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이 교육에 미칠 영향에 대한 오해와 진실
목차
1. 시작말
2. 4차 산업혁명이 교육에 미칠 영향과 함의
3. 미래 학교교육의 조망과 시급한 현안과제
1) 미래 학교교육에 대한 조망
2) 더 나은 교육을 위한 시급한 현안과제 8
4. 문재인 정부 학교교육의 개혁과제와 방향
1) 문재인 정부가 던져야 할 7가지 질문
2) 문재인 정부 교육개혁 과제의 비판적 검토
3) 문재인 정부 교육개혁이 지향해야 할 분야별 기본 원칙과 방향
5. 맺음말
1. 시작말
한국에서는 ‘4차 산업혁명’, ‘미래교육’이란 용어가 최고 인기어(buzz word)가 되었다. 한국이 유독 그렇다.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의 한국 내 확산은 2016년 다보스에서 개최된 2016 세계경제포럼(일명 다보스 포럼)이 포럼 주제를 ‘Mastering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으로 잡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를 번역하면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잘 이해하고 4차 산업혁명이 초래할 도전적 과제를 극복하기’ 정도가 될 것 같다. 이 용어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과 활용이 지나치다는 비판이 많다. 필자도 이런 비판에 공감한다. 하지만 이미 너무나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어서 이 글에서도 이 용어를 사용하기로 한다.
4차 산업혁명의 진전은 어떤 범위, 내용, 수준에서 교육과 관련이 있을까? 관련 분석들을 보면 4차 산업혁명이 교육에 주는 직접적인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세계의 교육자들 중에는 4차 산업혁명과 학교교육을 연결시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보스 포럼은 2016년 주제와 관련해서 5개의 핵심질문을 던지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4차 산업혁명은 건강, 이동성(mobility), 금융 및 교육을 포함한 산업 분야를 어떻게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을 것인가?”이다. 교육을 하나의 관심 주제로 삼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필자는 한국의 교육이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하는 주된 이유로 4차 산업혁명을 내세우는 것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는 자칫 교육을 기술결정론, 인적자본론으로 몰고 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와 관련해 문재인 정부의 교육개혁 과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현재 학교교육이 마주하고 있는 도전적 과제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어떻게 근본적으로 변해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아울러 4차 산업혁명이 교육에 미칠 영향에 대한 오해와 진실에 대해서도 밝혀보고자 한다. 이어서 4차 산업혁명이 교육에 미칠 영향을 살펴보고 긴급한 해결을 기다리고 있는 현안과제도 도출해볼 것이다.
2. 4차 산업혁명이 교육에 미칠 영향과 함의
4차 산업혁명은 산업, 경영, 인간의 삶 전반에 전례 없는 규모와 강도로 영향을 크게 미칠 것이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이 교육에는 어떤 영향을 어느 정도 미치게 될까? 직접적 영향은 그리 크지 않으며 간접적 영향이 크다는 판단이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과 교육을 과도하게 연결시키는 것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지금까지 과도한 반응을 보인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런 반응은 자칫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육은 지금까지 우리가 추구해왔던 바람직한 교육의 상과 크게 다르고, 또 달라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또한 현재의 교육 현안을 이대로 두고 미래 교육의 신화(myth)를 쫓게 할 수도 있다. 미래는 언제나 현재와 맞닿아 있고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미래 교육은 새로운 교육이 아니다. 이는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가 추구했지만 이루지 못한 더 나은 교육을 말한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미래 교육은 지금 우리가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하느냐에 달려있다는 사실이다. 5.31 교육개혁이 지금의 교육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MB 정권 때의 고교 300프로젝트가 내신 절대평가를 도입하고자 할 때 어떤 걸림돌이 되고 있는지, 학생부종합전형의 도입이 학교교육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지, 표준화 시험 성적으로 교육의 책무성 관리를 하는 것이 학교교육에 어떤 악영향을 주었는지, 수능처럼 객관식 표준화된 시험 점수로 줄 세워 학생을 뽑는 일을 20년 넘게 지속시킴으로써 시험 점수가 마치 인간의 능력을 타당하게 변별하는 것인 양 심각한 오해를 쌓은 폐해 등을 생각해보라. 어제의 잘못된 결정이 오늘의 잘못된 교육으로 나타난다. 이는 지금 더 좋을 결정을 하면 그것이 더 나은 미래가 된다는 뜻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4차 산업혁명을 교육 변화의 주된 동인(動因)으로 삼지 말자는 것이다. 이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기술의 발전이 교육에 주는 영향이 적다는 의미가 아니다. 교육은 4차 산업혁명보다도 기본적으로 문화적, 정치적 영향을 훨씬 더 크게 받는다. 인간은 기술 발전의 영향을 받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술 발전의 방향과 질을 결정하는 존재이기도 한다. 4차 산업혁명의 진전을 벤치마킹해서 교육 2.0부터 마무리하고 교육 3.0 시대를 열어 가야 할 것이다.
사회가 아무리 변해도 교육의 근본 목적(purpose)은 변하지 않는다. ‘출신 배경에 상관없이 모든 아동의 타고난 강점·재능을 살려 잠재력을 최대치로 실현시키기, 책임 있는 민주시민이 되기, 좋은 가족 및 좋은 아내·남편이 되기, 다양성을 존중하고 타인과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능력 키우기, 그리고 높은 윤리성과 도덕성 갖추기, 마주할 도전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창의적 문제해결능력과 같은 고등사고력 갖추기’ 등은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않을 교육 목적이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이 교육에 미치는 직간접 영향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며 어떤 함의를 지니고 있는가? 대체로 아래와 같이 6가지 측면에서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 발전된 기술을 교육에 잘 활용함으로써 교육의 목적과 목표를 저비용으로 더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교육에 게임원리의 도입, 3D 프린터의 활용, 가상현실 및 로봇 티쳐의 활용 등은 익히 알려진 것들이다. 이런 기술을 잘만 이용하면 현재의 잠자는 교실을 바꾸고, 개별화 맞춤 교육의 환경을 만들어 교육격차를 줄이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사회의 변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Bring Your Own Device (BYOD)1, 메이커스페이스2, 3D 프린팅, 적응형 학습기술(adaptive learning technology)3, 디지털 배지4, 웨어러블5 기술 등이 5년 이내에 학교교실에 활용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둘째, 직업의 자동화는 많은 학생들에게 미래 직업 없이 살아가야 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불안감을 주고 이것이 현재의 학교교육에 대해 학생들이 의미를 느끼지 못하거나 냉소적인 상황을 심화시킬 수 있다.
관련 연구에 의하면 저숙련, 저임금 일자리가 가장 먼저 자동화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런 우려스러운 미래에 대해 교육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많은 전문가들은 이런 시대의 도래에 대비하기 위해서 인공지능(AI)에 비해 인간이 더 잘할 수 있는 비판적 사고능력, 추론능력, 문제해결능력, 복잡한 의사소통능력, 협업능력, 공감능력과 같은 사회적·정의적 능력, 학습능력 등이 더 중요해진다고 말한다. 논리적 사고 영역은 인공지능이 더 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정의적 역량과 비판적 사고능력, 창의성 같은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학교교육에서 지속적으로 강조되어 왔던 부분이다. 실천이 안 되었을 뿐이지 교육의 새로운 목표는 아니다. 이제는 이런 능력을 강조하는 단계를 넘어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실질적 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다.
셋째, 진로교육의 패러다임을 전면 수정해야 할 것이다.
