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에 가만있지 않는 민주시민, ‘세월호이후교육’의 목표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참담한 심정으로 맞았다. 그 가여운 희생들을 헛되게 하지 않겠다고 그토록 다짐했건만 바뀐 게 없다. 형사재판만 끝났을 뿐 숱한 의혹은 그대로다. 간신히 특별조사위가 구성됐으나 정권은 예산과 인력, 직제를 조사방해 수준으로 책정해 무력화를 시도한다. 사건발생 1년이 지난 지금 손에 쥔 성과라곤 내년 9월부터 시행예정인 김영란법 정도다. 교육계에선 ‘세월호이후교육’ 혹은 ‘4.16교육체제’라는 용어까지 만들어내며 세월호이전과 다른 교육을 모색하고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합의가 없는 상태다. 금년 9월부터는 새로 제정된 인성교육진흥법이 시행에 들어간다. 아직까지는 인성교육의 지향과 내용을 세월호참사와 연관 지어 고민하는 모습도 잘 보이지 않는다.
세월호참사는 수학여행 중에 발생했을 뿐 교육문제나 안전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국가의 부패와 무능문제다. 정확하게는 부패비리와 무능무책임으로 사고예방책임과 사후구조책임 등 안전책임을 다하지 못한 국가의 문제다. 세월호에서 숨진 학생과 교사, 일반인들은 가만있으라는 안내방송을 믿고 안전수칙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해경구조선이 눈앞에 와있는데다 안내방송이 거듭되는 상황에서 달리 행동할 여지가 없었다. 선원들이 다 도망쳤고 해경이 이들을 빼돌렸다는 건 상상 밖이었다. 세월호 수입과 증축, 운항의 모든 단계마다 부패비리가 개입됐다는 사실도 알 길이 없었다. 세월호 승객들에게 만에 하나 죄가 있다면 국가의 구조를 철석같이 믿고 가만있었던 죄와 그 국가가 썩은 동아줄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죄밖에 없다. 세월호는 그래서 우리 모두의 십자가가 되었다.
세월호참사 1달 반 만에 치러진 교육감선거에서 진보성향 교육감들이 서울, 부산, 인천, 경남, 충남 등 무려 13개 시도에서 당선됐다. 세월호참사가 국민들에게 교육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킨 결과라는 해석이 심심치 않게 제출된다. 나는 이런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진보교육감의 대약진은 진보교육감 1기의 성공에 힘입은 결과로 보는 것이 온당하다. 1기 진보교육감들은 사회경제적 여건이나 입시제도가 그대로인 상황에서도 나름대로 교육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의제설정과 공약이행 모두에서 보수교육감들을 압도했다. 세월호참사가 없었더라도 교육감선거결과에선 별다른 차이가 없었을 것으로 보는 이유다.
세월호 참사이후 교육계는 다소 엉뚱하게 반응했다. 세월호참사가 마치 학생들이 안전수칙을 안 지켜서 발생한 교육안전사고인 것처럼 수학여행을 금지하고 안전교육을 강화한 일련의 움직임이 대표적이다. 시설안전, 현장체험안전, 급식안전 등 교육현장의 안전책임은 그 자체로 제고되어야 마땅하지만 세월호참사가 안전교육 강화를 요구하는지는 의문이다. 세월호 학생과 교사들은 선장의 방송지시를 착실하게 따르다 변을 당했다는 점에서 해난사고의 안전수칙을 제대로 준수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사고원인을 가만있으라는 방송에 학생들이 고분고분 따랐던 데서 찾는 견해도 있다. 그렇다면 방송안내에 따르지 않고 일제히 갑판으로 뛰쳐나갔어야 옳았단 말인가. 해난 시에 침착하게 선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 잘못일 수는 없다. 그래도 학생들이 최후의 순간까지 내부토론 한번 없이 가만있었던 것이 혹시 권위에 맹종한 결과가 아닌지, 그리고 그런 성향이 지금의 대한민국 공교육에서 집중적으로 길러지는 것이 아닌지, 검토가 필요한 것 아닌가.
