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교과 평가, 수능, 고교체제, 교육개혁, 새로운 학교 – 서론 1 –

우리 사회는 거대한 변환을 겪고 있고, 이 거대한 변환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인구 감소(출생아 수 감소, 고령화)라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고 있다. 인터넷과 핸드폰이 세상을 움직이는 속도를 바꾸었고, ‘나’는 곧 ‘나’와 나의 ‘핸드폰’으로 규정되고 있다. 앞으로도 또 다른 무엇이 등장하여 개인의 삶과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다. 환경과 기후의 변화, 전 세계적 전염병, 4차 산업혁명과 과학기술의 진보는 기존 사회의 해체와 새로운 사회의 등장을 예고한다.
70년대 이후 인구와 산업이 동시에 급성장했다면, 이제 우리 사회는 고령화되었으며 근대 산업의 일자리는 점차 기계와 인공지능으로 대체되고 있다. 게다가 인구는 예상보다 훨씬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2020년 합계출산율(가임여성 1명당 출산율)은 역대 최저인 0.84로 떨어져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1.00 미만을 기록했고, 사망자가 출생아보다 많은 ‘데드크로스’가 작년에 시작되었다. 2020년 출생아 수는 272,400명으로, 전년 대비 30,300명(-10.0%)이 줄었다. 70년대 초 100만이 넘었던 출생아가 27만 명 남짓으로 줄었다면 그리고 앞으로도 인구 감소가 지속된다면, 사회 모든 영역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노동 인력 감소로 인한 생산성 저하, 고령자 부양을 위한 사회적 비용의 증가, 세금과 연금과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 갈등, 과학기술의 발달에 의한 일자리 감소 등 산업, 재정, 의료, 복지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 교육도 지금의 시스템을 유지할 수 없다.
핸드폰, 아이패드, 노트북, 인공지능 수업, 온라인학습플랫폼, 학교 안 학교, 학교 밖 수업, 유튜브, K-MOOC, 오픈 코스웨어, 공유대학 등 과거에 등장하지 않았던 단어들이 이제는 교육 담론의 핵심어가 되고 있다. 이제 지식은 교실과 도서관 밖에서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핸드폰이 교실이고 도서관이며 놀이터이다. 식당에서 아직 유치원도 가지 않은 아이가 노트북처럼 생긴 놀이기구 + 학습기구를 가지고 놀며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시대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영화에서 보았던 장면처럼 우리의 뇌에 전기 신호로 오토바이 운전 프로그램을 입력하거나 오토바이 레이서 프로그램이 장착된 슈트를 착용하면 오토바이를 운전할 수 있는 시대가 오지 않는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겠는가. 산업과 학교의 변화 속도 차이, 사회와 학교의 변화 속도 차이, 즉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학교 교육이 곧 우리의 사회적 의제인 셈이다. 교육의 온라인화는 공적, 사적 영역에서 이미 시작된 지 오래다.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나 접할 수 있는 지식전달 수업을 학교에서도 반복한다면 학교는 학생에게 외면당하고, 미래 어느 시점에 가면 그런 학교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인구 감소에 따라 기존 학교는 사라지고 새로운 학교가 등장한다. ‘정해진 미래’이다.
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의 파산, 통폐합, 재생이라는 미래의 그림자는 사실 우리에게 이미 다가와 있다. 아직 수치는 미미하지만, 학교파산의 도미노는 대학부터 시작되었고 거대한 파도가 변곡점을 향해 가고 있다. 인구와 산업이 팽창하던 산업화 시대에 대학 졸업장은 더 나은 직업을 얻게 해주는 기회였다. 그러나 지금 대학 졸업장은 역량을 보증하지도 일자리를 보장하지도 못한다. 대학 졸업장의 사회적 용도가 줄어들거나 사라지면, 인구 감소에 따라 대학이 문을 닫아야 하는 게 현실이다. 모두가 예견했던 바대로,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대학파산의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학생을 모을 수 있으면 생존하고, 그렇지 못하면 문을 닫는다. 단순하다. 학생 미충원으로 인한 대학파산의 선제적 징후는 매년 2월 20일 전후로 시행되는 대입 추가모집이다. 대교협은 추가모집에 참여하는 대학의 수, 학과, 선발인원을 발표하는데, 올해는 거의 모든 언론사가 <전국 4년제 대학 2021 추가모집 주요 사항>을 받아서 보도했다.
