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주의 사회에 대한 오해(4): 학벌은 실력주의 사회 그림자
I. 들어가며
이 글은 앞선 칼럼 글 「학벌타파를 통한 신세습사회 구축」의 후속편이므로 앞 글을 먼저 읽은 후 읽으면 더 쉽게 읽을 수 있다(http://21erick.org/bbs/board.php?bo_table=11_5&wr_id=100427). 앞 글에서는 학벌사회, 학력사회, 실력주의 사회 개념 간의 상호 관련성을 밝혔다. 그리고 학벌 타파를 통해 실력주의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애쓴 결과 오히려 학벌이 심화되고, 나아가 신세습사회적 경향이 강화되었음을 간략히 밝혔다. 이 글에서는 우리나라가 학벌사회라고 믿게 한 미국 사회학자 콜린스(Collins, 1979)의 학력주의 사회(credential society)론을 재분석함으로써 대한민국이 학력주의 사회 혹은 학벌사회라고 믿는 것은 착각임을 밝힌다. 그리고 실력주의 사회가 우리 믿음과 달리 학벌사회 강화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그동안 학벌사회의 증거로 제시되었던 많은 것들이 믿음과 달리 실력주의 사회의 증거인 이유 등을 밝힌다. 이어서 시민단체인 ‘학벌없는사회’가 해체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학벌에 대한 개념 정의 오류와 그에 따른 대안의 한계 때문임도 밝혔다.
II. 학력주의 사회(學歷主義社會) 신화1
앞에서 소개한 것처럼 학력주의 사회라는 말은 콜린스가 주창한 지위집단경쟁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용어이다. 그가 제시한 학력주의 사회라는 개념은 우리의 과도한 교육 경쟁 현상을 인식할 수 있는 새로운 도구를 제공해 주었다. 그러나 지위집단경쟁론이 배경으로 삼고 있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교육 재화 접근 기회에 부모의 배경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도, 학교가 계급을 재생산하는 정도, 그리고 사회의 지위배분 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러함에도 그가 제시한 개념을 우리사회 진단의 도구로 삼고, 그에 따라 처방함에 따라 오히려 많은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박남기(2003)의 주장을 토대로 미국과 한국의 차이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부모의 배경이 자녀의 진학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길이 다양하게 열려 있다. 가령 부모가 돈이 많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으면 자녀를 등록금이 아주 비싼 명문 사립유치원부터 시작해서 명문 사립고등학교를 거쳐 명문 사립대학으로 진학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명문 사립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명문 대학에서 잘 받아주기 때문에 부모들은 비싼 등록금을 지불하면서도 자녀를 명문 사립학교에 보낸다. 다음으로 미국의 부유한 사람들은 소규모의 교육구(총 학생수 500인 이하) 안에서 자기들끼리 모여 명문 공립학교를 만들어 운영하면서 다른 계층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그 교육구 내의 학교는 인근의 다른 가난한 교육구 내의 학교에 비해 교사의 급여나 시설 면에서 월등히 뛰어나 우수한 고등학교로 널리 알려지게 된다. 미국은 언론사에서 전국 단위로 고등학교 순위를 매겨 발표하고 있다. 그러한 고등학교를 나오면 명문 대학 진학이 용이해진다. 이 이외에도 미국의 경우 기부금 입학제도 등등 다양한 통로가 있어서 부모의 배경이 자녀의 대학 진학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미국처럼 부모의 배경에만 의존하여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면 대학 졸업증과 실력이 일치하지 않는 비율이 상당히 높게 되어 학력주의 사회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에는 일부 소외된 계층이나 특별한 보호를 필요로 하는 계층이 아니면 공식적으로는 부모의 배경이 자녀의 대학 진학에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는 없게 되어 있다.
최근에 우리나라의 경우도 학교를 통한 부모 계급 재생산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 때문에 우리 사회가 미국과 같은 학력주의 사회라고 주장하는 것은 부모의 배경이 명문 대학 졸업장 취득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 초점을 둔 콜린스 주장의 핵심을 간과한 것이다. 우리 사회는 부모가 사교육을 통해 자녀의 실력을 향상시키는 방식, 즉 간접적인 방식으로 부모의 배경이 자녀의 대학 진학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경우와는 다르다. 물론 최근 들어 부모의 배경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은 면접제도 활성화, 입학사정관제 도입 등을 통해 부모의 배경이 입학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학력주의 사회적 특성이 조금씩 나타나고는 있지만 아직은 미미한 상황이다.
