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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지난 100년을 돌아보며 교육의 다음 100년 대계를 준비할 때다

#424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2019.02.07

금년은 우리 역사에서 아주 특별한 해입니다. 전국에서 독립만세의 함성이 들불처럼 퍼졌던 3.1혁명 100주년이 되는 해지요. 1919년 3월 1일은 일제의 식민통치 아래서 신음하던 우리 민족이 불과 9년 만에 세계만방에 독립을 선언한 위대한 독립선언일이자 왕의 나라, 대한제국에서 국민의 나라, 대한민국으로 국체를 바꾼 대한민국의 건국선언일입니다. 그 후 오늘에 이르는 100년 동안 우리민족은 실로 파란만장한 경로를 거치며 전 세계가 놀라마지 않는 위대한 성취를 이뤘습니다.

 

지난 100년의 역사를 굵직굵직한 정치격변기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우리 민족은 전반기 50년 동안(1919~1968) 식민통치, 해방, 남북분단과 미소군정, 남북 단독정부 수립, 한국전쟁, 이승만 독재, 4.19혁명과 정권교체, 박정희 군사쿠데타와 군부독재를 겪습니다. 그 후 50년(1969~2018) 동안도 3선 개헌과 유신독재, 1980년 서울의 봄과 광주민주항쟁, 87년 6월 시민항쟁과 87년 7,8,9월 노동자대투쟁, 97년 말 외환위기와 DJ 집권, 2016년 겨울의 촛불혁명, 2017년 대통령탄핵과 촛불정부 출범으로 이어지는 험난한 길을 걸으며 국민주도로 민주화를 성취하여 오늘에 이릅니다.

 

지난 백년의 첫 4반세기 동안 우리 국민은 주권을 빼앗긴 채 성씨마저 갈아야 했습니다. 1945년 해방이 되었지만 남과 북에 각각 미소군정이 들어서고 그 후견 아래 단독정부가 수립됩니다. 통일을 기한다는 명분으로 북이 일으킨 한국전쟁은 유엔과 중국의 개입으로 국제전으로 비화해서 수많은 피를 흘린 끝에 3년 만에 휴전에 이릅니다. 전쟁의 결과로 남북사회가 군사주의로 물들고 남북관계는 극도의 불신과 증오가 지배하게 됐으며 적대적 공생관계의 분단체제가 더 강화되었습니다.

 

전쟁의 폐해와 후유증 속에서도 정전 불과 7년 만인 1960년, 우리 국민은 4.19학생혁명으로 이승만 독재정부를 무너뜨리고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룹니다. 그러나 전쟁으로 이상비대해진 군부가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혁명기의 정치혼란을 틈타 박정희 소장이 1년 만에 5.16군사쿠데타를 감행하여 민간정부를 뒤집어 엎습니다. 박정희 군부독재정권은 1972년 7.4.남북선언을 기화로 72년 10월 17일 친위쿠데타를 감행하여 유신정권을 자임하며 종신집권을 획책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암살되면서 잠시 ‘서울의 봄’이 펼쳐지지만 12.12.쿠데타로 군부를 장악한 전두환 소장이 1980년 5.18 광주민주항쟁을 유혈진압하고 다시 정권을 장악합니다.

 

전두환의 집권으로 군부정권이 7년 더 연장되었지만 우리 국민은 대학생이 전위에 선 치열한 민주화투쟁을 전개한 끝에 넥타이부대까지 가세한 6월시민항쟁의 힘으로 마침내 전두환 군부정권의 항복 선언을 이끌어내고 26년간 지속된 군부독재정권을 종식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우리 국민은 1987년 현행헌법체제가 들어선 이후에도 쉬지 않고 군사독재 과거청산운동과 반부패 투명성운동, 노동, 복지, 교육 주거 등 사회경제권 강화운동, 여권신장운동과 장애차별금지운동, 환경생태운동과 동물권리보호운동 등 다양한 사회운동을 전개하며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고 법치주의와 인권보장을 강화하는 일에 매진해 왔습니다.

 

민주주의는 일직선으로 발전하지 않습니다. 국민이 한 순간이라도 경계를 늦추고 방심하면 금세 국가권력과 금권이 국민의 주권과 시민의 인권을 억누르는 민주주의 후퇴 현상이 발생합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의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그랬습니다. 국정원의 대통령선거개입사건과 세월호대참사의 진실규명요구에 대해 박근혜 정권은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회피와 방해를 일삼았습니다. 그러다가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사태까지 드러나자 보다 못한 국민들이 촛불 하나씩을 밝히며 직접 광화문광장에 모입니다. 2016년 10월 29일, 드디어 광화문 촛불집회가 시작합니다.

