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 관찰과 기록을 둘러싼 긴장들
2020년 4월, 「제4차 표준보육과정」이 고시되었다(보건복지부 고시 제2020-75호). 0-1세, 2세, 3-5세 보육과정(누리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는 표준보육과정은 2019년 개정된 「2019개정 누리과정」(교육부 고시 제2019-189호)의 성격과 일관되게, 영유아·놀이 중심을 추구한다. 이 때 ‘영유아 중심’을 추구한다는 것은 영유아의 건강과 행복, 놀이를 통한 배움의 가치를 최대한 존중하여 보육과정을 운영한다는 것을, ‘놀이 중심’을 추구한다는 것은 영유아가 주도하는 놀이를 중심으로 보육과정을 구성하고 운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국의 모든 어린이집 및 보육교사는 이러한 표준보육과정의 방향을 반영하여 ‘영유아가 흥미와 관심에 따라 놀이에 자유롭게 참여하고 즐기도록’ 그리고 ‘영유아가 놀이를 통해 배우도록’ 지원해야 하는 것이다(보건복지부, 2020).
영유아·놀이 중심으로의 표준보육과정 개정과 더불어 2019년에는 어린이집 평가제도에도 변화가 있었다. 2005년 이후부터 어린이집의 신청에 의거하여 시행하던 평가인증제가 2018년 12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이 공포됨에 따라 전국의 모든 어린이집이 의무적으로 평가를 받아야 하는 평가제로 전환된 것이다. 2020년 시행된 <어린이집평가>의 경우, ‘영유아 권리 존중’, ‘놀이’, ‘안전’의 가치를 특히 강조하면서 영유아 중심의 안심 보육환경 조성을 바탕으로 놀이 중심의 보육과정 운영을 평가의 내용으로 제시하였다(보건복지부, 한국보육진흥원, 2020). 개정 표준보육과정의 성격을 반영하여, ‘보육과정 및 상호작용’ 영역과 ‘보육환경 및 운영관리’ 영역에 영유아의 놀이의 지원에 관한 사항과 놀이 중심 보육과정 실행의 사항들을 중요한 평가항목 및 내용으로 포함한 것이다.
영유아·놀이 중심으로 국가수준의 보육과정이 개정되고, 의무화된 어린이집평가에서 놀이 중심의 보육과정 운영을 주요 평가지표로 삼음에 따라 보육현장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영유아의 놀이나 놀이 중심 보육과정에 대한 관심과 또 어떻게 영유아·놀이 중심으로 보육과정을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다. 시간, 공간, 상호작용 등을 비롯하여 보육현장이 가지고 있는 여러 고민 중의 하나로 영유아 놀이의 관찰과 기록의 어려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유아의 놀이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지원하기 위해 그리고 영유아·놀이 중심 보육과정을 자율적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그 출발점 또는 연결점으로서 놀이의 관찰기록이 갖는 중요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뿐 아니라, ‘반별 보육일지에 하루 일과 및 놀이실행에 대한 기록(1-5-1)’이 있어야 한다는 어린이집평가의 지표가 보육교사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현실도 상기해야 한다. 영유아·놀이 중심을 추구하는 「표준보육과정」과 어린이집 보육과정 운영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어린이집평가>가 조응하고 있는지, 영유아의 놀이 관찰기록에 대한 성찰과 다양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최근 필자는 189명의 보육교사들로부터 원격면담을 통해 놀이 관찰기록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모은 적이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분석한 결과, 어린이집의 보육환경 및 업무환경의 한계, 주관적으로 기록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 교사 자신의 관찰기록 역량의 부족, 놀이 지원의 한계, 표준보육과정의 내용영역이나 어린이집평가제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어 관찰기록 해야 한다는 부담, 관찰이 놀이를 방해하는 것에 대한 문제 등이 보육현장에서 놀이의 관찰기록을 어렵게 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보육현장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필자는 보육현장에 내재해 있는 놀이 관찰과 기록의 패러독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개정 「표준보육과정」의 방향과 <어린이집평가>가 상호 충돌하면서 만들어 내는 모순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보육현장의 놀이 관찰기록을 둘러싼 긴장과 모순에 관해 특히, ‘발달’과 ‘객관성’이란 단어에 초점을 두면서 의견을 말해보려 한다.
첫째, 놀이 관찰과 기록은 영유아의 발달을 평가하기 위한 것이다?
