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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현실적으로’ 수능이 갈 길은?

#120 강태중,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2015.02.04

사교육 부담 때문에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손봐야 한다?

 

적어도 정부의 논리를 따르면, 수능은 사교육비 부담을 덜기 위해 손보아야 한다. 시중에서도 이제는 얘기되기 시작했지만, 이런 인식에 대해서는 먼저 두 가지 점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사교육비 부담의 원인이 수능인가 하는 점, 둘째, 수능의 변화를 통해 사교육비 부담을 과연 덜거나 없앨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사교육비 지출은 수능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수능이 대입 당락의 핵심적인 관문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수능을 다른 것으로 바꾸면, 새롭게 ‘관문’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바로 ‘그것’에 대해 사교육비 투자가 일어날 것이다. 수능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지 않고 다만 그 성질(예컨대 점수 체제, 문항 형식, 출제 방식 등)만 바꾼다 하더라도, 대입의 관건이 되는(수능의 기능을 대체하게 되는) 다른 어떤 것에 대한 투자로, 사교육비 지출의 방향이 바뀔 뿐 지출 액수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요컨대 사교육비 지출(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에서 수능 개선을 시도하는 것은 초점을 잘못 잡는 것이다. 사교육비 현실에 변화를 가져오려면 대입전형안의 어떤 요소에 대해 정책을 강구할 것이 아니라, 대입전형 구조 자체에 대해 정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를테면 대학 서열을 좀 더 평평하게 만든다거나 추첨 전형 방식을 도입한다거나 하는, 좀 더 상위 수준의 정책이 필요하다. 대입전형의 상황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하나의 전형요소인 수능을 변화시키는 것만으로는 사교육비 현실을 바꿀 수 없다.

 

 

학생 부담을 줄여야 해서 수능을 손본다?

 

학생 부담의 문제라는 것도 사교육비 부담의 경우와 사태가 다르지 않다. 수능이기 때문에 부담이 큰 것이 아니라, 대입전형에서 수능 점수 영향이 크기 때문에 부담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학생 부담은 궁극적으로 대입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수능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의 심리 부담을 원천적으로 덜려면, 기본적으로, 수능을 손봐야 하는 것이 아니라 대입 자체(대학의 서열 구조와 이에 관련된 우리의 사회적 관성)를 손봐야 한다.

 

그래도 학생들의 부담과 관련해서 수능을 검토해야 할 이유가 있기는 하다. 수능에 모아지는 부담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공부나 진학 준비에는 으레 부담이 따르기 마련이다. 있을 수밖에 없는 부담을 완전히 해소하겠다고 덤비는 것은 우매한 일이다. 다만 부담이 적정하며 학생들이 짊어질 가치가 있는 것인지는 따지고 조처해야 할 사안이다. 사실 수능에 대해 학생들이 안는 부담은 과도한 데가 있다. 다른 활동이나 생활에 들여야 할 부담(시간이나 노력)을 거의 수능으로 몰아서 소진하게 되는 것은 교육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문제이다. 학생들에게는 대입 준비생으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청년이고 미래 시민으로서의 삶도 있어야 한다. 이런 삶을 학생들에게 돌려주기 위해서 수능에 대해 지게 되는 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

 

이 경우에도 대입전형의 구도를 그대로 둔 채 수능만을 손보는 것으로는 부담 크기를 변화시킬 수 없다. 대입전형의 구도 안에서 수능이 다른 요소(특히, 전형자료)들과 영향력 면에서 어떻게 비교되느냐에 따라 학생들이 수능에 대해 갖는 부담은 달라질 것이어서, 수능 내부의 변화를 통해 학생 부담을 덜어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수능에 모아진 영향력을 다른 요소로 분산시켜야 비로소 수능에 대한 부담이 덜어질 수 있다. 물론 이때 분산시키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는 별도로 따져보아야 한다. 이를테면 수능의 영향력을 줄여 학생부 쪽으로 영향력의 비중을 옮기면 수능에 대해 가졌던 학생들의 부담이 학생부 쪽으로 옮겨 갈 것이다. 이때 부담의 총량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교육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수능에 대한 부담보다 학생부에 대한 부담을 더 크게 가지고 대입을 준비하도록 이끄는 것이 바람직하다면, 수능의 영향력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에도 부담의 전체 크기 자체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수능이라는 한 요소에 연루되는 부담에만 변화가 생길 것이다. 사교육비 부담이건 학생 심리의 부담이건, 단순히 수능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시도는 마치 바람 빠질 데가 없는 풍선의 어느 한 면을 눌러 풍선 부피를 줄이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흔한 말로 ‘풍선효과’를 피할 수 없다. 풍선 부피를(대입 부담을) 줄여야 한다면 풍선(대입 자체)에 구멍을 내야지 특정 측면(예컨대 수능)을 눌러서 될 일이 아니다.

