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개혁 새패러다임(5): 학교교육 목표로서의 시민정신
1. 들어가는 말
한국 유네스코는 2015년 인천 송도에서 개최된 세계교육포럼에서 향후 15년간 세계 교육 핵심 화두의 하나로 ‘세계시민교육’을 주창하였고, 세계교육포럼은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우리의 실상은 아직도 ‘국민’의 시대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 있을 뿐 시민마저도 ‘상상적 시민’에 불과하다는 것이 송호근(2015)의 주장이다.1
“국민 개념은 ‘능동성’보다 ‘수동성’에 더 가깝고, ‘자발성’보다 ‘동원성’과 더 친숙하다…시민적 자질과 시민적 윤리가 작동해야 할 곳에 국민적 관습과 국민적 의식이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모습이 우리가 처한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시민은 다음의 몇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신분질서에서 벗어나 계약질서로 맺어진 독자적 개인들, 둘째, 전통적 이해관계(혈연, 지연, 학연)에서 벗어난 개인들, 셋째, 공익의 중요성에 눈뜬 개인들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는 소위 시민사회(civil society)의 전제조건이다.” “‘국민’은 국가를 정점으로 하는 수직적 관계, ‘시민’은 직업과 계층이 다른 동시대인들과의 공동체적 우애를 중시하는 수평적 관계의 자질을 함축한다면, 한국은 국민이 승하고 시민이 취약한 불균형적 상태에 놓여 있다. 국민과 시민의 결합, 수직적 관계와 수평적 관계가 제대로 발달된 사회가 건강하고 단단하다.”(송호근, 2015).
대다수 일반인들에게는 ‘시민교육’이라는 말조차도 생소한 우리의 현실에서 시민교육의 정착을 위해 해야 할 중요한 세 가지 조건은 ‘(1) 시민교육의 내용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 (2) 시민교육의 제도적 안정화, (3) 시민교육에 대한 자발적 참여 동기 부여’라고 송호근(2015: 144)은 주장한다.
시민의 개념마저 생소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학교교육이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그 하나는, 수입된 ‘시민’의 개념이 아니라 우리 상황에 적합한 시민의 개념과 시민정신을 수업을 통해 학생들 스스로가 도출해보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등의 활동을 교육내용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학창시절부터 시민단체의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국민’이 아닌 한국형 시민으로 성장할 때 우리는 한발 더 나아가 세계시민으로서도 우뚝 서게 될 것이다.
2. 시민교육이 필요한 이유: 민주주의 위협 증가
에드워드 루카스는 「메가 체인지 2050」에서 현재의 민주주의는 정신을 좀먹는 돈의 힘, 유권자들의 무관심, 끝없이 이어지는 의사결정과정(예: 처리해야 할 법안을 제 때에 처리하지 못한 채 세월을 보내고 있는 우리나라 국회), 특별한 이해집단들의 승리 등의 한계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는 정당이나 권력자들은 미디어만 자기들 편에 있다면 선거에서 이기기는 쉽기 때문에 미디어를 장악하기 위해 애를 쓰는 등 다양한 민주주의 위협 상황이 심화되어 가겠지만 이를 극복하게 하는 것이 바로 ‘시민정신’이라고 주장한다(The Economist, 2012). 이러한 ‘민주주의의 피로’가 더 심해질 것이라고 예견하면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시민정신을 강조한다.
“선거를 크게 앞서는 또 다른 정치활동의 기본은 시민사회, 시민정신이다. 선거가 무의미할 때, 법원이 비싸고 느리고 편견으로 가득 차 있고, 미디어가 짖거나 물 수 없도록 변질된 상황에서 외부인들이 보기에 희망 없는 싸움처럼 보이는 이 투쟁을 이어나갈 동기를 사람들에게 주는 것은 바로 시민정신이다.” (The Economist, 2012: 197)
에드워드 루카스는 ‘참견쟁이들과 공상적 사회 개량주의자들이 모여 압력을 행사하는 집단이나 자선 단체를 조직하는 일 등’을 시민운동의 예로 들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현재 우리나라는 피상적이기는 하지만 시민운동이 점차 뿌리를 내려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일부 특정집단의 이익만을 쟁취하고자 하는 이익단체, 혹은 특정이념만을 주장하며 상대를 적대시하는 편협한 이념단체가 그 한계를 넘어서야만 우리 민주주의의 미래 또한 밝다 하겠다. 향후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향방은 학교교육에서 시민정신 함양을 중요한 목표의 하나로 설정하고 학생들을 잘 훈련시켜 훌륭한 시민정신을 가진 민주시민으로 길러낼 수 있는지에 달려있게 될 것이다.
