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 정치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 현재 교육제도‧정책 한계의 근본 원인을 생각하며 –
1. 들어가며1
공무원은 ‘정치중립의 의무’를 가지고 있다.2 많은 국민들이 이 법률에 익숙하기에 공무원이 노조에 가입하거나 정치편향성을 가지면 문제가 된다고 인식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정치는 정치인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국민들은 정치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를 가지고 있고, 정치는 전문성을 가진 특정 정당인들이 하는 어려운 일이라고 여긴다. 대한민국 정치사를 살펴보면, 정치인들은 국민에게 봉사와 헌신을 하지 않고 보수‧진보라는 프레임 속에 갇혀서 출신지역을 중심으로 정당을 나누는 희한한 상황을 오랫동안 지속시켰다. 특정 지역에서 오랜 기간 탄탄히 자리 잡은 정치인들은 아무리 부정한 일을 저질러도 지역민들의 변함없는 지지로 인해 다시 선출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보다는 선거시즌에 특정 정당의 색깔 옷으로 갈아입고, 지역민에게 90도로 인사하며 자신의 명함 돌리기에 더 열중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후진적 관행은 해방 이후 최근까지 이어졌다.
2017년, 우리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바로 헌정 사상 최초의 현직 대통령 탄핵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국정농단 사건이 알려지면서 국민들 상당수가 참여한 촛불민심에 의해 현직 대통령이 권좌에서 쫓겨나고 감옥에 수감되었다. 2017년 5월 대선 이후에는 검찰수사를 통해 숨겨져 있던 진실들이 밝혀졌다. 강남구 공무원들, 국정원과 군인이 정치댓글을 단 혐의로 줄줄이 구속되었으며 문화계 진보인사들을 대상으로 블랙리스트를 운영했던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또한 구속되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국민의 투표로 선출된 이들이 상관의 지시에 따라 불법적으로 정치에 개입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주목해 볼 부분이 있다. 특정 정당의 당원이 되어 선출된 이들이 윗선을 타고 공무원에게 지시를 내리면, 공무원들이 당당하게 거부할 수 있는 명분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몇몇의 경우는 명백하게 법률을 위반하게 되는 부적절한 사항들이었다. 이들이 처벌받는 것이 당연할지 모르나, 내막을 들여다 보면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선출된 이들이 인사권을 쥐고 위력에 의해 지시를 내릴 때, 현실적으로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공무원이 과연 몇이나 될지 묻고 싶다. 개인의 힘은 나약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법률과 제도의 불합리함을 얘기하고 싶다. 특히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로 갈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된다고 한다. 불합리한 지시를 외부에 알릴 수 있는 채널이나 소통 창구가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2017년 ‘국경 없는 기자회(RSF)’가 발표한 우리나라 언론자유지수 순위는 180개 국가 가운데 63위로 나타났다. 용기 내어 윗선의 불법 지시를 언론에 폭로하려고 해도 데스크3에서 잘려나가면 보도도 되지 않고 오히려 신변노출만 되어버리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에서 내부고발자의 말로는 거의 비극에 가깝다.4 보수적인 군‧경찰‧공직사회‧교직에서는 더욱 그렇다. 일반적으로 공직사회(公職社會)에서는 윗선의 뜻에 적응하는 길이 살 길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래서 영혼 없는 관료(官僚)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주어진 업무를 정해진 절차에 따라 처리하는 사람. 공직사회는 보통 관료제의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무척 보수적이다. 엄격한 위계질서 아래에서 상사들의 지시를 잘 따르고 움직이는 이들은 영전(승진)을 하는 반면, 그렇지 않은 이들은 승진에서 멀어진다.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부적절한 일이라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정치중립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많은 선거에서 5급 이상 되는 이들은 어떤 쪽을 선택하여 줄을 설지 강요받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선택한 쪽이 성공하면 많은 것들을 얻게 되지만, 반대의 상황이면 전부를 잃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일련의 사건들을 볼 때 공무원들의 건강한 정치 참여가 보장되었다면 안타까운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수의 사람이 저지른 부정한 일이라기보다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일들이 은연중에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는데 우리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공무원들의 정치 참여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음지에서는 더욱더 안 좋은 일들이 만연되어 관행적으로 일어나고 있고, 불법을 조장하는 일들이 일어난다. 반면, 견제와 균형이 제도적으로 잘 이루어진 집단에서는 특정 소수의 사람들이 정보를 독점하고, 그 안에서 정치적인 일들이 벌어지는 상황이 줄어든다.
