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기, 영유아기 아이들의 주도적 배움을 일상 속에서 함께 이끌어 가는 사람은 ‘부모님’입니다!
영유아기 자녀를 둔 부모님께
코로나19로 인한 사회 변화는 가슴 아프게도 아이들의 일상에도 스며들었습니다. 세상을 온 몸을 활용하며 감각으로 탐험하는 시기인 영유아기 아이들은 마스크를 끼고 한정된 공간에서 분절된 놀이를 합니다. 유치원에서 서로 떨어져 앉아 혼자 밥을 먹고 혼자 놀이꾸러미를 풀어서 놀이하는 모습이 아이들의 삶의 뉴노멀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스크는 아이들의 놀이 욕구와 그들 고유의 놀면서 배우는 방식들을 막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마스크를 끼나 안 끼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탐험하며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탐구하고, 흥분하고, 뚫어져라 쳐다보고, 자신의 방식으로 개념을 이해하고, 실험하고 도전합니다. 다시 말해, 아이들은 언제나 놀이하면서 주도적으로 세상을 배워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아이들의 놀이를 바라보는 성인들의 시선은 코로나19 사태가 인간과 인간 사이의 분절을 만들어 내기 전부터 이미 분절적이었고 위계적이었으며 놀이 그 자체를 매우 단순하게 취급해왔을 수 있습니다. 실제 아이들의 놀이 경험 속으로 들어가서 아이들이 어떻게 배우는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을 부모의 역할 속에 포함시키지 않았어요. 오히려 주변을 맴돌았지요. 부모님들은 우리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왔지만 내 아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아이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 주변을 맴돌았을 수 있습니다.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사례1) 요즘 유행하거나 유튜브 등에서 소개하는 장난감을 사주고 나면 부모의 역할을 다한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아이는 그 장난감을 오래 가지고 놀지 않고 다른 장난감을 요구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왜 또 다른 장난감을 사달라고 하는 것이지요?
사례2) 아이들이 특정 시기에 즐겨 보는 디지털 매체들이 있습니다. 어느 순간 매체들이 아이들의 삶을 점유하기 시작합니다. 이미 아이 머릿속은 심심할 때 ‘유투브!’가 딱 떠오릅니다. 어린 시절 놀이 경험의 중요성은 이렇게 디지털 매체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면서 서서히 물러납니다. 흥미로운 컨텐츠로 가득 찬 디지털 매체를 보는 경험이 일상이 되어 결국 우리는 아이 손에서 폰을 뺏어야 합니다.
사례3)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나오면 아이들은 조잘 조잘 기관에서 했던 놀이나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집에서 놀이를 이어가거나 같이 해보자고 신호를 보냅니다. 아이들은 몇 번 시도해보지만 엄마·아빠는 피곤하여 듣는 척만 합니다. 아이는 관심 있었던 놀이를 이어가지 못하는 경험을 되풀이하게 됩니다. 어쩌면 아이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왔을 기관에서의 경험에 대해서는 우리는 무관심했을지도 모릅니다.
사례4) 엄마표 놀이를 준비합니다. 수학놀이도 준비하고, 엄마표 미술활동도 준비하고, 요리활동도 계획해봅니다. 실컷 준비했는데 아이는 정작 다른데 관심이 있어 사진만 찍고 끝난 적은 없으신가요? 실컷 잘 놀기는 했는데, 주도성, 자율성, 창의성과 같은 역량을 기르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하기엔 뭔가 부족한 듯합니다. 이렇게 놀이를 유도하는 활동만으로 충분할까요?
우리는 놀이가 중요하고, 특히 어린 시절의 초기경험이 결정적이라는 말을 여러 연구나 이론을 빌어 주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영유아기 아이들이 세상을 배워가는 방식이자 힘인 놀이 경험을 실제로 하고 있는 아이들의 배움에 주목하여 귀 기울이고 그것을 따라가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매우 적게 해왔습니다. 그리하여 놀이의 힘에 대한 믿음을 쌓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요. 아이들이 놀면서 스스로 배운다는 믿음은 아이가 일상에서 하는 놀이경험에 귀 기울이고 따라가 보면 금세 알게 됩니다.
“지금, 우리 아이의 머릿속은 무엇으로 가득 차 있을까요?”
서준이의 머릿속은 온통 곤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곤충 책만 보고, 색종이로도 곤충만 접고, 곤충 채집을 가자고 조릅니다. 유치원 선생님께 곤충책 두 권을 추천받아 밤마다 읽어줍니다. 주말마다 곤충채집하러 나갑니다. 메뚜기, 귀뚜라미, 모기, 사마귀는 잡아봤는데 잡고 싶은 장수풍뎅이는 좀처럼 만날 수가 없습니다.