 

우리 국민은 그해 겨울 주말 연속 100만 촛불집회를 조직해서 현직 대통령의 탄핵과 삼성재벌총수의 구속을 이끌어냅니다. 그리고는 조기대선을 거쳐 2017년 봄 촛불정부를 만들어냅니다. 역시 우리 국민은 위대합니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쓰레기 한 톨 남기지 않은 역사상 전례 없는 무혈혁명으로 전 세계의 찬탄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한국 민주주의가 지난 100년 동안 가장 강력하게 재충전된 순간을 꼽는다면 아무래도 2016년 11월의 촛불시민혁명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국민은 이때 각성된 주권자의 힘으로 다음 백년의 ‘춤추는 민주주의’를 향해 징검다리를 놓습니다.

 

1919년 3월 독립만세혁명으로 시작한 지난 100년의 험난했으나 위대했던 한국 정치사가 촛불혁명과 촛불정부의 등장만으로 마감되었더라면 다소 아쉬움이 남았을 겁니다. 분단체제에 결정적 변화가 없이 지난 100년을 마치는 셈이었으니까요. 하늘이 무심치 않았던 걸까요. 지난 100년의 마지막 1년을 장식하는 2018년 한 해 동안 거짓말처럼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사상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이 연이어 개최되며 한반도에는 평화의 기운과 상생의 희망이 그 어느 때보다도 넘실대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남과 북의 우리 민족은 3.1혁명으로 시작한 지난 100년의 역동적인 민족사를 분단극복과 남북상생, 평화통일을 향한 희망으로 마감할 수 있었습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지난 백년 우리 국민은 3.1혁명과 4.19혁명, 광주민중항쟁 등 유혈혁명과 6.10시민항쟁과 촛불시민혁명 등 무혈혁명을 거치며 민주주의와 인권보장, 법치주의를 향한 열망과 저력을 과시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지난 100년 동안 민주화만 이룬 게 아닙니다. 1950년 농지개혁과 1960년대의 경제계획에 기초해서 최소한 지난 60년 동안 우리나라는 압축적 산업화와 초고속 도시화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며 세계의 탄성과 부러움을 자아냈습니다. 물론 1997년 겨울의 혹독했던 외환위기를 위시해서 몇 차례의 경제적 위기와 조정기를 거쳤지만 그때마다 조기에 극복해서 마침내 2018년 말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서게 됐습니다.

 

자원도 변변치 않은 나라가 불과 반세기만에 압축적으로 올린 경제성과라는 점에서 여기저기 짙은 그늘이 없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라도 자부심을 가질만한 눈부신 경제발전입니다. 식민통치를 당했던 수많은 나라 중에서 독립 후 선진국 반열에 올라 대외원조를 제공하는 입장으로 바뀐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1980년대 이래로 정보화와 세계화의 격랑, 온난화와 환경생태 위기, 인공지능 기반 제4차 산업혁명이 차례로 몰아닥쳤지만 우리 국민이 나름대로 위기를 극복하고 기회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발휘한 결과입니다. 우리 경제가 여기까지 오는 데에는 우리 국민의 교육열과 근면성, 기업가정신과 함께 지속적인 민주화투쟁으로 개방성과 역동성, 투명성을 키운 게 크게 한몫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지난 100년, 특히 지난 30년 간 7중8중의 문명사적 격변기를 겪으면서도 나라와 개인의 살림살이는 일반적으로 윤택해졌습니다. 인구가 5천만 명이 넘으면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는 나라가 지구상에 일곱 나라밖에 없는 데 우리가 거기 끼게 된 겁니다. 이 가운데 식민통치를 당한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100불 안팎이었으니 요즘 세대는 그 변화를 실감하기 어려울 겁니다. 특히 현재의 아동청소년은 태어날 때부터 부강한 나라에 태어난 최초의 대한민국 세대입니다. 지금의 세대가 세계적으로 부유하고 자유로운 나라를 만들어주신 부모님과 조부모님 세대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할 이유지요.