필자가 읽은 놀이 관찰기록에 관한 보육교사들의 이야기에는 ‘발달’이란 단어가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의 배경에는 <어린이집평가>가 자리 잡고 있다. <어린이집평가>는 놀이를 ‘발달’이란 단어의 틀로써 제한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영유아의 일상생활, 실내외 놀이 및 활동에 대한 관찰 내용을 기록하고, 영유아의 발달특성과 변화를 평가한다.’(1-5-2)와 같은 지표는 놀이 관찰을 영유아 발달평가의 조건으로 전제하고 있다. 이 외에도 ‘영유아의 연령, 발달특성 및 놀이를 반영하여 구성하는 놀이영역’(2-1-1)에 관한 사항이나 ‘발달을 지원하는 다양한 놀이 및 활동자료 준비’(2-2-2), ‘발달에 적합한 다양한 바깥놀이 및 활동’(2-2-3)과 같은 평가지표를 통해 발달과 놀이를 결부시키고 있는 것이다.
발달이란 틀에 너무 과도하게 얽매여 놀이나 놀이 관찰기록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교사들은 영유아의 발달을 평가하기 위해 놀이를 관찰기록 해야 하고, ‘월 1회 이상 영유아관찰이 주기적으로’, ‘관찰내용이 특정 활동이나 영역에 치우치지 않도록’ 영유아를 개별로 관찰 또는 개별로 기록해야 한다. 이것이 과연 보육의 상황에서 가능한가? 바람직한가? 놀이 관찰기록을 발달 평가로 연결 짓는 것은 논리적 모순을 넘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교사들은 증언한다. 동시다발적으로 서로 얽히기도 하고 흐름과 관계들이 변화하는 놀이 속에서 개별 영유아를, 영유아의 개인 발달을 평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놀이를 발달 평가의 도구적 관점에서 바라봄으로써 나타나는 더욱 중요한 문제는 놀이의 본질과 가치에 대한 혼란에 있다. 놀이는 놀이 그 자체로서 존중받아야 하는 영유아의 권리임에 분명하다. 국제연합(UN)의 ‘아동의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의 비준 국가로서 놀이에 대한 아동의 권리(제31조 제1항)를 보장하는 것은 마땅할 뿐 아니라, 우리나라 헌법이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제12조 제1항), 행복추구권(제10주)에 근거하여 아동의 놀이의 권리를 기본권으로 법적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정기상, 2020). 영유아의 권리인 놀이는 자유와 주도성, 즐거움이란 본질을 지니고 있는 그 자체로서 목적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놀이의 관찰기록을 개별 영유아의 발달을 이해하고 평가하기 위한 필요조건으로서 공식화하고 있는 현행 <어린이집평가>는 개정 「표준보육과정」이 지향하는 영유아의 권리인 역동적인 놀이와 마주치면서 긴장과 모순을 만들어내고 있다.
둘째, 영유아의 놀이는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기록해야 한다?
영유아의 놀이를 표준보육과정의 5-6개 영역별로 맞추어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이 어렵다는 보육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필자는 그 연유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영역별로 관찰하고 기록해야 한다는 교사의 부담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영역별로 맞추어 골고루 관찰 기록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것이 영유아·놀이 중심의 보육과정을 담보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영유아교육의 관찰 및 평가 분야에서는 전통적으로 어떠한 현상을 분절화, 범주화, 구조화하면서 객관성을 강조하는 실증주의적, 행동주의적 관점이 주류를 이루어왔다. 그런데 복잡다단하고 역동적으로 전개되는 영유아의 놀이를 분절화, 범주화, 구조화하여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기록할 수 있을까? 놀이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기록해야만 하는가? 외부의 특정 기준에 맞추어 놀이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을 객관적이라고 하는 것인가? 관찰기록의 전통은 놀이와 만나면서, 그리고 놀이가 ‘영유아의 발달특성과 변화에 대해 표준보육과정을 토대로 하여 평가’하라는 <어린이집평가>와 마주치면서 긴장과 충돌이 발생한다.
