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교육감은 “사교육비 경감”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교육감을 주민 직선으로 선출한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세상에 완벽한 제도란 있을 수 없으니 교육감 직선제 역시 많은 장점과 또 그에 못지 않은 단점이 있을 것이다. 물론 현재 이 제도는 무리없이 잘 정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제도의 단점도 분명하기 때문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정치적으로 중립인 교육감이라 하더라도 그 선출과정이 시도지사나 국회의원 같은 일반적인 정치인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비롯되는 문제다.
고승덕, 조전혁 사태를 통해 확인했듯이 유권자들은 교육 전문성과 비전에 큰 관심이 없으며, 후보의 인지도, 선명하고 분명한 메시지에 반응한다. 교육감은 공교육이라는 매우 전문적인 영역을 관장함에도 불구하고 여타의 선출직과 마찬가지로 교육 전문가가 아닌 일반 주민의 표로 선출되는 모순적인 위치에 있는 셈이다. 그래서 선출직 교육감들은 유권자들을 상대로 인기 몰이를 하고, 자극적인 소재를 통해 언론에 오르내림으로써 인지도를 높이고 싶은 유혹에 빠질 위험에 노출된다.
시민들의 집단지성이 소수 전문가들의 전문성을 앞선다는 순진한 말은 하지 말자. 의료의 예를 들어보자. 누구도 환자에 대한 처방을 환자 가족의 뜻에 따라 다수결로 정하지 않는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교육이 지향해야 할 인간상, 강조해야 할 가치 정도가 사회 전체적인 합의와 토론의 대상이 될 뿐,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과 방법은 전문성의 영역이다. 교육의 전문성은 헌법까지 나서서 강조하는 전문성이다. 그 어떤 전문직도 헌법의 보호까지 받지는 않는다.
그런데 선출직 교육감은 교육의 전문성을 존중하면 유권자들에게 어필하지 못하고, 유권자들에게 어필하려면 교육 전문성에 수반되는 신중함과 사려 깊음을 포기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에 처하기 쉽다. 이때 소신 있게 정부, 여론 등 외부의 갖가지 압력으로부터 교육의 전문성을 지키는 것을 자신의 소임으로 삼는 교육감이 있는가 하면, 재선이나 삼선을 노리면서 주민들에게 영합하는 교육감도 있을 수 있다. 전자가 더 멋있어 보이지만 후자를 비난할 수만도 없다. 교육감도 선출직인 이상 주민의 욕망을 충족시키거나 그들 눈에 훌륭해 보이는 그런 얄팍한 정책을 펼치고 싶은 유혹에서 자유롭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유혹 중 가장 매혹적인 것이 사교육, 정확히는 사교육비와 관련된 정책들을 던지는 것이다. 온갖 여론조사에서 해결이 시급한 교육문제로 빠지지 않고 등장한 것이 바로 사교육 문제, 더 정확히 말하면 사교육비 부담 문제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교육비 경감” 을 전면에 내세우면 주민들의 환심을 얻어 다음 선거에서 많은 표를 얻을 가능성이 커질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난다.
교육감이 이 유혹에 넘어가면 교육정책이 “사교육비 경감”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다. 어느새 공교육의 목표가 사교육비 경감으로 바뀌어 버리고, 학교에는 사교육을 유발할 수 있는 내용이나 활동을 다루지 말라는 공문이 쏟아진다. 사교육을 유발하지 않도록 수업 시간에 난이도가 높은 내용을 다루지 말라거나, 특정한 유형의 숙제나 과제를 내지 말라거나 하는 등, 교사가 판단해야 할 일들을 교육감이 모두 “사교육비 경감”이라는 목적에 맞추어 지시와 명령으로 강요하는 것이다. 이는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지키라고 뽑은 교육감이 자신의 재선을 위해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물론 지나친 사교육비 부담, 사교육의 과열과 공교육을 교란하여 교육 본연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은 막아야 한다. 그렇다고 이게 공교육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공교육은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공적으로 합의된 바람직한 인간상을 구현하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사교육비 경감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만약 학생의 발달단계와 공교육의 목적에 따라 필요한 학습내용 및 활동이라면 그러한 학습과 활동은 사교육을 유발하는지 등을 따지지 말고 학교에서 실시해야 한다. 만약 그런 활동과 교육내용이 사교육을 유발한다면, 그런 활동과 내용을 막을 것이 아니라 거기에 개입하여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교란하는 사교육을 규제하여 처리할 일이다. 즉 공교육은 공교육의 목표를 달성하는 일에만 신경을 써야 하고, 사교육비 경감은 사교육 정책으로 처리할 일이라는 것이다.