2022년 내년은 대통령 선거와 지방자치 선거가 한 해에 이루어지는 해이다. 모든 관련 단체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공약을 유력 후보들의 캠프에 제공하고, 주요 공약이 채택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다. 그러나 공무원은 예외이고, 특히 교육계(특히 초·중등 분야)는 더욱 그렇다. 사학이 많은 어린이집과 유치원, 그리고 고등교육(대학, 대학원)이 오히려 더욱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정 영역은 배제된 채 균형적이지 않은 접근방식이 유지되고 있다. 공립학교 기준 국가직 공무원인 교사들은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수동적인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줄 창구, 정책의 창은 더 이상 열리지 않고 있으며, 근본적인 원인조차 모른 채 내부 갈등만 겪고, 외부에게는 불신(교사불신, 공교육불신)만 초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일부 교원단체들은 자치권(교육자치, 학교자치)을 폐기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교육과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정당을 가지고 대통령이 된 한 사람의 뜻으로 임명한 장관이 모든 것에 대한 판단권을 행사하게 된다. 이것에 동의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견제장치가 없다면 더욱 정치적이게 되는 것은 자명하다.
2. 교직의 상황은?
사립학교 교원을 제외하고 임용고사를 통과한 교원들은 모두 국가직 공무원에 속한다. 교사들은 자신들이 일반 공무원보다 더욱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교육계에서 정치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특정 보수‧진보 교원단체의 핵심세력이라고만 생각한다. 그리고는 정치를 철저하게 외면한다. 교사는 공무원이기에 정치 중립성을 지켜야 하고, 정치에 참여하게 되면 중징계를 받거나 구속되기도 한다. 과거 국가의 잘못된 정책에 대해 ‘시국선언’을 했던 많은 교사들이 정치중립의 의무를 위반했다며 징계에 의결되기도 하였다. 심지어 90%가 넘는 국민이 잘못했다고 인식하고 있는 ‘국정(역사)교과서’에 대해 정당하지 못하다며 문제제기하고 성명서를 낸 교사들도 정치중립을 이유로 징계 대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알다시피 과거 박근혜 정권 때는 수업 중에 세월호 추모에 대한 교육을 했다는 이유로 해당 교사들을 ‘정치중립의 위반’을 들어 징계를 요구하기도 하였다.5 이외에도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무조건 징계를 운운하면서 교사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
앞으로 학교 내에서 어떠한 비민주주의적인 일들이 눈앞에 펼쳐지더라도 눈감아야 하는 것이 현재의 교사들이다.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모든 사람은 동일한 생각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각자의 생각이 다름을 인정해야 하는 교사가 획일적인 사고를 조장하고, 옳지 않은 일에도 입을 다물어야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까? 학생들 앞에서 정의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언급과 해석조차 못한다면 정치중립의 의무는 너무 지나친 제약이다. 교사의 모든 정치활동을 통제하려는 족쇄와 같다. 정치중립의 위반은 과연 어디까지 확대 해석되어야 하는가? 잘못된 것을 보면서도 학생들에게 아무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옳은 것일까? 우리가 아는 선진국들은 모두 교원의 정치 참여를 허용하고 있다. 해당 국가들에서는 교사들의 정치 참여가 허용된다고 우려할만하거나 과격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6년 초‧중‧고 교사의 정치 참여 확대를 골자로 하는 ‘인권정책 기본계획’ 권고안을 확정한 바 있다. 국제교원노조총연맹(EI) 총회 참석 58개국 교원대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교원의 정당 가입과 선거활동을 허용하고 있느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한 나라가 36개국(62.1%)이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덴마크, 네덜란드, 캐나다, 노르웨이 등 선진국이 대부분이었다. 