 

요컨대 사교육비나 다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수능을 손보겠다는 정책 논리는 실질적이지 못하다. 단순히 부담을 줄이는 것이 능사가 아니란 점에서 그렇고, 수능에 대한 부담을 줄인다고 해서(대입의 구도가 변화지 않는 상황에서는) 실지로 대입에 대한 부담의 절대량(총량)이 줄어들게 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담 문제에 몰두해서 수능 개선(개혁)을 추구하는 것은 길을 너무 좁게 잡은 셈이 된다. 부담을 문제 삼으려면(물론 부담을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전제도 정당화해야 하겠지만, 이와는 별도로) 우리 사회에서 대입 전형이 지니는 비중을(또는 대입 전형에 대한 인식상의 비중을) 낮추기 위한 구조적인 접근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대입 전형에 결부된 사회 구조적인 현실을 일단 덮어두고 수능을 논의한다면, 수능에 대한 부담은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수능 발전을 위한 논의에서는 그런 불가피한 부담의 대가를 치르면서 얻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 주목해야 할 것이다. 특히 학교와 대학의 교육에 현재 수능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평가하며, 문제는 줄이고 성과는 극대화하려는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이다. 수능의 교육적 타당성을 충실히 확보하려는 입장이 우선이어야 할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정책을 강구하기 전에, 물론, 수능이 불가피한가라는 문제를 짚어야 할 것이다. 수능의 교육적 타당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수능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안고 있는데, 이 전제에 대해서도 의문의 여지가 있으므로 검토가 필요하다.

 

 

수능을 없애거나 무력화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

 

대입전형의 맥락에서 수능과 같은 시험이 반드시 필요한지 짚어보기 위해서는 그런 시험이 없는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해보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먼저 ‘수능과 같은 시험’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정리해야 논의를 명료하게 해갈 수 있을 것이다. 대입전형에 관련해서 보면, 수능과 같은 시험은 우선 모든 대입지원자들의 상대적 성취 서열을 매겨준다. 다양한 배경에서 다양한 고등학교를 거쳐 온 학생들을 비교 사정해야 하는 대입전형의 상황에서 이런 정보는 매우 유용하고 편리한 것이다. 게다가 수능은 비교적 여러 교과를 포괄하는 시험이어서 고등학교에서의 학업 성과를 총체적으로 집약해 보여주는 성질도 지닌다. 정부가 매우 엄정하게 시험을 관리해주기 때문에 시험 점수에 대한 사회 전반의 신뢰도 충분히 확보된다. 적어도 학업 성취 측면에만 국한한다면, 수능은 대학들이 다른 자료를 더 참조하지 않아도 지원자들을 평가 사정하는 데 무리가 없도록 편의를 제공해준다.

 

이렇게 사회적 신뢰를 얻고 있고 대학에도 편의를 제공하는 수능이 사라지면 어떤 사태가 일어날까? 무엇보다도 대학들마다 대입전형 방식을 새롭게 구축해야 할 것이다. 동일한 차원에서 지원자들을 변별해주는 도구가 사라지게 되면, ① 그 도구를 대체할 다른 도구(자료)를 만들거나, 아니면 ② 수능 성적과 같이 ‘동일한 차원’에서 변별하는 전형의 양식에 변화를 주어야 할 것이다. 전자(①)의 경우라면, 필경, 대학별로(모집단위별로) 지원자들에게 공통으로 부과하는 시험을 마련하거나, 다른 어떤 공통의 평가(예컨대, 특정 평가기관의 시험) 결과를 제출하도록 지원자 모두에게 요구할 것이다. 후자(②)의 경우라면, 하나의 차원(예컨대 동일한 시험에서의 점수)에서 학생들을 변별하는 전형에서 벗어나 다면적으로 지원자 개개인을 평가하는(예컨대 학생부 기록 등 다양한 자료를 토대로 평가하는) 양식으로 바꾸게 될 것이다.