3. ‘시민’의 재이해
민주시민 교육이 뿌리를 내리도록 하기 위해서 선행해야 할 것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우리 상황에 기초한 시민의 의미에 대한 재이해이다. 외국어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 이미 사용되고 있는 단어 혹은 자연스러운 단어를 차용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 단어에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것과 다른 작위적이고 자의적인 의미를 부여할 경우에는 차라리 새로운 단어를 하나 만들어 사용하는 것보다 우리 사회가 그 용어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힘들 뿐만 아니라 시간도 훨씬 오래 걸린다. 그러한 단어 중의 하나가 바로 ‘시민’이라는 단어이다.
시민은 불어(citoyen), 독일어(bűrger), 영어(citizens)를 번역한 단어이다. 독일어 bűrger는 우리말로 마을 혹은 성(城) (예: 낙안읍성)에 해당한다. 따라서 bűrger를 우리의 일상용어로 번역하자면 마을사람, 동네사람, 한자어로 쓴다면 촌민2이 더 타당하다. 영어 city도 “(국왕으로부터 특별한 권리를 인정받은, 대성당이 있는) 시”로 번역이 되는데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는 행정단위로서의 시의 개념이 아니라 자치권을 인정받은 마을, 자치동네가 더 와닿는 번역이다.
중세까지 유럽 국가는 자생 마을(도시) 하나하나가 자치도시로서 오늘날의 국가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거대 영토를 가진 영토국가가 된 것은 중세 이후에 들어서이다. 중세 독일의 경우에는 심지어 수백 개의 도시국가가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작은 도시국가에 거주하는 사람을 시민이라고 불렀다. 따라서 유럽에서 자치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한 시민은 우리가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사람 모두를 통틀어 일컫는 국민과 별 차이가 없다. 이러한 역사적 전통으로 인해 유럽은 도시 중심의 지방자치가 자연스럽게 숙성되게 되었다. 반면 수도 중심의 왕국형태로 발달해온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모든 지역과 도시는 자치도시가 아니라 중앙집권적인 구조 안에서 하나의 하위 행정 단위에 불과했다.
역사적 배경에서 이러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citizen, bűrger, citoyen을 ‘시민’이라는 단어로 번역하고 거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였다. 나아가 시민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해 기존에 우리가 사용하고 있던 ‘국민’이라는 단어에 유럽식 부정적 가치를 부여하여 한쪽으로 몰아붙였다. 이렇게 되니 일반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시민과 번역용어인 시민과의 차이를 이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받아들이기도 힘들었던 것이다.
우리 사회 일반인들이 국민이라고 할 때에는 번역어 시민과 대비되는 부정적 의미로서의 국민이 아니라 한 국가에 거주하는 사람을 부르거나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한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거주하는 사람을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부르고, 서울이라는 시에 거주하는 사람을 서울시민이라고 부르며, 면에 거주하는 사람을 면민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시민이라는 용어와 대비되는 부정적 의미를 가진 ‘국민’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내고(용어를 재정의하고), 대한민국 시민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하면 일반인들은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의 마음 속에 들어 있는 국민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부정적인 가치를 내포한 시민과 대비되는 단어가 아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의미를 부여한 외래어 시민(citizen)은 학자들과 관련 지도자들의 노력의 결과 우리사회에 이미 사용되고 있는 호칭 및 지칭으로서의 시민과는 구분되는 새로운 의미의 지칭으로 이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지칭으로서의 지위는 누리지 못하고 있다.3
“미국 대통령은 보통 ‘친애하는 시민 여러분 (Dear American Citizens!)’으로 말문을 연다. ‘국민’은 전쟁, 재난 같은 특별한 상황에서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 호칭될 뿐이다. 한국의 대통령들은 그냥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이다. 연두교서나 담화문에서 ‘시민 여러분’으로 시작했다가는 온 나라가 시끄러울 것이다.” (송호근, 2014)
bűrger와 citizen을 마을사람 동네사람 혹은 촌민이 아닌 시민이라고 번역함에 따라 잃은 것이 하나 더 있다. 과거 농촌마을 사람들은 마을 공동 일은 자기 일로 생각하여 서로 힘을 모으고 양보도 쉽게 했다. 향약, 두레 등은 소위 한국형 시민사회의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낯선 시민단체, 시민운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니 뭔가 거창하고 자신들과는 동떨어진 모임이라는 생각이 들어 일반인들이 잘 참여하지 않는 시민운동, 시민단체가 성하게 된 것이다.
