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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수업과 스승의 그림자

#545 송재범, 서울신서고등학교 교장 2020.06.03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교사의 위상과 존재감이 뿜뿜 넘친다. 하지만 요즘에는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 않고 스승을 밟는다’는 자조적인 말이 생겼다고 한다. 교사의 위상과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는 말이다.

 

코로나로 인한 온라인 수업 상황에서 교사의 위상은 더욱 떨어져 콜센타 직원이 되었다. 앞으로 온라인 수업이 대체가 아니라 대세가 된다면, 디지털 에듀테인먼트에 최적화된 소위 ‘강의의 신’ 한 두 사람으로 수업은 충분할 수도 있다. 외모가 멋지고, 말이 약간 빠르며, 디지털 리터러시가 뛰어난 스타 강사 몇 명만 있으면, 대부분의 교사는 필요 없다는 교사 무용론으로 흐를 수 있다.

 

학교는 공부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학생들의 인성과 사회성을 기르는 곳이기에 교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말로는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면대면 교육이 이루어지는 오프라인 학교에서의 모습을 상정하고 있기에, 오히려 온라인상의 교사 무용론을 확대시킬 뿐이다.

 

온라인 수업의 큰 특징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온라인상에서 실제로 교사와 학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이처럼 교사의 실재감(presence)이 결여된 온라인 상황에서 학생의 배움에는 한계가 있다. 전통적인 지식 수업은 가능하지만, 고차원적이고 복합적인 사고력 배양이나 인성교육 등은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그렇기에 온라인상에서는 굳이 그 많은 교사가 필요 없고 잘 설명하는 똑똑한 몇 사람만 있으면 된다는 거다.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려면, 온라인 수업에서도 많은 교사가 꼭 필요한 이유를 찾아야 한다. 교사의 존재감을 어떤 식으로든 보여주어야 한다. 이러한 필요성으로부터 떠오르는 용어가 교수 실재감(Teaching Presence)이다.

 

교수 실재감은, 교수자(교사)가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고 느끼고, 학생이 그곳에 있다고 느껴서 학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Garrison et al, 2000). 말 그대로 실재감(presence)이라는 단어는 무언가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느낌(the sense of being there)을 말한다. 그런데 교수 실재감은 단지 물리적으로 ‘교수자가 있구나’라고 느껴지는 존재감에서 그치지 않는다. 더 나아가 교수자(교사)가 왜 이 내용을 가르치는지 그리고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교수자(교사)의 수업 의도와 목표가 느껴진다는 의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학생에게 수업하는 선생님이 실제 눈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런 교수 실재감은 면대면 수업에서도 중요하지만 온라인 상황에서는 실재감의 경험이 더 어렵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교수 실재감이 학생들의 학습 성과와 만족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많은 연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교수 실재감은 온라인 학습에서 존재하는 교수자와 학생 간의 교류적 거리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며, 학생의 학습 성과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교수 실재감을 높이기 위해 다음과 같이 교수설계의 조직화, 담화의 촉진, 직접 교수라는 세 가지 하위 요소를 제시하기도 하였다(Shea et al, 2005).

 

첫째, 교수설계의 조직화란 온라인 과정의 구조, 과정, 상호작용, 평가 측면을 계획하고 설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교수자가 교육과정을 설계하며 일정 수립, 미디어의 효과적 활용, 네티켓과 같은 그룹 규칙을 결정하는 것 등을 포함한다.

 

둘째, 담화의 촉진이란 단순한 토론의 촉진이 아닌 학습목표 달성과 지식이 구축되는 탐구공동체로서의 학습이 진행되도록 학생들로 하여금 초점이 있고 일관된 숙고를 하게 하는 것이다. 특히 담화의 촉진은 학습자들의 참여를 통한 적극적인 학습을 유도하는데 필수적이다. 이를 위하여 교수자는 학생들의 의견에 대한 검토와 커멘트, 질문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또한 토론을 기대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고 학생들의 참여를 독려, 강화하며 합의나 이해에의 도달을 추구해야 한다.