“올해 162개교에서 총 2만6129명을 모집해 지난 2005년 3만2540명을 기록한 이래 최대 규모다. 전년 162개교 9830명 모집과 비교해 1만6299명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학령인구 감소와 코로나19 이슈가 맞물려 대학 지원자 풀 자체가 크게 감소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수도권 집중화에 따른 학생들의 이탈로 지방대 신입생 유치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지방 소재 대학들은 전년 8930명 추가모집에서 올해 2만3767명으로 1만4837명이 증가했다. 166.1% 폭등한 규모로, 전체 추가모집 인원의 90.9%를 차지한다. 9개 거점국립대(강원대 경북대 경상대 부산대 전남대 전북대 제주대 충남대 충북대) 역시 전원 추가모집을 진행한다. 수도권 소재 대학 추가모집 인원도 전년 1022명에서 1502명으로 47% 증가, 학령인구 감소의 영향을 피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베리타스알파, 2021. 2. 22.)
전국 4년제 대학이 198개이므로 2021학년도에 81.8%의 대학이 정시모집까지 학생을 충원하지 못해서 추가모집을 했다는 뜻이다. 추가모집은 무제한 지원할 수 있고, 선발 방법에도 아무 제한이 없으며, 지원만 하면 무조건 뽑아줄 뿐만 아니라 현금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올해 7차까지 추가모집을 했어도 대부분의 대학은 학생을 충원하지 못했다. 심지어 지방 4년제 사립대학 중에는 추가모집까지 했어도 500명 이상을 충원하지 못한 대학도 있을 것이다. 전형료 면제, 첫 학기 등록금 면제, 1년간 학비 면제, 전과 보장, 기숙사 보장, 현금 지급 등 온갖 방법이 동원되었어도 효과가 없었다. 여기에 더하여 대학 첫 학기에 등록한 학생의 이탈률(재수, 편입 등)까지 고려하면 대학의 학생 미충원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하다.1 외부에 알려진 대학의 충원율은 과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정부 지원금과 평판이 걸려 있어서 여러 편법이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 입학생 수와 졸업생 수를 비교해 보면 수도권과 지방 대학 사이에서, 국립과 사립대 사이에서 어떤 차이가 나올까.
2021학번 학생이 태어난 2002년의 출생아가 492,111명인데 작년에 272,400명이 태어났으므로, 앞으로 학생 수 감소는 우리의 고등교육 시스템을 붕괴시킬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갖는다. 학생 충원의 어려움은 십여 년 전부터 이미 시작되었으나, 일부 대학에 한정된 문제로 취급되어 사회적 관심을 끌지 못했다. 정부의 개입도 소극적이었다. 그러는 사이 단과대학, 학과, 교수 개인이 마치 성채(城寨)의 주인처럼 기득권을 주장하는 대학 특유의 문화 때문에 대학 스스로 자발적 혁신을 선도하지 못하는 ‘좀비 대학’, ‘아무나 들어가는 대학’, 돈을 주고 들어가는 대학이 아니라 ‘돈을 받고 들어가는 대학’이 늘어났다. 개별 대학은 모집 단위를 재설계하고 학과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급속도로 파산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개혁해도 몇몇 대학만 살아남는다. 국회는 대학파산 및 재생을 위한 한시적 특별법을 만들고, 정부는 고등교육 생태계를 완전히 새롭게 재설계해야 한다. 대학의 위기는 국가의 위기이다. 대학이 붕괴하면 서울이 아니라 지역 사회와 기업에 타격이 간다.
