는 어찌할 줄 모르고 있다. 공식적인 국가 통계를 잡기 시작했던 1970년에 1,006,645명, 1971년에 1,024,773명이 태어난 이후 우리 사회는 가파르게 늙어가고 있다. 2018년에는 여성 한 명이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출생아 수(합계출산율)도 0.98명으로서 1명 아래로 떨어졌다. 간단하다. 1970년에 100만 명이 태어났다면 50년 후인 지금은 출생아가 1/3로 줄어들었다. 사람이 없다.

줄어드는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고 저점이 예상보다 낮을 뿐, 저출산 문제는 사실 그리 새로운 일이 아니다. 정부는 저출산 예산으로 지난 13년간 143조를 투입했고 올해도 23조 4000억이 책정되어 있다. 인과관계가 없지만, 작년에 아이 한 명이 태어나는데 투입된 정부 예산이 9000억이라는 주장도 있다. 저출산·고령화 사회로 급격하게 진입하면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어 생산량이 저하되고, 국민연금과 건강보험도 조만간 고갈되리라는 우려도 크다. 현재 추세로 본다면 올해 이후 합계출산율이 극적으로 반등하거나 출생아가 늘어날 특별한 계기가 생길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좀 더 떨어졌다가 조정기를 거쳐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클 듯하다. 그래서 출산율을 높이려는 노력도 계속해야겠지만, 그보다 낮은 출산율과 초고령화 사회를 현실로 긍정하고 새로운 사회 구조와 경제 구조를 도모하는 방향으로 정부 정책을 전환하는 게 더 현실적일지도 모른다. 출생아 감소가 가난한 미래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교육이 달라져야 한다. 사람이 줄어도 한 명 한 명이 더 많은 생산을 할 수 있다면 사회 전체가 가난해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교육적으로 “순결한 담론”은 아니지만, 학교 교육을 통해 개인의 1인당 생산성을 높여야 우리 사회 전체가 가난했던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출산 문제의 경제적 해법은 학교 교육에 있다. 간단하다. 하지만 어렵다. 우리는 지금까지 거의 표준화된 교육을 해왔다. 어떻게 해야 한 명 한 명 각자에게 맞는 맞춤형 교육을 할 수 있을지 방법도 구체적이지 않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여건도 부족하다.

 

이렇게 출생아 감소는 교육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특히 국가가 (거의) 무상교육화하고 있는 초중등교육과 개인이 비용을 부담하는 고등교육의 연결 고리인 대학입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비록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교육부의 학령인구 추정에 따르면, 올해 치르는 2020학년도 대학입시를 기준으로 학령인구는 500,126명이고 대학 진학 대상 인원 추정은 470,812명이다. 대학의 정원은 484,830명이다. 정원 외 선발 인원은 제외된 수치이다. 이렇게 올해 처음으로 대학 입학자와 대학입학 정원의 역전 현상이 발생한다. 여기에 교육부 관할 대학들의 정원외 정원 4.5%(22,187명)와 교육부 외 다른 부처가 지원하는 카이스트, 사관학교 등의 모집 인원을 더하고, 선취업 후진학 등 대학 진학 희망 인원의 감소까지 고려하면 역전 현상의 폭은 더 늘어난다. 재수생이 입학 정원을 늘리는 효과가 있는 만큼 대학의 실질적인 등록금 수입 감소로 이어지며 상향 지향성을 갖기에 대부분 대학의 경우 재수생의 존재는 상황을 더 어렵게 한다. 일본 대학의 경우 2008년을 정점으로 2009년부터 ‘전입시대’(全入時代)가 시작되었다면, 기준에 따라 시점이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우리는 올해부터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일본에서 전입시대가 대학 파산의 시작이었듯이, 우리에게도 올해부터 대학 파산의 징후가 본격화될 것이다.

 

사실 이미 전부터 많은 대학이 실질적으로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2019학년도 정시까지 학생을 충원하지 못해 올해 2월에 추가모집을 한 대학이 4년제 대학만 167개(7,437명 모집)였다. 전체 4년제 대학의 약 85%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약 30개 대학 정도만 추가모집을 하지 않았다. 이 대학들은 추가모집을 할 필요가 없었거나, 아니면 그럴 의지가 없는 대학일 것이다. 2018학년도 대입 정시에서 추가모집을 한 4년제 대학이 157개(8,591명 모집)였으니, 올해 추가모집을 한 대학의 수는 10개 늘었고 모집 인원은 1,154명 줄었다. 4년제 대학이 이런 상황이니 2년제 대학의 상황은 어떨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만약 대학교 입학 정원 대비 등록금을 낸 2학년, 3학년, 4학년 학생 수 및 졸업생 수를 보면 대학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다. 중간에 옮겨가거나 포기하는 인원이 아직 공식적으로 조사되지 않았지만, 만약 이 수치가 발표된다면 우리 사회는 대학의 실상과 미래를 알게 되리라 생각한다. 아래 표는 좀 더 분명하게 대학의 현실을 알려준다.

