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평가가 교육을 교육답게 하기 위한 몇 가지 조건
※ 본 글의 내용은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이 개최한 ‘학교교육과 평가, 그 미래방향을 모색한다’ 토론회의 자료집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시민사회의 입지가 커지는 시대적 조류 속에서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이 주최하는 이 토론회가 자연스러운 시대적 조류로 보일 수도 있지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근래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같은 시민사회가 평가 관련 주제를 다루어 오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담론들은 주로 현안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관심 고취와 법제화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토론회는 보다 근본적인 접근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학교교육과 평가, 그 미래방향을 모색’이라는 주제 아래 ‘표준화 시험의 역사적 조명’, ‘교실내 평가’, ‘교사평가’, ‘대입전형’ 등의 하위 주제와 각 주제별 질문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구성은 현실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학교교육과 평가’와 관련된 핵심적 측면을 역사를 포함하는 다각적 접근을 한다는 점에서 보다 근본적입니다. 각 주제에 대한 정리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고민함에 있어서 각 학자가 특정 정치이념이나 시한을 전제하지 않기 때문에 결론이 정책제언의 형식을 취할지라도 학문적 성격 또한 띠는 것 같습니다. 이 토론회의 주제 및 그 구성은 시민사회단체인 [교육을바꾸는사람들]과 학자들이 같이 고민하여 숙성시킨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토론회는 미래사회에 있을 법한 실천+학문적 담론의 한 형태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학교교육과 평가의 향후 방향 설정을 위하여 교육평가의 교육조형기능, 평가의 순기능을 위한 논리적 조건, 그리고 실천적 조건 등 세 가지를 토론하고자 합니다.
1. 교육평가의 교육조형 기능
교육평가의 교육조형 기능은 교육과 관련된 평가가 교육을 특정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영향을 미침을 의미한다(김성훈, 2008). 이 말은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시험대비수업(test-driven instruction)이나 ‘꼬리를 검사하면 몸통이 흔들린다(‘Testing tail is wagging the instructional dog’: O’Connor, 1992, p. 24)’는 식의 표현들이 그 개념을 지칭하고 있다. 입시위주교육은 입시가 교육을 조형하는 현상을 두고 붙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다 학생평가 또는 시험이 교육을 조형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교육평가의 교육조형기능은 교육프로그램평가에도 적용된다. 강의평가를 하거나 학교평가를 하면 긍정적인 평가를 얻기 위하여 강의나 학사를 조정하는 것이 그 예이다. 이 현상을 전제할 때, 일반적으로 교육 프로그램 평가는 그 프로그램 운영자로 하여금 책무성을 다하게 하는 동시에 프로그램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한다(Henry & Mark, 2003; Mark & Henry, 2004)는 말이 성립한다. 따라서 교육평가의 교육조형 기능은 평가가 교육을 교육답게 할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음을 함의한다.
교육평가의 교육조형 기능의 정도는 이해관계(stake)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과거 준거지향평가 형태로 치렀던 대입예비고사는 상당 수의 (우수) 학생이나 그들의 교사에게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과거 국가수준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도 실제 교실수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별로 미치지 않았다. 그런데, 그 결과가 공시되고 또 교장이나 교사의 평가에 반영되면서 그 평가는 각 학교교실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리고 신문사가 주관하는 대학평가는 초기에 대학의 학사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 평가 결과가 언론에 공개됨으로써 각 대학의 이해에 직결되면서 그 평가는 많은 대학의 학사에 직접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실지로 일부 대학은 그 해 일간지 평가지표를 경영지표의 근간으로 한다. 이러한 현상은 교육평가의 교육조형 기능은 역치를 넘어서는 순간 이해관계와 정적 관계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교육평가의 교육조형 기능은 무기능, 역기능, 순기능 등의 형태로 나뉠 수 있을 것이다. 평가 결과가 교육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악영향을 미친다면 그 평가가 정당화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평가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평가는 교육 과정에 내재하는 본질적 활동 중의 하나이고, 선발을 위한 평가는 사회정의를 위한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평가’는 시험을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다.) 그러므로 어차피 해야할 평가라면, 순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육평가의 교육조형을 순기능으로 만들 여지는 없는가?
2. 교육평가의 순기능을 위한 논리적 조건
교육평가의 교육조형이 순기능을 할 수 있을 때, 평가는 타당하게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개발될 때부터 고등학교 교육정상화를 주요 목적으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목적이 달성되지 못하였다는 점에서 결과론적으로 타당하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김성훈, 2010).
위 결론은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그 하나는 ‘그렇다면 왜 이제까지 타당하지 못한 제도가 유지되어 왔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대안은 없는가’이다. ‘왜 이제까지 객관식 시험 중심의 입시가 유지되었는가?’ 이에 대한 답은 강태중(2015)이 논의하였듯이, 우리나라 풍토에서 국가가 관리하는 객관식 시험 중심의 입시제도는 필요악이었던 셈이다. 대학의 입시관리나 고등학교에서의 내신결과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확보되지 못했던 우리나라에서는, 교육의 본질적 가치를 간과하더라도, 국가가 객관식 시험을 중심으로 입시를 제도화함으로써 경쟁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시 되었다는 것이다. 국가가 관리하는 객관식 시험 중심 입시의 대안은 없는가? 교육평가의 교육조형기능을 전제할 때, 두 가지 조건을 제시할 수 있다.
