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식 교수법과 구성주의적 교수법을 모순관계로 착각하다
2007년 미국 콜로라도의 존 버그만(Jon Bergmann), 애론 샘즈(Aaron Sams)라는 두 명의 고등학교 화학교사는 플립러닝이라는 ‘학생중심수업’ 학습 모델을 개발하여 전 세계적으로 확산시켰다. 새로운 학습방식인 플립러닝은 근본적으로 이 러닝이나 스마트교육적인 요소를 포함하지만 교육적 이상인 ‘학생중심수업’을 구현하는데 목적이 있다. 국내에는 ‘거꾸로 학습’, ‘역전학습’으로 알려졌는데 2014년 KBS가 ‘파로나마 플러스’ 프로그램에서 《21세기 교육혁명, 미래교실을 찾아서- 거꾸로 교실》편을 방영하면서 크게 주목받았고 1년 남짓의 짧은 기간인데도 전국적으로 거꾸로 교실 숫자는 1,143개, 9,300여 명의 교사가 참여할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그 주역은 교사공동체인 《미래교실네트워크》였다. 거꾸로 교실 프로그램을 기획했던 당시 정찬필 KBS PD에 따르면 “그들은 플립러닝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확산하는 운동의 주체로 ‘대한민국의 교사는 시대적 흐름에 침묵하며 결코 변화하지 않는 장벽’이라는 불신과 통념을 부순 돈키호테였다. 결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세계 어느 곳의 교사들보다 서로 왕성하게 소통하고 협력하며, 이를 통해 당면한 공교육의 위기를 21C 교육으로 전환시키는 굳센 전사(戰士)였다.” 그들의 생생한 활약상은 《거꾸로 교실 프로젝트》라는 책에 담겼는데 그 책에서 “돌무덤에 갇힌 것처럼 혹은 좀비처럼 무표정하고 무기력하던 학생들이 어느 순간 활기차게 수업에 참여하며 스스로 학습해나가는 기적적인 광경을 보여준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최고의 수업을 보장하는 절대적인 수업방식은 없기 때문에 플립러닝에 대한 비판적 사고는 불가피하다. 교사중심의 수업방식을 돌아보게 하는 좋은 기제이며 장점 또한 크고 분명하지만 다수의 연구자가 지적했듯이 여러 문제를 노출한 것도 사실이다. 그에 그치지만 않는다. 교사가 새로운 교육방식으로 창의적으로 수업하는 일은 단연코 선(善)이지만 냉철한 이성의 시선을 거두는 순간 더 이상 혁신의 수레바퀴는 돌지 않는다. 보수와 진보라는 진영논리에 갇히거나, 그로 인해 지위, 권력, 평판 등 이익을 누린다면 기득권에 맹목적으로 동조하며, 신선미와 독창성이 사라진 매너리즘(mannerism)의 늪을 벗어나기 어렵다.
강의식 수업의 학습효과를 믿을 수 없어
초·중·고 교사들이 플립러닝에 적극 참여하게 된 배경은 ‘강의식 수업의 학습효과에 대한 의심’이었다. 그 의도가 학생중심수업이든, 21세기 교육으로 주목하는 핵심역량인 4C인 ‘Critical Thinking(비판적 사고)’, ‘Creativity(창의성)’, ‘Communication Skills(의사소통)’, ‘Collaboration(협력)’을 학생들이 기를 수 있도록 하는 수업을 할지는 다음 과제이고, “지금까지 해왔던 교사주도의 수업방식은 학생들에게 배움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자기성찰에 근거한다. 즉 “학생들에게 어떻게 교육해야만 실제로 배움이 일어나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경북 구미 형곡초등학교의 김인철 교사나 오태중학교의 김혜진 교사는 “교사중심의 수업이라도 가급적 학생들과 눈을 맞추려고 했지만 기대했던 좋은 결과에 이를 수 없었다.”고 말하며 아래와 같은 깨달음을 소개한다.