혹자는 학부모들이 공교육을 믿지 않아서 사교육을 시키는 것이니만큼, 공교육을 고치지 않으면 사교육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들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사교육을 시키는 학부모의 불만이 과연 자녀가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에 대한 것인지 아니면 자녀의 등수에 대한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후자일 것이다. 만약 전자의 불만이라면 학원을 보내는 대신 홈스쿨링을 하거나 대안학교를 보냈을 것이며, 학원 역시 문제풀이나 입시준비를 하는 대신 각종 다양한 실험학교의 모습을 띄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나라 사교육 문제의 원인은 스포츠로 치면 약물을 투입해서라도 이기고자 하는 일부 학부모의 비뚤어진 경쟁의식, 그리고 그들이 조장한 그렇게라도 안하면 낙오될 것 같은 정체불명의 불안감이다. 스포츠로 치면 금지약물을 사용하고 반칙을 해서라도 이기려는 과열 경쟁이 룰을 지키며 정당하게 승부하는 다수의 선수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선수들이 근육강화를 위해 스테로이드 등의 금지약물을 복용하여 문제가 된다면, 약물을 규제해야 할까 아니면 경기 규칙을 바꾸어야 할까? 예컨대 선수들이 근육강화제를 투입하도록 할 유인이 있으니 타자에게는 홈런을 폐지하고, 투수에게는 시속 150킬로 이상의 강속구를 금지한다면 이게 얼마나 우스워 보이겠는가? 이런 일이 국가의 100년지 대계라는 공교육에서 일어나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니 선출직 교육감이라면, 더구나 “진보” 교육감이라면 “사교육비 경감”이라는 약물로 값싼 지지율을 높이려는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공교육이 굳건하게 서고, 학교가 자율성을 획득하여 다양한 교육이 만발하도록 터전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사교육비 문제는 그것과 별개로 정책을 세워서 해결할 일이다. 어떤 내용을 다루지 말아라, 숙제를 내지 말아라 등등의 간섭이 심해질수록 공교육은 획일적인 방향으로 가게 되며, 획일적이 될수록 오히려 사교육의 맛난 먹이감이 된다.
교육의 방향이 왼쪽이라고 해서 진보적인 것은 아니다. 만약 그 왼쪽 방향이 위에서 지시하는 방식으로 향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수구좌파, 진보파쇼에 불과하다. 진보는 그 방향이 넓게 퍼져나갈 때 붙일 수 있는 이름인 것이다. 진보는 가능성의 확대이자 다양성의 공존이다. 그리고 이는 교육 주체에 대한 폭넓은 신뢰와 자율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진보’교육감의 기자회견이나 지시사항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독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 사회교육과를 졸업하였다. 중학교에서 24년간 사회를 가르쳤고, 서울대, 상명대, 방송대 등에서 강의하였다.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에서 정책연구를 담당했고, 현재 계간 우리교육 편집위원이다. '학교라는 괴물', '그많은 똑똑한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등의 교육 비평서, '민주주의를 만든 생각들', '거짓말로 배우는 10대들의 경제학', '세상을 바꾼 질문' 등의 청소년 교양서들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