앙골라, 도미니카, 케냐, 짐바브웨 등의 나라도 교원에게 정치활동의 자유를 허용한다고 답했다.6 독일‧미국의 경우에는 교원 노조가 자신들이 후원하는 정당인을 당선시키기 위해 노력하며, 이와 관련하여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는다. 이는 국민으로서의 권리라 생각한다. 때문에 많은 정당에서는 투명하게 교육정책 대결을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정치중립을 핑계로 교사들이 획일적인 사고틀을 가지고 있기를 종용하며 헌법에 명시된 권리를 빼앗아갔다.7 일부 학부모들이나 국민들은 유‧초‧중‧고 학생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교사들이 더욱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믿는다. 학생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게 학생들의 판단을 유보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런데 정작 투표권을 가진 대학생을 가르치는 국립대 교수들의 정치 참여는 허용된다. 대학교원과 초중등교원은 동등한 수준의 정치 참여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정치는 정치인과 같은 특정한 누군가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는 자신의 의견을 정치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정치는 신성한 것이며, 치열했던 민주화 운동의 산물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시민 모두의 참여로 실현된다.
학생들에게도 어린 시절부터 철저하게 정치를 교육시킬 필요가 있다. 정치를 교육하는 것은 자신들의 권한과 의무에 대한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문화의 차이라 믿으며 교원들에게 정치 중립을 강요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학교를 들여다보자. 학생들은 학교에서 학생회 대표를 뽑으면서 민주주의를 몸소 실천한다. 교사들의 개입 없이 투명하게 운영된다. 정치 외에도 종교제도를 한 번 보자. 종교의 자유는 모든 교사들도 가진다. 학교 밖에서 종교 활동을 하지만, 학교 안에서는 종교 활동(포교)을 하지 않는다.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징계사유가 된다. 만약 학교 밖에서 교사들의 정치 참여를 허락한다면 문제가 생기거나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끼칠까? 의외로 건강한 사고방식과 주체적인 사고를 가진 학생들이 생길 것이다. 많은 이들이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문제가 획일적인 사고방식을 강요받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중립의 의무야말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문제가 많은 사안이다. 그것을 절대적이라 믿는 국민들의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3. 왜 교사들의 적극적 정치 참여와 교육정책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가?
교육의 3주체는 교사‧학생‧학부모를 말한다. 유‧초‧중‧고 학교는 교육정책 및 제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교육과정, 각종 세부 정책, 예산계획 모두 교육정책 및 제도와 연관되어 있다. 특히 대통령 선거와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있다. 대통령 선거의 교육 분야 공약들이 대부분 국정과제가 되어 5년 동안 유‧초‧중‧고 교육을 바꾸어 나갔다. 그것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지 않고 5년 내에 가시적인 단기성과를 위해 학교현장을 쥐어짰다. 어쩌면 성과보다는 실적을 위한 허위보고서의 작성을 유도했는지도 모른다. 아직까지는 중앙정부(교육부)의 권한이 대부분이어서 교육감 선거보다 그 영향력이 막대하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교육정책과 제도는 누가 만들어 왔을까? 바로 교수 그룹과 정치인들이다. 두 그룹이 나쁜 결정을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문제는 유‧초‧중등의 현장경험이 없어 교육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학교현장과 전혀 관련 없는 사업과 정책들이 갑자기 만들어지고, 전시행정이 반복되었던 이유도 공약을 만든 두 그룹의 현실적인 감각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정책을 펼칠 때 가장 중요한 인력과 예산을 추가적으로 주지 않아 교사가 교육보다 행정에 투입되는 현실을 초래하기도 한다.