이 위기 상황을 대학입시의 관점으로 표현하면, 이제 대학입시는 거의 모든 대학이 참여하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현장이 된다. 내가 살면 다른 누군가 죽는 일종의 냉혹한 제로섬 게임이다. 전문대학도 마찬가지 상황에 놓여 있다. 전문대교협에 따르면 2020학년도 대입에서 133개 전문대 중 77개교(57.8%)가 모집 정원을 채우지 못했고, 2021학년도 전문대 수시모집 등록률도 전년도 86%에 비해 74% 수준으로 10% 이상 떨어졌다. 외국인 학생 수급은 점점 더 어렵고, 등록금 인상은 말도 꺼낼 수 없다. 생존을 위해 정원을 채우는 데 급급한 대학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고, 이제 대입제도와 전략은 대학의 생존을 결정한다. 많은, 아마도 80% 이상의 대학에 중요한 것은 교과와 수능의 비중이나 수시와 정시의 비율이 아니라 학생 유치 전략이다. 이제 많은 대학의 경우 어떻게 선발하느냐, 누구를 선발하느냐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정부는 대입제도를 논의할 때 생존의 갈림길에 선 대학들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다. ‘교육과정 ⇒ 수능 ⇒ 대입제도’ 순으로 논의가 진행될 때, 생존을 위해 학생을 모아야 하는 다수 대학의 입장보다는 소수 상위권 대학의 입장이 크게 작용한다. 전형 구성, 지원 시기, 합격자 발표 시기 그리고 특히 중요한 등록 시기 등을 논의할 때 다수 대학은 목소리를 내보지 못했다. 대입제도를 논의하는 자리에는 대학들의 생존경쟁을 관리하는 공정한 기준도 없고 배려도 없다. 승자 우선의 세계이다. 교육적 가치도 구두선(口頭禪)에 그치고 만다. 그 대신 변별력이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등장했다. 아무리 바람직한 제도라도 변별력이 없으면 논의 테이블에서 사라지고, 변별력은 종종 공정성으로 오인되었다. 절대평가 vs. 상대평가 논쟁에서도 절대평가가 교육적으로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해도, 절대평가는 변별력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상대평가를 선택한다. 교과 평가와 수능 평가에서도 두 가지 방식 모두가 점수의 공정성과 타당성에 문제가 있지만, 변별력이 먼저 고려되었고 암묵적으로 그렇게 해야 “공정한” 대학입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입시에서 변별력은 절대적 가치가 아니며, 변별력과 공정성은 다른 개념이다.
대학입시의 변별력: 종합평가방식과 기계적 점수산출방식
원칙적으로 대학입시에서 변별력은 커트라인을 만들고 대기자의 순번을 정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 학생을 고르기보다는 최대한 충원해야 하는 대학이나 학생을 고를 수 있는 대학이나 모두 마찬가지 상황이다. 그런데 변별력은 평가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대학 정원의 유연성도 영향을 주지만, 우리나라는 대학 정원이 유연하지 않기 때문에 고려할 필요가 없다.
평가방식을 구분하는 하나의 형태는 학생부종합전형처럼 종합평가(Holistic Review) 방식과 교과나 수능 전형처럼 단일한 점수를 기계적으로 산출하는 방식이다. 종합평가 방식에서는 대학이 자율적인 기준을 적용하여 합격자, 대기자 순번, 불합격자를 나눈다. 대기자 순번을 정할 때 세부적으로는 정량적인 점수를 활용할 수도 있지만, 그것 역시 대학이 자체 기준에 따라 정한다. 이때 점수의 변별력은 기계적 산출방식보다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 반면 기계적으로 점수를 산출하는 방식에서는 최소한의 변별력이 확보된 점수가 필요하다.