 

이 두 경우 모두 대학들에게는 작지 않은 부담이다. 과거 대학별 입시 체제에서처럼 대학들이 독자적으로 입학시험을 운영하는 것 자체도 행정이나 재정적으로 큰 부담이고, 그런 대학별 시험이 타당한 학생 선발을 보장할지 대학 스스로 의구하게 되는 것도 큰 부담이다. 대학별로 입시를 운영하게 되면, 정부에서 운영하는 경우에 비해, 대부분의 대학에서 시험의 질이나 포괄성에서 처지게 될 것이다. 반면, 학업 성취에 관한 국가 수준의 정보 없이, 대학들이 독자적으로 다양한 차원에서 지원자들을 평가하는 데는 더 큰 부담이 따를 것이다. 다양하고 이질적인 정보(자료)들을 세밀하게 읽고 사정할 전문 인력을 조직적으로 갖추는 것도 큰 부담이고, 그렇게 사정하는 데 따르는 정치적·사회적 부담도 매우 클 것이다.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그렇게 ‘불투명한’ 전형을 사회적으로 정당화하는 데 작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고(이런 노력이 성공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다), 불투명한 전형 결과를 대학 스스로 신뢰할 수 있는 데 이르는 과정도 험난할 것이다. 전국의 많은 다양한 대학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독자적인 전형 체제를 운영할 여건을 갖춘 대학들이 얼마나 될까 하는 점도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수능과 같은 시험이 사라지게 되면 대학들이 개별적으로 안게 될 부담이나 곤경도 문제이지만,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대입전형이 대학별로 달라지게 될 때, 우리 사회와 학교 교육이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과제도 녹록한 것이 아니다. 이제까지 대입전형은 전국적으로 표준적인 양식으로 변화해 왔다. 전국 어디에서나 어떤 대학 진학을 희망하건, 대입 준비에 필요한 노력이나 활동에는 학생들 사이에 서로 큰 차이가 없도록 대입전형의 제도가 자리를 잡아 왔다. 이를테면 교과 성적을 비롯한 학생부 기록에 신경을 쓰고, 아울러 수능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대입 준비의 핵심이 되는 그런 체제를 구축해 왔다. 수능과 같은 시험을 없애고 대학별로 나름의 전형 방식들을 강구하게 되면, 이제까지의 대입전형 표준화 추세는 반전되어 갈 것이다. 학생들이 대입을 준비하면서 염두에 두어야 할 표적이 수능과 같이 단일한 것이 아니라 여럿이 될 것이다. 학생이나 학부모가 대입 상황이 복잡해졌다거나 부담이 늘었다는 불만을 제기할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더 나아가 학교 교육과 관련해서는, 수능과 같은 표준적인 시험으로 고등학교 교육(학습)의 방향과 수준을 국가가 어느 정도 향도했는데, 적어도 대입전형이 고등학교 교육을 좌우하는 이제까지의 형국에 큰 변화가 없다면, 각양각색의 대학별 전형들이 여러 갈래로 고등학교 교육의 방향에 간섭하는 사태가 빚어질 것이다. 국가 수준에서 학교 교육이 산만해지고 질 관리 체제가 흔들리게 되었다는 비판도 나올 것이다. 이 점은 교육과정이나 성취 평가 체제에서 상대적으로 분권적인 나라들(영국이나 미국 등)에서 교육의 질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다는 자성이 일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예상은 수능 시험과 같은 시험(국가 수준에서 표준적으로 관리하면서 대입 지원자들을 비교적 타당하게 변별해주는 시험)을 없애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하게 한다. 대입 경쟁이 여전히 치열하고 그 경쟁에 대한 판정이 투명해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가 여전하다면(이와 같은 구조적 현실을 바꾸기 어렵다면), 수능과 같은 시험을 없앨 때 오는 혼란과 부작용은 무시하기 어렵다. 수능과 같은 시험을 없애거나 그 영향력을 현저하게 떨어뜨리는 정책을 밀어붙여야 한다면, 그런 정책은 수능에만 초점을 맞춘 정책으로 부족할 것이다. 대입의 판도를 근원적으로 바꾸는(대입 경쟁을 완화하고 전형의 불투명성을 용인하게 만드는) 정책이 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혁신’을 도모하지 않고, 좁게 수능 문제만을 보면(수능의 존립 현실을 받아들인다면), 수능을 개선하는 문제는 수능의 교육적·사회적 효과를 좀 더 긍정적이게 만드는 과제로 귀결된다.