다음으로 사회의 지위 배분 방식에서도 우리는 미국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경우 좋은 대학, 좋은 학과 선택에 부모의 배경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이 상당히 높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사회의 중요 지위를 배분할 때에도 학력을 기초로 한 인맥이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을 나와야만 변호사가 될 수 있고, 정부의 중요 자리도 관련 명문 대학의 대학원 재학 중 인턴 과정을 거치면서 연을 맺고 실력을 인정받아 채용되는 경우가 많다. 실은 추천서가 학력주의 사회, 인맥주의 사회를 강화하는데 기여하는 측면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사회는 학력(學歷)을 기준으로 지위를 배분하는 사회가 아니라 객관적 시험을 통해 지위를 배분하는 실력주의 사회 요소가 미국에 비해 상당히 높았었다. 이 과정에서 특정 대학 출신이 사시, 행시, 외시 등의 합격생에서 아주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결과가 초래되었고, 이들이 학벌을 형성한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런데 이는 객관적인 시험 결과로 나타난 현상이다. 즉,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학력과 개인 실력 간의 일치도가 아주 높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공무원 및 일반 회사 신입사원 선발시 실력이 아니라 학력으로 선발해왔다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2
그런데 필기시험이 실력을 측정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비판 즉 필기시험의 타당성문제 제기에 따라 선발제도를 바꾸고 있다. 이러한 비판들을 토대로 고급공무원 선발뿐만 아니라 기업인재 선발방식마저 미국식으로 바꾸어감으로써 역으로 학력주의 사회적 특성이 강화되고 있다. 실력주의 사회를 보다 완벽하게 구현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비실력적 요인의 영향력이 커짐을 여기서도 볼 수 있다. 대기업체에서 시험이 아닌 다른 방식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지방대 출신자의 합격이 더 어려워져 지방 국립대마저 몰락해가고 있는 현실은 이를 방증해준다. 시험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법조인이나 공직자를 뽑으면 언뜻 학력이 미치는 영향이 줄어드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실제로 나타난 것처럼 부모의 배경이 미치는 영향은 더욱 높아지게 된다.
이상의 논의에서 보듯이 우리 사회는 콜린스가 주장한 학력주의 사회라는 개념을 잘못 적용하여 현상을 진단하고, 그 진단에 따라 처방을 하다 보니 의도와 달리 정반대로 학력주의적 요소가 차츰 강화되는 결과가 초래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부모의 직접적인 영향력보다는 개인이 갖춘 ‘실력’을 토대로 대학 신입생과 신규 취업자를 뽑고 있으므로 우리사회가 (상징적) 학력주의 사회라고 주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정학교 졸업생이 특정 직업을 독식하는 현상 즉, 파벌학벌은 실력과 학력 간의 일치도가 낮은 지위학벌(출신 학교의 사회적 지위나 등급)과는 서로 다른 현상이다. 사회적 선호 직업에서 특정 대학 출신자의 비율을 인위적으로 줄이는 것이 실력주의를 구현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파벌학벌 현상과 지위학벌 현상을 혼동한 데 따른 결과이다.
III. 실력주의 사회는 학벌 형성 및 강화의 근본 원인
1. 실력주의가 학벌 형성 및 강화에 미치는 영향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과도한 경쟁, 교육전쟁, 학벌, 사회 양극화 등은 실력주의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아 나타난 것이 아니라 역으로 과도한 실력주의가 가져온 폐해이다([그림1] 참고). 개인의 실력만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실력주의 사회에서는 유능한 학생들이 특정대학에 집중하게 되고, 좋은 실력을 갖춘 특정대학 출신들이 좋은 직업을 독과점하게 된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파벌학벌이다. 그러한 실력주의 사회에 사는 개인들은 사회가 실력의 잣대 삼고 있는 그 무엇을 획득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승자가 거의 모든 것을 독식하고, 패배한 사람은 생존권마저 위협을 받는다면 그 경쟁은 전쟁처럼 치열하게 될 것이다.
