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열차, 잉여인간, 민주시민성, 교사혁명
나는 요즘 ‘대륙학교’에 등록해서 매주 한 번씩 12회 연속 강연을 듣는다. 좀 거창하게 들리지만 대륙의 꿈을 품은 ‘대륙리더’를 양성하는 학습프로그램이다. 교장선생님은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통일부장관으로 두 번 봉직하며 6.15합의 후속조치 이행을 위해 누구보다 긴 시간을 남북협상 테이블에 앉았던 노련한 북한 전문가시다. 대륙학교 운영주체는 (사)희망래일. 다선 국회의원과 한국철도공사 사장을 지낸 이철 이사장께 ‘래일’이 내일의 북한식 표기냐고 여쭤보니 기차 레일까지 이중의 뜻을 담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다. 부산역, 목포역에서 시작되는 대륙철도가 한반도의 희망내일을 만든다. 대륙철도는 고구려의 호방한 대륙기질과 상상력을 회복시켜줄 희망레일이자 남북이 교류협력, 상생하는 평화통일로 데려다줄 희망레일이다. 그 위에서 시나브로 영글어갈 미래 세대의 대륙기질은 한반도발 한반도 종착 유라시아문명의 통융합과 도약을 주도할 것이다. 나는 이것이 한반도의 평화체제와 통일체제를 앞당기고 한반도의 다른 백년을 만들어낼 위대한 원동력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생각만으로도 가슴 뛰는 대륙의 꿈이다.
개인적으로는 서울에서 유라시아대륙의 어디든 기차를 타고 돌아다니는 막연한 꿈을 꾼 지 반세기가 넘었다. 중학생 때였다. 집안 아저씨 한 분이 서울역서 기차 타고 블라디보스톡, 하얼빈, 울란바토르로 신나게 돌아다니던 젊은 시절의 ‘꿀잼’ 얘기를 열정적으로 해주셨다. 그리고는 “네가 커서 통일이 되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대륙을 가로질러 유럽까지 마음대로 갈 수 있을 거”라며 손기정 선수도 베를린에 기차로 갔었다는 얘기를 덧붙이셨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우리가 섬나라라는 사실에 눈을 떴다. 아울러 그때 처음으로 만주와 시베리아 넘어 유럽으로 기차 타고 가는 꿈을 품게 됐다. 이 꿈이 실현되려면 남북통일을 해야 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땐 막연하게 ‘내가 크면’ 통일이 돼있어 대륙열차를 다시 탈 줄 알았다. 반세기가 더 지났는데도 희망레일은 아직까지 끊어진 채로 남아있다. 다행히 분단 70년의 역사 속에서도 남북은 6.15선언에서 10.4합의에 이르는 7년 동안 한반도에 꿈같은 해빙기를 만들어냈다. 이때 남과 북은 각각 경의선의 단절 구간을 복원하고 국방장관 회담까지 활발하게 개최하며 협력모드를 다졌다. 그리고 북의 핵미사일 개발로 다시 남북관계 동결과 긴장고조의 세월이 이어졌다. 우여곡절을 거쳤으나 평창동계올림픽의 화해무드를 거쳐 이제 다시 4월 남북정상 회담과 5월 북미정상 회담을 앞두고 있다. 만약 여기서 남북미중 관계가 휴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일대 계기가 만들어지면 제일 먼저 상징적으로 개성공단을 재개하고 경의선을 개통하기를 기대한다. 이 대목에서 내 가슴에선 ‘그날이 오면’의 장엄한 합창소리가 들린다.
두말할 것도 없이 대륙을 향한 꿈은 먼저 남북 화해협력의 꿈이다. 남북이 4강의 지지와 협력을 이끌어내며 화해협력과 상생평화의 길로 성큼성큼 나아가지 못하면 남북의 철도를 연결해서 대륙철도의 동쪽 출발점이자 종착점의 역할을 하는 게 불가능하다. 여기서 개성공단지원재단 이사장 김진향 박사의 얘기를 들어보자. 그는 개성공단이 바로 최고의 안보 보장 수단이자 상생 협력 모델이며 생생한 통일 경험 현장이라고 자부한다. 개성공단이 ‘퍼주기’는커녕 ‘퍼오기’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실증자료로 알려준다. 통독의 설계자로 유명한 에곤 바(Egon Bahr)도 개성공단은 독일도 꿈꾸지 못했던 최고의 한국형 통일 모델이라고 거든다. 김진향 이사장은 참여정부의 청와대에서 3년간 개성공단 준비를 위한 남북 실무협상을 담당했고 2008년 2월부터는 개성공단관리위 남측 대표로 개성에서 4년 가깝게 체류하며 북한사람들과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북한 전문가다.