 

 

수능의 교육적 파장은 심각

 

수능을 문제 삼는 입장에서 수능의 효과를 진단하는 초점은 다양할 수 있겠지만, 우선 학교나 대학의 교육과 관련해서 어떤 작용을 하고 있는지 살피는 게 마땅할 것이다. 학교 교육(고등학교 단계까지의 교육)을 결산하는 시험이면서 대입 요건을 평가하는 시험인 것이 수능의 가장 실질적인 정체일 것이기 때문이다.

 

학교(특히 고등학교) 교육에 대해 수능이 미치는 영향은 압도적이다. 학생, 학부모, 교육자, 그리고 일반 시민 모두, 고등학교 과정에서는 당연히 수능 준비에 매진해야 한다고 받아들이기에 이르렀을 정도로, 수능은 고등학교 교육의 정당한 목표가 되었다. 학교에서는 공공연하게 수능 과목 위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학생들은 수능의 정보에 혈안이 되고 수능 문제 풀기 연습에 매달린다. 고등학교 단계에서 교육과 학습은 모두 수능 점수 올리기에 겨냥되어 있다.

 

수능이 고등학교 교육과 학습에 분명한 표적을 제공하게 되면서 얻게 되는 소득이 작은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학업 성취도 국제 비교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은 수능과 같은 시험이 낳고 있는 대표적인 성과일 것이다. 수능은 거의 모든 학생에게 국어(언어), 수학, 과학 등 주요 교과를 대입 준비 수준(취업 준비 수준으로 묽어지지 않은 수준)으로 학습하도록 고3 시기까지 독려한다. 이런 시험 장치(그리고 그것을 떠받치는 문화)가 한국의 ‘점수’ 국제 경쟁력을 지탱하고 있다. 만약 수능과 같은 시험이 사라지고(그리고 수능이 사라져도 개의치 않을 만큼 대입 경쟁에 대한 문화가 바뀌고) 학업 성취가 아닌 다른 지표로 대입이나 고교 졸업의 요건을 규정하게 된다면, 국제 학력 비교에서 한국의 위치는 뚜렷하게 추락할 것이다.

 

수능(사실은 수능을 있게 하는 한국의 교육 문화)이 학생들의 인지적 성취를 독려하는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수능 준비 위주’ 교육과 학습이 가져오는 폐해는 그 순기능을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할 정도로 심각하다고 여겨진다. 수능 점수가 대입에 결정적인 만큼, 그 점수에 대한 집착은 맹렬하여 많은 ‘비정상’의 교육 학습 행위를 낳는다. 어떤 수준으로 기술하느냐에 따라 달리 적겠지만, ① 동일한 수준과 유형의 수능 문항들을 거듭 반복해서 푸는 연습, ② 오직 선다형 문항을 전제하는 편협한(종종 비교육적이기까지 한) 문제 해결 훈련, ③ 자신의 적성과 흥미보다 상대적 순위 획득상의 유·불리를 계산하는 과목 선택, ④ 수능에 포함되지 않는 교과들에 대한 맹목적인 경시, ⑤ 다른 모든 활동과 경험을 배제하는 수험 훈련에의 매몰 등의 문제를 빼놓기 어려울 것이다.