미래 직업 세계 변화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향후 20년 내에 현재 직업의 47%가 자동화될 것이다”, “2025년이면 오늘날 직업의 50%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오늘날 초등학생의 65%는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직업에 종사하게 될 것이다”, 또한 “21세기 청년들은 32세가 될 때까지 평균 9개의 다른 일(job)을, 일생 동안은 복수의 산업분야(industrial sector)와 몇 개의 직업(occupation) 분야에서 10~15개의 일(job)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와 같은 예측이 있다.
이 같은 21세기 일자리 환경에서는 진로교육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진로교육’의 낡은 패러다임은 자신의 흥미, 적성, 가치관을 파악하고, 자신의 개인적 특질에 가장 잘 맞는 직업을 정한 후, 이 직업이 요구하는 교육과 훈련을 받아 자격을 갖춘다는 식이다.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제2차 진로교육 5개년 계획(2016-2020)의 핵심인 ‘진로인식(초등학교) – 진로탐색(중학교) – 진로설계(고등학교) – 진로선택(대학교)’은 어떤가? 이 역시 전형적인 산업시대의 직업 선택 모델에 가깝다. 21세기 ‘진로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생애설계에 있으며 자신에게 꼭 맞는 직업을 찾는 과정이 아니다. 이는 일생을 살아가면서 마주할 수많은 기회에 현명한 선택을 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 지식, 태도, 인성 등의 역량(competencies) 요소를 갖추는 접근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산업시대의 진로교육 모델이 “어떻게 하면 나에게 맞는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 평생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까?”에 초점을 두는 것이라면, 21세기 진로교육은 “어떻게 하면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고 배운 지식을 나와 세상을 위해 이롭게 쓰며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에 초점을 두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진로교육이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고 그 직업에 도달하기까지의 경로를 설계해주는 일’이란 낡은 접근은 조속히 개선되어야 한다. 진로교육을 생애발달과 생애설계란 개념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럴 경우 진로교육의 핵심은 소프트 스킬의 개발, 평생학습능력 함양,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의 적응능력 키우기, 자신의 강점을 발견하고 살리기 등이 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 지식과 정보의 기하급수적 증가와 이의 수명주기 단축은 새로운 교수학습 방식을 요구하게 된다.
지금처럼 교과서에 지식을 담아 교사가 이를 가르치는 시대는 막을 내릴 때가 되었다. 과거 지식이 귀했고 지식의 변화는 느렸으며 지식을 가진 사람이 소수였을 때 학교를 통한 지식의 전수는 매우 필요했고 의미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지금은 지식의 대홍수가 매일 매시간 일어나는 시대이다. 20세기 초에는 지식이 2배로 늘어나는데 걸리는 시간이 100년이 걸렸고, 세계 2차 대전 전후로는 25년이 걸렸으며, 오늘날에 와서는 나노 지식의 경우는 2년이, 의료 지식은 18개월이 걸린다. 인간의 지식은 평균적으로 13개월마다 두 배가 되며, 사물인터넷(IoT)이 완성되면 12시간마다 2배가 될 예정이라고 한다(David Russell Schilling, Researcher IndustryTap.com, 2014). 이런 시대에 현재와 같이 지식을 얇은 교과서에 담아 수년 동안 계속 사용하는 식의 교육은 한계점에 이르렀다. 이제 지식의 대홍수 시대에 맞는 지식의 접근과 활용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대안이 Teaching for Understanding(TfU)6, Understanding by Design(UbD)7이다. 이는 피상적인 지식의 습득에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활용능력을 중시하는 교수학습의 새로운 접근 방식이다. 2015개정 교육과정의 통합사회, 통합과학에서 이의 일부 개념을 차용한 바 있다.
지식의 습득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이제는 지식의 활용 능력을 키우는 시대를 활짝 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교육과정, 교과서 단원 설계 방식, 교수법, 평가방법 등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이에 관한 연구와 적용을 소홀히 한다면 한국의 학교교육의 근본적 혁신은 계속 미뤄지게 될 것이다.
다섯째, 교사의 역할이 달라지고 새로운 교육생태계에 어울리는 새로운 개념의 학교 탄생을 촉진할 것이다.
21세기 교육생태계의 큰 변화를 살펴보면 특징 중 하나가 지식의 생산자와 소비자 구분이 모호해진다는 점이다. 아울러 교사와 학생은 지식의 공동생산자이자 공동학습자의 위상을 갖는다. 2030년이면 전 세계 학생 70%가 디지털 아바타에게 수업을 듣게 될 것이란 예측도 있다. 교육은 기존의 표준화에서 학생이 학습에 관한 선택과 통제권을 점점 더 많이 가지게 되는 개별화·개인화 방향으로 옮겨갈 것이다. 이런 교육생태계 변화와 함께 교사의 역할은 안내자, 촉진자, 공동학습자 등으로 변화할 것이다.
또한 학교의 개념도 크게 변할 것이다. 21세기에는 학교가 더 이상 배움이 일어나는 유일한 장소가 될 수는 없다. 배움은 사이버 세상에서, 학교 안팎에서 시공간에 제한받지 않고 일어나기 때문이다. 학교의 존재방식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학교 내에 다양한 작은 학교가 존재하고 다시 작은 학교는 다양한 대안적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10~20명 규모의 다양한 학습 가족(혹은 동아리)으로 구성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지역사회가 제공하는 대안적 프로그램에 의존하는 학생도 늘어날 것이다. 이는 학교의 물리적 담장이 소멸하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도 점점 더 다양해질 것이다. 부유한 지역 중심으로 유료 과외나 학원들이 온오프라인에서 소규모로 특색 있는 교육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한국의 사교육 진화 과정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도 있다. 미래로 갈수록 졸업장의 의미가 쇠퇴하고 특별한 기술이나 기능의 습득을 증명하는 자격증의 역할이 더 커질 것이다. 공식적 교육을 받지 않더라도 필요할 때 수시로 설립되는 학교나 프로그램들을 통해 학습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평생학습 시대가 성숙될 것이다.
여섯째,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교육격차를 줄이는 교육, 민주 시민교육과 사회정의 교육의 필요성이 커질 것이다.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공동체의 삶을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더 평등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미래 사회로 갈수록 기술의 발전이 진전될수록 소수의 엘리트 기업이 부를 독점하게 될 것이고 이는 부의 편중과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다. 이는 다시 교육 불평등을 낳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할 것이다.
한국이 개발독재 시대에는 소수 엘리트를 우대하는 교육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지금은 사회 갈등을 줄이고 사회 통합을 지향하기 위해 사회적 약자 계층에 대한 사회적 투자와 함께 교육 격차를 줄이는 것을 교육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미 세계의 주요국들은 오래전부터 이렇게 해오고 있다. 아울러 민주시민교육과 사회정의 교육의 강화가 꼭 필요하다. 민주시민교육은 타인에 대한 존중, 책임감, 공정, 정직, 배려, 공동체에 대한 헌신 및 이상적인 민주주의 실현을 강조한다. 한편 사회정의 교육은 사회 불평등에 대해 학생들의 인식 수준을 높이고 사회 불평등이 유지되는 것이 어떤 제도, 기관 및 개인의 역할 때문인지 규명하며 사회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해 실천적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사회정의의 실현이란 민주적 원칙과 개인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공정과 형평성의 핵심원리를 구현하고 사회의 모든 기회에 대해 공정한 접근이 보장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사회정의 교육은 어떤 특권도 없고 학업성취가 낮은 학생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열정을 모으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불평등에 대한 이해는 물론 완화 방안에 대해서까지 학교교육에서 다룰 필요가 있다.