 

셋째, 직접적인 교수는 교수자가 주제와 관련된 지식을 학습자와 공유함으로써 지적이고 학자적인 리더십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교수자는 단순히 촉진자로서의 역할만이 아니라 주제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며 학생들의 정확한 이해를 위한 처방적 커멘트나 정보자원, 학습내용을 제시하여야 한다. 학습자의 이해를 확인하고 설명적인 피드백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학습자의 지식을 새로운 수준으로 올리기 위한 스케폴딩(scaffolding) 하는 것을 포함한다.

 

현재 우리나라 온라인 수업에서는 교사가 수업과 관련된 모든 일을 전담하고 있기에, 교수 실재감을 교사 실재감으로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교사 실재감이 학생들의 학습 성과와 만족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면, 몇 명의 스타 강사가 아니라 모든 교사가 필요할 것이다. 일부 학생이 아니라 모든 학생에게 살아있는 실존감(presence)을 뽐내면서 소통하고 교류하는 교사 말이다.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온라인 수업 형태로 보자면 교사 실재감은 실시간 쌍방향 수업이 제일 높을 것이고, 다음이 콘텐츠 활용 중심 수업, 과제 수행 중심 수업 순이 될 것이다.

 

고맙게도 수업과 성장연구소에서는 이런 교사 실재감을 온라인 수업 상황에 구체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교사 실재감의 구현 원리(BEING)를 구안하여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신을진, 2020).

 


1) 연결되는 관계 만들기(Building relationship)는 온라인 수업을 시작했을 때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원리이다. 학생들은 아직 친숙하지 않은 선생님과 친구들을 온라인 매체를 사용하여 만나고 학습하는 것에 대해 낯설고 심리적 거리감으로 수업을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온라인 수업에서는 더욱 연결되는 관계 만들기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2) 존재감 나타내기(Showing my Existence)는 교사가 단지 물리적으로만 온라인 강의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수업 내용을 준비하고 설계하고 촉진하는 교육적 의도를 가진 존재로 자신을 드러낼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선생님이 수업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게 되고, 다른 것으로 쉽게 대체될 수 없는 ‘선생님’의 수업으로 초대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3) 수업의 흐름 이끌기(Taking INitiative)는 계획된 수업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교사가 수업 내용과 활동을 이끄는 과정을 적극적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다소 막연하지만, 학생들의 학습 능력의 차이 혹은 이해도의 차이를 더 잘 파악하게 되고 그에 따른 수업 설계의 변경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수업이 진행되면서 학생들은 학습 습관이나 과제 제출 등과 같은 상황을 더 자주 접하게 되면서 자기 조절 학습 전략의 차이도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면대면 상황보다 훨씬 자주 구체적으로 이런 전략에 대한 소개와 수행을 강조할 필요성이 생기게 될 것이다.

 

4) 피드백으로 다가가기(Giving feedback)이다. 온라인 수업 상황에서 학생들은 교사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과도 연결되어 있지 않고 고립된 상태에 있다. 때문에 면대면 상황에서는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는 많은 학습에 대한 정보들을 얻기가 쉽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확장할 수 있는 상호작용적 경험도 적극적으로 모색하지 않으면 경험하기 어렵다. 따라서 교사의 피드백으로 다가가기는 온라인 수업에서는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렇게 교사 실재감의 관점에서 볼 때 온라인 수업에서 교사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많은 교사가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학습 성과와 책임 수업이라는 차원에서 더 많은 교사가 필요한 것이다. 교사가 콜센터 직원이 된다는 것은 자기비하적 표현일 수도 있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교사라는 존재의 실재감을 드러내는 부분일 수도 있다. 학교의 담임 교사, 교과 교사가 학습을 위해 학생을 책임감 있게 콜 했을 때, 학생들은 응한다. 물론 도저히 어려운 일부는 있지만. 몇 명의 스타 강사가 자신의 추종자(?)들은 콜 할 수 있지만, 책임져야 하는 모든 학생들을 콜 할 수 있을까? 학생들의 형편과 학업 수준을 고려한 책임 있는 개인별 맞춤형 교육을 진행할 수 있을까? 컴퓨터만 켜놓고 딴짓하는 학생들을 컴퓨터 앞에 바르게 앉혀놓을 수 있는 사람이 선생님 외에 누가 또 있는가?