 

학교 교육과 학습에 미치는 악영향의 연장에서, 수능은 대학 교육에도 심각한 문제를 떠안긴다. 수능은 그 존재 자체로 대입전형의 핵심 자료 위상을 유지할 수 있다. 대입전형 자료로서 수능의 진정한 타당성이 어떤지에 관계없이(설사 타당성에 의문을 가지고 있더라도), 대학은 수능 점수를 의식하는 전형 정책을 구사할 수밖에 없다. 수능은 이제 대입 지원자들의 ‘실력’을 재는 신화적인 잣대가 되어 있다. 수능 점수로 입증되지 않는 실력은 실력이라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대학의 서열이나 이미지도 그 대학에 입학 허가된 지원자들의 수능 점수에 따라 결정된다. 대학이 전형에서 수능 점수가 아닌 다른 요소를 고려하려고 시도할 때에도 수능 점수를 철저하게 무시하기는 어렵다. 변화된 전형의 결과로 입학자들의 수능 점수가 낮아지게 된다면, 적어도 사회적으로는 그 대학(모집 단위)의 서열(지명도, 인기도)이 낮아진 것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은, 수능이 존재하는 한, 수능을 중요한 전형 자료로 채택하여야 한다. 결국 수능이 전형자료로서의 타당성을 잃게 된다면 그만큼 대학들은 울며 겨자 먹듯 잘못된 전형을 감수해야 하는 형국이 된다.

 

수능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할 만한 여지는 여러 측면에서 발견하게 된다. 우선 좁게 생각해서, 수능 점수를 높게 받은 학생이 대학 진학 후에도 역시 좋은 성적을 유지하는지 확인해보는 측면에서 수능의 타당성을 따져보면 만족할 만하지 못하다. 이 측면에서는 수능 성적보다 학교생활기록부의 교과 성적이 더 나은 타당도를 보인다는 게 일반적인 연구 결론이다.

 

한편, 수능 공부가 몸에 밴(학습이란 수능 준비하듯 해야 하는 것이라는 인습에 젖은) 학생들은 대학에서 수업(학업)과 어떤 양상으로 만날까? 물론 엄밀하게 연구된 바 아직 없지만, 작지 않은 혼란과 부적응을 보일 것으로 짐작된다. 적어도 고등학교에서의 수업과 비교하면, 대학에서의 수업은 열려 있다. 학생들의 참여와 창의를 더 요구하리라는 점에서 그렇고, 고정된 풀이와 정답을 주입하지 않고 새로운 가설과 대안을 찾게 하리라는 점에서 그렇다. 수능 준비에 매달리던 관성으로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다섯 선택지 가운데 ‘절대 정답’이 하나 있다는 믿음에 흔들림이 없고, 그 하나를 제대로 ‘찍는’ 전략을 익히는 데 부심하는 훈련을 해 온 학생들이, 자신의 이해나 주장을 논리적으로 정리해내야 하는 ‘탐구’ 과제에 곤혹스러워 할 게 분명하다. 더 근본적으로는, 대학 교육이 전제하는 지식관(인식론)에 수능 준비식 학업에 물든 학생들이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하게 된다. ‘답’이라는 것은 사실 서로 경쟁하며 앞서거니 뒤쫓거니 하는 주장이나 가설이 형태로 있는 것이지, 앎의 세계에서 영원한 정답은 없다는 새로운 인식론에 자연스럽게 젖어들어야 할 대학 과정에서, 그들이 이 필수적인 이행(移行) 과업을 순조롭게 해낼지 의문이다. 이와 같은 짐작과 의문이 설득력을 가질수록 수능 점수에 근거한 대입 전형은 타당성을 잃는다. 타당성이 흔들리는 전형을 통과해 입학한 학생들로 채워진 대학의 교육도 그에 상응하는 난조를 보이게 될 것이다. 아니, 이미 그런 난조를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수능의 사회적 역할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

 

수능이 우리 사회에서 지니는 의미는 명시적인 것과 암묵적인 것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명시적인 의미란 대학 입학이라는 매우 중요한 기회를 배분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시험이라는 데 있고, 암묵적인 의미란 학업 성취가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는지(그래서 학업이 실지로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조작적으로 정의하고 있는 ‘제도’라는 데 있다.