[그림1] 실력주의 강화를 통한 학벌 형성 및 강화 악순환 고리

학교가 경쟁을 조장한 것이 아니라 학교가 실력주의 사회의 극심한 경쟁의 장으로 사용된 것이다. 학벌이라는 것도 실력을 갖춘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특정한 대학과 학과로 몰리게 된 결과 그들이 세력을 형성하여 만들어졌다. 현 정부가 주장하듯이 학벌을 타파하면 실력주의 사회가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실력주의 사회가 타파되어야 학벌이 타파되는 것이다.
2. 학벌사회 증거 아니면 실력주의 사회 증거?
2013년 현재 고위공무원단 1,466명 중에서 서울대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은 29.6%(434명)이고, ‘SKY’ 출신을 합하면 48.0%(703명)이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행정고시 합격자(770명)중 서울대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은 34.4%(265명)이고, ‘SKY’출신을 합하면 69.2%(533명)로 향후 이 세 대학 졸업자가 관계에서 차지할 비중은 더욱 커지게 될 것이다.3 국회의원(18대까지)의 30% 이상이 서울대 출신이고 연대와 고대까지 합하면 50% 가까이 된다. 이뿐만 아니라 서울대 출신이 대학총장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4, 2015년 현재 500대 기업 CEO 절반이 ‘SKY’출신이다.5 이러한 자료를 근거로 우리사회가 학력(學歷)주의 사회 혹은 학벌주의 사회라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할까? 사회가 선호하는 직업(직위)을 몇 개의 특정학교가 독과점하는 이유가 실력과 무관한 지위학벌 때문이라면 우리사회가 학벌주의 사회라고 주장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러한 자료들이 학벌주의 사회 증거가 되려면 이들의 채용과정에서 학력(지위학벌)을 기준으로 특혜를 주었어야 한다. 만일 채용과정에서 객관적 기준을 사용하고, 평가의 상세한 기준과 절차 등을 공개해야 한다면 실력을 무시하고 학벌을 기준으로 특혜를 주기 어렵기 때문에 실력을 기준으로 뽑는 실력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객관적인 평가 항목과 요소, 그리고 기준에 의해 선발했음에도 합격자 중에서 특정대학 졸업생이 차지하는 비율이 아주 높다면 이는 우리사회가 학벌주의 사회가 아니라 실력주의 사회임을 입증하는 증거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우리나라 대입제도의 특징은 철저하게 개인의 실력을 바탕으로 하고6, 부모의 배경이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최대한 차단하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 하에서는 그 사회가 규정하는 가장 실력 있는 학생들을 받아들여 그 사회가 요구하는 최고의 실력을 갖추도록 교육을 시켰을 것이므로 졸업생들의 실력이 뛰어나다고 가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다면 ‘SKY’를 포함한 최고의 명문대학 출신 국회의원, 고위공무원단, 대학총장, 대기업 CEO 비율이 높은 것은 우리사회가 학벌사회임을 입증하는 증거가 아니라 우리사회가 극단적인 실력주의 사회로 치닫고 있음을 입증하는 증거로 보아야 한다. 물론 특정대 졸업생 모두가 실력이 좋은 것은 아니다. 좋은 대학에 입학후 시간을 탕진하여 실력을 쌓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역으로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열심히 공부하여 실력을 쌓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험을 통해 인재를 선발했을 때 소위 명문 대학 졸업생이 절반(혹은 절반에 약간 못 미치는 정도)만 차지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만일 이 주장이 타당하다면 그 해결책은 실력주의 그림자를 완화시키는 것, 즉 실력주의 타파이지 실력주의를 더욱 강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학벌주의 강화 악순환 고리’에서 보여준 것처럼 대학생 선발에서, 그 이후 각종 국가고시나 대기업 신입사원 모집에서 철저하게 실력주의를 적용하면 할수록 특정 대학의 인재 독식 현상은 강화되고, 그 결과로 그 대학 출신자가 최고의 직위나 직업을 독점하는 파벌학벌주의 또한 강화되기 때문이다.
