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주의 사회에 대한 오해(1) : 실력주의 사회 기본 가정 해체
1. 들어가며
‘교육개혁을 위해 던져야 할 바른 질문’(박남기, 2015.07.21)이라는 글에서 “실력주의사회가 우리가 바라는 사회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실력주의에 대한 착각을 간략히 소개한 바 있다. 여기서 말하는 실력주의사회란 마이클 영이 말한 실력(타고난 능력+노력)에 의해 보상이 좌우되는 사회(meritocracy)를 의미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능력주의사회라는 말을 널리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용어는 타고난 능력에 노력이 더해져 만들어진 실력이 보상을 결정한다는 의미를 제대로 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칫 타고난 능력이 보상을 좌우하는 것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마저 있다. 그 오해의 결과로 대입전형에서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눈에 보여도 측정이 어려운 쌓아온 실력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잠재능력’을 측정하겠다는 시도까지 하게 되었다. 업적주의라는 용어도 보편적으로 사용되고는 있지만 교수업적평가의 경우처럼 개인이 가지고 있는 실력이라는 의미보다는 그 실력을 가지고 산출한 결과물이라는 의미가 더 크기 때문에 이 또한 정확한 이해를 방해할 수 있다. 그래서 능력주의나 업적주의라는 용어 대신 실력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향후 몇 번의 글을 통해 실력주의사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착각을 상세히 분석하고, 실력주의사회를 구현하겠다며 실제로는 ‘신세습주의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실상을 밝히며, 나아가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는 ‘신실력주의사회’에 대한 내 생각을 하나하나 생각을 펼쳐가고자 한다.
이 글에서는 우리가 실력을 재화분배의 기준으로 삼는 사회가 공평한 사회라고 생각하게 된 이유를 분석하고, 그 이유의 타당성을 해체해보며, 나아가 실력의 근원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필요성과 효용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실력주의 사회 성립의 기본 가정
사회적 재화 배분과 관련하여 실력주의사회가 꿈꾸는 사회, 정의롭고 공평한 모습은 어떤 것일까? 개인의 능력과 노력의 결과로 만들어진 실력이 개인의 부와 지위를 결정하는 사회이다. 그럼 어떤 사회가 불공평한 사회라고 생각할까? 개인의 실력이 아니라 타고난 배경이 개인의 사회적 지위와 부를 좌우하는 사회, 즉 비실력적 요인이 사회적 재화 배분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 신분과(이나) 부가 세습되는 사회이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는 ‘학벌타파를 통한 능력주의 사회 구현’을 기치로 내걸고 있다. 이러한 믿음에 대한 타당성 여부는 별도로 분석하고 여기서는 비실력적 요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본질과 비실력적 요인이 실력 형성에 미치는 영향, 비실력적 요인 통제 가능성 등을 살펴보겠다.
만일 어떤 사람이 태어나보니 지적 능력이 떨어지고, 집중 능력도 좋지 않아 높은 실력을 갖추기는 어려웠지만 다행히 부모가 경제적 부를 축적하고 있어서 재산은 물려받을 수는 있었다고 해보자. 이 경우 실력주의사회에서는 능력을 타고난 사람이 능력 덕에 부유하게 살아가는 것은 공평한 것이고, 재산만 타고난 사람이 그 재산으로 살아가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능력과 재산 둘 다 부모로부터 타고난 것이라는 점에서는 같음에도 불구하고 왜 능력이 바탕이 된 실력을 토대로 한 재화 분배는 공평한 것이고, 사회경제적 지위에 의한 재화 대물림은 불공평한 것(금수저)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러한 생각의 바탕에는 두 가지 가정이 깔려 있다. 하나는 노력은 개인의 순수 의지에 의한 것이므로 실력형성은 개인 책임이고 따라서 실력에 따른 차별적 보상 또한 개인의 책임(개인책임론)이라고 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타고난 능력에는 개인 간에 큰 차이가 없고, 혹시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노력을 통해 차이 극복이 가능하다는 생각(노력무한가능설)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렇다면 두 가지 가정은 타당한 것인가?