 

그럼에도 우리 국민이 지난 세기에 이룩한 찬란한 성취는 분단된 남쪽 대한민국에 국한된 반쪽짜리 성취입니다. 한반도 평화정착과 평화통일, 승자독식 선거제도와 양당정치체제 개혁, 재벌체제 개혁과 경제양극화 극복, 남성중심 권위주의 직장문화 극복과 돌봄복지국가 완성, 인공지능시대의 일자리 나눔과 기본소득 보장, 기후변화 등 생태환경위기 대응과 신생에너지시대 개막 등 이미 드러난 다음 백년 초기의 시대적 과제가 우리 국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세대는 이미 역사상의 그 어떤 세대보다도 더 숨 가쁘게 달려왔지만 가능하다면 우리 세대가 직접 이런 문제를 다 해결하고 아동청소년 세대에게는 더 멋진 신세계를 물려주고 싶은 마음, 굴뚝같습니다.

 

우리 세대가 이 일을 제대로 못해내면 누구의 몫이 될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아동청소년 세대의 몫이 됩니다. 우리 학생들은 3.1혁명이 만들어낸 지난 100년을 마무리한 바탕 위에서 민족사와 세계사의 다른 백년을 활짝 열어갈 다음 100년의 주인공들입니다. 엄중한 인류문명사의 대전환기에서 살아가야 할 학생 세대에게는 창의력과 협업역량, 생태적 감수성과 과학기술의 사회적 책임성 이해가 필수역량이 될 겁니다. 차세대들에게 이런 역량이 있을 때만이 날로 복잡성과 규모를 더해가는 사회문제를 민주적인 집단지성과 무한의지를 발휘해서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학생 세대를 기성체제에 순응하며 시류에 떠밀리고 사적욕망만을 쫒는 부나비 같은 존재로 키워서는 우리나라의 미래가 없습니다.

 

교육은 미래를 준비하고 바꾸는 힘입니다.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담은 헌법과 교육기본법에 따르면 우리 국가와 기성세대는 학생 세대를 국내외의 어려운 이웃을 도울 이타적 홍익인간으로 키워내야 할 법적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는 자주적 생활인으로 성장시킬 법적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학생들이 국가와 정부, 법과 제도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민주시민의 자질을 함양해야 할 중차대한 법적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꾸물거릴 여유가 없습니다. 사생결단의 각오로 학교교육을 민주주의를 위한, 민주주의에 의한, 민주주의 교육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더 이상 우리아이들을 엘리트주의에 멍든 불행한 아이들로 키울 수 없습니다. 더 이상 경쟁과 각자도생의 처세술만 가르쳐서는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확보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교육계와 일반시민의 대토론을 거쳐 학교교육을 바꿀 의제와 일정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3.1혁명 100주년을 지내는 금년이 일본식민지 교육의 잔재를 청산하고 지금의 권위주의 교육과 엘리트주의 교육, 효율주의 교육을 극복하고 새로운 백년대계를 세우는 데 필요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낼 최적의 시점입니다. 현 시대의 특징을 염두에 두고 지난 100년의 성취와 한계에 터 잡아 다음 100년의 교육목적과 교육방법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지속적인 숙의토론과 연구조사, 공론화과정이 필수적입니다. 이미 시민과 학부모는 준비가 돼있습니다. 일반시민들의 민주시민의식이 가장 고양돼 있는 지금, 교사와 학생, 학부모와 시민을 모두 모아서 다음 100년의 교육청사진을 만들어보면 좋겠습니다. 문명의 대전환기가 요구하는 교육백년대계 수립을 위해 교육부장관과 교육감들, 전교조와 교총이 먼저 손에 손을 맞잡고 나서주기를 기대합니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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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서울시교육감 곽노현

서울법대와 펜실베니아대 로스쿨에서 수학한 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교수로 재직하며 노동법, 사회보장법, 공정거래법, 인권법을 가르쳤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과 사무총장을 역임했으며 5.18 시민상을 수상했다. '행복한 교육혁명'을 가치로 2010년 6월 2일 서울교육감으로 선출돼 공교육의 표준 교체와 교육행정 혁신을 시도했다. 대표적 교육정책으로는 체벌금지와 학생인권, 문/예/체 교육과 혁신학교가 꼽힌다. 인사, 사학, 시설, 구매 등 모든 교육행정에서 시민참여와 투명성을 북돋으며 사회적 책임을 불어넣기 위해 애썼다. 701일이라는 짧은 교육감 재임기간에도 불구하고 공교육 2.0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를 놓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2014년 4월부터 펙트TV에서 '곽노현의 나비프로젝트, 훨훨 날아봐'로 진보적 관점의 교육전문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징검다리 교육감> 등이 있다. 본래 강자를 법의 지배 아래, 약자를 법의 보호 아래 두는 법치주의의 전사였으나 이제는 교육계 사람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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