IB 디플로마의 점수와 2008학년도 수능 점수 체제를 비교해 보자. IB 디플로마는 45점 만점이며 교과 42점 + TOK(Theory of Knowledge) 3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교과 42점은 절대평가 7점 만점 × 6과목으로 만들어지며, 6개 과목은 다시 standard level 3과목과 high level 3과목으로 구성된다. 1년 시행하고 폐기된 2008학년도 수능은 각 영역 상대평가 9등급 체제이며, 응시영역은 언어, 수리 가/나, 외국어, 탐구영역 4과목, 추가 옵션으로 제2외국어/한문이 있었다. 절대평가 7점 × 동일 비중의 6과목 vs. 상대평가 9등급 × 다른 비중의 7과목 체제, 이 두 가지를 기계적으로 적용하여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가능할까. 모든 학생이 IB 점수를 갖고 있다는 전제로, IB 점수 총점만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동점자가 발생하기 때문에 IB 총점만으로는 선발하기 어렵다.2 반면 2008학년도 수능은 전 영역에서 1등급을 받은 학생이 0.11%(644명)으로 극히 작았지만, IB 점수처럼 과목별로 같은 비중을 두고 합격자 사정을 한다면 마찬가지로 동점자가 소수 발생하여 별도의 동점자 처리기준이 필요하다. 하지만 수능에는 응시영역 반영 비율을 설정할 수 있으므로, 영역 혹은 과목별 우선순위를 두거나 반영 비율을 달리하면 변별력이 확보된다. 동점자 처리를 위해 백분위나 표준점수 자료를 별도로 받아도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면접, 논술, 교과처럼 별도의 전형 요소를 추가해도 변별력은 확보된다. 다시 말하면, 절대평가 7점 × 6과목이나 상대평가 9등급 × 7과목 모두 동점자 처리기준이나 추가적인 전형 요소를 활용하면 기계적인 방식도 적용할 수 있다.3 결과적으로, 2008학년도 수능은 다른 점수를 가진 학생이 같은 등급을 받고, 등급 컷 선상에서 점수 차이가 등급 차이로 과도하게 왜곡되는 공정성 문제와 함께 동점자가 많이 나온다는 변별력 부족을 이유로 단명했다. 하지만 수능 점수 자체로는 변별력이 부족하지 않았고, 실제로 내신과 논술/면접으로 어렵지 않게 보완할 수 있었다.
만약 2008 수능 점수가 기계적으로 점수를 산출하는 방식이 아니라 종합평가를 위한 하나의 자료로 활용되는 방식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기계적인 평가방식을 쓰지 않으면 IB처럼 6과목 7점 만점으로도 학생을 선발할 수 있으니, 7과목 9등급이었던 2008 수능으로도 가능하다. IB 디플로마 점수는 국내를 포함하여 세계의 많은 대학이 종합적인 평가방식으로 아무 문제 없이 학생을 선발하고 있다. 교과 내신은 9등급 상대평가를 해도 점수 왜곡이나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왜 수능 공정성 문제가 제기되었을까. 어쩌면 공정성과 변별력을 혼동했거나, 수능에 의한 한 줄 세우기로 전국 석차를 내는 마음의 습관이 남아 있었는지도 모른다. 변별력은 어떤 평가방식을 활용할지에 따라 달라진다. 9개 등급으로 할지 7개 등급으로 할지, 6과목을 할지 7과목을 할지를 결정하려면, 평가방식을 미리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기계적인 평가방식을 쓸지, 종합평가 방식을 위한 하나의 자료로 쓸지, 단일 전형 요소로 하여 동점자 처리기준을 만들지, 복수의 전형 요소를 수평 혹은 수직으로 배열할지, 사전 혹은 사후에 지원 자격을 만들지 등에 따라 변별력은 만들어진다. 따라서 교과든 수능이든 절대적인 의미의 변별력은 없다.
대입 전형을 논의할 때 우리는 대개 기계적인 평가방식만을 염두에 두고 변별력 확보 방안을 생각한다. 이 때문에 변별력이 과도해진다. 그렇다면 현재의 교과 평가와 2025년 이후의 교과 평가 체제는 변별력이 있을까.