이상과 같이 4차 산업혁명이 교육에 미칠 영향으로 가장 직접적인 것은 발전된 기술과 기기를 활용해서 교육의 효율성을 높이고 학생 맞춤 개별화 교육의 계기로 삼는 일, 진로교육의 패러다임은 바꾸는 일 등이다.
3. 미래 학교교육의 조망과 시급한 현안과제
앞에서 4차 산업혁명이 교육에 미칠 영향과 함의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어서 학교교육의 미래를 조망해보고자 한다. 미래의 학교교육에 대한 조망 없이는 자칫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연장선상에서 미래교육을 바라보며 교육 의제를 설정하고 시대착오적인 방향으로 공약을 추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학교교육에 대한 전문가들의 예측에 의하면 미래 학교교육의 주요 변화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1) 미래 학교교육에 대한 조망
(1) 학교의 존재 형태
① 기존의 학교제도는 여전히 존재하겠지만 존재 형태가 크게 변할 것이다.
② 2035년쯤에도 전통적인 학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전통적인 학교 제도에서도 잘 배우는 학생들 중심으로 그 규모가 작아질 것이다.
③ 학생들이 단일 학교를 다니지 않고 복수의 학교나 교육기관에서 원하는 코스를 골라서 듣게 될 것이다.
④ 중학교 상급학년 이상의 많은 학생들은 온라인 학교를 포함한 비전통적인 학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다. 이런 비전통적인 학교들은 전통적인 학교에서는 제공하지 않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2) 학위와 학력 인정
⑤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전통적 학위는 여전히 중요하고, 비공식적 학습경험이 중요한 자산으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이를 인정하기 위한 표준이 만들어질 것이다.
(3) 교육과정
⑥ 기존의 표준화된 교육과정은 사라지거나 대폭 유연화될 것이다.
⑦ 학교는 특정 지식보다 일반적인 역량, 많은 영역에 공통으로 필요한 역량(transversal skills) 함양에 힘쓸 것이다.
(4) 교수학습법
⑧ 교실 내 학생 다양성이 갈수록 증가될 것이고 이런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교수학습 방법과 전략이 도입될 것이며, 조기 학교중단을 막기 위해 학교는 개별화 교육을 통해 개인의 필요와 흥미를 더 잘 만족시키게 될 것이다.
⑨ 학습자의 적극적 참여를 통해 의미를 도출(meaning-making)하게 한다.
(5) 평가
⑩ 21세기 학생평가는 전통적인 비공개 지필평가와 지식의 활용능력(역량)을 평가하는 공개적 수행평가가 동시에 활용된다.
21세기 학생평가는 크게 2가지 특징을 갖는다. 하나는 ‘학습을 위한 평가’(assessment FOR learning)의 강조이고, 다른 하나는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지식의 평가에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지식의 활용 능력 즉 수행 역량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이는 ‘표준화된 환경, 문제의 비공개, 개인별 평가결과 산출’을 특징으로 하는 전통적 평가와 달리 ‘비표준화된 환경, 문제의 공개, 개인평가와 팀평가 결과의 통합’이란 특성을 갖는다.
전통적 평가에서는 자신의 성취도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른 학생을 이기기 위해 시험을 보는 순간 각자 개인만을 위해 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전통적인 평가에서는 암기가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그러나 21세기 새로운 평가는 깊은 이해와 활용, 전이(transfer) 능력 등을 중시하기 때문에 시험의 목적은 현실세계를 반영하며 거기에는 항상 다양한 변수와 가변성이 존재한다. 학생들은 예기치 않은 문제 상황에서의 창의성 발현이나 예기치 않은 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으로 평가받게 된다. 또한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서 평가과정에 학생들이 파트너로 참여한다. 학생들은 시험의 범위와 출제 가능한 문제들을 이미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이러한 문제 출제에 참여하고 기여한다. 평가에는 개별적 또 집단적 노력을 반영한다. 21세기 새로운 평가는 비공개 지필평가로 평가할 수 없으며 자기평가, 동료평가, 관찰평가, 포트폴리오평가 등이 활용된다. 다음은 학교 수업 활동의 평가가 어떻게 발전해 갈 것인가를 나타내는 도표다.
<표1> 평가의 깊이에 따른 평가의 발전 방향

이상과 같은 미래 학교교육에 대한 조망이 주는 함의는 다음의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학교의 존재 형태가 한국의 경우 어떻게 변할 것인가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마을 교육, 오디세이 학교, 학교 시설 밖에서 이루어지는 방과후 프로그램, 특색 있는 대안학교 등을 생각해보면 앞으로 학생들은 학교 울타리를 넘나들며 배우는 것이 일반화될 것이다. 이는 대안적 프로그램을 활성화시키고 필연적으로 평가와 학력인정에서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둘째, 새로운 책무성 시대를 열 것이다. 이제 각 지역에 맞는 교육에 대한 욕구가 커질 것이고 교육은 시공간을 초월해 학교 안팎에서 일어난다. 이것이 새로운 학력인정 제도, 새로운 책무성 관리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셋째, 개별 분과적 교과지식을 습득하는 것 외에 이를 활용해서 역량을 함양하려는 요구와 정의적 역량 함양이 강조되고 이는 질적 평가 시대를 열게 될 것이다. 넷째, 교실 내 다양성의 증가로 인해 지속가능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개별화 교육으로 점진적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은 미래 학교교육에 대한 조망에 대해 공감한다면 현재의 교육시스템과 교수법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짐작케 해준다.
2) 더 나은 교육을 위한 시급한 현안과제 8
지금 한국의 학교교육에는 시급히 개선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학생과 교사의 삶의 질과 건강의 악화, 교실내 다양성의 증가, 교육의 형평성(equity) 위기, 학교교육에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학생의 증가, 교사들의 인지심리학 및 교육뇌과학 지식 활용 미흡, 고교 내신 9단계 상대평가의 폐해, 교사중심 주입식 교육과 책임 이전 문제 등이 그에 해당한다.
(1) 학생과 교사의 삶의 질과 건강의 악화
건강은 신체적 건강과 함께 정서적, 정신적, 윤리적, 사회적 건강 모두를 일컫는다. 선행학습 사교육이 가장 심한 지역에 사는 아이들일수록 정신과를 찾는 아이들이 많다는 기사를 이미 오래전부터 접해오고 있다. 대다수 교사들의 소진(burnout)도 매우 우려되는 수준이다. 마이클 풀란(2016)은 교육개혁이 실패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가 교사의 소진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캐나나 온타리오 주는 몇 년 전 교육의 목표를 새로 설정했는데 그중 하나가 ‘아동의 웰빙(wellbeing) 증진’이다. 우리나라 아동의 뇌 건강 상태를 사진으로 찍어보면 아마 세계에서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 건강하지 않은 뇌를 가지고 있는 아동·청소년이 많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문재인 정부는 학생과 교사의 건강 문제를 심각히 살필 필요가 있다.
(2) 학습량과 학습 부담의 과다
한국의 학교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의 원인은 다양하게 분석할 수 있지만 그 중 대표적인 것 하나가 학습량과 학습 부담의 과다이다. 학습량을 줄이려는 노력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교과목 이해관계에 발목이 잡혀 번번이 실패했다. 이의 원인이 과목이기주의, 밥그릇 싸움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2015개정 교육과정의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이 좋은 예다. 융복합 인재양성이란 정치가들의 구호성 정책 때문에 통합사회, 통합과학이 고1 공통과목으로 개발되고 고1 필수 과정으로 편입된 것이다. 현재 고1에서 사용되는 사회교과를 예로 보자. 지금은 5단위 5단원이지만 새로운 통합사회는 8단위 12단원으로 구성되어 학습량이 과도하다.