「교사의 가르침이 곧 학생의 배움이 되지는 않는다. 아무리 잘 가르쳐도 소용이 없다. 교사가 훌륭한 수업을 한다고 박수를 받을지는 몰라도 ‘가르침이 곧 배움이다’고 믿고 싶었을 뿐이다. 배움은 결국 학생 스스로 해야 하는 몫이다.」
부산 동평중학교 김수애 교사는 사명감 넘치는 교사로서 최선을 다해 수업했지만 점점 자존감이 낮아지며 ‘내 탓이 아니야’라고까지 말할 정도로 심각하게 정신적 혼란을 겪는다. 그 역시 다음과 같은 반성을 했다.
「거꾸로 교실을 만나기 전에는 수업 시간에 옷이 땀에 젖을 만큼 열심히 설명하고, 자는 아이들을 부지런히 깨워가며 엎드려 있는 아이들이 한 명도 없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그리고 농담도 거의 하지 않고 착실하게 45분 수업을 해왔다. 최선을 다해 학생들에게 수업 내용을 강의하고 있었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가 최선을 다한 것은 일방적인 지식 전달이지 학생들에게는 배움이 일어나지 않았다.」
세 교사가 지적하듯이 플립러닝에 대한 비판적 사고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실제적인 배움이 일어나게 하려면 어떻게 수업해야 하는가?”라는 주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플립러닝에 참여한 다른 교사들도 강의식 수업을 의심하며 더 나은 수업방식이라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학습은 잠재력을 기억으로 실현하는 과정이나 상태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서 ‘무엇(What)’은 ‘어떻게(How)’보다 항상 선차적이다. ‘무엇’이 존재해도 그 대상을 정하지 않으면 ‘어떻게’ 라는 사유나 언어는 공허하다. 소통할 수 없으며 적절한 행동으로 이어질 수도 없다. 그런 까닭에 어떤 학습방식에 대해 사유하거나 말하려면 먼저 ‘학습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배움, 즉 학습(Iearning)은 무엇인가? 흔히 ‘배우는 활동’으로 알려져 있지만 목표에 이르는 기술적인 수단이나 방법을 습득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공부(study)와는 다르다. 학습은 그 이상의 창조적 활동이다. 넒은 의미에서 학습은 ‘사실적이든 절차적이든 지식을 습득하거나 그에 따라 내적 잠재력이나 행동을 바꾸는 현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대상에 대한 학습은 단지 학습자의 사고수준을 다르게 하는데 그치지 않고 습관으로 굳어지거나 잠재력이 바뀔 때에 완성된다(kimble,1999). 좁은 의미에서 학습은 제도교육과 관련되는데 ‘학습자가 바람직하다고 정해진 학습목표를 이루는데 참여하여 주변의 학습상황과 상호작용하는 활동’이다. 최근에는 인지과학에서 주목받는 교육 뇌과학의 입장에서 학습을 정의하기도 한다.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이찬승 대표는 Leslie A. Hart를 인용하여 “학습은 정보의 패턴을 확인하고(pattern-seeking), 잦은 활용을 통한 자동화(program-developing)의 과정이다”라고 말한다. 즉 뇌가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경험에 근거하여 정보를 탐색하여 식별하고 이해하거나, 그 과정을 반복하거나, 일정한 순서에 따라 활용하는 것이다.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경영학자인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도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을 고려하여 학습을 “정보를 기억하고 재현하는 과정을 뛰어넘어 정보를 찾고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구성주의 학습관은 ‘경험’과 ‘지력’으로 물들어
이처럼 학습을 다양하게 정의하기 때문에 ‘교사들의 강의식 수업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가 옳은지’를 따지려면 교사의 수업관을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거꾸로 교실 프로젝트》에 나타난 다양한 수업사례를 보면 교사들과 학교급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구성주의적 학습관’이 보편적이다.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고유한 경험을 소통하고 공유하면서 협력적으로 과제를 해결할 때에 깊고 확장된 지식을 학습하고 정해진 학습목표에 이른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교사들은 학생들이 배우고 익히는 학습에서 ‘고유한 경험’, ‘협력적 관계’를 중심에 둔다.