공약은 무척 중요하지만, 대부분 국가 단위 공약은 사교육 억제, 대학등록금, 대학입시 정도에 그친다. 그쪽이 가장 자극적이고 국민들의 관심이 크기에 그렇다. 그러나 교육은 그 세 가지로 모두 대변되는 것이 아니다. 교육 전체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시스템이며 앞에서의 세 가지는 그중 일부분인 것이다. 단기간에 성과를 내야 하는 전시행정위주의 교육정책은 단위학교 구성원의 피로도 증가를 가져온다. 그 결과 대부분 정책들을 외면하다시피 하여 형식적인 사업과 줄 세우기식 평가만 남는다. 대표적으로는 교원성과급 제도와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시‧도교육청 평가 사업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관행적으로 교수들과 정치인들이 공약을 만들어왔다. 학교현장의 교원들은 정치중립성도 지켜야 하며 전문성도 떨어진다고 생각하였다. 정치중립성을 이유로 교사들의 정치 참여 기회를 배제하고, 입을 틀어막았으며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도록 수동적인 교사상을 강요하였다. 중앙정부에서는 교사들이 시키는 대로 따르도록 강요하였고 정치 참여를 요구하는 교사들을 비난하였다. 교사들을 정치가 나쁜 것인가에 대한 판단조차도 못하는 식물인간들로 만들었다. 교사들은 학생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교육정책에 대한 비판도 할 수 없었고, 학생을 도구화하는 정책에도 앞장서서 수행을 해야 했다. 정치 참여의 ‘권리’는 없고 정치중립의 ‘의무’만이 존재했다. 그러면서 국민들의 부정적인 인식은 모두 감당해야 하는 위계구조의 최하층에 있었던 것이다. 교사들의 정치 참여는 좀 더 나은 교육환경을 만들게 할 수 있고,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 세상을 바꾸게 할 수 있다.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정치 참여는 특권이 아닌, 모든 국민이 가지고 있는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기본권이다. 공무원이나 교사들의 정치 참여가 나쁘다는 인식은 과거 일제강점기나 군사정권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플라톤은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다.’8라고 했다. 교육에 있어서도 이것은 다르게 적용되지 않는다.
학교는 다양성을 가르치는 곳이어야 하며, 그곳은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환경일 필요가 있다. 교사들도 국민이기에 투표를 하고 학교현장에서는 학생들 앞에서 정치중립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자신들이 투표로 대통령과 교육감을 뽑으면서도 정작 자신들이 수행하는 정책에 대한 비판도 할 수 없는 위치에 놓인 교사들의 상황이 아이러니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3월 헌법 개헌안에 공무원 노동 3권을 인정하는 안을 제안하였다.9 교사들도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인 정치 참여를 요구하여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학교현장의 교육정책과 제도는 견제장치에 대한 부족으로 인해 폭력적이고 전시적으로 흐르고 있다. 교사들의 손과 발을 다 묶어 놓고 있는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학생은 교육정책의 희생자가 될 뿐이다.
4. 그렇다면 교사만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가?
학교는 교사들만 있는 곳이 아니다. 우리가 간과하곤 하지만 학교의 가장 다수의 구성원은 학생이고 이들이 학교의 주인이다. 학생과 학부모의 의식이 성장하고, 교사들과 견제와 균형을 맞춰야 한다. 학교마다 학교운영위원회가 조직되어 있지만 소수의 인원만이 참여하는 학교운영위원회는 평범한 학교 구성원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어렵다. 학교자치회가 만들어져 학교 구성원들이 모두 의견 개진을 할 수 있는 통로가 있어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 모두가 교육에 대한 정치 참여를 활발히 할 수 있는 제도가 보장되어야 한다.