첫째, 교육의 본질에 부합하는 평가정보를 양산한다. 교육평가의 교육조형 기능은 평가결과에 의한 이해관계가 클수록, 즉, 고부담(high-stake)일수록 그 지표는 교육이나 학사의 목표가 되기 쉬움을 뜻한다. 그렇게 볼 때, 대학수학능력시험이나 내신에서 보다 교육적 가치가 큰 정보를 양산할수록 평가는 교육을 긍정적으로 조형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즉, 평가에서 서열적(ordinal) 정보보다는 교육적 진단과 처방이 가능한 실질적(substantive) 정보를 양산함으로써 평가가 보다 교육을 교육답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이 성립한다. 이제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도 서열적 정보만 양산하는 규준지향 평가를 고집할 것이 아니다. 대수능도 실질적 (준거)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준거지향 평가로의 방향 전환을 적극적으로 고민할 시점에 와있다. 이윤미(2015)가 논의했듯이 표준화 시험에 의한 획일적 객관성으로 공정성을 충족한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강태중(2015)이 논의하였듯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마땅한(교육적인)’ 부담을 지우는 시험으로 방향을 틀 필요가 있다. 이는 이미 중학교 전학년으로 확산되고, 올해 고등학교 2학년까지 시행하고자 하는 성취수준평가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편, 준거지향평가 방향으로의 변화를 어렵게 하는 현실적 방해조건들이 상존하지만, 어떻게 하면 그러한 방해조건들을 극복하는가에 지혜를 모을 시점이다. 김신영(2015)의 ‘V. 학생평가의 개선방향’은 지혜를 모으기 위한 마땅한 출발점으로 보인다. 그리고 학교생활기록부를 대입전형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획일화를 강제할 것이 아니라, 그 활용은 대학의 책임으로 돌려야 한다(강태중, 2015)는 주장은 학생평가의 (결과)타당성을 높이기 위한 경고라고 할만하다.
둘째, 교육평가의 타당화를 위한 재개념화가 필요하다. 흔히 평가정보의 양호도는 타당도와 신뢰도로써 추정한다. 이 두 개념은, 심리적 구인의 측정 결과가 어느 정도나 쓸모 있는가에 대해서 답하고자 한, 심리검사 이론의 핵심 개념들이다. 학생의 교육적 성취도 또한 심리적 구인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개념들은 학생평가 결과의 양호도를 따지는 개념으로도 널리 사용되어왔다. 그러나 이 개념들로써 학생평가의 양호도를 충분히 따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김신영(2015)이 논의했듯이, 심리적 구인은 가능한 한 분석적이고 탈맥락적 상황에서 측정하는데 비해서, 학생평가는 전인적이고 맥락적 상황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심리적 구인은 주로 조작적으로 정의되며, 불변성을 전제하고, 통제된 상황에서 측정된다면, 학생평가는 학생의 가변성을 전제하고, 실제 상황에서, 사전적으로 정의되는 성취결과를 측정하기도 하지만 판단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심리검사를 토대로 개발된 타당도와 신뢰도가 학생평가에 부분적으로 적용될 수는 있지만, 꼭 들어맞는 개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와 같이 그 개념들에 주로 의존한다면, (교육평가의 교육조형기능에 의해서) 교육의 폭과 깊이를 좁힐 가능성이 높다. 평가의 순기능을 보다 높이려면, 김신영(2015)이 논의한 바와 같이, 학생평가 결과가 맥락에 근거한 교수학습 목표, 교수 및 학습 과정, 그리고 타 평가목적과의 관련성을 고려하여 타당화가 재개념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상황타당성으로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와 함께, 결과적 타당성도 보다 널리 사용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러한 개념들의 정교화에 의한 실용성 제고 작업은 학계의 숙제인 셈이다.