 

수능은 우리 사회가 가장 열망하는 기회 가운데 하나인 대입 기회를 배분하는 데 결정적으로 개입한다. 수능의 효과를 점검하는 작업 가운데 하나는 이때 개입이 정의로운지 살피는 것이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수능과 같은 시험은, 그런 표준 시험을 채택하지 않는 나라들(예컨대 미국)에 비추어 볼 때, 교육의 과정에서 가정 배경에 따른 격차나 차별이 덜 일어나도록 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능과 같은 시험을 기회 배분의 장치로 삼으면 가정 배경보다 개인 요인(성취도)이 영향력을 더 가질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이런 경향을 두고 수능과 같은 시험은 기회 배분이 좀 더 실력본위(meritocratic)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점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한다면, 배분적 정의(distributive justice)의 견지에서 수능은 유지시키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수능이 유지되더라도 그것이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떤 성질의 시험이 되느냐에 따라 기회 배분 양상이 달라진다면, 수능을 손질할 필요는 생겨나게 된다.

 

수능이 대입 기회 배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수능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그 역할을 용인하기 때문이다. 수능 성적의 고하가 실력의 고하를 나타내 준다는 믿음이 바탕에 있기 때문이다. 이 믿음은 학업(학교 또는 대학의 수학<修學>)에 대한 우리 사회 통념의 중핵을 이룬다. 학업을 열심히 했는지, 또는 앞으로 학업을 수행할 잠재력이 충분히 있는지 입증하는 일은 수능 시험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믿음이 우리 사회에서 수능의 입지를 지지하고 있다. 학업 역량과 성취를 가늠하는 일은 국가 표준 시험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오랜 인식이 수능에 대한 신뢰를 구축했는지, 아니면 수능의 변전과 존재가 국가 표준 시험에 대한 믿음을 구축했는지 인과를 해명하는 작업은 별도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현재 분명해 보이는 것은, ‘수능 설화’가 적어도 고등학교까지 학업의 전말을 구성하는 우리 사회의 ‘통설’이라는 것이다. 고등학교 과정을 거치면서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고등학교가 무엇을 해야 할지), 새삼스럽게 묻거나 따져보아야 할 이유를 떠올리지 않고 우리는 살아간다. 우리가 수능 설화를 만들고 강화하며 살기 때문이다. 수능을 재조명한다는 것은 이 수능 설화를 객관화시키는 것이다. 우리의 자연스런 일상에 잠입해 있는 수능의 의미를 뜯어내어, 수능 설화에 녹아든 우리의 삶과 교육이 과연 바른 것인지 성찰하는 것이다.

 

수능이 학교와 대학의 교육에 미치는 파장을 생각해보면서 앞에서 이미 정리했듯이, 수능이 구성해 온 학업의 의미는(수능 성적을 얻는 것이 학업이고 실력<성취>이라는 의미는) 여러모로 왜곡된 것이다. 그 의미는 자발적이고 도전적인 탐구보다 권위적으로 주어지는 ‘정답’에의 순응을 학업의 미덕으로 규정하며, 학업의 결과(앎)는 자신의 언어와 논리로 드러내기보다 전문가가 예상해 만들어 놓은 ‘함정’에 빠지지 않고 제대로 ‘정답지’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드러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런 의미를 따라 공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우리가 대입 전형의 문제를 논란해온 전체 역사를 통해 누누이 지적해 왔다. 이젠 지적을 넘어 대안을 들여와야 한다. 최소한 우리 사회의 수능 설화를 개정해야 한다. 수능이 어떤 시험인지에 대한 우리 사회의 통설(narrative)을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로 바꾸어야 한다. 수능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진정으로 실력을 재며 공부의 방향을 선도할 수 있는 시험이 되도록 바꾸어야 한다.

 

 

현실적인 수능 개선 대안?

 

수능의 문제가 심각하다면 수능을 폐기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수능을 폐기할 때 얻게 되는 것과 잃는 것에 대한 득실 점검을 엄밀하게 해본다면, 폐기가 능사가 아니란 점을 인지하게 된다. 수능을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에 들어 있는 문제의식도, 면밀하게 살펴보면, 수능의 문제에 대한 것이기보다 대입 전형의 체제와 맥락에 대한 것이라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주장이 겨냥하는 문제들은 수능 폐기로 해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수능 폐기를 주장할 때 문제 삼는 대입 전형의 고질적 문제들(예컨대 지나친 상대 경쟁, 입시 위주 교육, 과도한 사교육 등)이 수능 변화(폐기가 아닌 변화)에 따라 양상을 바꾸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이때 수능 변화가 그런 문제를 줄이는 방향으로 성과를 낼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수능을 고치려는 시도는 그런 문제보다 다른 문제에 주목할 것이기 때문이다.