 

온라인 수업 시대에 교사 실재감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숙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코로나 이후의 뉴노멀(New Normal)로서 교사라는 존재에 대한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권위적인 교사, 일방적인 지식 전달의 교사로 상징되는 전통적인 교사상을 넘어 새로운 교사상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요구받고 있는 모습이 너무 많아서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자.

 

‘조력자, 촉진자, 안내자, 가이드, 학습 코치, 학습 디자이너, 피드백 제공자, 티처(teacher)보다는 튜터(tutor), 배움의 장면을 연출하는 큐레이터, 콘텐츠 전문가보다는 맥락 전문가’ 등 글을 읽을 때마다 다양한 직종(?)들을 발견한다. 아마 교사는 배우이어야 할 것 같다. 더 나아가 “인류의 삶과 시대의 흐름을 연관지어 볼 수 있는 판단의 틀을 갖고 학생들에게 통찰을 제공할 수 있는 파수꾼”(이수광, 2020)이라는 글도 보았다. 교사가 거의 선구자 또는 종교인의 수준까지 이르러야 할 것 같다.

 

이러한 요구상은 교사와 학생의 권력 관계와 학습 양태의 수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즉 교사와 학생의 지배-피지배 관계의 정도, 교사의 일방적 지도-학생의 자기주도적 학습의 정도에 따라 교사의 모습이 다르게 나타난다. 코로나 이후의 교육은 ‘교사가 지배하는’ ‘가르치고 기르는’ 전통적 교육을 넘어 ‘학생 자율적으로’ ‘스스로 배우고 익히는’ 학습으로 변화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물론 이런 요구는 코로나 이전부터 이미 있었던 것이지만, 코로나 이후에는 요구 수준을 넘어 반드시 실현시켜야 하는 것으로 변해버렸다.

 

아마 이런 방향으로의 변화 요구 중 최첨단(?)을 달리는 것은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가 주장한 「무지한 스승」일 것이다(자크 랑시에르, 2019). 교사와 학생 관계의 변화를 뛰어넘어 학생의 지적 해방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랑시에르에 따르면,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설명한다는 것은 먼저 상대가 혼자 힘으로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설명은 교육자의 행위이기에 앞서, 교육학이 만든 신화다. 그것은 유식한 정신과 무지한 정신, 성숙한 정신과 미성숙한 정신, 유능한 자와 무능한 자, 똑똑한 자와 바보 같은 자로 분할되어 있는 세계의 우화인 것이다. 스승은 우월한 지능을 가졌기 때문에 자신의 지식을 학생의 지적 능력에 맞추어 전달할 수 있고 제대로 이해했는지 검증할 수 있다. 이것이 설명의 원리로서 랑시에르는 이것을 바보 만들기(abrutissement)의 원리라고 표현하고 있다.

 

랑시에르에 따르면, 학생들은 설명해주는 스승이 없이도 홀로 배울 수 있다. 무언가를 설명해주는 스승 없이 혼자 힘으로 배워본 경험이 모든 사람에게는 있다. 스승과 학생의 관계는 지능과 의지의 관계로 구분할 수 있는데, 스승의 우월한 지능으로 학생의 열등한 지능을 종속시키려는 것은 바보만들기다. 중요한 것은 스승과 학생의 의지다. 가르치고 배우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스승의 앎이나 학식을 전달하고 설명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지능이 쉼 없이 자율적으로 실행되도록 강제하는 의지에 달려있다. 교사와 학생의 의지와 지능의 이러한 분리가 ‘지적 해방’의 출발점이라고 랑시에르는 말한다.