구성주의적 학습관을 이해하려면 존 듀이를 빼놓을 수 없다. 이돈희 前 서울대 교수는 《왜 지금 존 듀이를 읽어야 하나》에서 듀이의 철학을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듀이는 경험의 고전적인 의미를 재고한다.” 인식론에서는 경험을 ‘외부적 세계가 감각을 통해 마음에 반영되는 현상’으로 받아들였다. 즉 경험은 외부 세계에 존재하는 어떤 것들이 마음이라는 거울에 투영되는 과정이자 결과였다. 그러나 듀이는 그에 대한 시선을 바꿔, ‘마음이 주도하여 외부를 바꾸는 과정이자 결과’로 해석했다. 인간의 의지와 능동성을 부각시키려는 의도였다. 이런 까닭에 우리 외부의 자연적이거나 사회적인 상황은 객관적으로 주어지지 않고 당사자의 처지에 따라 순간순간마다 그 의미가 달라지는 ‘맥락적인 상황(contextual situation)일 뿐이다. 즉 ‘무엇’에 관심을 두느냐에 따라 순간순간마다 달라지는 상황이다. 부부가 같은 공간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를 관람하더라도 남편은 피아노 연주에, 아내는 바이올린 연주에 집중하면 연주회에 대한 경험은 달라진다. 더구나 그러한 경험을 반복해 기억으로 굳어지면 학습도 달라진다. 그 경우는 어떤 공간, 어느 시점에서든지 부부가 아닌 그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결국 듀이에게 학습은 경험하는 당사자가 상황과 상호작용하는 ‘상황정의(definition of situation)’의 과정이자 결과이다. 듀이에 따르면 이처럼 학습이 이루어질 때에 중요한 요소가 개입한다. 인식론이나 교육학에서는 학습을 발전시키는 지적 동력을 ‘이성’에 두었지만 마음의 통찰력인 ‘지력(intelligeigence)’으로 설명한다. 가끔 세계를 이해하고 진리를 찾는 능력으로 이성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지만 진정 의미를 둬야 할 학습동력은 지식을 생산하고, 사고를 주도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지력으로 규정한다. 우리에게 현실은 항상 가변적이고 혼란스럽고 충동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문제를 탐색하거나 해결할 때는 꼭 지력이 필요한데 주체의 마음(의지)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듀이에 따르면 학습은 학생이 주체가 되어 지력으로 여러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이자 결과이다. 또한 지력이 과제를 해결하는데 효과적이도록 깊어지고 확장되려면 타자와 소통하고 협력하여 경험을 공유하는 일은 불가피하다.