“시민적 입장에서 시민참여 역시 요원한 숙제다. 통계에 의하면, 한국의 성인남녀가 각종 단체에 참여하는 비율은 60% 정도인데, 이 중 순수한 시민단체 참여비율은 10%를 밑돌았다. 단적으로 말해, 거의 시민활동을 안 한다는 얘기다. 종친회, 종교단체, 동향회, 동호회가 대종이다. 이런 경우 시민의식, 공익의식은 발아하지 않는다. 이 정도면 증상이 심각하다.” (송호근, 2015: 115)
이러한 송호근의 주장은 타당한가? 시민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오히려 한국식 시민단체 활동을 통해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 등에서 세계가 놀랄만한 동참을 이루어내지 않았는가? 우리 정서에 낯선 서구식 시민단체보다는 애착을 바탕으로 한 우리식의 마을 공동체나 다양한 계모임과 단체 등이 오히려 우리에게는 더 자연스럽다. 따라서 조그마한 자치도시국가를 기반으로 하여 자연스럽게 발달한 서구의 시민이라는 개념과 시민의식과 시민단체를 우리에게 억지로 이식하려고 하는 대신 오히려 우리의 전통 속에서 만들어지고 뿌리내려온 전통적인 조직들이 서구식 시민단체가 지향하는 가치도 동시에 받아들이도록 유도하는 것이 더 성공적인 접근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4. 한국형 시민정신 교육
국민과 다른 의미에서의 ‘시민’을 그리고 국민정신이 아닌 시민정신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행정단위로서의 ‘시’민이 아니라 서구에서 도입한 ‘민주주의의 생장호르몬’으로서의 시민성을 내포하는 시민임을 학교교육 단계에서부터 잘 구분하여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유의할 점이 있다. 서양에서 시민개념이 형성되는 사상사적 배경이 한국에서 시민개념의 정립에 매우 유용한 시사점을 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우리의 상황에 적합하게 시민정신(혹은 마을정신)의 개념을 재정의하고, 마을정신이 발휘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을 새롭게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에 일고 있는 마을공동체, 마을학교 등등은 ‘시민’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그러한 한계를 인식하고, ‘시민’을 낯설지 않은 친근한 용어인 ‘마을’로 다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가. 고독한 ‘개인’, 존재 기쁨을 느끼는 ‘마을사람
현대 사회에는 고독이라는 이름의 병이 만연하고 있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애완동물을 사육하는 사람이 급증하고, 고독은 레저산업과 영화 및 연주회의 번성으로 이어질 것이며, 마약이 성하게 될 것이라던 토플러(Toffler, 1980: 514)의 예측은 이제 우리 사회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대중화 시대가 끝나고 공통점보다도 서로 다른 점을 강조하는 사회가 되면서 개성 발휘가 쉬워졌고, 개인의 잠재력을 최대한 실현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인간적인 접촉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각자 자기 개성을 살리고자 하는 욕구로 인해 자신과 같은 흥미나 가치관 그리고 스케줄을 가지고 생활하며 기호가 일치하는 연인이나 친구를 찾아 어울리는 일도 어려워졌다.
또 하나는 주거환경과 문화의 변화이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주로 마을 안에서 어느 정도 자급자족을 하면서 마을 단위로 살았기 때문에 자연 마을끼리는 크게 부딪힐 일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사람들이 도시라는 거대마을에 몰려들게 되고, 서로에게 낯선 도시 사람들은 과거에 살던 조그마한 마을에서와 달리 예의, 도리, 배려, 협동 등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되었으며, 익숙한 사람들에게 하던 방식의 행동은 오히려 어색하게까지 되었다. 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공동생산과 노동을 필요로 하는 마을 사람이 아니라 모두 호텔 투숙객과 비슷하기 때문에 엘리베이터 안에서 인사하는 것마저도 서로 어색하게 되었다. 과거 작은 마을은 서로를 배려할 수밖에 없는 공동체였지만 현재 대도시 안의 아파트단지는 더 이상 공동체가 아니다.
그 결과로 생기는 고독감을 떨치기 위해서는 자신을 희생해야 하지만 고독에 길들여지고 나태해져 점점 더 고독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 이를 떨치고 일어날 의지와 힘도 점점 희박해져가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 중 일부는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독감을 떨치고 나와 존재의의까지 찾게 하는 것이 공동체다. SNS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온라인공동체를 구성하여 그 안에서 고독감을 해결하고 있다. 온라인공동체는 번개팅 혹은 주말 모임 등을 통해 오프라인공동체의 역할을 동시에 하기도 한다.