고등학교 내신의 변별력: 성취평가제와 대입제도
지난 2월 16일에 발표된 교육부의 『고교학점제 종합계획』에서 필자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사안은 2025학년도부터 적용될 고등학교 교과 평가방식이었다. 고등학교 교과 평가방식이 추후 이어질 수능 응시영역과 평가 체제를 비롯한 대입제도 논의의 출발점이자 방향타이기 때문이다. 교과와 수능과 대입제도가 서로 맞물려진 톱니바퀴처럼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학교 교육개혁과 새로운 학교를 설계하는 사회적 논의를 할 수 있다. 그리고 교과 평가와 수능 체제는 고교 유형과 직결된 사안이자, 동시에 사회적 담론으로서 공정과 성장을 교육에 어떻게 적용할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신호이다. 선택지에 따라 결과적으로 특정 고교 유형이나 지역에 더 유리해지기도 하고 덜 유리해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고등학교 내신은 절대평가를 하고 수능은 상대평가를 하면 수능의 영향력은 압도적으로 커진다. 그렇게 되면 수능 점수가 높은 지역이나 고교에 다니는 학생이 유리한 구조가 만들어지고, 이는 사회적 공정과 정의의 담론으로 진화한다. 학교 교육은 수능 문제의 정답을 찾아내는 데 집중하고, 사교육은 더욱 번성한다. 사회는 인구 감소와 과학기술의 발달로 급격하게 변하고 있고 창의적 사고를 강조하는데, 학교가 과거로 회귀하면 학교의 사회적 효용이 낮아지게 된다. 따라서 추후 이루어질 복잡한 대입 논의의 출발점이 고등학교 교과 점수산출 방식이다. 2021학년도까지는 교과에 여러 평가 지표가 있었어도, 거의 모든 과목에 상대평가 9등급이 있어서 관심의 초점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 입시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2021학년도 고등학교 내신 평가방식은 수능만큼이나 복잡하다. 원점수, 과목 평균, 표준편차, 성취도, 수강자 수, 상대평가 9등급이라는 성적 지표가 교과목 구분에 따라 다르게 기록되고 있다. 아마 이렇게 복잡한 고등학교 내신 점수 구조는 전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듯하다.

(자료: 2021학년도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령)
고등학교 교과 성적 산출 방식을 대학입시의 변별력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석차 등급은 과목별 최대 9개의 평가 등급으로 구성되어 있다. 만약 석차 백분위라면 최대 100개의 등급이 만들어진다. 원점수는 문항 수와 배점에 따라 달라지지만 4점짜리 25문항으로 점수를 산출하면 25개의 점수 혹은 등급이 만들어진다. 문항별 배점을 달리하면 등급은 더 많아진다. 4점짜리 24문항 + 1점짜리 4문항 조합이면 이론적으로 최대 100개의 점수가 만들어진다. 원점수 + 평균 + 표준편차가 있으면 표준점수를 만들 수 있는데, 단일 과목의 표준점수 수는 원점수의 수와 같다. 그러니까 동일 집단 내 단일 과목 기준으로 올해 석차 등급의 수는 9개, 성취도는 3개 혹은 5개, 원점수와 표준점수의 수는 각각 25개가 산출된다고 가정할 수 있다. 참고로 IB의 경우 과목별 평가 등급의 수는 7개이다. 여기에 변별력을 만드는 요소가 과목의 수, 서로 다른 평가집단, 서로 다른 분포 비율, 서로 다른 이수 단위가 있어서 다양한 방법으로 변별력을 만들 수 있다. 지금까지도 과목별 상대평가 9등급으로도 기계적으로 교과 점수를 산출하여 학생을 선발할 수 있었다. 9등급 외 다른 점수 지표까지 주었던 작년까지의 교과 평가방식은 변별력 측면에서 지나친 점이 있다.