3. ‘노력’의 개인책임론 해체
아무리 뛰어난 능력(잠재력)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개인이 노력을 통해 계발하지 않으면 실력으로 변화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만일 노력하고자 하는 의지(동기)와 집중력 등도 유전적인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면 실력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타고난 부분의 영향력이 크게 될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실력이 개인의 자율적 노력에 의한 것이므로 실력에 따른 재화배분은 타당한 것이라는 실력주의 믿음의 근간은 취약해진다. 여기서는 노력이 효과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이라는 것도 우리 생각과 달리 순수 개인 책임만이 아니라 타고난 부분도 상당하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최근 진행된 연구들에 따르면 개인이 타고난 지적 신체적 능력 등에서만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노력에 영향을 미치는 집중력, 수면 시간 또한 차이를 보인다. 비록 인구의 1-3%에서 나타나지만 하루 4시간 이하의 짧은 시간만 자도 하루 종일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잠이 없는 사람(short sleeper)라고 한다.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대학교의 인간유전학자 푸 잉 후이 박사는 2009년 연구를 통해 잠이 없는 사람들은 ‘hDEC2’라는 유전자변이를 가지고 있음을 밝혀냈다(Beck, 2011). 변형된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뇌는 깨어있는 시간동안 만들어진 독성을 일반인들보다 훨씬 짧은 수면 시간 안에 해독할 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뇌과학자들은 심지어 노력하고자 하는 의지력마저도 일정 부분 타고난 것임을 밝혀내고 있다. 우리나라 학생이라면 좋은 성적을 받아 부모님과 주위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그런데 자리에 앉아 집중하려고 하면 집중하기 어려운 학생들이 많다. 반면에 별로 노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공부를 하려고 마음먹으면 쉽게 집중할 수 있는 학생들도 있다. 물론 그러한 수준에 이르기까지 노력하여 얻은 결실일 수도 있지만 타고난 집중력에도 유전적인 차이가 있다고 한다.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치료약물인 리탈린(Ritaline)은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집중력이 단순한 개인의 자율 의지가 아니라 뇌와 호르몬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음을 시사해준다.1 개인 노력 정도를 전적으로 유전자가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생각한 것처럼 철저하게 개인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는 것 또한 아니다.
널리 알려진 ‘1만 시간의 법칙’을 주창한 말콤 글래드웰(2009)은 성공에 있어서 개인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주위 환경의 중요성 또한 일깨워주고 있다. 그가 주장하는 1만 시간의 법칙은 심리학자 안데르스 에릭손(K. Anders Ericsson)이 1990년대 초에 수행한 ‘재능 논쟁의 사례 A’라는 연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에릭손과 그의 동료들은 베를린 음악 아카데미학생들을 1) 세계수준의 솔로 주자가 될 수 있는 학생들(엘리트), 2) 그냥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학생들, 3) 프로급 연주해본 적이 없고 공립학교 음악교사가 꿈인 학생들(미래 음악교사) 등 세 그룹으로 나누었다. 이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 대부분은 다섯 살 전후에 연주를 시작하였고, 초기 몇 년간은 일주일에 두세 시간씩 연습을 하여 연습 시간에서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연습시간 차이는 여덟 살 무렵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잘하는 아이들은 훨씬 더 열심히 연습을 하고,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연습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어 이들이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연습시간을 계산해보니 엘리트는 1만 시간, 잘하는 학생은 8천 시간, 미래 음악교사는 4천 시간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Gladwell, 2009: 55). 에릭손의 연구는 다른 사람이 시간을 쪼개어 연습하고 있을 때 노력하지 않고 정상에 올라간 연주자는 발견하지 못했음을 밝히고 있다. 신경과학자 다니엘 레비틴(Daniel Levitin)도 어느 분야에서든 세계 수준의 전문가, 마스터가 되려면 1만 시간의 연습이 필요하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Gladwell, 2009: 56).
1만 시간은 실로 엄청난 시간이다. 하루 세 시간, 일주일(7일)에 스무 시간씩 10년간 쉬지 않고 연습해야 1만 시간이 된다.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어린 아이가 스스로의 의지에만 기대어 그 정도의 연습을 하는 것은 거의 어렵다. 격려해주고 지원해주는 부모가 필요하다. 김연아도 어려서부터 많은 연습을 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우고 이끌어간 어머니가 없었더라면 1만 시간의 연습시간을 확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가정 형편이 어려울 경우에는 가사를 돕느라 연습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실력은 개인의 순수한 의지적 노력에 의한 결실이라는 우리의 믿음은 상당 부분 과장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노력을 순수 자유의지에 의한 것으로 가정하고 실력을 갖추지 못한 것을 개인책임으로만 돌리는 것은 유전학적인 입장에서 뿐만 아니라 환경 여건이 미치는 영향의 차원에서 볼 때에도 우리가 믿는 것보다 논리적·실제적 타당도가 떨어진다. 이러한 관점은 자기가 얻은 것은 자기 노력에 의한 것이므로 모두 자기 것이고, 따라서 어떻게 사용하더라도 실력주의사회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는 착각에서 벗어나도록 도울 것이다.
4. 노력을 통한 타고난 능력 차이 극복 가능(노력 무한가능론) 신화 해체
앞에서 제기한 문제는 노력의 ‘순수 개인의지 정도’ 즉, 개인 책임 정도에 대한 것이다. 여기서 제기하고자 하는 문제는 노력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타고난 능력에서 개인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노력을 하면 그 차이는 극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를 노력무한가능설이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이러한 믿음이 없다면 노력의 의지가 꺾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사실과 다른 과도한 믿음은 헛된 노력을 하도록 이끌거나 실력에 따른 과도한 보상의 차이를 합리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말은 노력을 하면 능력 차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조지 W 부시(전 미국 대통령), 톰 크루즈(영화배우), 존 체임버스(CSCO 회장) 등은 심지어 난독증2 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노력을 통해 극복함으로써 각 분야에서 최고가 되었다는 것을 예로 들기도 한다(이지훈, 2014). 이러한 예들은 노력 무한가능론의 근거로 이용되고 있다.