학부모들도 정치인들의 교육 공약보다는 정당을 보고 투표한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래왔다. 반성이 필요한 부분이다. 지역감정이나 묻지마 번호 투표보다는 무엇이 교육적인지 공약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이것은 교육에 대한 학습을 통해 가능하다. 교육에는 책임이 따른다. 현재 민원이 쇄도하고 있는 학교에서 의무와 권리가 균형을 이룰 수는 없을까? 정부는 최근 아동수당이나 양육수당·보육료·유아학비를 신청할 때 모든 부모가 아동학대 예방·신고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방침도 정했다.10 이러한 교육과 유권자인 학부모의 책임을 연결하는 취지는 매우 합리적인 판단이다. 교육정책의 실행과정에서 교육예산이 어떻게 효율적으로 쓰이는 지 학부모들은 책임의식을 가지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투표로 인해 세상이 바뀐 사례들을 알게 되면 이러한 인식에 변화가 생길 것이다. 2009년 교육감 선거에서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의 당선으로 현재 무상급식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으며 그 선거로 인해 교육복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2011년 시작된 혁신교육지구 사업이 2014년 선거에서 전국적으로 의제화되어 현재는 서울‧경기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 사업으로 인해 그동안 시설 사업에만 투자되었던 예산들이 학교 내 교육프로그램으로 전환되어 투자되었다. 2014년 지자체 선거 이후 이재명 성남시장의 당선으로 무상교복 의제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지금은 광명‧용인 등 많은 지자체로 확산되고 있으며 경기도의회는 경기도 전체로 확대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11 2017년 5월 대통령선거에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에서 임기 내내 가장 문제가 많았던 누리과정 예산의 국가지원을 확정하였고, 국정역사교과서 폐지를 선언하였다. 모두가 유권자의 선거로 바뀐 교육정책이다.
2022년 교육부의 예산은 88조이다. 2022년 정부 예산 604조 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분야가 교육예산이다. 국방예산보다도 많다. 그동안 교육예산이 어떻게 쓰이는지도 몰랐고, 견제 받지도 않았다. 그러나 학부모들의 인식은 진화하고 있다. 유권자가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국민들이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다.
5. 나가며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교육과 정치의 분리는 불가능하다. 불가분의 관계이므로 학교현장에 있는 학교 구성원들의 고민이 필요하다. 현 제도의 문제점을 점검하고 개선을 위한 요구를 해야 한다. 매번 학생들을 교육정책의 실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최종적으로는 단위학교에게 교육정책을 만들고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권한을 주어야 한다. 현재 이것에 대한 모든 권한을 가진 사람들은 정치인들이다. 모든 국민이 정치인이 될 필요는 없지만, 누구나 참정권을 가지고, 자신의 참정권을 통해 정치인들이 각성할 수 있도록 자극해야 한다. 그리고 현장의 문제를 공약화할 수 있도록 많은 곳에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단지 그 목소리를 시민단체나 교원단체만이 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 청와대 홈페이지나 국민 청원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의견 피력이 가능하다. 그동안 그러했듯이 국민들의 선택에 의해 선출된 정치인의 교육정책이나 공약은 학생들의 행복도와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친다. 단순히 대입고사, 대학등록금, 사교육에만 초점을 맞춘 전시행정으로는 우리 교육이 변화하지 않는다.
학생과 학부모 중심의 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 현 상황에서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파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건강한 교육정보를 얻을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사교육시장은 교육의 혼선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교육정책에 대한 오염된 정보를 가지고 학부모들을 선동한다면 이들이 올바른 판단을 하는데 방해가 될 것이다. 학교나 지역교육청에서 ‘학부모 아카데미’를 의무화하여 무엇이 학생을 위한 교육인지에 대한 사전 교육과 학습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보 불균형의 극복만으로도 학부모의 권리와 의무가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학교현장에 있다고 모든 사람이 올바른 판단을 하지는 않는다. 우매한 대중은 더 어리석고 이기적인 판단을 초래하기도 한다. 교사들이 자신들은 정치에 관심 없다는 식으로 외면한 대가가 현재의 파행적인 교육환경과 교육과정이다. 교사들도 교육과정 편성권과 같이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앞으로 교육의 수요자가 정책에 참여하는 구조는 필수적이며 정치(공약 외)에서도 일정 부분 참여할 수 있는 영역이 존재해야 한다.
