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와 사회의 불화: 공정하게 보이지만 가난한 미래
“2017년에 2021학년도 수능 체계를 결정한다. 2017년에 결정을 미루고 현재 수능을 유지한다고 해서 당장 뭔가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한 철학과 혜안이 없는 지도자라면 현상 유지를 선택하고 결정을 5년 뒤로 미룰 수도 있다. 그러면 숙제는 다음 정부로 넘어간다. 다음 정부의 지도자도 마찬가지 선택을 한다면 결정은 또 다음 정부로 넘어간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 저출산고령화 사회는 고착된다. 사회 구조와 가치관이 달라져서 교육혁신을 해도 미래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수도 있고, 수능을 바꾸는 정도로는 새로운 교육체계 구축을 위한 계기를 만들지 못할 수도 있다. 시간을 미룰수록 해결은 점점 난망해진다. 2021학년도 수능체계는 2015년에 이미 결정을 한번 미루었다.”
필자가 지난 정부 말에 출판된 『코리아 어젠다 2017』에서 2017년의 교육과 대학입시 분야를 전망하면서 썼던 글이다. 그러나 2021학년도 수능 체제는 2015년에 이어 2017년에도 결정되지 못했다. 지난 정부가 2021학년도 수능을 결정하지 못했듯이, 수능 절대평가 전환을 공약한 현 정부도 작년 8월에 수능 절대평가를 확대하는 두 개의 시안을 발표했지만, 여론의 반발에 밀려 폐기되었다. 그래서 2021학년도 수능은 현행 방식을 유지하고 2022학년도 대입체제를 올해 8월에 결정하기로 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이 발표된 2013년 이후 지금까지 우리는 새로운 교육과정에 부합하는 수능 체제와 내신 성취평가제 도입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논점은 결국 수능 절대평가인데, 도대체 왜 우리는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어떤 이들은 수능이 절대평가로 전환되고 학생부종합전형이 확대되면 거대 사교육 시장이 이익의 감소를 우려하여 반발하고 있고, 여기에 이미 사교육비를 많이 투입하여 수능 기득권을 확보한 서울 강남권이 합세하여 결정하기 어렵다고 한다. 다른 이들은 학생부종합전형의 확대가 학생 맞춤형 교육과정과 새로운 교실 수업 요구로 이어져서 교사 업무가 늘어나게 되어 교사들이 수능 절대평가를 싫어해서 그렇다고도 한다. 수능 절대평가를 찬성하는 교사들은 일부 진로진학 교사들뿐이라는 주장도 있다. 필자는 작년 가을 이후 2022학년도 대입을 논의하는 교육부의 정책자문위원회, 대입정책포럼, 전문가 자문단 등에 참여하여 다양한 의견을 넘어 극단적인 주장들이 충돌하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그러면서 수능 절대평가라는 이슈에는 격앙된 이해관계의 충돌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학교 교육을 둘러싼 우리 사회 구성원의 뿌리 깊은 불화, 차별과 불공정에 대한 원초적 저항이 깔려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은 열심히 뼈 빠지게 일하고도 이 모양으로 사는데, 다른 사람은 일을 열심히 하지 않고도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모아 (혹은 물려받아서) 땅을 샀다고 생각하니까 그가 비록 사촌일지라도 배가 아픈 게 우리의 마음이다. 그런데 그게 내 문제를 넘어서 내 자식 문제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해와 타협의 여지는 사라지고 만다.
“돈 내고 학교 다녔지만 학교가 내게 뭐 해준 게 있어? 대학만 잘 가면 되지 학교에 뭘 더 바랄 게 있겠어? 학교는 그냥 졸업장만 받으면 되고, 공부는 학원 가서 하는 거야. 학교 선생들은 돈 많고 공부 잘하는 아이만 편애하고 나 같은 아이는 눈길도 주지 않고 무시하잖아. 정부나 학교가 시키는 대로 하면 손해를 보니까 내가 살 길은 내 스스로 챙겨야 해. 뭐든지 사람이 개입하면 부정한 일이 벌어지니까 객관적인 수치로 결정해야 공정해. 학종이든 뭐든 다 필요 없어, 학력고사가 제일 공정해. 나처럼 가난한 집 아이도 학력고사 점수 잘 받아서 좋은 대학 갔고 그래서 이만큼 잘 살잖아.”
각종 수치와 논리도 우리 각자의 개인적 경험에 근거한 뿌리 깊은 불화와 불신 앞에서 설득력을 잃어버린다. 어쩌면 우리는 과거에 집착하여 현재를 재단하고, 현재에 몰입하여 미래를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현재의 대입제도와 학교 교육을 바람직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불만이 크다. 그래서 교육과 입시를 바꿔야 한다고 끊임없이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데 막상 뭔가를 바꾸자고 하면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 있으니 바꾸지 말자고 한다. 차라리 과거가 공정했다며 자신이 경험했던 과거로 돌아가자고 한다. 우리 모두 변화를 외치지만 서로를 불신하며 변화를 거부한다. 그러니 불신과 불화를 치유하려는 전 사회적인 노력이 없으면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대입제도는 요원하다.