뇌학자들의 설득력 있는 가설에 따르면 난독증은 좌뇌와 우뇌의 균형적인 발달이 실패한 결과 나타나는 현상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우뇌가 창의적 사고를 하려고 할 때 좌뇌가 이를 제어하여 균형을 잡아주는데 난독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 중의 일부(10-20%)는 좌뇌가 그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우뇌의 자유로운 사고를 제어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창의성과 천재성이 두드러지게 된다. 즉, 난독증에도 불구하고 개인이 고난을 이겨내고 노력한 결과로 일반인보다 뛰어난 창의적인 천재가 된 것이 아니라 타고난 결함이 천재성으로 이어지는 측면이 강하다.
세계 최대의 인터넷 장비회사 시스코(CSCO) 회장 존 체임버스는 자기 회사가 주최한 ‘아이를 직장에 데려오기’ 행사에서 한 소녀에게 질문을 했다가 학습장애로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 소녀를 격려하기 위해 실은 자신도 난독증으로 인한 학습장애가 있다고 공식 석상에서 고백하였다(중앙일보, 2010.06.19). 그는 아직도 보고서를 비서가 읽어주어야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부족한 독해능력을 보완하기 위해 부단히 경청하였고, 그 결과 1년 전 사석에서 들은 통계 수치를 기억할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노력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난독증 증세를 보이는 사람의 뇌가 가지고 있는 특성으로 인해 뛰어난 기억력을 갖게 된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그는 글로 써서 찾아가도록 하면 찾아갈 수는 없지만 지도에 점을 찍어 위치를 표시해주면 그 누구보다도 빨리 찾아갈 능력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의 뇌는 문자를 해독하는 데에는 불리한 난독증이라는 특성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행히 큰 그림을 이해하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특성도 동시에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난독증 환자의 예를 상세히 기술한 이유는 개인의 노력만이 아니라 타고난 능력도 있어야 어려움 극복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난독증 환자의 80 퍼센트 이상은 난독증만 두드러질 뿐 다른 능력은 나타나지 않아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한 그들에게 다른 사람은 비록 난독증 환자이지만 노력을 통해 오히려 더 창의적인 사람이 되었는데 당신들은 노력하지 않아 실력을 쌓지 않았다며 그들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각주
- 리탈린의 효능이 알려지면서 미국 대학생의 25% 정도가 복용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할 정도로 미국에서 널리 퍼지고 있다(연합뉴스, 2010.04.06.). 우울증 등의 부작용이 수반될 수 있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서울 강남에서는 머리 좋아지는 약으로 소개되면서 암암리에 퍼지고 있다고 한다. 몰입력이 단순한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일부는 뇌와 호르몬에 이해 결정됨을 짐작 할 수 있다.
- 난독증(難讀症, dyslexia)은 듣고 말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문자를 판독하는 데 이상을 보이는 증세를 말한다. 역사 속에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에디슨 등도 난독증 환자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난독증은 하나의 철자가 여러 가지로 발음되는 영어나 프랑스어권에서 많이 나타나며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 질환이다. 영어권에서는 인구의 12-14%가 난독증 환자로 알려져 있다(출처: http://news.joins.com/article/4253871). 한글은 글자와 발음이 하나로 통일되어 있어서 글자대로 읽으면 단어의 발음이 되기 때문에 글자를 읽은 후 따로 판독할 필요가 별로 없다. 즉 ‘식당’은 소리 나는 그대로 ‘식당’이기 때문에 읽은 후 해독하지 않아도 뜻이 들어온다. 그러나 영어의 경우에는 가령 식당(restaurant)과 셰익스피어(Shakespeare)를 알파벳 기본 발음대로 읽으면 ‘레스타우란트’, ‘샤케스페아레’가 되어 난독증 환자는 그 단어를 읽은 후 레스또랑(식당)과 셰익스피어로 해독해내기가 힘들다.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과, 동대학원 교육학과 교육행정학(석사), 미국 피츠버그대학교 교육행정 정책학과(박사)를 졸업하였다. 1993년부터 광주교대에 근무하면서 학급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한국교육행정학회장을 역임 중이다. 광주교대 총장을 역임(교대총장협의회의장직 수행)하면서 초등교원양성교육 개혁을 위해 노력하였다. 저서로는 교육전쟁론, 교사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등 10여권이 있고, 100여 편의 논문을 집필하였다. 한국교육 경험을 통해 세계교육 발전을 위해 노력한 결과 마르퀴스 후즈 후 인더월드와 영국 캠브리지 국제인명사전(IBC) 두 곳에 등재되었다. 블로그 <그들이 말하지 않은 우리교육 이야기>(http://ngpark60.blog.me/) 운영 등을 통해 한국교육을 새로운 시각에서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아울러 제자들과 함께 <교육나눔운동본부>를 설립하여 소외계층 자녀 교육을 위해서도 헌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