인구가 5천만 명을 넘는 국가 중에서 한 대학 출신이 국회의원과 대학총장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학벌주의에 대한 연구(이정규, 2003)도 국회의원 중에서 서울대학교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을 학력주의 사회의 한 예로 제시하고 있다. 학부를 기준으로 할 때 서울대(학부기준) 출신 국회의원은 16대 104명(38.1%), 17대 112명(37.5%), 18대 110명(36.7)으로 지속적으로 35%를 유지해왔다. 8대부터 14대까지 국회의원 중에서 서울대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은 32%(1,255명)로 고려대의 3배, 연세대의 6배에 이른다. 이 세 대학을 합치면 48%로 거의 절반에 이른다(유창선, 1993). 서울대 출신 국회의원이 19대에는 79명(26.3%), 20대에는 81명(27%)으로 과거에 비해 그 비율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아주 높다. 고려대(37명), 성균관대(28명), 연세대(23명) 출신까지 합하면 4개 대학 출신자가 국회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56.3%(169명)로 과거보다 오히려 더 높아졌다.7
이정규(2003)는 ‘권력층의 핵심세력인 국회의원의 특정대학 집중 양상은 특정학벌이 사회지배계층 진입의 필요조건이 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하였다. 그는 “오늘날 준신분화되고 있는 학벌주의는 업적주의 내지 실력주의에 기인한 학력의 순기능보다도 형식주의 혹은 명목주의에 기인한 역기능을 우리사회에 파급시키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이는 실력주의가 가져온 병폐임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학력주의를 ‘학력의 실질적인 가치보다는 상징적인 가치가 능력과 실력으로 간주되어 과도하게 중시되는 관행과 경향’으로 규정함으로써 학력은 실력과 괴리된 것이라는 기본 가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8. 이 경우에는 결국 학력과 학벌 타파를 위해 실력주의 사회를 구현해야 한다는 함정에 빠지고 만다.
국회의원이 당의 공천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이를 학벌주의의 예로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합이 치열한 곳에 대해서는 출신 대학이 아니라 당선 가능성을 더 보게 된다. 달리 생각하면 국민들의 머리 깊은 곳에 서울대를 비롯한 특정 대학에 대한 선호사상이 강하게 있기 때문에 공천에서 실력과 무관하게 출신 대학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우리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대학이 신입생을 선발할 때 부모의 배경이 아니라 학생의 실력을 기준으로 뽑았다는 강한 확신 속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성립된 신념을 바탕에 깔고 있음 또한 부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국회의원 중에서 서울대 출신 비율이 높은 일차적인 이유는 학생의 실력에 따라 대학 신입생을 선발한 실력주의의 결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물론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그 결과로 정당 내에 학벌이 형성되어 출신 학교가 과도하게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만일 지금이라도 서울대 신입생 선발을 개인의 실력이 아니라 부모의 배경을 기준으로 하거나 고등학교처럼 추첨입학제를 도입할 경우, 훗날 그들이 성장하여 국회에 진출하고자 한다면 실력과 졸업장이 일치하지 않음을 알기에 더 이상 서울대 출신을 선호하지 않게 될 것이다.9 즉, 국회의원 중에서 서울대 출신 비율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것 또한 극단적인 실력주의 사회가 지속되면서 나타난 그림자인 것이지 실력과 상반되는 용어인 것처럼 사용되는 학력(學歷)만이 작용한 결과가 아니라는 말이다.
만일 한 대학 출신 국회의원이 너무 많아 ‘파벌을 이루어 정치적 파당을 짓거나 갈등과 소외를 야기하는’ 파당학벌주의 폐해가 크게 나타난다면, 이 경우에는 실력주의 사회의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학력을 기준으로 역차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야 할 것이다. 위의 논리는 고위공무원단, 대학 총장(특히 직선에 의해 선출된 대학의 경우), 대기업 CEO 선발에도 거의 유사하게 적용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이러한 증거자료를 토대로 실력주의를 더욱 강화시켜야 한다는 잘못된 정책을 추진해왔던 것이다.
