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정 다양화, 이곳이 핵심 고리다
학교, 특히 고등학교 교실에 가 보면 수업 시간에 잠을 자는 아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아니 수업을 제대로 듣는 아이들이 소수다. 상당히 많은 아이들에게 학교는 졸업장을 따기 위한 곳이라는 의미밖에 없다. 이러한 배움이 일어나지 않는 교실 상황은 무의미하게 앉아있는 아이들에게나 이러한 아이들의 존재를 매 순간 맞닥뜨리지만 어떻게 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교사들에게나 고통일 뿐이다.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할까? 우리는 모두 답을 알고 있다. 수업 시간에 진행되는 교과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이해할 수 없거나 자신에게 전혀 흥미를 주지 못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교과 내용이 너무 어려운 부분은 수준별 수업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물론 수준별 수업의 경우에도 다른 수준으로 수업을 하지만 평가는 동일한 내용으로 해야 하는 한계 때문에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여러 이유로 인해 교과 수업에 대해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에는 학교가 아무런 대책을 갖고 있지 않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여기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아이들이 흥미를 가질만한 교육과정을 제공해주면 된다. 물론 이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17-19세 그 끓는 피를 가진 아이들을 재우거나 무기력으로 몰아넣어 낭비하는 인생의 손실을 생각하면 지금처럼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각 학년마다 국가에서 획일적으로 정해놓은 교과목과 수준을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교과목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거나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낙오자로 규정해왔다. 그래서 이런 아이들을 학교 밖으로 내몰거나 무기력한 아이들로 전락시키고 있다.
물론 교육과정 다양화에 대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별히 고등학교 교육과정은 선택교육과정이기 때문에 이론적인 틀은 개별 아이들의 흥미와 수준에 맞는 교육과정을 개설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짜여져 있다. 현재 고등학교 교육과정 편성 지침에 의하면 교과군별(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예체능, 생활교양) 필수 이수 단위를 편성 이수하게 하면 나머지는 학교자율과정으로 학생들의 수요에 맞는 다양한 교과를 편성할 수 있다.
– 교육과정 단위 배정 기준(2016 서울시 교육과정 편성운영 지침)

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국어, 영어, 수학 등의 기초 교과들을 10단위 이상 이수했다면 더 이상 이 교과 수업을 신청하지 않고, 탐구 교과나 체육 예술 교과 생활교양 교과 가운데 있는 심화 과목 개설을 요구하고 그 교과들을 수강할 수 있다. 심지어 교육과정에 제시되지 않은 과목이라 하더라도 학교에 개설을 요청할 수 있다. 이에 대해 2016년 서울시교육청 교육과정 편성지침에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 선택 과목은 학교의 실정과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하여 편성하되, 학교는 필요에 따라 이 지침에 제시되어 있는 과목 외에 새로운 과목을 개설할 수 있다. 새로운 과목을 개설하여 운영하고자 할 경우에는 사전에 교육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 학교는 학생이 이 지침의 편제에 있는 특정 선택 과목의 개설을 요청할 경우를 대비하여 그 기준과 절차를 마련한다.
– 소인수 선택 또는 교원 수급, 교실 등 물리적 공간 등의 한계 때문에 학교 단위에서 교육과정 운영에 어려움이 있는 경우 학교 간 협력교육과정을 개설하여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론적으로 보자면 1학년 1학기부터 2학년 1학기까지만 배우면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 주요 교과의 필수 이수단위인 10단위를 충분히 넘길 수 있다. 그렇다면 2학년 2학기부터는 대학에 갈 마음이 없거나 갈 마음이 있더라도 수능을 볼 필요가 없는 아이들은 주지 과목은 전혀 배우지 않고 자신의 흥미에 맞는 과목의 개설을 요구하고 들을 수가 있다. 아니 굳이 2학년 2학기부터가 아니라 1학년과 2학년 1학기 때부터 주지과목의 단위수를 조금만 이수하고 다른 다양한 대안 교과들을 섞어서 배워가면서 필수 이수 단위를 채울 수도 있다.