한 가지 짚어둘 것은 위에서 논의한 두 가지 논리적 조건은 학생평가뿐만 아니라 교육프로그램 평가에도 해당한다는 것이다. 첫째 조건, 즉, 교육본질에 부합하는 평가정보의 양산이 교육프로그램 평가에 던지는 의미는 교육프로그램 평가에서 교육본질적 가치를 중시하는 평가준거나 지표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학교평가의 지표는,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교육이념 및 계획, 교육과정, 교육시설 및 행·재정, 교원, 학생 등의 영역으로 분할된다. 물론 교육과정을 교육본질적 영역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영역 또한 교육의 본질을 더욱 강조하는 방향으로 지표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그런 맥락에서 김성훈 외(2009)는 교육프로그램 메타평가 준거들 중의 하나로서 ‘교육본위성’을 개념화하였다. 그 준거는, 장상호(2009)의 ‘교육본위’ 개념을 활용하여 만든 것으로서, 학교평가가 학교로 하여금 어느 정도로 교육본질적 가치를 우선시 하도록 하는지를 판단키 위한 것이었다. 이 논리는 교사평가에도 적용된다. 교사평가가 인사자료 수집을 위한 인사평가에서 더 나아가서 전문적 발달을 조장(김재웅, 2015)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평가준거와 방법을 필요로 한다. 둘째 조건, 즉, 평가결과의 타당성 재개념화가 교육프로그램 평가에 던지는 의미는 교육프로그램 평가야말로 결과타당도나 상황타당도가 더욱 요구된다는 것이다. 학교평가나 교사평가와 같이 복수 영역 또는 준거를 사용하고, 실제 상황에서 이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평가의 타당화는 심리적 구인의 타당화와 구별될 필요가 있다. 프로그램평가의 타당화는 내용타당화 외에 평가가 결과적으로 교육을 교육답게 하는지, 평가는 피평가자나 기관의 특정 상황을 잘 고려하여 설득력을 가지는지 등의 관점에서 정당화를 필요로 한다.
3. 불완전성의 허용과 교원의 위상 회복
교육평가의 교육조형기능에 근거한 평가의 순기능의 조건들은 다분히 논리적으로 추론한 것들이다. 이하에서는 우리의 교육 현실의 문제들에 터한 경험적 추론을 두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정책의 불완전성, 즉, 한계나 미비점을 드러내고, 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인내할 필요가 있다. 이제까지의 교육정책들은 주로 정권이나 정책결정자의 임기 내에 장밋빛 결과를 얻기 위한 노력들로 점철되어왔다. 어떤 정책이든 장점과 단점이 있게 마련이다. 단점은 정책의 성립 자체를 어렵게 하기 때문에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뢰와 같다. 지뢰를 피하기 위해서는 단점을 드러내놓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사회변화 속도가 빨라지기는 했지만, 교육은 여전히 시간을 길게 잡을 필요가 있는 사업이다. 그러므로 교육정책은 정권의 임기나 다른 외적 조건이 아니라 그 정책 고유의 성격에 따라서 시간이 조정되어야 할 것이며, 뜸 들이기나 숙성을 위한 여유를 요구한다.
둘째, 교사의 전문성에 근거한 위상이 회복되어야 한다. 근래 교사들은 개혁의 대상이 되거나, 교육정책 결정 과정에서는 교수나 연구자들에 비해서 주변적이 되거나, 교권이 침해되는 경험들이 과거에 비해서 더욱 피부로 와 닿는 듯하다. 교사의 사기도 점차 떨어지는 경향이다(김성훈 외, 2013).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어설 수 없듯이, 현장에서의 교육의 질은 어디까지나 교사에게 달려 있다. 자율적 판단과 책임을 특징으로 하는 전문가로서의 교사의 위상 회복은 교육의 밝은 미래를 위한 필요조건이다. 교원은 스스로 성취수준평가와 같은 교육평가 전문성을 높여갈 때, 그리고 교원평가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때 위상을 회복할 수 있다. 한편, 사회는 교원의 전문성을 저해하는 정책이나 환경을 만들지 말아야 할 것이다. EBS 수능연계정책은 교원의 입지나 위상을 저해할 여지가 큰 정책이다. 그리고 언론이 특정 교사의 문제를 과중하게 다룰수록 사회는 교사집단 전체의 문제로 확대해석할 환경을 조성한다. 교원의 위상이 허물어져 (가고)있다면 앞으로의 교육의 질을 누가 담보할 수 있을까?
참고문헌
강태중(2015). 본 토론회 발표자료.
김성훈(2008). 교육평가는 교육을 교육답게 하는가?. 교육원리연구, 13(1), 73-91.
김성훈(2010). 타당화 개념모형을 이용한 대학수학능력시험 체제 진단. 교육평가연구, 23(1), 1-27.
김성훈·김신영·서민원·양길석(2009). 교육프로그램 메타평가 기준 개발 연구. 한국대학교육협의회, RR-제2009-2-316호.
김성훈, 권효진, 이호섭, 임미령 (2013). 교사의 사기에 대한 교사/학생의 인식 변화. 한국교원대학교 교육연구원, 교원교육, 29(3), 197-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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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미(2015). 본 토론회 발표자료.
김재웅(2015). 본 토론회 발표자료.
장상호(2009). 학문과 교육(중II)-교육본위의 삶.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Henry, G. T. & Mark, M. M. (2003). Beyond use: understanding evaluation’s influence on attitudes and actions. American Journal of Evaluation, 24, 293-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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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onnor, M. C. (1992). Rethinking aptitude, achievement, and instruction: Cognitive science research and the framing of assessment policy. in Gifford, B. R. & O’Connor, M. C. (Ed). Changing assessments. London: Kluwer Academic Pub.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동국대학교 교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