학습량 과다가 초래하는 대표적인 폐해는 무엇일까? 우선 학습량 과다는 피상적인 수업, 진도 나가기 수업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통합교과로 개발한 취지인 ‘관찰, 조사, 분석, 탐구, 토론, 프로젝트 수업’ 등의 다양한 활동 중심 수업은 기대하기 어렵다. 다음으로는 부담이 크다는 점이다.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에는 일반선택에서 다루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어서 학생 부담은 매우 크다는 것이 교사들의 분석이다. 또 다른 폐해로는 하위 기반지식을 제대로 배우지 않은 채 탐구 및 활동중심 수업을 할 경우 관련 기초 지식이 없는 학생들은 배움과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다. 바로 이런 문제점이 교육 격차와 사회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학습량이 과도하면 진도 나가기 바빠 깊이 있는 학습이 불가능해진다. 이는 창의력 개발 기회를 빼앗는 지름길이다. 교육과정 개정 작업이 학자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문이과 칸막이 제거’, ‘융복합’과 같은 정치적 구호가 결국 2015개정 교육과정을 왜곡시켰고 지금 수능의 절대평가 전환에 수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3) 교실내 다양성의 증가
한국의 학교교육이 직면하고 있는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교실 내 다양성의 증가이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출신 문화의 차이, 인지적 학습에 대한 준비도의 차이 등이 커졌다. 그리고 21세기 오늘날의 아동들은 충동성이 높고 주의 집중 시간이 짧아져서 교사들의 생활지도나 수업지도가 더 힘들게 되었다. 이는 교사들의 소진과 무력감으로 이어진다. 이미 성숙된 다문화 사회로 진입한 나라들은 “미래사회에 성공적인 교육시스템이란 그것이 다양성에 얼마나 잘 대처하고 모든 학생으로 하여금 수업에 참가해 성장할 수 있게 하는가의 여부로 정의될 것이다(헬싱키디자인연구소, 2011).”란 점에 주목하면서 교육도 이에 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한국도 어려움이 있더라도 학생 맞춤 개별화 교육에 대한 로드맵을 만들고 강력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미국교육학회(AERA)에 참가했을 때 문화적으로 반응성이 높은 교수학습법(culturally responsive pedagogy)에 대한 관심과 소개가 많았다. 평가에서도 문화적 편향을 줄이기 위한 미국의 노력이 인상 깊었다. 새로운 SAT1 에세이 시험에 이를 반영한 것이다. 한국도 지역에 따라 다문화 가정 학생들의 비중이 매우 높은 곳들이 많다. 이제 단일문화 사회였을 때 만들어진 교육과정, 교수법, 평가 모두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세계적 흐름은 통합교육을 넘어 포용적 교육(inclusive education)이다.
(4) 교육의 형평성(equity) 위기
21세기 사회의 큰 특징 중 하나가 부의 편중과 불평등 증가이다. 이는 소수의 엘리트나 엘리트 기업이 부를 독점하고 그 부가 사회 전체로 퍼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경제적 불평등이 교육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교육 불평등은 다시 경제적 불평등을 낳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이런 격차의 심화는 사회 갈등을 심화시키고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그래서 세계의 주요국들은 학교교육의 최대 과제를 “Excellence through Equity” 실현으로 잡고 있다. 이를 풀어서 해석하면 “학생들의 출신 배경과 상관없이 긍정적 차별정책을 통해 각자의 강점과 잠재력을 최대한 실현시키는 교육”이란 뜻이다. 이는 교육자는 물론 사회 구성원 전체가 타인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려는 덕목(moral purpose)과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이타주의가 발동할 때 가능하다. 한국의 경우 중하위권 학생들은 일상적으로 수업에서 배제되고 있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실효성 있는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는 사회적 투자가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그 이전에도 학교교육을 통해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은 얼마든지 있다.
한국의 경우 “쟤들은 어떤 것을 해도 안 돼.”란 고정 관점(fixed mindset)이 팽배하다. 이제 교사들의 마인드가 “모든 아동은 성공적으로 배울 수 있다.”란 성장 관점(growth mindset)으로 바뀌어야 한다. 교육 형평성 제고를 지금처럼 소홀히 한다면 이는 사회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사회 갈등을 키워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도 있다. 교육 형평성 제고를 위한 대책 마련은 시급한 과제이다.
(5) 학교교육에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학생 수의 급증
학교교육에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학생 수가 증가하는 추세는 세계 주요국의 교육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세계적 부러움을 사는 핀란드 교육조차 최근 학생들의 절반 가까이가 학교교육에 냉소적이며 이는 학교교육에서 의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란 보도를 접한 적이 있다. 한국은 이보다 훨씬 더 심할 것이다. 아동의 뇌변화(예: 주의 집중 시간의 단축)를 따라가지 못하는 교육과정과 교수법, 교사와 학생 간 관계의 질 악화, 학생의 삶과 관련을 느끼지 못하는 수업 내용과 방식, 개별화 지도의 부재, 직업 없이 살아가야 하는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는 미래 사회에 대한 우울한 전망, 대학 졸업장의 가치 하락, 이런 것들이 주요 원인일 것이다. 이런 것이 교실 붕괴를 재촉한 면이 크다. 세계 주요국들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의미’(meaning)와 ‘참여’(engagement)라는 두 요소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모든 학생들에게 맞춤 지도나 맞춤 교육과정 운영을 통해 의미를 느끼게 하고 그 결과 학습활동에 활발히 참여하게 한다는 전략이다. 교육뇌과학의 연구는 이런 주장을 강력히 뒷받침한다. 그래서 뇌기반교수학습원리에서는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려는 노력은 10%로 제한하고, 의미 있는 수업을 위해 90%의 노력을 쏟으라고 조언한다. 정책결정자들, 실행자들, 연구자들 모두가 교육뇌과학을 필수적인 기초 소양으로 갖추어야 할 것이다.