‘북맹 탈출’은 김진향 박사의 트레이드 마크이자 18번이다. 그의 강렬한 언어 세례를 받아본 사람들은 그가 제시하는 불편한 진실들로 말미암아 강연이 끝나고 나서 머리가 띵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의 강연은 그만큼 고정관념을 뒤흔든다. 김진향 박사는 우리 국민이 적대적 분단 체제가 강요한 북맹 상태에 있다고 진단한다. 북한의 전시 국가 정치체제, 사회주의 경제 구조, 집단주의 사회문화의 역사와 특징을 제대로 모르고 나쁜 점만 부풀려 알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 박사에 따르면 국민들이 본인의 북맹 상태조차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적대적 세뇌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게 분단체제의 작동 방식이자 생존 양식이다. 그는 우리 민족의 뜻과 무관하게 외세에 의해 강요된 한반도 분단과 그로 말미암은 적대적 분단체제야말로 70년 묵은 근본적폐라고 역설한다.
김진향 박사의 강의슬라이드 중에는 충격적인 지도 한 장이 등장한다. 김박사가 금단의 땅 북한을 빼고 만든 동아시아 지도다. 한반도의 북쪽 절반을 북한 땅으로 표시한 일반 세계지도와 달리, 북한 땅을 아예 바다로 처리해서 남한이 완벽한 섬나라라는 사실을 너무나 소름 끼치게 드러낸다. 어깨동무하고 걸어갈 수 없기에 북한 땅은 남한의 우리한테는 바다와 다를 게 없다. 동서남북이 모두 바다로 둘러싸여, 강렬한 호랑이상이 사라진 섬나라 남한을 동아시아지도에서 확인하는 순간 마음이 너무 슬펐다. 한시바삐 북한과 화해협력을 통해 대륙으로 가는 탄탄대로가 활짝 열리기를 기원했다. 대륙과 해양을 향해 동시에 열려있는 한반도의 지리적 이점을 십분 활용하여 대륙과 해양으로 동시에 뻗어나가는 진취적인 새 시대를 열어 나가야한다고 다짐했다.
마침 황석영 작가가 필요한 영감을 불어넣어 줬다. 그는 우리 민족이 우랄알타이어족에 속한다는 사실을 환기시키며 알타이국가 경제문화연대를 제창했다. 남한, 북한, 러시아(극동시베리아), 몽골, 중앙아시아 각국, 터키 등 문화적으로 공통의 뿌리를 가진 중국의 ‘북방민족’들을 경제문화공동체로 먼저 묶어내자는 원대한 구상이었다. 그는 미주USA에 빗대 또 하나의 알타이USA(United States of Altai)를 만들어내자고 황‘구라’답게 또한 프로파간다 달인답게 눙쳤다. 그는 특히 몽골이 원하는 동몽골 개발과 러시아가 원하는 극동시베리아 개발을 남북한이 힘을 합쳐 주도적으로 참여할 때 남북한 모두 엄청난 경제적 기회가 돌아올 뿐 아니라 남북러몽 협력으로 알타이 문화경제연대의 초석을 놓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어떤가? 그럴 듯해서 믿을 만한 허구(픽션)는 소설로 만들어지고 도무지 믿기 어려운 사실은 논픽션으로 만들어진다. 한반도에서 카스피 해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의 다양한 민족들이 알타이계 언어와 민담, 공예 등 공통의 문화적 뿌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하나의 논픽션 감이라면 그 권역의 다양한 국민 국가들을 상생협력 차원에서 하나의 문화경제공동체로 묶어서 모두의 윈-윈을 창출하자는 비전은 하나의 소설 감이었다. 역사의 시간과 공간을 확장하는 황 작가의 상상력이 단박에 모든 수강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큰 스케일을 읽는 대륙기질과 북방민족을 묶는 고대문화교류사 지식에 실어 중국의 일대일로 비전을 제어할 수 있는 국제정치적 효용과 남북한 상생발전이라는 경제적 이익까지 제시하니 누군들 매혹당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조금만 따져보면, 알타이 문화경제연대가 남북러몽을 넘어설 가능성도 매우 낮고 EU나 USA처럼 알타이USA로 진화할 가능성은 최소한 향후 반세기 내에는 전무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다만 모든 리더십은 공동선과 공익 실현을 위해 협력 당사자와 협력 규모, 협력 강도를 키우는 데 있고 리더십의 성과는 그 성취수준에 비례한다. 알타이 고대문화의 공통세례를 받은 북방국가들 사이의 정치경제적 공동선과 공익을 새로 찾아내서 실현하는 것은 관련 국가 모두에 윈-윈이 된다. 리더십의 새로운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중국이 워낙 아시아에서 압도적인 존재라서 알타이 경제문화연대는 아시아에서 힘의 균형을 이루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아직 다듬을 게 몹시 많은 원광석 수준의 구상과 비전에 지나지 않지만 거기서 영감을 받아 뜻을 품고 움직이는 젊은이가 나오면 한걸음씩 실천을 향해 가게 된다. 누군가의 가슴을 흔든 꿈은 좀처럼 사라지는 법이 없다.