작년까지는 이렇게 다양한 평가 지표 중에서 9등급만을 공통 지표로 활용하여 줄을 세웠는데, 올해부터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진로 선택과목은 상대평가 9등급이 아니라 원점수, 과목 평균, 3단계 성취도와 성취 비율로 표기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올해 2022학년도 교과 전형의 변별력은 어떻게 될까. 결론적으로 변별력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니 고등학교와 대학이 조용하다.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학생이 수강하는 공통과목이 7개(혹은 14개), 체육과 예술을 제외한 일반선택과목이 20개, 진로 선택과목이 10개라고 가정하면, 작년까지는 9등급 × 37과목에 단위 수 차이가 반영되어 변별력이 만들어졌다면, 올해부터는 9등급 × 27과목에 단위 수가 반영되어 변별력이 만들어진다. 2008학년도 수능은 9등급 × 7개 영역에 비중 차이가 반영되었는데 동점자는 별로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니 올해 교과 전형도 변별력에 문제가 없으리라는 유추가 가능하다. 진로 선택과목은 변별력을 갖지 못하지만, 교과 전형을 시행하는 대학의 커트라인과 진로 선택과목에서 A를 받을 학생의 분포 비율을 비교해 본다면 대학도 가점/감점 처리 정도로 수용할 수 있는 상황이다. 교과 전형을 운영하는 대학들은 석차 등급과 성취도를 “섞는” 새로운 공식을 만들어야 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변별력에는 문제가 없다.
그렇다면 올해 교과 전형 방식은 합리적일까. 합리적이지는 않지만 현실적이다. 이론적으로 본다면, 진로 선택과목의 성취도별 분포 비율에서 A등급이 23%일 때, 대학의 교과 전형 커트라인이 작년도 기준 석차 등급 3.00등급 이내라면 활용하지 않는 선택이 오히려 합리적이다. 다만 1학년과 2학년에 수강하는 공통과목과 일반선택과목으로 합/불이 결정되므로, 평가의 타당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교과 전형 커트라인이 2등급 이내인 대학들도 교과 전형을 많이 활용한다. 아마도 그 이유는 어차피 진로 선택과목이 영향력이 없고 가감을 통해 조정이 가능하며 수능 최저기준 활용을 통해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4 대학들은 합격자 분포에 별 차이가 없으리라 판단하는 것 같다.
모든 과목에 하나의 공통기준을 적용하여 줄을 세운다면 성취도를 갖고 해야 하지만, 성취도 평가로는 전국의 학생들을 줄 세울 수 없다. 동점자가 많이 발생하며, 이를 기계적으로 처리하기 어렵다. 그래서 작년처럼 올해도 여전히 9등급 방식이 유지된다. 문제는 변별력을 확보할 과목의 수가 어느 정도이며, 어느 커트라인의 대학까지 수용할 것인가, 여기에 포인트가 있다. 진로 선택과목은 교과 전형보다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정성적인 방식으로 평가될 것이다. 원점수와 평균을 활용하는 방식도 교과 전형보다는 학생부종합전형에서 활용될 수 있는 성적 자료이다.
고교학점제가 적용되는 2028학년도 입시의 교과 전형은 현재 방식의 연장선에 있으며, 다만 변별력을 확보하는 과목의 수가 줄어든다. 아래는 2025학년도 이후 교과 성적 산출 방식이다.
< 과목별 성적 산출 방식(안) >
| 구분 | 성취도 정보 | 통계정보 | 서열정보 | ||||
| 원점수 | 성취도 | 성취도별
학생비율 |
과목평균 | 수강자수 | 석차등급 | ||
| 보통
교과 |
공통과목 | ○ | 5단계 | ○ | ○ | ○ | ○ |
| 선택과목 | ○ | 5단계 | ○ | ○ | ○ | x | |
| 전문교과 | ○ | 5단계 | ○ | ○ | ○ | x | |
성취도 비율이 약간 조정되지만, 커트라인과 변별력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현행>
|
⇒ | <향후(’25~)>
|
< 성취평가제 확대에 따른 성적 산출 방식(예시) >
| 과목명 | 학점 수 | 원점수/과목평균 | 성취도(수강자 수) | 성취도별 학생 비율 |
| 정치와 법 | 4 | 85/64.4 | B(55) | A(7.3)
B(30.9) C(12.7) D(30.9) E(18.2) |
교과목 체제도 달라지지만, 주로 학생부종합전형에 영향을 주며 교과 전형의 변별력과는 관계가 없다. 종합평가의 주요 자료로 활용될 것이다.