외국과 달리 한 교실에서 같은 반 친구들과 거의 하루 종일 생활하는 우리나라 학교 제도는 공동체가 주는 기쁨을 맛보게 하고, 동시에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기본적인 역할과 의무를 하도록 마음과 몸의 근육을 길러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실력주의사회가 극으로 치달으면서 학급공동체가 깨져가고 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아직은 강한 결속력을 가진 공동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교사들은 모둠별 과제 및 평가, ‘학급온도계’와 같은 기법을 사용하여 학생들에게 공동체 역량을 길러주고 있다.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의 희생이 필요하다. 미래 시대에 필요한 것은 개인의 인권과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공동체를 위해 일부를 양보하고 희생할 수 있는 사람과 조직이다. 과도한 공동체 의식은 획일화와 억압을 불러오고, 과도한 인권 강조와 개성 존중은 공동체 붕괴를 가져옴을 깨닫도록 학생들을 교육시켜야 한다.
나. 시민의식을 갖춘 마을공동체
공동체 의식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 시민의식이다. 한국 유네스코는 2015년 인천 송도에서 개최된 세계교육포럼에서 향후 15년간 세계 교육 핵심 화두의 하나로 ‘세계시민교육’을 주창하여 의제를 선점하였다. 하지만 우리의 실상은 아직도 ‘국민’의 시대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 있을 뿐 시민마저도 ‘상상적 시민’에 불과하다는 것이 송호근(2015)의 주장이다.4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시민교육’이라는 말조차도 생소한 우리의 현실에서 시민교육의 정착을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조건은 (1) 시민교육의 내용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 (2) 시민교육의 제도적 안정화, (3) 시민교육에 대한 자발적 참여 동기 부여다(송호근, 2015: 144). 이를 위해 우리나라에서 학교교육에서 해야 할 중요한 두 가지는 첫째, 수입된 ‘시민’의 개념이 아니라 우리 상황에 적합한 시민의 개념과 시민정신을 수업을 통해 학생들 스스로가 도출해보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등의 활동을 교육내용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둘째, 학창시절부터 시민단체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한국형 시민으로 성장할 때 우리는 한발 더 나아가 세계시민으로서도 우뚝 서게 될 것이다. ‘2009 교육선언’은 시민의식 고취라는 관점에서 재해석될 필요가 있다.5
다. 기계와의 경쟁 우위를 위한 인성으로서의 시민정신
케네스 쿠키어(The Economist, 2012: 359)는 “모든 사람의 60조 개의 세포 안에 있는 DNA 하나가 가지고 있는 정보량이 우리가 가진 모든 컴퓨터 장치에 저장되어 있는 정보량과 맞먹는다…. 2010년, 전 세계의 컴퓨터 연산 능력을 결합한 것이(명령처리 속도로 측정한) 고작 뇌가 5분 동안 처리할 수 있는(신경 충동의 최대치) 양에 불과하다…. 그것은 우리가 너무 빨리 교체되지는 않을 것임을 반증하는 좋은 소식이라고 할 수 있다.”라는 이야기를 한다. 즉, ‘기계와의 경쟁’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앞으로도 한동안 기계가 인간의 부족함을 보완해주겠지만 인간을 완전히 압도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감정적 인지가 필요한 일, 시각적이면서 섬세한 동작을 필요로 하는 것들은 정보처리 업무보다 자동화하기 어렵다는 것은 이른바 모라베크의 역설(Moravec’s paradox)로 불리며 그 사실이 입증됐다.6
수성(獸性)의 상대어로서의 인성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기계성의 상대어로서의 인성, 즉 기계가 할 수 없는 인간의 역량을 개발함으로써 기계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미래 세대가 되도록 교육을 시켜야 한다. 황영헌 KT 연구소 상무가 “소위 감정노동자의 일자리는 늘어날 것이다. 사람의 감정을 읽고 적절하고 합당한 조치를 신속하게 해줄 사람이 더 많이 필요하게 된다. 결국 소통 능력이다.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과의 대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아이들이 자라도록 교육해야 한다.”라고 하는 것은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참고문헌
송호근(2015.02.10). 시민교육,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동아일보사, 무한경쟁에서 개성존중의 시대로(103-148). 동아일보 제4 심포지엄 자료집.
송호근(2014.12.03.). [송호근 칼럼] 우리는 아직도 ‘국민’시대를 산다. 중앙일보.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6578277
The Economist. (2012). Megachange: The world in 2050. 김소연·김인항(역). 메가체인지 2050. (2012). 서울: 한스미디어.