나는 황석영 작가의 알타이USA 비전과 김진향 박사의 개성공단 통일 방안을 대륙학교에서 듣는 내내 전국의 우리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다함께 들을 수 있으면 무척 좋겠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가슴 속에 남북한이 들어오고 만주와 몽골, 시베리아가 들어오고 알타이 경제문화공동체가 들어온 학생은 뭐가 달라도 다를 거 아닌가. 얼마나 알고 싶은 게 많고 얼마나 가보고 싶은 데가 많을까. 하고 싶어서 스스로 찾아서 하는 진짜 공부가 시작될 터이다. 같은 꿈을 가진 학생들끼리 그 지역, 그 나라들을 몇 해 같이 공부해도 끝이 없을 테고 그 사이 엄청난 인재들이 돼 있을 거다. 해당 국가의 정치경제와 역사문화를 깊이 있게 알게 될수록 단순한 이해와 존중을 넘어 감탄하며 존경할 부분을 만나게 될 것이고 이런 과정에서 세계시민의식을 절로 갖추게 될 게다.
우리 청소년들에게는 대륙으로 세계로 나가는 진취적 마인드와 세계시민의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전에 할 일이 하나 더 있다. 반드시 민주시민의식, 즉, 각자가 국가와 정부의 주인이자 법과 제도의 주인, 정치와 경제의 주인이라는 주권자 의식이 필수적이다. 주인의 지위에서 국가와 정부, 법과 제도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살피고 만약 잘못된 부분을 발견하면 바로잡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의식이다. 공동선과 공익이 국가적, 사회적 삶의 구석구석에서 실현되어야 하며 그것이 제대로 안 돼 개인선과 사익에만 기대는 각자도생의 삶을 영위해서는 누구도 좋은 삶을 살 수 없다는 시민적 각성이 필요하다.
민주시민의식은 모든 사람의 자유와 존엄이 걸린 21세기의 생필품이라고 할 수 있다. 향후 15년 안에 인공지능과 로봇, 드론을 활용한 무인생산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고 결과적으로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많은 직종들의 일자리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배달, 운송, 캐셔 등이 대표적인 예지만 어지간한 사무직과 전문직도 무사하지 않을 전망이다. 일자리가 없는 이른바 ‘잉여인간’의 양산으로 분배 불평등은 더 심해질 것이고 불가피하게 ‘잉여인간’의 저항과 소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첨단과학기술의 융복합 발전으로 물질의 풍요는 계속 늘어나지만 양극화의 심화에 따라 사회불안정이 불가피한 사회조건에서는 민주주의가 확대, 심화되지 않으면 어떤 바람직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조건에서는 민주주의 자체가 어렵다. 일자리에 따르는 자존감과 사회관계를 상실한 ‘잉여인간’들은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적극적 시민성 결여로 민주주의의 효능감을 체험하지 못한 채 생활고에 짓눌리며 사적 영역에서 각자도생하다 시들어버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내다보인다고 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 교육과 정치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교육이 중장기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면 정치는 중단기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는 점이 다르다. 또한 교육이 세상을 바꾸는 개개인의 힘을 길러주는 과정이라면 정치는 세상을 바꾸는 집단의 힘을 모아가는 과정이라는 점도 다르다. 분명한 것은 세상을 바꿔야 할 당위성이 높아질수록 일단 교육과 정치에 주목하고 기대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만약 현실의 양극화 경향을 제어할 민주주의 정치의 힘이 미약하고 부실하다면 교육이 더 중요해진다. 만약 학교와 사회마저 강력하고 살아있는 민주시민교육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은 필경 금괴에서 나오게 된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눈부신 과학기술 발전과 생산력 혁명에도 불구하고 지금대로라면 경제적 양극화와 그에 수반되는 모든 사회악의 심화가 불가피하다. 더 많은 사람들의 정치주체성과 민주시민성을 회복해서 이 문제에 공동 대처할 때만 극소수에게 쏠리는 경제적 과실을 민주적으로 분배해서 공동체가 풍요를 누릴 수 있다. 사람들의 정치주체성과 민주시민성을 길러내는 것이 공교육의 목표다. 경제적 양극화는 민주주의의 실패 결과이자 공적1호로서 머지않아 그간의 민주주의 성과마저 잠식하고 파괴한다. 만약 학교에서 강한 민주주의자를 길러내지 못하면 21세기의 사회경제 조건 속에서 오늘의 약한 민주주의를 구출해내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학교와 교사의 역할이다. 