 

결국 랑시에르에게 무지한 스승이란 학생에게 가르칠 것을 알지 못하는 스승이다. 그는 어떤 앎도 전달하지 않는 무지한 스승이지만 다른 이의 앎의 원인이 되는 스승이다. 스승은 학생더러 구하던 것을 계속 구하라고 명령함으로써 학생의 앎의 원인이 된다. 스승은 질문을 통하여 본인이 모르는 것도 가르칠 수 있다. 질문을 하는 데는 어떤 학식도 필요하지 않다. 무지한 자는 무엇이든 물을 수 있다. 여기에서 스승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해방하는 스승이냐 아니면 바보로 만드는 스승이냐, 유식한 스승이냐 무지한 스승이냐.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

 

샤미소(Adelbert von Chamisso) 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가 떠 오른다. 소설 속의 주인공은 금을 무한정 만들어내는 행운의 자루와 자신의 그림자를 바꾼다. 그림자를 팔아버린 것이다. 그 이후로 그림자 없는 그를 사람들은 사람대접하지 않으며, 그는 사랑하는 사람도 잃어버린다. 김현경은 『사람, 장소, 환대』에서 샤미소가 그리고 있는 그림자를 사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갖고 있는 성원권으로 해석한다. 즉, 사람됨의 자격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일종의 자격인데, 그림자가 없는 사람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잃어버린 것이다. 사회 안에서 설 자리, 설 장소가 없는 것이다.

 

스승의 그림자, 밟히느냐 밟히지 않느냐 이전에 그림자로서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의 실존적 문제가 우선이다. 누구는 온라인 학습 시대가 오면 스승의 그림자가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겁을 준다. 스승이 설 자리, 장소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사 실재감에서 보았듯이, 교육 공학적으로 스승의 그림자는 도처에 필요하다. 다만 그 스승의 존재론적 의미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옴짝달싹 못하게 하던 지극히 권위적인 스승의 모습, 학생과 지적으로 평등한 관계에 있는 무지한 스승까지 양 극단 사이에서 스승의 모습은 다양한 모습으로 어른거린다.

 

<참고 자료>

 

김현경(2020), 『사람, 장소, 환대』, 문학과 지성사
신을진(2020), “온라인 수업과 교사 실재감”, 「코로나19 온라인 개학 시대, 우리 교육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좋은교사운동 온라인 정책 토론회(2020.4.27)
이수광(2020), “코로나19 사태와 학교교육: ‘진부화’와 ‘재구조화’ 그 사이”, 「코로나19가 우리 교육에 남긴 것?」, 좋은교사운동 코로나19 2차 정책 토론회(2020.5.22)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지음, 최문규 옮김(2019), 『그림자를 판 사나이』, 열림원
자크 랑시에르 지음, 양창렬 옮김(2019), 『무지한 스승』, 궁리
Garrison, D. R., Anderson T., & Archer, W. (2000), Critical Inquiry in a Text-Based Environment: Computer conferencing in Higher Education, The Internet and Higher Education, 2(2-3), 87-105.
*Shea, P. J., Swan, Li, C. S., & Pickett, A. (2005). Developing learning community in online asychronous college community: The role of teaching presences. In T. M. Duffy & J. R. Kirkley (Eds.), Learner-Centered theory and practice in distance education: Cases from higher education. 343-377.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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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서고등학교 교장 송재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윤리교육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도덕적 삶을 위해 박사 논문으로 「비도덕적 행위의 유형에 관한 연구」를 썼다. 중고등학교 교사와 교장, 서울시교육청 장학사와 장학관(민주시민교육과장), 서울시교육청교육연구정보원장을 역임했고 현재 서울 신서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플라톤의 국가」(편역), 「질문하는 십대, 대답하는 인문학」(공저) 「IB를 말한다」(공저) 등의 저서가 있다. 우리의 교육 문제는 사회적 도덕성과 교육철학의 회복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오늘도 그 이상을 향해 공학적 설계도가 아닌 윤리적 기획서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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