(6) 교사들의 교육뇌과학 지식 활용 미흡
21세기 학습과학에서 가장 눈부신 발전은 단연 교육뇌과학(educational neuroscience)이다. 기술의 발달로 뇌 속에서 학습이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진전되었다. 이미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인간의 뇌는 어떻게 학습하는가(How People Learn)?’란 연구보고서를 냈고, 최근 새로 도입된 차세대 과학도 뇌과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캐나다의 주요 주들도 뇌과학을 교육에 활용해서 보편적 학습설계(Universal Design for Learning: UDL)8와 같은 높은 수준의 학습환경을 마련하여 오래 전부터 활용하고 있다. 한국은 아직도 보편적학습설계란 용어 자체가 생소한 상황이다. 바로 앞에서 소개한 의미와 참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인지심리학과 교육뇌과학 지식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일찍이 영국황실연구소장 수잔(2008) 박사는 21세기 학교 교실에는 “분석적 사고보다는 상황 설명적(episodical) 사고 증가, 성찰적이기보다는 반응적·반사적 언행 증가, 주의집중 가능 시간의 감소, 학습부진아 증가, 충동 및 감정 통제능력 저하”를 특징으로 하는 아동들로 가득할 것이란 연구 결과를 소개한 적이 있다. 이는 컴퓨터, 비디오, 영상물에 대한 과다노출로 인한 뇌 변화의 결과이다. 인간 뇌의 연속적 집중 시간이 가속적으로 짧아지고 있다. 이제 몰입과 집중이 어렵고 사회성, 감성 지능이 낮아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아동이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이에 대한 대비를 인성교육으로 하고자 하는 현재의 정부의 전략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7) 고교 내신 및 수능 9단계 상대평가의 폐해
내신의 경우 미국의 많은 주와 일본이 5등급, 중국이 4등급 상대평가를 채택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한국의 내신평가는 9등급 상대평가로 학생을 과도하게 변별하고 있으며 그 폐해가 매우 크다. 무엇보다도 아동의 성장에 대한 교육자들의 책무성 의식을 흐리게 만든다. 줄만 세우면 아무도 성장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교육의 경쟁 강도를 완화하고 학교 교육이 본질에 충실한 교육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내신평가 및 수능의 9단계 상대평가를 5등급 정도의 절대평가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내신이든 수능이든 평가를 통해 강하게 변별하지 말아야 한다. 변별력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학교 교육은 대입시를 위한 자료 생산기능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8) 교사중심 주입식, 획일적 교육의 폐해
한국의 학교교육에서 가장 큰 문제를 한 가지 지적하라면 수업이 교사 주도(teacher-centered teaching)라는 점이다. 학생의 흥미 및 준비도에 대한 고려 없이 주입식, 획일적 교육을 하는 것이 문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학습량의 과다, 입시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 때문에 중고교 수준에서는 여전히 교사주도 주입식, 획일적 교육이 일반적이다. 교육뇌과학에 의하면 이런 식의 수업은 학생들의 뇌에는 가장 비효율적인 학습법이다.
이제 교사중심 주입식 교육의 비중을 점차적으로 줄이며 학습자 주도 학습(learner-centered learning)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는 가르친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학습은 학습자의 능동적·적극적 참여를 통해서만 일어난다. 학습자의 준비도, 동기 등도 실질적으로 학습이 일어나기 위한 결정적 필요조건이다. 이런 배경에서 변화의 핵심은 학생이 자기의 학습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강화하는 것이다. 무엇을 어떤 수준으로 어떤 방법으로 배울지를 결정할 때 학습자의 참여가 있어야 한다. 적어도 중고교 수준에서는 그렇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교사의 역할에 대한 인식변화가 필요하다. 교육자는 학생들의 미래를 준비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이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제 한국의 교사들은 학습자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또 무너진 교실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라도 교단의 현자의 자리에서 내려와 학습자 곁으로 가서 안내자, 촉진자, 동기유발자, 학습기획자, 멘토 등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런 변화는 교사가 점진적으로 학습 책임을 학생에게로 이양(gradual release of responsibility)함으로써 실현된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 스스로가 배울 내용, 수준, 방법에 대해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힘을 키워주는 것(empowering)이 핵심이다. 이런 변화에 대해서는 최근 미국이 구체적인 전략과 방안까지 내놓고 있어 이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이상을 통해 미래 학교교육의 조망과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살펴보았다. 이제 이런 것을 감안할 때 문재인 정부의 교육정책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볼 차례다.
4. 문재인 정부 학교교육의 개혁과제와 방향
문재인 정부의 교육개혁 과제는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는 교육개혁 과제가 선거 공약을 통해 만들어진 것인 만큼 국민들에게 약속했던 새정부 100대 국정과제 속에 포함된 7가지 교육개혁 과제의 타당성을 재검토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 교육의 장기 계획에 해당되는 ‘교육 15-20년지 대계’를 짜서 이와 연계된 단기적 교육개혁과제를 짜고 실천하는 일이다.
한 가지 특별히 주목할 점은 바로 앞에서 소개한 ‘더 나은 교육을 위한 시급한 현안과제 8’과 문재인 정부의 공약 간에 일치하는 것이 ‘7) 고교 내신 및 수능 9단계 상대평가의 폐해’ 딱 한 가지뿐이란 점이다. 8가지 현안에 공감한다면 선거 공약을 통해 교육개혁 의제를 개발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이라도 교육의 큰 밑그림과 나아갈 중장기 방향을 설정한 다음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교육개혁 과제를 선정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타당성이나 우선순위가 낮은 공약은 국민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폐기하는 것이 옳다.
1) 문재인 정부가 던져야 할 7가지 질문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를 정해 놓고 너무 급하게 밀어붙인다는 비판이 있다. 매우 타당한 비판이다. 특히 교육의 경우, 연구도, 준비도,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도 없이 급하게 밀어붙이면 그 정책은 100% 실패한다. 따라서 가장 먼저 아래 7개 질문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널리 토론하는 시간을 먼저 갖기를 제안한다.
(1) 질문1-2
“2030-2035년 한국 미래교육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교육비전];
우리가 바라는 2030-2035년 한국 미래교육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 [달성방안]”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현재 한국의 경우 정권을 초월해 이루고자 하는 교육비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고, 또한 선거공약으로 도출된 교육개혁 과제는 분절적일 수밖에 없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선거공약은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 각계각층 유권자들의 교육에 대한 불만, 요구사항을 반영하는 형식을 취한다. 그렇다보니 선거공약으로 제출된 교육개혁 의제는 민원처리의 성격과 분절적 접근이란 치명적 결함을 지니게 된다.
(2) 질문3
“학교교육을 대입시에 계속 예속시킬 것인가, 사회적 합의를 통해 대입경쟁의 강도를 획기적으로 완화시킴으로써 아동·청소년의 삶과 건강을 지키며 학교교육을 정상화시킬 것인가?”
지금 정부가 고려하고 있는 방식처럼 기존의 시스템을 그대로 둔 채 작은 것 하나 추가하거나 뺀다고 학교교육의 질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이는 충분한 연구와 논의를 거쳐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지금처럼 수능 9등급 상대평가를 9등급 절대평가로 바꾸는 식의 접근으로는 혼란만 야기하지 이를 통해 학교교육의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 수 없다. 현재의 대학은 취업준비기관화 되어 제 역할도 하지 못하면서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막는 최대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이렇게 된 원인과 해법에 대해 사회적 대토론이 필요하다. 대입 전형자료의 변별력 논쟁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볼 문제이다.
(3) 질문4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학교제도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할 것인가, 아니면 기존 시스템은 그대로 두고 기존 시스템의 최적화를 위해 작은 수선만 계속할 것인가?”
이제 기존의 학교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달려져야 한다. 학교라는 제도에 맞는 아동·청소년과 맞지 않는 아동·청소년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하나의 제도 속에서 모든 아동·청소년을 교육시키려는 발상을 잠시 내려놓고 새로운 상상을 해야 한다. 이제 탈표준화(post-standardization)를 심각히 고민할 때다. 교실 내에는 세 부류의 학생들이 있다. 어떤 교육과정에도 잘 적응하는 부류, 의미는 느끼지는 못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어 마지못해 수업에 임하는 부류, 학교제도에 전혀 맞지 않고 적응이 거의 불가능한 부류가 바로 그것이다. 현재의 표준화된 교육과정 속에서 필연적으로 하위권 학생들은 학교교육을 통해 배움과 성장을 이룰 수 없다. 이것은 제도의 탓인가 학생의 탓인가? 당연히 제도의 탓이다. 이런 아이들은 제도의 희생양이다. 요한 갈퉁은 이를 폭력적인 제도라고 말한다. 사실 야만적인 제도다. 기존의 학교제도는 근본적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더 이상 “학교는 아픈 환자는 소홀히 하고 건강한 사람만 돌보는 병원과 같다.”란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4) 질문5
“교육에서 국가의 역할을 어디까지로 (한정)할 것인가?”