구성주의적 교수법과 강의식 교수법은 반대관계이지 모순관계가 아니야
구성주의적 학습관은 학생의 배움과 익힘에 주목하여 교육을 이해하려는 시선으로는 매우 타당하다. 그렇다고 교사가 주도하는 강의식 교육관이 자동적으로 잘못된 교수학습방식이라고 할 수는 없다. 강의식 수업방식을 낡았다고 평가하고 팽개치는 태도는 구성주의적 학습관이 현실에서 항상 실재로 바꿔진다는 착각에서 온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가능태는 언제나 현실태로 실현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유정란이 자연스럽게 닭이 되거나 상수리나무의 씨앗이 어떤 조건과도 무관하게 상수리나무로 형상화되지는 않는다. 유정란이 닭으로 상수리나무의 씨앗이 상수리나무로 바뀌려면 넘어야 할 산이 무척 많다. 유정란이든 상수리나무 씨앗이든 일정한 온도와 습도 등 적절한 객관적 상황에 조응할 경우에만 닭과 상수리나무로 될 수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적절한 자연환경을 마련했어도 유정란을 달걀 프라이로 만들어버리거나 상수리나무의 씨앗을 캐버리면 질적 변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구성주의적으로 수업이 이루어져도 이것이 학생들을 실제적 학습으로 이끈다고 단정할 수 없다. 교사의 기대가 담긴 성급한 추측에 불과하다. 더구나 흑백사고의 오류를 경계해야 한다. 흑백사고의 오류는 소수의 대안을 제시하면서 그 중 하나는 틀림없이 옳다고 말하는 양극적 사고에 따른 오류이다. 예를 들어 낙태를 도덕적으로 판단할 경우에 “낙태는 도덕적으로 옳거나 그를 뿐이다. 그런데 도덕적으로 낙태를 지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낙태는 옳지 않다.”로 논증하며 상대를 설득하는 경우이다. 하지만 이런 오류는 ‘모순관계’와 ‘반대관계’를 구별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모순관계는 극단 사이의 어떤 대안도 배제하지만 반대관계는 수많은 다른 경우를 등급을 두지만 허용한다. 날씨가 덥지 않지만 꼭 춥다고 할 수는 없다. 여름과 겨울 사이에 가을이 있듯이 서늘할 수 있다. 그런데도 양극적 사고를 선호하는 경향에는 까닭이 있다. 최대한 꼼꼼하게 가능한 해결책을 찾으려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이나 집단적으로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린 경우라면 진영이나 대중감정에 호소하는 등 어떻게 하든지 간에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싶은 탓도 크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최고의 학습법》에서 수업을 교사주도, 학생주도 방식으로 구분하는 태도는 관념적으로 실용적이지 않고 오히려 교사주도의 강의법이 효과적인 경우를 설명한다.
「교사 주도의 강의법이 그 효과를 인정받으려면 현재와 미래에 적합한 새로운 형태로 변화되어야 하지만 많은 학생들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에 새로운 사실적 지식이나 원리 등을 전달해 이해시키려고 할 때에는 설명식의 강의법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견학습법 같은 학생 주도적인 교수법 위주로 수업을 구성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좋은 교수법은 수업의 내용과 목표, 가르치는 사람의 특성, 학생의 특성, 그리고 수업환경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요컨대 구성주의적 교수법과 강의식 교수법은 반대관계이지 모순관계라고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플립러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교사들이 구성주의적 교수법으로 학생들에게 실제적인 배움을 일으켰는가를 논증하려면 더욱 깊고 찬찬히 수업을 들여다봐야 한다.

참고문헌
거꾸로 교실, 이민경, 살림터
기초학력 향상을 위한 연수(1) 뇌는 어떻게 학습하는가?, 이찬승,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비판적 사고, 박준호 외 9인 공저, 신아출판사
소피의 세계1, 요슈타인 가아더, 현암사
왜 지금 존 듀이를 읽어야 하나, 이돈희, 에듀인 뉴스
학습과학, 미국 학습과학 발전회, 신종호 외 3인 공역, 학지사
최고의 교수법, 박남기, 쌤 엔 파커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전북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일반사회교육을 전공하여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예탁결제원에서 10년 동안 근무한 뒤 전주 완산고등학교에서 사회 교사로 재직 중이다. 전북 교육청 사회문화 집필 위원, KDI 경제교육교재 집필 위원, 중앙일보 공교육 논술자문단, 충남 지방공무원 임용시험 출제위원, 전북 및 전남 교육연수원 강사, 전북대학교 교사 연수 강사, <새전북신문>, <열린 전북>, <전북교육신문>, 인문 웹진 <아홉시>, 네이버 비즈니즈 블로그 <인터비즈>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지금은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의 교육저널인 「교육 제4의 길 」에 칼럼을 쓰고 있다. 저서로 <미래 교육의 불편한 진실, EBS, 2021>, <학교 속 문해력 수업, EBS, 2022>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