이처럼 그동안 학벌사회의 증거로 제시되었던 자료는 오히려 우리사회가 실력주의 사회였음을 보여주는 증거자료이다. 실력에 기초한 대학선발제도가 더욱 강화됨에 따라 특정 대학 출신자들이 모두가 선호하는 특정 직업을 독과점하는 의미에서의 학벌사회가 된 것이다. 학벌을 타파하고 싶으면 실력주의를 강화시킬 것이 아니라 실력주의를 타파해야 한다. 실력주의 입학제도가 타파되면 즉, 대학평준화가 되면 대학 학벌은 결국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대학이 아닌 다른 실력의 잣대를 향한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게 될 것이다. 만일 학부 중심의 학벌을 타파하고자 하면 명문대학의 학부 학생을 대폭 줄이면 된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대학원 중심의 학벌이 다시 형성될 것이다.
3. ‘학벌없는사회’의 학벌에 대한 개념과 대안의 한계
2016년 4월 학벌 타파와 관련하여 서로 상반된 소식이 전해졌다. 하나는 1998년에 출범해 학벌에 따른 차별의 철폐 활동을 전개해왔던 ‘학벌없는사회’가 3월 25일 마지막 총회를 열고 해체를 선언했다는 소식이다. 해산선언문에서 이 단체의 전 대표였던 이철호씨는 해산이유를 “학벌사회가 해체되어서가 아니라 그 양상이 변했기 때문이다. 학벌사회는 더이상 권력 획득의 주요 기제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라고 밝히고 있다. ‘자본의 독점이 더 지배적인 2016년 지금은 학벌이 권력을 보장하기는커녕 가끔은 학벌조차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 해산 이유이다(김미향, 2016).
다른 한 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은 4월 26일, 「출신학교 차별 금지법 제정」 국민운동 출범식을 개최하였다. 축사에 나선 강지원 변호사는 “학벌로 사람을 차별하고 학연으로 뭉치는 것은 온갖 부조리의 시작이며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요인이다”고 주장했고, 송인수 대표는 취업, 입시, 교육, 그리고 일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출신학교 차별 실태를 제시하며 법률 제정 필요성을 강조하였다(사교육걱정없는세상, 2016.04.28.). 이처럼 같은 시기에 학벌타파를 주장하며 무려 17년간 운동을 전개해왔던 단체가 해산을 선언하였지만 또다른 교육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학벌타파 법 제정을 위한 국민운동 출범식을 개최하였다. 이 운동의 핵심은 상급학교 입시와 기업 채용 시에 출신학교 표시를 금지하게 하는 것이다.
이 단체는 사교육의 주범인 선행학습을 금지하는 입법운동을 전개하여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공약에 이를 포함시킴으로서 ‘공교육정상화법’을 만들게 하였다. 그러나 그 결과 공교육기관만 선행학습을 하지 못하게 하여 오히려 사교육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단체는 법이 잘못되어 그러하다고 하지만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학원교습을 금지하는 것 자체는 위헌(과거 제5공화국의 과외금지조치가 위헌판결을 받았음)이고, 현실적으로 통제 가능성도 낮다. 상황에 맞지 않는 정책을 만들면 결국은 반대의 결과가 초래될 수 있는데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선행학습금지법 제정 노력도 그 한 예가 되고 있다. 이번에 전개하고 있는 출신학교 차별 금지법 제정 운동 또한 만일 그 법이 통과된다면 그렇지 않아도 힘을 얻고 있는 자본, 즉 부모의 배경이 더욱 힘을 발휘하는 결과만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실력의 잣대가 되어왔던 객관적이고 공인된 기준의 하나인 학력을 잣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면 다양한 네트워크에 의한 영향력 행사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게 되기 때문이다.