이 역시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지금까지는 오랜 관습에 젖어서 학교교육의 모든 것을 중앙정부가 획일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했다. 중앙정부의 역할은 언제나 중요하지만 이제 중앙정부는 큰 방향만 제시할 필요가 있다. 즉 중앙정부는 교육의 큰 방향이나 플랫폼만 제공하고 17개 시도교육청 단위로 더 나아가 각 학교단위로 각 지역 실정에 맞는 교육이 이뤄지게 해야 한다. 한 예로, 지금처럼 의무교육의 기간도 아닌 고교 수준까지도 무엇을 어떤 수준으로 배워야 할지를 학생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국가가 정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도, 시대의 흐름에도 맞지 않는다. 현재 학교교육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이며 학교교실이 붕괴된 제1의 이유가 학생 개인에 대한 존중에 너무 인색했기 때문이다. 이제 중등교육 수준에서는 “무엇을 얼마나 배울지를 누가 결정하는 것이 타당한가?”란 질문을 가지고 사회적 대토론을 시작해야 한다.
(5) 질문6
“학습이 시공간을 초월해 일어나고 있는 시점에 지금과 같이 표준화 시험성적으로 책무성을 관리하는 관행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교육의 표준화는 모든 학생들이 최소한 배워야 할 목표 수준을 정하고 이를 달성시키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다. 이러한 표준이 없다면 지역마다 학교마다 교육의 목표가 들쭉날쭉해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표준화의 본질적 목적 그 자체를 잊은 지 이미 오래된 것 같다. 모든 학생을 이 최저 기준에 도달시키기보다는 하위권이 일상적으로 수업에서 배제되는 상황을 너무나 오랜 세월 방치했다. 이는 매우 부도덕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이런 표준화된 교육을 본격 도입한지 20년이 넘었다. 그 결과는 거의 예외 없이 부정적인 면이 더 컸다. 표준화된 교육과정은 질 관리를 위해 표준화 시험을 도입시켰고 표준화 시험의 결과로 질 관리를 하면서 학교교육의 목적이 표준화 시험의 성적 향상이란 그릇된 믿음을 각인시켰다. 이제 새로운 표준화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표준화와 개별화의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이것은 문재인 정부가 주목해야 할 매우 중요한 과제의 하나다.
(6) 질문7
“21세기 학교 개념을 어떻게 재정의하고 학력인정을 어떻게 다양화할 것인가?”
이제 학교에 대한 상상을 전면적으로 다시 해야 한다. 전통적인 학교제도처럼 나이가 같다는 이유로 같은 학년으로 구성하고 같은 내용, 같은 수준의 것을 배우게 하는 관행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이 문제는 고교 학점제 도입 차원의 논의를 넘어선다. 벨기에의 한 연구소(The Learning and Redesign Lab)가 연구해 발표한 ‘학습공원’(Learning Park)처럼 학교를 하나의 공원처럼 생각해보는 것이다. 이 공원에는 작고 큰 특색 있는 학교가 여러 개 존재하고 각 학교에는 15-20명 단위의 학습가족(Learning Family)들이 있는 것이다. 하나의 Focused Learning Community, 즉 특색 있는 학습 동아리인 셈이다. 이들 학습 동아리들은 최소한의 공통교육과정 외에는 다양하고 특색 있는 대안적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런 학습공원에는 교장이란 직책도 존재하지 않는다. 복수 학교와 복수 학습가족들이 자원을 함께 나누고 배움과 삶이 통합된 환경을 관리하는 코디네이터가 있을 뿐이다. 덴마크 교육처럼 국가가 재정을 지원하는 기준, 학력을 인정해주는 기준이 지금보다 훨씬 더 유연해져야 한다. 한번 입학하면 학교를 계속해서 다니는 관행, 졸업장 제도 등 모든 것을 새롭게 논의했으면 한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가 크다.
2) 문재인 정부 교육개혁 과제의 비판적 검토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에 아래와 같은 내용을 포함시키고 있다. 모두 선거공약에 포함되었던 과제들이다.
49. 유아에서 대학까지 교육의 공공성 강화
2018년 어린이집 누리과정 전액 국고 지원
유치원·어린이집 격차완화
2020년 고등학교 무상교육 단계적 실시
50. 교실혁명을 통한 공교육 혁신
2018년 고교학점제 도입확대
국가교육회의에서 고교 체제 개편 추진
2018년부터 복잡한 대입전형 단순화 추진
51. 교육의 희망사다리 복원
2021학년도 사회적 배려대상자 기회균형선발 의무화
국가직 지역인재 9급 채용 단계적 실시
대입 출신고교 블라인드 면접 도입
52. 고등교육 질제고 및 평생·직업교육 혁신
거점 국립대 집중 육성
2019년 공영형 전문대 직업교육 지역거점 육성
53. 아동청소년 안전하고 건강한 성장 지원
2021년까지 학교밖 청소년 지원센터 전체 시군구 확대
인터넷·스마트폰 과 의존 청소년 전담상담사 확대
54. 미래 교육환경 조성 및 안전한 학교 구현
2021년 소프트웨어 교육 내실화 및 선도 핵심 교원 육성
2018년 학교시설 개선 종합계획 수립
76. 교육 민주주의 회복 및 교육자치 강화
국가교육회의 설치
역사교과서 국정화 폐지 및 자유발행제 단계적 도입
문재인 정부가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시킨 교육개혁 정책에 대해 유념해야 할 점이 4가지 있다. 첫째, 교육이나 평가가 나아가야 할 큰 방향이나 밑그림을 먼저 그리지 않고 정책을 추진한다는 점이다. 이런 정책은 실패가능성이 매우 높다. 모든 정책은 비전을 먼저 설정하고 그쪽으로 나아가기 위한 하위 정책을 구상해야 한다. 둘째, 선거공약이란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공약의 한계와 실패 위험성이다. 공약은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유권자 층별 요구를 외면하기 어렵다. 그렇다보니 공약의 내용이 모두 분절적일 수밖에 없다. 대표전인 예가 대입전형 단순화, 수능 전과목 절대평가 전환, 고교 학점제 도입, 고교 체제 정비 등이다. 이들 요소들은 상호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이들 정책은 각각 분절적으로 추진할 수 없는 것들이다. 대입전형 단순화와 수능 절대평가 전환, 고교 학점제 도입과 내신 상대평가, 내신 절대평가 전환과 현재의 특목고 체제는 양립하기 어렵다. 서로 충돌한다. 이런 점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공약을 제시했기 때문에 수능절대평가 도입에서 보듯이 수습이 어려운 상황이다. 셋째, 제시한 교육정책이 내포하고 있는 ‘행동이론(Theory of Action)’ 가설의 정확성, 신뢰성이 낮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수능을 9등급 절대평가로 전환하면 수능 영향력이 축소되어 학교교육의 내실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와 같은 가설을 말한다. 이 가설은 틀렸다. 9등급 절대평가처럼 등급 수가 많아서는 경쟁완화, 학교교육 내실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마이클 풀란은 자신의 책(The New Meaning of Educational Change, 제5판. 2016)에서 교육정책이 실패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 하나로 개혁가의 잘못된 가설과 합리성에 기반한 강한 집념을 꼽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국가교육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하면 교육의 연속성,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는 가설을 믿고 있다. 필자는 이 가설이 오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한다. 공약을 통한 교육개혁은 최소화하고 교육비전을 수립한 다음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교육개혁과제를 새로 도출해야 한다. 교육개혁 과제 도출의 프로세스를 전면적으로 바꾸어 교사와 학생들을 참여시켜 문재인 정부의 교육과제를 새로 도출해야 한다.