만약 세월호 학생들이 토론수업을 일상적으로 받아왔고 그 결과 문제상황 발생 시에 집단지성을 통한 문제해결에 익숙하다고 가정해보자. 그랬다면 당시 선실단위로 난상토론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모두들 바깥으로 나가자고 했을까? 모르긴 해도 바깥상황 파악을 위해 한두 명씩 대표를 뽑아 갑판과 다른 선실로 내보내는 정도의 처방이 나오지 않았을까? 10분마다 가만있으라는 방송이 나오고 바깥으로 해경구조선이 와있는 게 보였던 상황임을 감안해보라. 요컨대, 세월호참사의 교육적 함의를 안전교육이나 토론수업 강화에서 찾는 것은 과녁을 빗나간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교육적 함의를 다르게 읽어내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제부터라도 아이들이 정치와 세상일에 관심을 가지도록 교육해달라는 것이 이분들의 요구다. 세월호참사와 그 이후 전개된 파행적 정치과정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일반시민이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와 무책임한 관료제를 피할 방법이 없고 그로 말미암은 피해와 고통이 온전히 약자의 몫이 된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달은 결과일 것이다. 세월호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불의에 가만있지 않는 민주시민으로 키워내는 교육을 요구한다.
세월호참사는 우리사회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안정적 삶을 영위하는 공무원과 기업인들이 높은 수준의 공직윤리와 사회책임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민주시민성도 갖추지 못한 채 부패비리에 물들어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십중팔구 그 사람들도 학교에선 공부를 잘했던 모범생이었을 것이다. 조직에서도 유능하고 성실하다는 평가가 따라다녔을 것이며 가족과 친지한테도 자상하고 좋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온갖 연고주의와 패거리주의에 빠져 공적권한을 사리사욕의 수단으로 삼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한마디로 시민의식과 공복의식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세월호참사와 관련하여 교육적으로 반드시 물어야할 질문은 왜 그 많은 중견급 관피아들이 부패비리의 유혹에 쉽게 넘어갔으며 왜 그 불법의 전 과정에서 누구 하나 호루라기를 불지 못했는지, 그리고 이런 현상에 우리교육의 책임은 없는지, 있다면 어떻게 우리교육을 바꿔야 하는지가 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교육은 입시경쟁교육으로 치우쳐 학생 개개인에게 자율성과 시민성을 길러주는 데 실패했다. 일과 사랑의 사적세계를 넘어 공적세계에서도 주인의식으로 참여하며 부패비리에 가담하지 않고 정의롭게 행동하는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일에 있어 실패했다. 만약 세월호참사로 이어진 부패비리 불감증과 시민의식 결핍이 그 원인이라면 ‘세월호이후교육’은 공동체의식과 시민성을 길러주는 민주시민교육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나는 세월호참사의 교육적 함의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청소년기의 학교교육은 시민성이 길러지거나 왜곡되는 최적의 장이다. 지금의 학교는 중고등학생을 학교와 교과서 바깥의 세계에 무관심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으로 키워내고 있다. 그래선 안 된다. 오히려 바깥동네와 세상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는 ‘교복 입은 시민’으로 키워야 마땅하다. 이를 위해 정치와 사회에서의 논쟁적인 사안을 수업에서도 논쟁적으로 다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학생을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백치로 키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교사는 물론 이때 정치적 중립성, 즉, 비당파성을 견지해야 한다.
학교에서 정치적,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거리낌 없이 다루고 소화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학생을 학교공동체의 시민으로 대접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서 학생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서는 발언권을 보장해야 한다. 학칙을 제정할 때 목소리를 내는 것은 물론 학급회의나 학생회를 통해 학교일에 주체적, 능동적으로 참여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시민성교육은 일상의 삶에서 가까운 데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학생들의 경우 그것은 교실과 학교공동체의 일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는 일이다. 거기서 집단지성을 일깨우고 조직해서 정의를 실천하는 방법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든 수업시간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사이에서 존중과 배려, 소통과 협력의 가치를 몸으로 배우고 익히는 일이다. 만약 모든 학생이 초중고 12년의 수업시간을 거치면서 존중과 배려, 소통과 협력, 토론과 타협의 정신과 기술을 체득한다면 그들이 만들어낼 세상은 한층 더 인간적으로 성숙한 민주사회에 가까울 것이 틀림없다. 그런 의미에서 무엇을 가르칠지 못지않게 어떻게 가르칠지가 중요하다. 교사의 일방주의적, 권위주의적 수업행태는 불가피하게 낡은 학력관과 권위주의적 태도를 만들어낸다. 질문과 토론이 있는 교실을 만드는 수업혁신은 그 자체로 민주시민교육의 중요한 구성요소다.