영유아의 놀이를 관찰하는 것은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주의를 기울여 ‘온몸으로 보고 듣고 느끼는’ 주관적인 행위에 더욱 가깝다(이경화 외, 2020). 또한 관찰은 단지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수동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진지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것,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 경청하는 것, 그들의 해석을 존중하는 것, 그 상상력과 아이디어, 세상에 대한 가설, 감정과 관점에 대한 탐색에 능동적으로 가치를 부여하는 행위(Fawcett & Watson, 2016)로, 관찰하는 사람의 앎과 해석이 포함되는 주관적 해석의 과정이기도 하다. 특정의 기준에 맞추어 객관적으로 관찰기록 해야 한다는 논리는 영유아의 놀이 관찰기록이 객관적일 수 없다는 현실과 마주치면서 보육현장의 갈등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표준보육과정의 개정 이전에는 0-2세 보육과정과 3-5세 연령별 누리과정에서 연령별 발달기준 또는 연령별 성취기준으로서 계열화하고 이에 따라 영역별 내용 및 세부내용을 준거로 삼아 영유아의 발달상황을 기록하도록 권장해 왔다. 그러나 개정된 현행 놀이 중심의 보육과정은 내용의 성격도 관찰기록의 지향도 다르다. 표준보육과정의 5-6개 내용영역의 내용은 발달을 평가하기 위한 준거가 아니다(보건복지부, 2020). 표준보육과정의 영역별 내용은 영유아가 일상, 놀이, 활동에서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는 또는 경험해야 하는 것으로, 영역은 유사한 경험을 묶어놓은 단위일 뿐이다. 이러한 내용영역에 따라 놀이를 분절적, 범주적, 구조적으로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이 가능한가? 영역별로 분절하여 유아의 놀이 경험을 기록하거나 평가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타당하지 않으며 현실적으로도 가능하지 않다. 유아의 일상, 놀이, 활동의 경험을 기록하고 이것을 영역별 내용에 비추어 해석하는 것은 여러 가지 해석 및 평가방법 중 하나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렇게 표준보육과정의 내용 성격이 전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이집평가>에서는 개별 영유아의 놀이와 활동, 일상생활을 포함하여 관찰 기록하고, 관찰 내용이 특정 활동이나 영역에 치우치지 않도록 해야 하며, 영유아의 발달특성과 변화에 대해 표준보육과정을 토대로 하여 평가해야 한다고 명시함으로써(보건복지부, 한국보육진흥원, 2020), 표준보육과정의 내용이 영유아 발달 평가의 기준이며 영역을 골고루 관찰기록 해야 하는 것으로 현장을 강제하고 있다. 영유아의 놀이의 역동성 그리고 그러한 놀이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과정이 지니는 주관성은 관찰은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전통적 신념과 마주치면서 그리고 영역이라는 분절적 틀 안에서 개별 영유아의 발달을 관찰해야 한다는 제도적 요구와 마주치면서 긴장하고 갈등하고 있다.

영유아의 놀이 관찰과 기록을 둘러싸고 흐르는 보육현장의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소통이 필요하다. 우선 국가수준의 보육과정인 「표준보육과정」이 영유아의 ‘발달’이 아니라 영유아의 권리이자 삶 그 자체인 ‘놀이’를 지향한다는 것에 대해 보육현장과 학계 그리고 정책입안자들이 온전히 합의해야 한다. 또, 놀이를 객관적으로 관찰해야 한다는 경계를 넘어 관찰하고 기록하는 교사의 다양한 시선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과 표준보육과정의 5-6개 영역의 내용이 영유아가 도달해야 할 ‘발달기준’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경험하거나 경험해야 하는 내용’이란 것을 모두가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보육현장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놀이에 대해 그리고 놀이의 관찰과 기록에 대해 학술적 지평이 넓어지고 다양한 담론이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지기를, 그리고 보육현장에서 공적 언어로 작동하고 있는 「표준보육과정」과 <어린이집평가>가 모쪼록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기를 바란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참고문헌
보건복지부(2020). 제4차 어린이집표준보육과정 해설서. 세종: 보건복지부.
보건복지부, 한국보육진흥원(2020). 2020 어린이집평가매뉴얼. 서울: 한국보육진흥원.
이경화, 구옥선, 김미진, 김병만, 김성숙, 류주영, 박지영, 서보순, 손유진, 이진희, 정혜영, 홍성희, 최고은(2020). 유아 관찰 및 기록자료 개발 연구보고서. 창원: 경상남도교육청.
정기상(2020). 아동의 놀 권리에 대한 헌법적 보장 연구. 헌법재판연구, 7(1), 179-205.
Fawcett, M., & Watson, D.(2016). Learning through child observation (3rd ed.). London: Jessica Kingsley.
유아교육과를 졸업한 후 유치원과 보육정보센터에서 근무하였으며, 현재는 부경대학교에서 전·현직 영유아교사에게 영유아교육과정과 교사론 강의를 하고 있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에서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기를 꿈꾸며, 영유아교육 정책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그 대안을 찾아가는데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