Toffler, E.(1980). The third wave. 원창엽(역). 제3의 물결. (1994). 서울: 홍신문화사.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각주
- “국민 개념은 ‘능동성’보다 ‘수동성’에 더 가깝고, ‘자발성’보다 ‘동원성’과 더 친숙하다…시민적 자질과 시민적 윤리가 작동해야할 곳에 국민적 관습과 국민적 의식이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모습이 우리가 처한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시민은 다음의 몇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신분질서에서 벗어나 계약질서로 맺어진 독자적 개인들, 둘째, 전통적 이해관계(혈연, 지연, 학연)에서 벗어난 개인들, 셋째, 공익의 중요성에 눈뜬 개인들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는 소위 시민사회(civil society)의 전제조건이다.” “‘국민’은 국가를 정점으로 하는 수직적 관계, ‘시민’은 직업과 계층이 다른 동시대인들과의 공동체적 우애를 중시하는 수평적 관계의 자질을 함축한다면, 한국은 국민이 승하고 시민이 취약한 불균형적 상태에 놓여 있다. 국민과 시민의 결합, 수직적 관계와 수평적 관계가 제대로 발달된 사회가 건강하고 단단하다.”(송호근, 2015).
- 송호근 교수는 성민이라고 번역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독일과 달리 자치 도시인 성 안에 사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은 행정 단위인 자연마을에 살았으니 성민이라는 번역은 우리 상황에 맞지 않는 서양식 번역이다.
- 시대의 흐름 속에서 호칭이 지칭으로만 살아남는 경우가 있는데 그 것이 바로 ‘스승’이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자기 스승을 소개할 때 “이분이 제 스승님이십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서한을 보낼 때도 서두에 스승님께라고 쓰고, 부를 때도 스승님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스승을 호칭으로 사용하지는 않고 있다. 그 자리를 외래어 멘토(mentor)가 차지하고 있다.
- “국민 개념은 ‘능동성’보다 ‘수동성’에 더 가깝고, ‘자발성’보다 ‘동원성’과 더 친숙하다…시민적 자질과 시민적 윤리가 작동해야할 곳에 국민적 관습과 국민적 의식이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모습이 우리가 처한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시민은 다음의 몇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신분질서에서 벗어나 계약질서로 맺어진 독자적 개인들, 둘째, 전통적 이해관계(혈연, 지연, 학연)에서 벗어난 개인들, 셋째, 공익의 중요성에 눈뜬 개인들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는 소위 시민사회(civil society)의 전제조건이다.” “‘국민’은 국가를 정점으로 하는 수직적 관계, ‘시민’은 직업과 계층이 다른 동시대인들과의 공동체적 우애를 중시하는 수평적 관계의 자질을 함축한다면, 한국은 국민이 승하고 시민이 취약한 불균형적 상태에 놓여 있다. 국민과 시민의 결합, 수직적 관계와 수평적 관계가 제대로 발달된 사회가 건강하고 단단하다.”(송호근, 2015).
- 우리의 미래인 학생들은 평화와 공존, 협동과 창의성을 익히며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라야 한다. 각자의 자존감을 바탕으로 급우들을 존중하고 협동하면서 배우고 익히는 삶을 체득해 나갈 때, 우리 사회는 건강하게 발전할 것이기 때문이다(한만중, 2015: 67)
- 시신경과 연결된 두뇌 피질은 경계를 구분하고 시차(parallax)를 인지함으로써 공간에 있는 물체의 위치를 파악하는 등 복잡한 수학 문제를 푸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들을 매일 같이 잘 해내고 있다(Brynjolfsson & McAfee, 2011: 105).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과, 동대학원 교육학과 교육행정학(석사), 미국 피츠버그대학교 교육행정 정책학과(박사)를 졸업하였다. 1993년부터 광주교대에 근무하면서 학급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한국교육행정학회장을 역임 중이다. 광주교대 총장을 역임(교대총장협의회의장직 수행)하면서 초등교원양성교육 개혁을 위해 노력하였다. 저서로는 교육전쟁론, 교사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등 10여권이 있고, 100여 편의 논문을 집필하였다. 한국교육 경험을 통해 세계교육 발전을 위해 노력한 결과 마르퀴스 후즈 후 인더월드와 영국 캠브리지 국제인명사전(IBC) 두 곳에 등재되었다. 블로그 <그들이 말하지 않은 우리교육 이야기>(http://ngpark60.blog.me/) 운영 등을 통해 한국교육을 새로운 시각에서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아울러 제자들과 함께 <교육나눔운동본부>를 설립하여 소외계층 자녀 교육을 위해서도 헌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