그런데 이렇게 부질없이 소모적인 줄다리기를 할 만큼 우리 눈앞의 현실이 녹록한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사회는 급격한 고령화가 진행 중이며 출산율 저하로 인해 학령인구도 급감하고 있다. 국가 경쟁력의 관점에서 보면 심각한 위기 상황이다. 노동생산성 저하로 미래는 불안하고 다음 세대는 지금 세대보다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 사회적 격차의 심화와 공정성의 위기도 이미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 교육은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적 지식을 생산할 인력을 육성하는데 오히려 장애가 되고 있다. 획일적 학교 교육에 의한 표준화된 인력 양성, 즉 교육의 양적 팽창은 한계에 부딪혔다. 하지만 학교 교육의 질적 혁신과 학생맞춤형 교육을 지지하는 목소리는 거의 들려오지 않는다. ‘학교 교육을 통해 어떤 역량을 갖춘 사람을 길러낼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은 국가교육과정 총론에만 있고 학교 현장에는 없다. 국가 교육과정과 학교 현장은 괴리되어 있고, 고등학교에서 획일적 교육과정과 단순 암기 위주의 주입식 수업은 여전하다. 학교 교육을 불신하니 학부모들은 사교육으로 몰려간다. 그래서 과다한 사교육비 지출, 삶의 질 하락, 교권 추락, 학교 수업 경시, 인성교육의 부재, 학교폭력 증가 등 여러 부작용이 속출한다. 특히 경제력이 곧 경쟁력이라는 사회적 인식과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는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대개 학교 교육의 부실 원인은 대학입시에 있으며, 점수 위주의 대입 선발제도가 비생산적인 경쟁 교육을 가져와 전인적 학교 교육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점수 위주의 선발 방식이 공정하니 바꾸지 말라고 한다. EBS 교재에 70%가 연계된 수능 문항, 변별을 위한 문제풀이 수업이 창의적 사고력을 가진 인재 양성을 방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점수 위주의 선발이 공정하니 바꾸지 말라고 한다. 이처럼 수능에 대한 맹목적인 공정성 신화는 학교 안팎에 만연하다. 과도한 점수 경쟁과 무의미한 정답 찾기가 문제라고 지적하면서도 수능이 공정하니 수능 전형을 늘리자고 주장하니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문제가 없는 전형은 없다. 교과 전형은 동료 간 협력보다 경쟁을 유발하며 학교 간 격차가 큰 현실에서 선발 도구로서의 타당성이 부족하다. 학생부종합전형은 공정성·객관성·신뢰성의 위기를 맞고 있다. 논술, 실기, 특기자전형은 학교 교육으로 준비되지 않는다. 교육과정은 창의적이고 융합적 사고력을 갖춘 인재 양성을 강조하지만, 실제 교실에서는 수능 문제풀이를 하고 있다. 학부모들도 그렇게 해달라고 학교에 요구한다. 수시와 정시로 모집 시기가 분리되어 사실상 고3 2학기 수업은 불가능하다. 학생부 기록의 불공정성, 대학의 모호한 평가 기준 등으로 인해 학생부종합전형의 신뢰도도 추락했다. 교과 성적, 수능 등 전형요소의 반영 방법이 대학마다 다르고 복잡하여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수능은 선택과목에 따라 점수가 달라지고, 탐구영역과 제2외국어/한문 영역의 특정 과목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수능 컷은 탐구영역에서 어떤 과목을 선택했는지가 정한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게다가 수능의 변별력 확보를 위해 문제의 난이도를 조절한다.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이수한 학생이라면 킬러 문항은 풀 수가 없다. 학교 체제도 유형에 따라 서열이 정해져 있고, 대입 결과에 따른 학교 서열화와 학력 격차 심화는 인과관계를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밀착되어 있다. 이런 상황이니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가야 하나. 지금 우리 교육은 길을 잃었고 가야할 길을 알려주는 선지자는 보이지 않는다.
수능을 절대평가로 바꾸면 무엇이 달라지는지 정부가 제시하지 않는데 입시에 민감한 우리 사회가 수능 절대평가 전환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려면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을 위한 새로운 학교 교육을 먼저, 그리고 새로운 대입제도와 함께 제시해야 한다. 새로운 학교를 설계하는 것은 미래 사회에 필요한 역량을 정의하고, 누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배울지에 대한 총체적 청사진을 그리는 일이다. 기존의 입시가 학생이 얼마나 많은 양의 지식을 갖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수능이 절대평가로 전환된 이후 만들어질 학생 맞춤형 입시에서는 개인적 소양(동기와 자발성, 도전, 상상, 융합, 협력, 소통, 공감), 학업 역량(지식습득능력), 학업태도(지식활용능력)를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수능 절대평가를 받아들이려면 학교 교육이 지향하는 가치와 대학의 평가 항목이 일치되는 “고교 교육과 대학 입시의 일체화”, 학생 맞춤형 교육과 학생 맞춤형 입시를 함께 제시해야 한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이 학교 교육 중심 대입체제의 얼개를 보여주고 수능 절대평가의 필요성을 설득해야 한다.
<학교 교육 중심 학생맞춤형 대입체제 개편 예시>

우리 아이들이 미래 사회를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새로운 학교 교육을 만들어갈 꿈을 꾸지 않는다면 소란스럽게 대입제도를 개편할 이유가 없다. 그저 침몰하는 배 안에서 서로를 비난하며 침몰할 때만 기다리면 될 일이다.
지난 4월 11일 교육부는 국가교육회의에 이송할 2022학년도 대입전형 관련 논점을 발표하였다. 여전히 정부는 결정하지 못했다. 대신 작년 8월 이후 새로운 논점이 추가되었고 내용은 더욱 복잡해졌다. 이제 공은 국가교육회의로 넘어갔다. 국가교육회의는 대입특위를 구성하고 국민제안을 받아서 공론화 절차를 진행할 것이다. 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한다는 현 정부의 공약은 지켜질까, 아니면 부분적인 땜질만 하고 현재 방식을 유지할까. 새로운 형태의 수능 문항을 도입할 것인가. 우리는 여전히 알 수 없다. 한때 그 많던 선지자들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이제 초인(超人)은 없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스페인 마드리드 꼼쁠루뗀세 대학 박사 (중세 및 황금세기 문학), 페루카톨릭 대학 석사,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학사, (전)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기금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