그런데 일반 학교에서 이러한 규정은 왜 사문화되는 것일까? 왜 대부분의 교사들은 이러한 규정이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또 안다 하더라도 이런 시도를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그동안의 관성 때문일 것이다. 교사 수급 등 기존의 학교 체제가 수능 중심의 국영수를 극대로 편성하는 틀을 가지고 있고, 여기에 교사 수급도 맞추어져 있다. 이 상황에서 교육과정의 다양화를 하려면 교사 수급부터 시작해 걸리는 문제가 많다 보니 더 이상의 상상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그리고 교육과정에 대한 오랜 고정 관념이 학교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교육과정은 국가에서 정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변할 수 없는 것이고, 학교는 아이들의 상황과 관계없이 이 교육과정을 그대로 구현해야 하는 곳이고, 이 교육과정을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는 것은 개인의 책임이라는 관념이 학교에 남아 있다.
조금 더 실제적으로 살펴보면 만약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교육과정의 다양화를 허용해줘서 2학년 2학기 이후 내신성적 하위권에 있는 학생들이 대거 국어, 영어, 수학 등 주지 과목을 수강하지 않고 다양한 대안 과목들을 수강하게 된다면 국어, 영어, 수학 등 주지 과목 수강생이 줄어들어 상위권 학생들의 내신 등급이 잘 나오지 않는 현상이 발생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상위권 학생들의 반발이 있을 것이고 학교의 입시성적도 하락할 것이다.
이러한 여러 상황을 생각해볼 때 현재 교육과정 편성지침이 제대로 실현되는 상황을 만들어가려면 이를 단위 학교에만 맡겨놓아서는 안 되고 교육부나 교육청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교육청 단위에서 교육과정 다양화 시범학교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 이 학교는 중3 학생과 학부모에게 교육과정 다양화 시범학교라는 것을 미리 충분히 설명해야 할 것이고, 강사비를 충분히 지원을 해서 2학년 2학기와 3학년 전 과정에서 소수의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아이들의 흥미와 필요를 따라 다양한 선택과목을 개설해주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과정의 다양화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바탕으로 모든 학교에서 교육과정 다양화가 실제로 이루어지기 위한 지원책을 마련해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시범학교 실시의 결과로 교육과정 다양화 학교가 늘어날 경우 중장기적으로 교사 수급의 변화가 필요하다. 현재 교사 수급 체제는 모든 아이들이 획일적으로 국어, 영어, 수학 등 주지과목을 수강하는 것을 전제로 짜여져있다. 그런데 교육과정의 다양화와 학생들의 실제적인 선택이 이루어진다면 국어, 영어, 수학 등 주지과목 교사들의 수는 축소되어야 하고 탐구 교과나 예체능, 기술 가정 교사들이 더 늘어나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 교사들을 중심으로 학생들의 흥미를 끌어내고 그들 내면에 있는 호기심을 깨울 수 있는 다양한 교과목들을 개발하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동시에 강사비를 현실화하고 강사를 더 많이 활용하는 체제를 통해 교사수급 체제를 유연화해야 한다. 그래서 정규 교사들의 수급 체제 때문에 교육과정의 다양화가 막히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윤리교육과를 졸업하고, 이후 청운중, 장충여중, 양화중, 문래 중학교에서 도덕 교사로 재직했다. 교직 초기부터 기독교사들의 연합 모임인 좋은교사 운동을 창립하고 그 가운데서 교사들의 자발성과 전문성 향상을 통한 교육변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해왔고,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대표로 활동을 했다. 2014년부터는 서울시교육청이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1년간의 길찾기 과정인 '오디세이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으며, 학교에서 학생의 삶과 연계된 의미있는 배움이 일어나도록 하기 위한 교육과정 다양화와 교사의 역할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