‘학벌없는사회’의 이념과 대안을 살펴보면 기본 가정부터 한계가 있었고, 그 태생적 한계가 결국은 단체의 해체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학벌에 대한 기본 가정을 바꾸지 않는다면 ‘사걱세’ 또한 그동안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있다. ‘학벌없는사회’의 이념과 대안은 ‘안티학벌 선언’과 ‘6가지 방안’에 잘 나타나 있다. 이 단체는 학벌의 개념에 대해 명확하게 정의하지는 않았다. ‘안티학벌 선언’ 중에 들어있는 내용을 토대로 유추해보면 학벌사회는 ‘소질과 재능’이 아니라 ‘서열화된 학벌순위에 따라 사람들을 차별하는’ 사회이다.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 하는 것은 이 땅에서 한 사람의 사회적 신분을 결정하는 잣대입니다.”라는 주장에 비추어볼 때 서열화된 학벌순위란 ‘대학서열’을 지칭하고 있으므로 학벌사회란 ‘소질과 재능이 아니라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로 사람들을 차별하는 사회’ 정도로 규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개념은 현재 우리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개념과 유사하다. 즉, 학교 급에 따라 차별하는 수직적 학벌주의10가 아니라 대학졸업자라고 하더라도 학교 수준에 따라 차별하는 수평적 학력주의에 주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단체 출범시부터 학벌 없는 사회 구현을 위한 대안으로 대학 평준화 및 대학 서열화 철폐(서울대 학부 개방, 사립대를 국립대로 전환), 공직임용제도 개선(특정대학의 고위공직자 비율 제한 포함), 응용학문은 전문대학원에서 교육 등을 주장해왔다. 이들의 주장과 노력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법학전문대학원, 의학전문대학원(실패), 치의과전문대학원, 약학전문대학원 등이 생겨났고, 공직 임용제도가 변화되었으며, 지방대학할당제가 도입되었다. 그런데 이들의 선한 의지와 무관하게 이들의 주장은 오히려 전문직종과 고위공직자의 직업 세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방대학 할당제 또한 지방 토호세력의 자녀가 지방의 인재라는 이름으로 좋은 자리에 등용되는 계기가 되고 있다. ‘학벌없는사회’는 자신들의 의도와 달리 오히려 개인의 순수한 실력이 아닌 부모의 배경 요인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귀속주의 사회를 앞당기는데 기여한 셈이 되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우리사회가 그들의 주장과 달리 실력주의 사회이고, 학벌주의 강화는 실력주의 사회의 그림자가 짙어진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학벌을 타파하면 실력주의 사회가 올 것이라는 잘못된 가정 하에서 사회운동을 전개했기 때문이다.
IV. 나오며
그동안 「실력주의 사회에 대한 오해」란 주제로 4회 연재를 하면서 실력주의 사회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좋은 사회가 아니라 무한경쟁 승자독식의 사회이며, 실력주의가 심화되면 될수록 빈부격차, 경쟁, 갈등은 심화되고, 실력의 잣대인 교육을 향한 전쟁은 격화될 수밖에 없음을 밝혔다. 이어서 우리가 실력주의 사회가 좋은 사회인 것처럼 착각하게 된 원인이 된 실력 형성과 실력에 따른 사회 재화 배분에 대한 기본 가정의 오류에 있음을 분석·제시하였다. 그리고 왜 학벌을 타파하기 위해 보다 완벽한 실력주의 사회를 구현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역으로 학벌사회적 특성이 강화되고, 나아가 신세습주의 사회적 경향까지 강화되는 것인지도 밝혔다. 이번 회에는 우리 사회가 콜린스가 주장한 학력주의 사회라는 개념을 잘못 적용하여 학벌주의 사회 개념을 정의하였음을 지적하였다. 잘못된 개념에 의거하여 우리사회를 진단한 후 이에 따라 해결책을 내놓다 보니 의도와 정반대로 학력주의적 요소가 차츰 강화되는 결과가 초래되고 있음도 밝혔다. 이와 함께 학벌타파를 위해 노력해 온 시민단체 ‘학벌없는사회’가 활동을 접어야 했던 근본 이유도 기본 가정의 오류, 그리고 대안의 오류에 따른 것임을 밝혔다.