앞으로 국가주도형 교육과정과 대규모 정책 사업은 교육자치(시‧도교육청 위임)에 맡겨야 하며 역할의 명확한 경계가 필요하다. ‘중앙정부-교육부-시도교육청-지역교육청-학교-지역사회’의 역할이 명확해야 하며, 중앙집권적인 교육정책의 TOP-DOWN 방식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다행히 이러한 논의가 많이 나오고 있고, 교육부의 기능을 재편하여 국가교육회의에서 이것을 대체하기 위한 중장기적인 정책을 논의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교육자치 이후 시·도교육청도 교육부와 같은 거대 기관이 되지 말고 교육청을 축소하고 단위학교에 재량권을 위임해야 한다. 미래사회를 대비하려면 학생들이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학교자치회를 통해 구성원들이 교장이나 교육장을 선출하는 선거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미래사회의 주인공이자 학교의 실질적인 주인인 학생이 수업과 교육과정을 선택할 수 있도록 무학년학점제나 교육과정선택제가 마련되어야 한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교육정책과 제도는 이제 중단되어야 할 시점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각성과 적극적인 정치참여로 가능하다. 우리가 권리를 각성할 때 정치인들도 깨닫고 겸손해질 수 있다.

※ 본 글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각주
- 교육정책 스포트라이트(2019, 테크빌출판사)의 내용을 수정·보완하였음.
- 국가공무원법 제 65조(정치운동의 금지)
- 언론사 부장급 결재라인
- 안타깝지만 현재까지 내부고발자를 우대해 주는 시스템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유교적인 전통이 남아있기에 그렇다. 이것을 제도로서 극복해야 하는데, 현재는 그런 시스템이 거의 없다.
- CBS노컷뉴스(2016.04.05.)
- 오마이뉴스(2017.12.28.)
- 헌법 1조 1항, 2항
- 플라톤은 그리스의 수학자이며 철학자. 현대 대학의 원형, 아카데미아를 세웠다.
- 뉴시스(2018. 3. 20.)
- 머니투데이(2018.03.08.)
- 2018년 추진하려다가 추후로 미뤄짐.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연구위원이며, 교육정책 관련 다수의 저서 및 논문이 있다.
홍섭근님의 글에서 교원의 정치적 행위를 허용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고요. 적극적 선거참여에도 동의합니다. 그리고 플라론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중우정치의 폐해를 지적하는데 이 점 또한 동의합니다. 그러나 참 의문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중우가 아닌 시민이 민주적 정치과정에 참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홍섭근님은 자치라고 하면서 권력을 아래로 내려야 한다라고 대안을 제시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민주주의라는 것이 다수결은 하나의 필요조건이고 결국 권력을 다수에게 주는 것. 즉 아래로 내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홍섭근님의 주장은 교원의 정치참여을 허용해야 한다. 이것이 민주주의다. 그리고 학교구성원들에게 권한을 줘야 한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가진 의문은 여기에 있습니다. 당연히 권한을 주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그 권한이라는 형식이 실제로 민주주의적 기치로 실현되려면 권한을 행사하는 주체인 학생이나 교사가 이성적으로 사유하는 세계관이 확립되어야 합니다. 즉 좋은 민주주의는 좋은 시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시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정말 지금 어떻습니까? 지난 10년 동안 학교에 권한을 주지 못해서 자치가 실현되지 않았나요? 아니 교육청에 권한을 주지 못하여 그랬나요? 오히려 권한이 넓어졌는데도 자치는 자치답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바로 깨어있는 학생, 즉 이성적 판단의 내용인 사유능력인 학습능력이 부족해서입니다. 