학교를 민주시민성의 요람으로, 교사를 민주시민성의 교사로 만들어내지 못하면 경제양극화가 심해지는 사회경제적 조건에서는 민주주의의 미래가 없다. 그런데 학교 민주시민성의 세례를 듬뿍 받지 못한 교사가 민주시민성을 삶으로 보여주기는 쉽지 않다. 당연히 교사의 정치기본권을 풀어서 교사가 시민활동과 정치활동을 자유롭게 하며 적극적 민주시민의 경험과 교훈, 삶의 자세를 아이들과 나누며 깊이 있게 전수할 수 있어야 한다. 공적 사안을 놓고 공적 활동을 하면 자신을 상대화하고 타인을 존중하게 된다. 협력과 연대의 틀을 최대한 확보하며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한다. 공동선과 공익실현을 가로막는 요소들에 눈뜨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집단지성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소통과 공감, 설득과 토론, 타협과 조정 등 다양한 문제 해결 역량을 기르게 된다.
앞으로 교사의 양성, 임용, 연수, 승진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교사(후보)의 민주시민으로서 자세와 경험, 가치관과 실천 역량, 과제와 포부 등을 두루두루 구체적으로 검증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갖가지 민주시민교육을 가급적 현장 경험 중심으로 다양하게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는 물론이고 그보다 작은 어떤 레벨에서도 공동선과 공익을 놓고 진지하게 이론적, 실천적으로 고민하고 증진했던 경험이 있어야 한다. 앞으로는 교사의 교과전문성 못지않게 민주시민성을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교사의 교과전문성 못지않게 민주시민성을 길러주고 평가하며 반영하는 양성, 임용, 연수, 승진시스템이 개발되어야 한다.
나는 4차 산업혁명과 경제적 양극화, 환경생태 위기와 남북분단 체제가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민주역량을 극단적으로 테스트할 것으로 전망한다. 나는 우리 사회의 차세대 민주시민역량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기 위해서는 학교교육이 민주시민역량 중심으로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교사에게 요구되는 역량도 과거의 교과전문성 중심에서 민주시민성 중심으로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방향의 교사혁명과 공교육혁명을 통하지 않고는 강한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적극적인 민주시민성을 학교에서 길러낼 수 없고 그렇다면 21세기의 조건아래서 강한 민주주의가 성립할 수 없어 보통사람의 삶의 조건이 나아질 수 없다고 본다.
분단 체제의 극복과 알타이USA의 비전, 양극화 체제의 극복도 종국에는 강한 민주주의, 강한 민주주의자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학교와 교사의 책임이 바로 강한 민주주의자를 길러내는 것이다. 학생들을 강한 민주시민으로 길러내려면 교사 본인이 강한 민주주의자가 먼저 되어야 한다. 교사를 강한 민주주의자로 만들어내도록 교사양성, 임용, 연수, 승진시스템 전반을 뜯어고치는 일에 교육정책 당국과 교사양성 훈련기관이 힘을 합쳐야 한다. 그래야 춤추는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서울법대와 펜실베니아대 로스쿨에서 수학한 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교수로 재직하며 노동법, 사회보장법, 공정거래법, 인권법을 가르쳤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과 사무총장을 역임했으며 5.18 시민상을 수상했다. '행복한 교육혁명'을 가치로 2010년 6월 2일 서울교육감으로 선출돼 공교육의 표준 교체와 교육행정 혁신을 시도했다. 대표적 교육정책으로는 체벌금지와 학생인권, 문/예/체 교육과 혁신학교가 꼽힌다. 인사, 사학, 시설, 구매 등 모든 교육행정에서 시민참여와 투명성을 북돋으며 사회적 책임을 불어넣기 위해 애썼다. 701일이라는 짧은 교육감 재임기간에도 불구하고 공교육 2.0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를 놓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2014년 4월부터 펙트TV에서 '곽노현의 나비프로젝트, 훨훨 날아봐'로 진보적 관점의 교육전문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징검다리 교육감> 등이 있다. 본래 강자를 법의 지배 아래, 약자를 법의 보호 아래 두는 법치주의의 전사였으나 이제는 교육계 사람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