우리사회의 상위 10%의 소득집중도는 외환위기 이전인 1995년에만 해도 29.2%로 미국(40.5%)은 물론 싱가포르(30.2%), 일본(34%), 영국(38.5%), 프랑스(32.4%), 뉴질랜드(32.6%) 등 비교대상 대부분의 국가보다 낮았다. 그러나 국회입법조사처가 세계 상위 소득 데이터베이스(The World Top Income Database·WTID)와 국제통화기금(IMF)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12년 기준 우리나라의 상위 10% 소득집중도는 44.9%로 미국(47.8%) 다음으로 높게 나타났다(연합뉴스, 2016.09.04). 이는 보다 완벽한 실력주의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 정부 정책이 만든 하나의 그림자이다. 이제 우리사회가 완벽한 실력주의를 구현하면 우리가 꿈꾸는 보다 공정하고 평등한 세상이 올 것이라는 잘못된 환상에서 깨어나 실력주의 사회의 그림자를 옅게 하는데 초점을 맞출 때가 되었다.
<참고문헌>
김미향(2016.04.28.). ‘학벌없는사회’ 해체합니다…‘학벌’도 실패하는 시대니까요.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41676.html?_fr=mt2
박남기(2003). 교육전쟁론. 서울: 장미출판사.
박남기(2010.10.31.). ‘업적주의 타도’: 제3의 길은? 한국교육행정학회소식지, 105, 1-7. http://goo.gl/hMgIa8
박남기(2015.09.05.). 교육개혁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 새로운 교육개혁 패러다임과 방향탐색(3-44). 5.31 교육개혁 20주년 연속 세미나(3) 자료집.
이정규(2003). 한국사회의 학력학벌주의: 근원과 발달. 서울: 집문당.
Collins, R. (1979). The credential society. New York: Academic Press.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각주
- 이 부분의 내용은 박남기(2003)의 ‘교육전쟁론’과 박남기(2010)의 ‘업적주의 타도’를 보완한 것임.
- 채용시험 대신 채용 면접을 하면서 개인의 배경 자료(출신학교)를 참고 자료로 활용하는 경우에는 이렇게 주장할 수 있다.
- 대학교육연구소(2012.10.31.) 기사 참고. http://khei-khei.tistory.com/archive/20121031
- 4년제 대학 총장 중에서 학부 기준 서울대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9년 1월 현재 32%(총 189개 대학 중에서 61명)이다(신하영·이정혁, 2009.01.12.). 2013년 12월의 조사에 따르면 그 비율이 24.3%로 줄었으나 여전히 아주 높다.
- 연합뉴스(2015.07.15.) 기사 참고.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7/14/0200000000AKR20150714166000003.HTML - 부모 후원의 결과 개인의 실력이 향상되어 입시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는 부모의 간접적 영향 포함.
- 20대 총선 결과 분석은 한국대학신문(2016.04.15.) 참고
http://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158194 - 이정규(2003)는 학벌(만능)주의란 “학연에 바탕을 두고 파벌을 이루어 정치적 파당이나 붕당, 사회경제적 독과점, 문화적 편견과 갈등 및 소외를 야기하는 관행이나 경향”이라고 정의한다. 즉, 어느 특정 대학 출신이 특정 직업에서 다수를 차지함으로써 나타나는 부작용을 학벌주의라고 본 것이다.
- 과거에 크게 위세를 떨쳤던 고등학교 파벌학벌이 고등학교 평준화 이후 자연스럽게 사라진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 ‘학벌없는사회’도 학교 급에 따른 졸업장과 실력 간의 상관은 높은 것으로 가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과, 동대학원 교육학과 교육행정학(석사), 미국 피츠버그대학교 교육행정 정책학과(박사)를 졸업하였다. 1993년부터 광주교대에 근무하면서 학급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한국교육행정학회장을 역임 중이다. 광주교대 총장을 역임(교대총장협의회의장직 수행)하면서 초등교원양성교육 개혁을 위해 노력하였다. 저서로는 교육전쟁론, 교사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등 10여권이 있고, 100여 편의 논문을 집필하였다. 한국교육 경험을 통해 세계교육 발전을 위해 노력한 결과 마르퀴스 후즈 후 인더월드와 영국 캠브리지 국제인명사전(IBC) 두 곳에 등재되었다. 블로그 <그들이 말하지 않은 우리교육 이야기>(http://ngpark60.blog.me/) 운영 등을 통해 한국교육을 새로운 시각에서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아울러 제자들과 함께 <교육나눔운동본부>를 설립하여 소외계층 자녀 교육을 위해서도 헌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