3) 문재인 정부 교육개혁이 지향해야 할 분야별 기본 원칙과 방향
앞에서의 지적처럼 문재인 정부의 교육공약은 변화 행동이론의 원리에 따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문재인 정부는 국민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교육정책 과제 선정과 실천을 위한 일정 등을 다시 짜야 한다. 이를테면 2030-2035년 교육비전을 먼저 만들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지금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하는 식이 되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 교육개혁이 지향해야 할 원칙과 방향을 먼저 생각해보자.
(1) 교육 철학과 원칙
교육과정 총론에는 한국 교육이 추구해야 할 핵심 가치가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의 지향점이 달라지는 것도 학교교육이 지향해야 할 핵심가치가 규정되어 있지 않은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교육의 가치는 무엇인가? 교육이 추구해야 할 핵심 가치를 세계 주요국들처럼 총론에서 규정하고 이것이 어떤 정책을 결정할 때 판단의 기준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교육개혁을 위한 기본 원칙이 없으면 개혁 사안마다 부딪친다. 의사결정에 일관성도 없게 되고 의사결정을 내리기도 매우 어렵다. 한 예로 모든 학생들이 공통으로 배워야 할 수준을 중3까지로 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고1까지로 하는 것이 옳은가? 교육과정 운영에서 공통과 선택에 대한 기본 원칙이 없으면 공통으로 배우는 것을 중3까지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 고1까지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이 분분할 수 있다. 사회탐구와 과학탐구 과목의 경우 융복합 인재양성이란 명분으로 고1 모든 학생들이 공통으로 배우게 한 것은 두고두고 문제가 될 수 있다. 21세기 사회의 학습자 특성을 고려하면 공통으로 배우게 하는 것은 중학 수준을 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 교실 내 3부류의 학생군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들 모두를 존중하는 접근을 한다면 지금처럼 이 두 과목을 모든 고1 학생이 강제로 배우게 하는 것이 아닌, 사회탐구와 과학탐구 둘 다를 배우든지 하나만 배우든지 하는 것을 학생 개인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 이는 공정이란 가치를 저버린 것이다. 제2, 제3 부류의 학생들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결정은 갈퉁의 표현을 빌면 폭력적이다. 선택과 공통에 대한 철학과 원칙이 분명했으면 한다.
(2) 교육 목적
시대가 변했다. 시대에 맞게 교육의 목적도 강조점이 달라져야 한다. 예를 들면, 아동의 웰빙, 타인과 함께 일하고 함께 살아가는 능력, 평생학습능력 등의 함양을 교육의 우선적인 목표로 삼고 이의 지표를 잘 관리할 필요가 있다.
(3) 교육 과정
현재의 표준화된 교육과정을 유연화할 필요가 크다. 표준화와 개별화의 균형을 추구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또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사람은 타인(학자와 정부)이 배울 내용, 방법, 수준 등을 결정해서 강제로 따르게 하는 방식으로는 내적 동기가 유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늘날 학교교실이 무너진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학생들에게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고(empowering) 자기결정권(autonomy, agency)을 돌려주자. 이를 위해 문재인 정부는 ‘배울 내용을 누가 결정해야 하는가?’란 주제로 사회적 대토론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4) 교수학습
교실 다양성 증가와 불평등 증가로 인해 학생에게 자기 결정권을 강화하는 즉, 임파우어링(empowering)이 가장 시급히 개선해야 할 과제라 생각된다. 이는 지도(teaching)에서 학습(learning)으로 교수학습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일이다.
(5) 학생 평가(내신)
학생 평가는 ‘학습을 위한 평가(assessment FOR learning)’가 주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세계적으로 이견이 없다. 모든 평가를 성장과 발달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이제 평가는 적게 가르치고 깊이 배우게 하는(Teach less, Learn more)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 아울러 참평가(authentic assessment) 시대를 활짝 열어야 한다. 이것이 교육을 바꾸는 핵심 동인(動因)이다. 문재인 정부의 혁신적인 평가정책을 기대한다.
(6) 고교 체제
한국과 같은 대입전형 체제 속에서는 국가발전을 위해 최소한의 예외만 인정하고 고교 체제는 평준화를 지향해야 한다. 수능과 내신을 절대평가로 전환하기 위해 고교 평준화는 필수적이다.
(7) 대입전형
학생의 삶, 학생의 건강, 학교교육의 내실화를 담보할 수 있는 대입전형을 고안해야 한다. 고교 교육과 학생들의 진정한 성장을 희생시키는 대입전형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먼저 변별력의 덫, 총점으로 줄 세워 선발하는 방식이 시급히 개선되어야 한다.
(8) 수능시험
수능시험은 수시전형의 질 향상, 안정화와 함수 관계에 있다. 객관식 수능이 학교교육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너무 크다. 현재 9등급 절대평가 전환 계획은 여전히 학생의 삶, 건강, 학교교육의 질을 희생으로 대학의 선발을 우선하는 발상이다. 수능의 영향력을 축소해야 한다. 수능과 내신 모두 충분한 준비를 해서 5등급 절대평가로 전환해야 한다.
수능만으로 선발하는 정시전형은 없어져야 한다. 객관식 표준화 시험 한 가지로 학생을 선발하는 곳은 한국 외에는 지구상 어디에서도 찾기 쉽지 않다. 수능을 5단계 절대평가로 하되 내신 성적을 함께 참조하게 해야 한다. 이는 수시와 정시가 통합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9) 학생부
학생부 기록의 목적이 학생의 성장과 발달에 초점이 있지 않고 상위 학교의 입학을 위한 표준화된 전형자료의 생산이 주목적이 된 상황이다. 이는 긴급히 개선돼야 한다. 학생을 제대로 관찰하지도 않은 채 상위등급 학생 중심으로 학생부 세특(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사실과 다르게 기록하는 것은 매우 불공정한 일이며 범죄에 가깝다.
(10) 교육재정
‘긍정적 차별’을 통해 공정성과 형평성(fairness and equity) 제고에 더욱 힘써야 한다. 지표 관리를 통해 개선하는 방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11) 교육의 책무성 관리
표준화 시험 성적으로 하는 책무성 관리는 학교교육의 목적을 표준화 시험성적 향상으로 타락시켰다. 교육생태계의 변화를 고려해 새로운 책무성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책무성에 대한 초점은 교육자들이 효과적인 지도 역량을 갖추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모순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책무성 관리를 통해 교육을 이끄는 접근은 시스템 개혁은커녕 책무성을 얻는 최선의 방법도 아니다. 시스템 전체의 개혁이 일어나려면 변화의 주도자들이 교육자 대다수의 동기부여와 역량 구축에 신경을 써야 한다. 책무성에 관한 당근과 채찍과 같은 조치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지도, 달성할 수도 없다.” (학교개혁은 왜 실패하는가? 44쪽)
(12) 학교교육과 입시의 공정성
학교에서 하위권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수업에서 배제되고 있지만 누구도 적극 나서서 이를 해결하지 않고 있다. 형식적 노력에서 벗어나 “모든 아동은 성공적으로 배울 수 있다”, “격차를 줄인다”를 핵심으로 하는 도덕적 목적(moral purpose)을 학교문화 변화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한편 학생부종합전형이 안정화되려면 교육자들이 윤리성을 회복하고, 어떤 불공정한 입시자료도 생산하지 않아야 한다. 수업의 질 개선 없이 또 학생에 대한 관찰과 소통의 기회도 부족한 상태에서 하는 학생부의 화려한 기록은 심한 분식(粉飾)이며 일종의 범죄행위이다. 가장 큰 원인은 학생부 기록이 대표적인 대입전형자료로 쓰이기 때문이다. 대입전형 자체를 덜 경쟁적이게 하지 않고는 해결이 어렵다. 5등급 절대평가 전환과 함께 수시와 정시의 통합도 시급하다.
