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바꾸는사람들

칼럼 검색
칼럼 모아보기
ERICK squareal Research & Innovation Center of Korea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방학 생각

#379 권재원,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2018.07.18

곧 여름 방학에 들어간다. 방학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짧아진 여름 방학이지만 어쨌든 방학은 방학이다. 방학은 교사들에게 축복이자 저주다. 그나마 방학 때문에 학기말이 되면 빈사상태에서 허우적 거리던 교사들이 살아남는다. 이마저 없었으면 아마 과로사나 우울증 집단발병이 터져도 신기하지 않을 것이다. 교사의 일생이란 학기말에는 숨만 겨우 붙어서 헐떡거리다가 방학으로 긴급수혈 받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세월이 훌쩍 가고 청춘이 저 멀리 지나가버리는 그런 것이다.

 

그런 반면 모든 부조리한 처우들이 오직 “그래도 방학 있잖아?”란 한 마디에 정당화된다. 가령 세상 어떤 전문직들이 직원들이 하는 행정사무, 시설관리, 물품구매 이런 일에 시간을 다 쏟아야 하는지 따져보려고 해도 “그래도 방학 있잖아? 배부른 소리 하네.” 이 한마디로 묵살된다. 미국에서는 방학 때 월급이 안나온다는 괴담도 꼭 따라 붙는다. 사실 연봉제로 계약하는 미국 교사들에게 그 연봉이 열달에 나눠 나오든, 열 두달에 나눠 나오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7만 달러인가 10만 달러인가가 중요하지.

 

그나마 방학은 자꾸 줄어들고 있다. 주5일제가 도입되어 등교일은 주5일로 줄어들었지만, 거기에 맞춰 교육과정을 개편하지 않아 수업시간표는 주6일에 실시하던 수업을 5일에 때려넣은 꼴이 되었다. 결국 수업 시수가 모자라 방학을 그만큼 줄였고, 백일장, 소풍 등 어른들의 추억거리였던 여러 교외활동들이 대폭 축소되었다. 특히 여름방학이 많이 짧아졌다. 이걸로도 모자라서 교육당국은 어떻게든 방학을 무력화하거나 교사들을 출근시키려고 기회를 노린다. 아마 방학을 스스로 포기한 장학사, 장학관, 교장, 교감들이 막상 그걸 포기하고 나니 배가 아픈 모양이다.

 

그 중 하일라이트는 ‘새학기 준비기간 실시’ 라는 공문이 만들어낸 아수라장이다. 원래 취지는 좋다. 3월에 새 학기가 시작되니 2월을 ‘새학기 준비기간’으로 설정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2018년은 자율시행, 2019년은 전면시행’이라는 이상한 시간표가 붙어 있고, 이걸 본 교장들이 옳타꾸나 하면서 “2018년에는 자율적으로 방학중 출근, 2019년에는 방학중 전면 출근”이라고 우기기 시작했다. 물론 교육청에서는 그렇게 말한적 없다며 발뺌하고 있다. 결국 일선에서 교사와 교장의 입씨름으로 2월의 운명이 결정나겠지만,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는 교사가 교장을 절대 이길수 없는 북한스러운 제도를 자랑하고 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보통 직장인들은 배부른 소리 한다고들 할 것이다. 놀면서도 돈 버는 주제에 양심도 없냐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방학 있잖아?”, “방학때 돈 받지 마.” 이런 식의 손가락질이 초중고 교사들에게만 집중되고 오히려 방학이 훨씬 긴 대학 교수들에게는 거의 가지 않는다. 교수들이 방학 때 출근을 하건 말건, 주중에 꼬박 학교에 나가건 말건 그걸 따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교수에게 중요한 것은 강의의 질을 유지하고 훌륭한 논문을 써내는 것이다. 훌륭한 강의와 논문은 연구 시간에 비례하며, 그 연구를 꼭 학교에서 해야 할 필요는 없다.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연구가 제일 잘되는 곳, 혹은 연구에 필요한 자료나 자원을 구하기 쉬운 곳에서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그게 학교라면 학교에서 하는 것이고, 학교 밖이라면 학교 밖에서 하는 것이다. 오히려 일년 내내 학교에 출근해서 연구실에 8시간씩 붙어있다 가는 교수들 중에 무능한 교수가 있을 확률이 더 크다.