이 표는 이제 내후년부터 본격적으로 대학의 파산 도미노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정부의 지원으로 파산 속도가 조금 더 지체될 수는 있으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출생아 수의 감소 속도를 감안한다면 이 표의 예측도 오히려 느긋해 보인다. 매년 4월 1일을 기준으로 공개되는 한국교육개발원의 국가교육통계가 아직 발표되기 전이라서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작년도 4월 1일 기준 통계를 기준으로 보면 올해 고등학교 졸업생 수(522,510명)는 작년(592,116명)보다 69,606명이 줄어들고, 내년(457,866명)에는 올해보다 64,644명이 줄어든다. 그러니까 앞으로 2년간 고등학교 졸업자가 134,250명이 줄어든다. 이 수치는 모든 고등학생을 포함하므로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학생도 포함된 수치이다. 실제 수치가 위 표의 추정치와 거의 차이가 없다. 그 결과 2021학년도 대학입시가 끝난 후, 즉 2021년 2월에 불길한 예측은 현실이 되고 거의 모든 대학은 파산의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앞으로 2년 후 1,500명 규모의 대학 90개를 순식간에 붕괴시킬 쓰나미가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쓰나미의 위력은 점점 더 커진다. 2035년 학령인구는 최대 357,000명이고, 2036년의 학령인구가 올해 태어난 326,900(-α)이다. 조만간 30만 선도 무너질 수 있다. 30만 명이 출생하여 최대 20만 명이 대학에 가는 사회라면, 과연 몇 개의 대학이, 어떤 유형의 대학이 2036년 이후에 살아남을까. 아니, 대학이라는 교육체제가 살아남을 수는 있을까. 미래는 불안하다. 현재 대학은 333개(2년제 대학 136개, 4년제 대학 197개)이고, 정시모집 이후 추가모집을 하는 4년제 대학이 167개이다. 추가모집을 해야 할 대학은 해마다 점점 늘어날 것이다.

 

좀 더 현실적으로 대학을 돌아보자. 대학 등록금이 동결된 지 10년이 넘었다. 지금 모든 대학은 재정적인 문제를 안고 있으며, 더 좋은 교육과 연구를 위해 투자할 여력이 없다. 현재를 유지하기도 버거워한다. 창의융합교육, 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은 정부 지원을 얻기 위한 수사(修辭)일 뿐이다. 등록금 + (정부 지원금) + (발전기금, 기타 수익)이 대학의 재정 구조인데, 정부 지원금이 없는 대학도 수두룩하고 발전기금이 없는 대학은 더 많을 것이다. 대학은 자산을 팔아서 투자해야 하지만 팔다리를 자르는 일이라서 그럴 의지도 없고 그러려고 해도 이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상 정부(과기부, 교육부 등)의 지원이 없다면 특히 자연과학과 공학 분야에서 새롭고 창의적인 연구는 시도조차 하기 어렵다. 새로운 연구를 위한 대학 자체의 동력은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에 투자할 여력도 없고, 어쩌면 그럴 의지가 있는지도 불확실하다. 최근 강사법 사태에서도 확인했듯이, 과연 더 나은 교육을 고민하고 투자할 대학이 몇 개나 있을까. 대학원은 이미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고, 대학 학부 교육도 달라지지 않았다. 만성화된 대학의 재정 위기에 더하여 학생도 대폭 충원하지 못하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우리 사회의 고등교육은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다. 생존이 위험한 상황이지만 정부 지원에 길들여진 대학은 스스로 활로를 찾지 못하고 쓰나미 앞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다. 게다가 정부의 각종 규제는 대학 스스로 생존을 모색할 시도도 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지금도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데, 이대로 몇 년 더 흘러가면 대학은 파산할 뿐만 아니라 사회로부터 존재 이유를 부정당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70% 이상의 대학이. 정부의 적극적인 구조조정이 있어야 하지만, 정작 필요한 시기에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 마치 2년 뒤 대학이 고사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2022학년도 대학입시에서 적어도 70% 이상의 대학은, 아니 90%의 대학은 수능으로 줄을 세울지 내신으로 줄을 세울지, 수능으로 많이 뽑을지 학종으로 많이 뽑을지 관심이 없게 된다. 이런 건 부질없는 배부른 논쟁이다. 많은 대학은 생존을 위해 한정된 학생을 두고 충원 전략을 세우고 최대한 충원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굴 고를지 문제는 아마도 10% 대학이 가질 수 있는 호사일 것이다. 선발이 그리 중요한가. 대학 파산이라는 현실에서 지금까지 논의했던 이슈들은 부질없어지고 새로운 이슈가 부각될 것이다. 졸업장 색깔 고르는 선발에 매여 모두가 망하지 않으려면 유치원부터 고등학교에 이르는 학교 교육 개혁, 대학 교육과 연구역량 강화가 중요하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모두 자신이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주고, 그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살뜰하게 챙기는 학교 교육부터 필요하다. 과거 한때 정부에서 선발보다 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때는 그저 거룩한 말씀이었지만, 이제는 우리 사회의 생존을 위해 선발보다 교육이 정말로 중요한 때가 되었다. 새로운 사회가 다가오고 있다. 거의 모두가 배고픈 사회, 서로 보듬지 못하고 각자도생을 위해 싸워야 하는 사회, 나만 잘되면 된다고 믿는 사회. 우리가 지금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그렇게 된다. 지금 당장 고등교육 생태계를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그래야 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 파산의 쓰나미에서도 우리 사회가 생존할 수 있다. 이 문제를 두고 정부와 국회는 어느 대학을 먼저 정리할지, 파산한 대학의 자산 중 몇 %를 대학재단에 돌려줄지 논의하다 말았다. 사람을 어떻게 살릴지, 산업계와 지자체가 어떻게 협력하여 대학과 지역을 살릴지, 대학의 목적과 정체성을 어떻게 서로 다르게 설정하고 만들어갈지, 배드뱅크(bad bank) 방식의 파산과 재투자 체제를 어떻게 만들지, 논의하고 합의하여 실행할 일은 산더미처럼 많은데 어디서 누가 그 일을 하고 있는지 들려오지 않는다. 심각한 위기가 다가오는데 대학은 무엇을 하고 있나. 과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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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서울대학교 교수 김경범

스페인 마드리드 꼼쁠루뗀세 대학 박사 (중세 및 황금세기 문학), 페루카톨릭 대학 석사,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학사, (전)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기금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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