민주시민교육의 목표는 우리 각자가 민주사회의 주인으로서 크고 작은 공동체의 일에 주인의식을 갖고 참여해야 한다는 것, 공동체의 일에 대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참여와 협력이 없으면 공동체의 제1덕목인 정의가 반드시 과소 생산으로 치달으며 공동체가 왜곡, 와해된다는 점, 특히 불의를 보면 굴복, 외면, 동조하지 말고 분노, 저항, 연대함으로써 불의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 등 기본적인 시민의식과 시민역량을 길러주는 데 있다. 한마디로 민주시민교육의 목표는 불의에 가만있지 않는 민주시민, 나아가서 널리 타인과 공동체를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을 길러내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인간성 좋은 사람’이나 ‘유능하고 성실한 직업인’을 넘어 ‘깨어있는 시민’을 길러내는 일이다.
민주국가의 공교육은 근본적으로 민주시민교육을 지향하고 요구한다. 그럼에도 ‘세월호이후교육’이 민주시민교육을 구태여 강조해야 하는 이유는 현재의 교육풍토에서는 공식교육과정이 과도하게 지식교육위주로 제공될 뿐 아니라 잠재교육과정이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이며 학생자치와 학생인권이 거의 보장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학생은 국가와 지역사회에서는 물론 학교공동체에서도 목소리를 가진 시민으로 취급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학생들이 시민의식과 시민역량, 그리고 시민덕성을 교과서지식이 아닌 몸으로 배우고 익힐 여지가 없다. 자신과 친구, 가족을 넘는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공동체를 경험하며 민주시민으로 자라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세월호이후교육’의 과제는 이것을 고치는 데 있다.
세월호참사에 대해서는 수학여행을 보낸 학교도 죄가 없고 수행여행을 떠난 학생도 죄가 없으며 수행여행을 인솔한 교사도 죄가 없다. 그러니 학생이나 교사, 학교에서 문제와 처방을 찾지는 말자. 제발 세월호참사를 계기로 안전교육 강화하자며 호들갑떨지 말고 덮어놓고 인성교육 강화하자며 막연한 덕성교육이나 충효범절교육에 매달리지 말자. 분명히 하자. 가만있지 않고 대들어야 할 것은 국가의 부패비리와 불의, 무능과 무책임이다. 뼛속까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국가의 부패와 무능, 무책임이 사회의 온갖 불의를 낳을 뿐 아니라 급기야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들의 생명까지 앗아갔다는 사실이다. 이 시점에서 재발방지를 위해 반드시 바꾸겠다고 다짐할 것은 국가의 부패비리와 무능무책임을 낳고야 마는 시민의식의 결핍이다. 그리고 이것을 바로잡는 첩경은 공교육을 ‘민주주의를 위한, 민주주의에 의한, 민주주의의 공교육’으로 바꾸는 것, 다시 말해서 자율성과 시민성을 갖춘 민주시민이자 홍익인간으로 아이들을 길러내는 것임을 잊지 말자. 반드시 강화해야 할 인성교육의 핵심이 민주시민성교육에 있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자. 세월호참사로 숨진 아이들과 교사들의 명복을 빌며 가만있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서울법대와 펜실베니아대 로스쿨에서 수학한 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교수로 재직하며 노동법, 사회보장법, 공정거래법, 인권법을 가르쳤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과 사무총장을 역임했으며 5.18 시민상을 수상했다. '행복한 교육혁명'을 가치로 2010년 6월 2일 서울교육감으로 선출돼 공교육의 표준 교체와 교육행정 혁신을 시도했다. 대표적 교육정책으로는 체벌금지와 학생인권, 문/예/체 교육과 혁신학교가 꼽힌다. 인사, 사학, 시설, 구매 등 모든 교육행정에서 시민참여와 투명성을 북돋으며 사회적 책임을 불어넣기 위해 애썼다. 701일이라는 짧은 교육감 재임기간에도 불구하고 공교육 2.0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를 놓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2014년 4월부터 펙트TV에서 '곽노현의 나비프로젝트, 훨훨 날아봐'로 진보적 관점의 교육전문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징검다리 교육감> 등이 있다. 본래 강자를 법의 지배 아래, 약자를 법의 보호 아래 두는 법치주의의 전사였으나 이제는 교육계 사람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