(13) 교원의 양성·임용·전보·진급
현재와 같은 교사의 양성·임용·전보·진급 방식으로 학교 교육의 질을 높이고, 집단적 책임감이 넘치고 전문학습공동체가 잘 작동하는 학교 문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국의 교육 리더들이 학교 문화를 바꾸는 전문성을 시급히 갖추도록 해야 할 것이다.
5. 맺음말
이상과 같이 4차 산업혁명이 교육에 미칠 영향과 문재인 정부의 교육개혁 과제 중심으로 한국의 학교교육이 근본적으로 개혁되기 위해 무엇이 문제이고 해법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필자는 교육은 시대변화에 상관없이 가장 기본에 충실해야 하고 미래는 현재의 우리 선택과 결정에 의해 결정되는 측면이 크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문재인 정부는 공약의 이행에 연연하지 말고 가장 먼저 ‘던져야 할 7가지 질문’, ‘새로운 미래교육을 만들어 가기 위한 시급한 과제들’, ‘문재인 정부 교육개혁이 지향해야 할 원칙과 방향’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접근이 한국의 학교교육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4차 산업혁명에 가장 잘 대처하는 길이기도 하다. 후대에게 문재인 정부가 ‘국민의 열망을 담은 교육의 비전을 새롭게 제시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주춧돌을 놓은 정부’로 기억될 수 있기를 바란다.
[주] 이 글은 필자가 국제미래학회에서 발표한 ‘4차 산업혁명이 교육에 미칠 영향과 새정부의 교육개혁 과제’란 글을 약간 수정한 것임을 밝혀둔다.
[참고자료]
• ‘4차 산업혁명이 교육에 미칠 영향과 새정부의 교육개혁 과제’(국회토론회 자료. 이찬승, 2017)
• ‘2030년 미래사회 조망과 학교교육이 나아갈 길’(강원도 교육 토론회 자료. 이찬승, 2016)
• 교육희망 칼럼 #259, 256, 233, 231, 226, 220, 217, 214, 195, 185, 164, 161, 158, 154, 151, 148, 145, 142, 138 (교육을바꾸는사람들, 2014~2017)
http://21erick.org/bbs/board.php?bo_table=11_5
• 서울국제교육포럼(2016) ‘교육 불평등을 넘어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을 향하여’ 자료집
• 『한국 공교육 미래방향 제안』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부설 21세기교육연구소. 이찬승 외, 2013)
• ‘수능 체제, 3안이 필요하다’(한겨레 신문, 이찬승. 2017년 8월 15일)
• 『교육개혁은 왜 실패하는가?』(The New Meaning of Educational Change)(5th edition, Michael Fullan, 2016)(교육을바꾸는사람들, 근간)
• 『21st Century Skills』: Rethinking How Students Learn(2010)
• Education 2035: Where’d the Schools Go? (Kurt Cagle, 2014)
• Education for Democracy, Equality and Social Justice: A Transformative Model
(Jorge P. Osterling, Ph.D., 2005)
• In Studio: Recipes for Systemic Change.
http://www.helsinkidesignlab.org/peoplepods/themes/hdl/downloads/In_Studio-Recipes_for_Systemic_Change.pdf
• Knowledge Doubling Every 12 Months, Soon to be Every 12 Hours
Knowledge Doubling Every 12 Months, Soon to be Every 12 Hours
• The Future of Learning(IPTS, 2011)
• The New School in 2030: How can we make learning and working attractive? ( The Learning and Redesign Lab, 2014)
• http://blog.prepscholar.com/new-sat-changes
• The Future of Jobs and Skills
http://reports.weforum.org/future-of-jobs-2016/chapter-1-the-future-of-jobs-and-skills/
• A Myth for Teachers: Jobs That Don’t Exist Yet(May 27, 2015 )
• New Vision for Education: Unlocking the Potential of Technology
http://www3.weforum.org/docs/WEFUSA_NewVisionforEducation_Report2015.pdf
• What is the theme of Davos 2016?
https://www.weforum.org/agenda/2015/11/what-is-the-theme-of-davos-2016/
• Understanding by Design Framework by JAY MCTIGHE AND GRANT WIGGINS(2005)
http://www.ascd.org/ASCD/pdf/siteASCD/publications/UbD_WhitePaper0312.pdf
• What is Teaching for Understanding?(2008)
https://www.gse.harvard.edu/news/uk/08/05/what-teaching-understanding
• Teaching for understanding: A meaningful education for 21st century learners
https://jaymctighe.com/wordpress/wp-content/uploads/2011/04/Teaching-for-Understanding.pdf
각주
- Bring Your Own Device (BYOD) – 수업에 학습자 자신의 기기(예: 휴대폰, 휴대용 컴퓨터)를 가지고 와 사용하자는 운동
- 메이커스페이스 – 공동의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해서 컴퓨터나 기타 기술적 도구들을 이용하여 서로 공동으로 작업할 수 있는 공간
- 적응형 학습기술 – 개인의 학습 수준에 따라 학습 서비스를 자동으로 제공하는 학습기술
- 디지털 배지 – 다양한 학습 환경에서 습득한 스킬, 품질 등에 대해 휴대폰을 이용해 인증해주는 시스템
- 웨어러블 – 머리에 쓰는 가상현실 헤드셋, 차는 스마트 워치, 끼는 구글 안경 등과 같이 착용 가능한 정보수집 및 분석기기
- TfU: 정보 홍수 시대의 새로운 수업 방식이며 UbD에 대한 하버드 교육대학원의 최근 명칭이다.
- UbD: 21세기 교육 목표로 핵심 개념(core ideas, big ideas)의 이해와 이를 새로운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전이(transfer) 능력을 중시하는 단원 역순 설계 방법이다. 교육과정, 평가 및 학습지도를 안내할 단원 설계 절차와 구조를 말하며 이의 실행에 필요한 7가지의 핵심 원칙(tenets)을 기반으로 한다(McTighe, J., & Wiggins, G., 2005).
- UDL은 원래 보편적 설계는 특수교육 분야에서 개발된 원리로서 신체적, 인지적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일반 교육과정을 학습하는데 있어서 겪는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도움을 주기 위한 방법론으로 도입되었지만, 근래에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학교 환경에서 어려움을 겪는 모든 학생들도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교수학습 시스템을 설계하는 이론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네이버 지식 백과). 참여를 위한 수단, 학습할 수단, 활동과 표현의 수단을 복수로 제공한다는 3가지 원리를 기반으로 한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짧은 직장 생활을 경험한 후 지금의 능률교육(NE능률)을 창립하여 30년을 경영하면서 영어교과서와 참고서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다. 2009년 회사를 매각하고,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이란 비영리 공익단체를 설립하여, 현재 이 단체 대표직을 맡고 있다. 국가 교육시스템 재 디자인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 청소년들도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개혁에 특히 관심이 많다. 수업혁신과 교육격차 완화를 위해 학습과학의 연구와 전파, 그리고 교원 연수에도 힘쓰고 있다.
- 이메일 : eduinnovator@21erick.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