 

그렇다면 교사는 어떨까? 교사 역시 연구 시간이 필요하다. 애들 가르치는데 무슨 연구씩이나 필요하냐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애들을 가르치기 때문에 연구가 필요하다. 교수는 학문을 많이 연구하지만, 교사는 학문을 덜 연구하는 대신 그 학문과 “애들”의 조합을 연구해야 한다. 애들 수준으로 가르치기 위해 애들 수준으로 알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어른을 가르칠 때보다 더 제대로 알아야 한다.

 

교사는 감정노동까지 한다. 애들도 힘들게 하는데 학부모까지 가세했다. 대개 문제 학생은 문제 학부모와 콜라보를 하는 경우가 많다. 교사는 육체노동도 한다. 우리나라 교사는 교원이자 직원이다. 그래서 행정직원이 해야 할 각종 사무와 기타사무까지 상당 부분 아무 근거없이 수행하고 있다. 학교 CC카메라를 관리하고, 학교 홈페이지 보안을 담당하고, 각종 비품을 구입, 관리, 폐기한다. 심지어 행정실에서 필요한 각종 전산 소모품을 교사가 품의하는 일까지 발생한다. 이렇게 심신이 녹초가 된 교사에게는 회복 시간도 필요하다. 당연히 학기 중에는 연구할 시간도 회복할 시간도 없다.

 

교사에게는 수업 없는 시간이 기껏해야 하루에 한 두시간 정도다. 그 마저도 연구에 쓸 수 없다. 학생을 상담하고, 교실을 정리하고, 이런 저런 행정업무를 보다 보면 퇴근시간을 넘기기 일쑤다. 연구할 장소도 없다. 교수에게는 상태가 좋건 나쁘건 간에 연구실이 주어지지만 교사에게는 그런 공간이 1도 없다. 교무실은 수업을 준비하거나 연구를 하라고 만들어 놓은 공간이 아니다. 교사들을 한 군데 모아놓고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독재시절의 흔적이다. 교무실 한 가운데 자리잡은 ‘교감’의 직책명이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교사를 감시하는 자리다. 그래서 교무실은 교감은 가만 앉아서 교사들을 한눈에 볼 수 있지만, 교사는 일부러 고개를 돌려야만 교감을 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판 옵티콘이 따로 없다. 교무실은 연구도 휴식도 무엇도 할 수 없는 곳이다. 등 뒤로 교감의 감시하는 눈길을 느끼면서 그저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공문서 클릭질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애초에 우리나라가 교사에게 기대한 것이 그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교사더러 전문직이라고 한다. 전문직은 전문성을 유지하고 함양하는 시간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사들의 학기 중 노동가동률은 90%에 가깝다. 근무시간 중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일(자발적 연구가 아니라 미리 주어진 각종 업무)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사들은 수업준비와 연구를 학교에서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심지어 학생들 과제평가도 시험문제 출제도 집에 가서 밤이나 주말 동안에 해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초과근무수당 이런 거 1도 없다. 그냥 무상 재택 야근, 무상 재택 특근이다. 양식없는 교장들은(일부가 아니라 상당수) 각종 행정잡무를 하느라 늦게까지 남는 것은 야근으로 인정해도 수업 준비를 위해 늦게까지 남는 것은 ‘사적인 일’이라며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갈수록 점점 짧아지고 있는 방학은 교사가 한 학기의 결과를 성찰하고 새로운 지식과 방법을 장착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이걸 휴가라 생각하면 무척 길겠지만, 학기 중에 과도하게 지출된 지적, 감정적 노동으로부터 회복되면서 동시에 지식과 경험을 업그레이드까지 해야 한다면 턱없이 짧은 기간이다. 한 편에서는 학교라는 좁은 공간에 매몰된 교사의 좁은 식견을 비판하면서 시대에 뒤떨어졌느니, 세상을 읽지 못하느니 그러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세상에 나가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인 방학을 두고 놀고 먹느니, 학생도 없는 그렇다고 연구할 거리도 장소도 없는 학교에 억지로라도 출근해야 하느니 하고 있으니 도대체 이 나라가 교사에게 바라는 게 뭔지 가늠할 수가 없다.