| < 현행 > | < 개편 방안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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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8학년도에 교과 전형을 시행하는 대학은 이런 상황에 놓인다. 앞에서 들었던 예를 가져오면, 한 학생이 수강하는 공통과목이 7개, 일반선택과목이 25개, 전문교과가 5개일 때, [9등급 × 7과목에 단위 수 차이] + [5등급 × 25과목에 단위 수 차이] + [5등급 × 5과목에 단위 수 차이]가 반영되어 변별력이 만들어진다. 세밀하게 변별력을 만들 과목 수가 조금 줄어든다. 올해와 마찬가지로 교과 전형에서 변별력은 만들어지지만, 타당도는 올해보다 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학생을 세밀하게 평가하여 변별하려면 교과 전형을 활용하기보다는 지금과 다른 새로운 종합전형 방식을 고안하여 선발해야 하고, 학생을 모집하는 게 우선이라면 교과 전형을 유지하는 것이 경제적이다. 그러므로 교육부가 발표한 고교학점제의 교과 평가는 교육적 가치와 현실적 활용의 조합이며, 여기서 말하는 현실적 활용이란 학교교육 정상화 담론을 유지하면서 결과적으로 대학이 교과 전형을 계속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파격이 아니다. 약간의 기술적 조정이다. 이제 대학은 새로운 종합전형을 만들어야 하는 숙제를 떠안게 되었다.
교과 전형에서 고등학교 내신은 학교 내에서 얻은 점수를 전국적으로 비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고교 간 학력 격차는 심각하게 벌어져 있고 평가 지표도 하나가 아니라 올해부터는 섞이게 된다. 타당성이 점점 떨어지지만, 학생을 모집하는 대학의 입장에서는 가릴 처지가 아니다. 학생부종합전형에서는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보려고 하지만, 사회적으로 같음과 다름에 대한 기준이 여러 가지로 혼재하는 까닭에 대학도 일관적 기준을 공식화하지 않는다. 대입 제도를 정돈하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교과 성취도 평가 이후의 문제
올해 11월 치르게 될 2022학년도 수능은 기존에 축적된 수능 자료도 소용이 없을 정도로 역대 가장 복잡한 선택조합과 점수체계를 가진 수능이다. 커트라인은 응시영역 조합이 결정한다. 공정한가. 이 수능을 2027학년도까지 유지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2025년부터 2027학년도까지 적용할 징검다리 수능을 만들어 복잡한 상황을 조금이나마 정리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수능이지만, 이 수능의 문제점은 너무나 분명하다. 자사고 존속 여부가 헌재 판결에 따라 결정되는 상황도 대입제도 설계의 변수가 된다. (계속)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각주
-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경북대의 이탈률은 2015-19년 동안 매년 평균 12%(594.6명)였다.
-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IB 과목점수, 수준, 선택과목 등을 활용한 세밀한 동점자 처리기준을 여러 개 만들거나 다른 전형 요소로 추가적인 장치를 하면 학생선발이 가능하다. 다만, 이 경우 기준의 타당성은 별개의 문제이다.
- 평가방식에는 단일한 전형 요소를 활용하는 방식과 복수의 전형 요소를 활용하는 방식이 있다. 복수의 전형 요소를 활용할 때도 수평적으로 배열하는 방식도 있고 단계별로 수직화하는 방식도 있다. 사전에 지원 자격을 설정하거나, 수능 최저학력기준처럼 사후에 지원 자격을 설정하는 방식으로 지원자/합격자 풀을 조절할 수도 있다. 특정 전형 요소의 변별력을 보완하기 위한 기술적인 방법은 다양하다.
- 수능 최저기준은 지원한 이후에 지원 자격을 규정하는 제도로서, 수시모집에서 폐지되어야 한다.
스페인 마드리드 꼼쁠루뗀세 대학 박사 (중세 및 황금세기 문학), 페루카톨릭 대학 석사,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학사, (전)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기금 부교수
구체적인 내용에 기반하여 의견을 말씀해주셔서 항상 교수님 글을 통해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깊은 혜안을 통해 좋은 글들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