그런데 왜 학습능력이 부족해졌을까요? 왜 그랬을까요? 우리 아이들이 선거를 경험하지 않아서 그럴까요? 그게 아니라 어떻게 선거에 임하고 어떤 가치관으로 선거를 바라보는가에 대한 의식적 결여가 더 큰 요인이 아닐까요? 무학년 학점제나 교육과정 선택제도 그렇습니다. 아니 무학년 학점제를 하면 당장에 학력이 신장되며 학습격차가 줄어드나요? 무학년 학점제를 하면 흥미와 진로적성에 따른 교육과정이 실효성이 있나요? 교육과정 선택제도 그렇습니다. 제가 이런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책상의 편리함과 필요함을 찬양하기 전에 어떻게 책상이 만들어지며 좋은 책상이 되려면 어떤 나무와 어떤 망치와 못이 필요하며 어떤 순서에 따라야만 그 책상이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냐는 것입니다. 그것도 탐스럽게요. 그런데 정말 책상을 만들자 또는 교체하자 하는 분들은 책상만 말합니다. 그러면서 오직 과거에 바닥에 앉아있었더니 불편하지 않았느냐? 이런 이야기만 하십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지, 라지(large) 즉 큰 담론에 숨어있지 않다고 봅니다. 생명력있는 자치는 과정과 충실한 대안 그리고 이를 그대로 실행하려는 분들의 정직성에 있는 것 아닐까요?
과거에는 교육을 얘기하면서 항상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하곤 했는데…이렇게 깔끔하게 교육과 정치가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고 긍정적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인정 속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정북의 방향으로 교육이 발전해 갈 수 있도록 정치를 잘 이해하고 이를 십분 활용하는 지혜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박제원 선생님의 말씀처럼 교육주체가 발전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홍섭근님의 글과 박제원님의 댓글을 읽고 느낀 점.
두 분의 의견을 거칠게 나누자면, 학교 구성원(특히 교원)의 정치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교육자치의 정책적 기반을 좀 더 강화해야한다는 의견(홍섭근님)과 좋은 민주주의를 위한 좋은 시민을 기르기 위해 디테일이 필요하다(박제원님)는 의견으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두 분의 의견에 모두 공감합니다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로 느껴집니다.
홍섭근님의 주장은 일리가 있지만, 그 전에 쓰신 칼럼(교원의 지방직화 문제를 다룬 칼럼)의 내용과 배치되는 부분이 있어 보입니다. 본 칼럼에서 지적하신 대로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부적절한 일이라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 거부할 수 없는’ 교원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만약 지방직 공무원으로 신분이 변하면 어떻게 될까요. 비록 정당인은 아니라지만 교육감들은 행정가보다는 정치가에 가까운 판단을 내릴 수 밖에 없는데, 교육감의 잘못된 정책 결정을 국가직 공무원도 아닌 지방직 공무원의 신분인 교원이 거부하기 어렵지 않을까 추측합니다. 그래서 교원의 정치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기반 강화와 교원의 지방직화 두 정책은 상충하지 않나 합니다.
박제원님의 댓글을 읽으며 저는 곽노현 전 교육감이 이 게시판에서 소개했던 ‘보이텔스바흐 3원칙’이 생각났습니다. 경기도교육연구원의 장은주님의 ‘시민교육이 희망이다’에서도 소개하고 있듯, 좋은 민주주의는 좋은 시민에서 비롯되며, 시민을 기르기 위한 정치교육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홍섭근님도 본문에서 학생 대상의 정치교육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교원의 정치참여 기반 확충과 더불어 정치교육 내실화, 특히 보이텔스바흐 3원칙을 통한 민주시민교육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