 

방학은 연구는 커녕 학기 중에 만신창이가 된 심신을 원 상태로 되돌리기에도 빠듯한 시간이다. 즉 방학동안 자기연찬 안하고 그냥 놀기만 해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란 뜻이다. 교사는 기계나 물건이나 불특정 대중을 상대하는 직종이 아니다. 연약하고 민감한 성장기 학생들을 상대해야 한다. 따라서 심신의 상태가 항상 건강하고 상쾌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이건 교사의 권리가 아니라 의무다. 교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학생을 위해 충분한 회복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어떤 부모도 지치고 짜증스러운 상태의 교사에게 아이를 맡기고 싶지 않다.

 

교사가 방학 중 여행 다니는 것을 백안시 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쇼핑이나 유흥을 위한 여행이라면 지탄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견문을 넓히고 세계의 다양한 자연적 문화적 경관을 경험하기 위한 것이라면 오히려 나라에서 여행비를 지원해가며 권장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기특하게도 자기 돈 들여가며 다니고 있다. 부모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쉴틈없이 일해서 피곤과 짜증에 쩔어있으며, 학교와 집 말고는 별로 다녀 본 곳도 없는 교사와, 학기가 지날 때마다 완전히 회복되어서 돌아오고,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경관을 경험하여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많은 교사 중 누구에게 자녀를 맡기고 싶을까?

 

사무실에서 엉덩이 붙이고 자리 지키기로 일관하던 공무원 사회조차 변하고 있다. 김동연 부총리는 “직원들이 사무실에 아무도 없어도 좋으니 최대한 현장 목소리를 듣기를 희망한다. 전국을 돌아다니라”라고 말했다. 사무실에서 자리 지키고 있는게 일이 아니고 실제로 상황이 일어나는 현장, 정보가 흐르는 현장에 가야 일을 하는 것이란 뜻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자리 지킴’을 무능함에 대한 면죄부로 사용했다. 형식적으로 작성하는 수많은 일지나 점검표들이 있는 까닭은 그것들이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공직사회에서는 결과가 좋건 나쁘건 주어진 시간 동안 사무실에 자리를 꽉 지키고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자리를 지켰느냐가 아니라 가장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효율적으로 일을 했느냐가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교사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일까? 교사는 연구하고 가르친다. 따라서 본인의 배움이 일어나는 곳과 학생이 있는 곳이 교사가 있어야 할 장소다. 이 중 학생이 있는 곳은 교실이지만, 본인의 배움이 일어나는 곳은 교무실이 아니다. 교사의 일터는 교실이지 교무실이 아니다. 교사는 무한한 배움의 장소들을 탐험하고 그 결과를 교실로 가져와야 한다. 그러니 교사는 학생들이 귀가하면 방학 때가 아니더라도 되도록 학교에 남아 있으면 안된다. 그럴 시간에 한 시간이라도 세상을 더 돌아 보아야 한다.

 

방학을 노는 시간이라 생각하며 교사 스스로 미안해 하지 말자. 방학은 교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학생을 위해 있는 휴식시간이다. 최대한 상큼하게 회복하여 새 학기를 맞이하고, 행유여력이거든 견문을 넓히기 위해 널리 돌아다니고 널리 읽고 널리 배우자. 이 모든 것들이 학교에서, 교무실에서는 불가능한 것들이다. 교육당국도 괜히 학생도 없는 학교에 교사 붙들어 놓으려고 애쓰지 말자. 오히려 그게 월급 낭비이며 시간 낭비이며 인력 낭비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 인쇄(Print)하기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권재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독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 사회교육과를 졸업하였다. 중학교에서 24년간 사회를 가르쳤고, 서울대, 상명대, 방송대 등에서 강의하였다.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에서 정책연구를 담당했고, 현재 계간 우리교육 편집위원이다. '학교라는 괴물', '그많은 똑똑한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등의 교육 비평서, '민주주의를 만든 생각들', '거짓말로 배우는 10대들의 경제학', '세상을 바꾼 질문' 등의 청소년 교양서들을 지었다.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이전글 전교조법외노조재판의 회고와 전망 -박근혜와 양승태, 김명수와 민중기의 엇갈린 운명- 다음글 고교 학점제보다 대입전형의 선행 확정은 난센스다!
칼럼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