서준: 엄마! 채집을 하려면 무엇이 필요하게?
엄마: 글쎄?
서준: 채집 도구가 필요해. 포충망과 채집통이 필요해.
엄마, 장수풍뎅이는 어디에 사는지 알아? 바로 참나무 숲에 살아.
수액을 먹고 살아. 몰랐지?
엄마: 엄마는 전혀 몰랐네.
서준: 장수풍뎅이는 야행성이라서 야간 채집을 가야해.
서준: 나는 곤충 똑똑 박사야!
아이는 이미 채집박사가 되어 있었다.
장수풍뎅이 키우는 방법을 검색해서 알아보고 몰래 장수풍뎅이 한 쌍과 집을 구매해 두었다. 도착한 날 장수풍뎅이 한 쌍을 숨기고 채집을 하러 나갔다. 무엇이 필요한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르니 아이가 하자는 대로 준비하고 따라선다.
지나가시던 할아버지께서 눈치를 채시고 도와주신다.
할아버지: “우와, 너 뭘 잡은 거야?”
서준: 우와! 장수풍뎅이 암컷이에요.
(엄마를 보며) 어떻게 발견했어?
곧 한 마리를 더 발견한다.
서준: 어, 장수풍뎅이 수컷이다. 뿔이 있잖아. 뿔 봐!
아빠한테 전화해! 엄마가 발견하고 내가 잡았다고!
본격적으로 장수풍뎅이 한 쌍의 탐구가 시작된다. 손으로 잡아보고 기겁하고 먹이를 주고 날갯짓을 보며 흥분한다. 말이 점 점 많아진다.

서준: 장수풍뎅이는 야행성이라 밤에만 활동해,
암컷은 알을 낳으면 밑에 들어가서 안 나와.
엄마: 이제 그만 집에 넣어두자.
서준: 아니야. 더 봐야지. 충분히 봐야지.
서준: 지금 몇 월이야?
엄마: 10월이야.
서준: 8월에 왔으니까 이제 죽어, 장수풍뎅이는 3개월 밖에 못살거든.
엄마: 어떡하지? 보관해보고 싶어? 묻어주고 싶어?
서준; 보관!
엄마: 방법이 없을까? 화석 만들어 볼까?
서준: 좋아~

며칠 후 정말 암컷은 알을 낳고 죽었다. 화석 만드는 재료를 함께 알아보고 준비해서 화석을 만들고,
서준: 엄마, 오늘은 며칠 지났어?
엄마: 왜 물어?
서준: 알이 유충이 되었을까? 성충이 되었을까?
엄마: 궁금해? 조심해서 파보자.
흙을 삽으로 가장자리부터 파본다.
서준: 우와! 도대체 뭐야. 진짜 애벌레가 되었어.
기쁨을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듯 폴짝폴짝 뛴다.
이렇듯 6월 우연히 시작된 곤충에 대한 관심으로 서준이는 곤충박사가 되어가고 있다. 모든 지식과 경험들은 아이 자신의 것으로 스스로 배움을 주도하고 거침없이 성장한다. 아이는 이렇듯 자신의 관심과 흥미가 머무는 데로 아이 특유의 놀이하는 힘을 통해 스스로 배움을 지속시키고 이끌어 나간다.
최근 영유아기 아이들을 둔 학부모를 위한 교육 자료를 개발하면서 국내외 영유아기 아이를 둔 부모를 위한 지침서와 안내서들을 면밀하게 보고 검토할 수 있는 시간을 연구진들과 함께 갖게 되었습니다. 지침서와 안내서에는 무엇이 중요하고 부모님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들이 좋은 표현들로 저마다 한가득 쓰여 있었습니다. 본 칼럼에서 그 글들을 보기 좋게 요약해서 쓸 수도 있었지요. 원고를 보내기 전날 내려놓고 글의 방향을 바꿉니다. 아이를 키우는데 있어 가장 본질적인 철학인 유아와 유아 시기 경험에 대한 깊이 있는 존중을 메시지로 담아봅니다.
코로나19 시기에도 아이들은 이 풍부한 경험들을 스스로 만들어 내고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놀이하면서 배워가는 모습을 한 번만이라도 주의 깊게 봐봅시다. 그러면 다른 아이가 아닌 내 아이에게 무엇을 지원해야 할지, 어떤 놀잇감이나 책을 사주어야 할지, 어디를 가야 할지, 가정에서의 많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늘 하던 그 고민들이 바로 내 아이에서 시작될 수 있을 것입니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컬럼비아 대학에서 국제교육을 전공했으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에서 연구원으로도 근무했다. 현재는 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이름과 뜻을 같이하며 교육을 바꾸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