 

폐기되지 않고 남아 있어야 한다면, 수능은 무엇보다도 교육 원리를 기반으로 존립해야 한다. 현실 여건이 교육 원리 구현을 어렵게 할 가능성은 항상 있다. 그러나 현실 여건 때문에 교육 논리를 희생시켜선 안 된다. 교육 논리는 수능의 존립 이유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수능은 고등학교 교육을 총괄 결산하는 시험이다. 법제적으로 학교 교육의 총괄 평가는 각 학교 과정 안에서 이루어지게 되어있으므로, 수능에 총괄 결산의 역할이 주어져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런 역할이 수능에 주어지는 것은 한국적인 상황물(contingency)이다. 각 학교에서 시행되는 평가가 일관된 표준에 따라 엄정하고 타당한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기 때문에, 대입 전형의 맥락에서 전국 고등학교 졸업자 70% 이상을 한 몫에 평가하는 표준시험이 역사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바로 이 표준시험인 수능은 고등학교의 실질적인 교육과정을 규정하고 학생들의 학업 양식을 결정한다. 학생 개개인의 고등학교 교육 결산도 사실상 수능 성적으로 마감된다.

 

수능이 존립하는 한 총괄 결산 평가로서의 기능이 증발해 버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적어도 학교 교육의 중대함을 인정하는 견지에서 수능은 그 평가 기능을 제대로 하도록 구안되어야 한다. 이 교육 논리를 따르면 수능은 다음과 같은 조건들을 최대한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할 것이다.

 


– 교육과정의 표준에 근거한(절대 기준) 시험이어야 한다.
– 속도시험(speed test)이 아니라 능력시험(power test)이어야 한다.
– 문제 해결의 결과 못지않게 해결 과정을 평가하는 시험이어야 한다.
– 시험 치는 요령과 기술에 좌우되지 않는, 가능한 한 순전하게 학업 역량을 평가하는 시험이어야 한다.
– 세밀하게 커트라인을 긋는 용도로 사용되지는 않는 시험이어야 한다.


 

위 조건들을 갖춘 수능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논의하는 데는 또 다른 지면이 필요하다. 여기서는 위와 같은 조건을 제안하는 것이 시중에서 회자되는 제안들(예컨대, 쉬운 수능 기조 유지, 등급제, 자격고사화 등)을 이야기 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점만 짚고 가기로 한다. 여기 제안은 수능의 실체적(substantive) 성질에 대한 것이다. 무엇을 평가하기 위해서 어떤 형식의 문항을 출제하고, 어떤 원칙으로 관리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반면, 기존의 대안들은 대체로 수능의 부차적 성질에 대한 것들이다. 시험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아야 한다든지, 변별에 대해서는 무뎌야 한다든지 하는, 기본적으로는 ‘부담’에 관심을 둔 대안들이다. 이런 방향에서 수능의 대안을 강구하는 것을 ‘현실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런 접근이 진정한 의미에서 현실적이지 않다고 본다.

 

여기서 제안하는 요건을 충족시키려면 수능은 지금보다 더 긴 시간에 걸쳐 치러져야 하고 좀 더 많은 과목에 대해 시행되어야 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될 때 국가 수준에서 관리하는 게 무리일 수 있다.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러 대안을 강구할 수 있다. 수능을 지방교육자치 수준에서 시행하는 대안을 고려할 수도 있고, 수능 응시를 제한하는 대안도 고려할 수 있다. 이를테면 학교 ‘내신’을 바탕으로 수능 응시 자격 요건을 과목이나 수준에 따라 제한하여 시험 관리의 현실성을 확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수능의 점수 체제(채점)로는 절대 등급의 양식이 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양식을 채택하는 게 바로 쉬운 수능이나 변별이 약화된 수능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교육적으로 필요하다면, 수능의 표준은 매우 엄격하고 고난도인 것일 수 있다. ‘현실적으로’ 수능의 개선은 이런 방향에서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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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학교 명예교수 강태중

‘교육사회학’ 선생으로 일했다. 부족했던 점을 성찰하며, 조금이라도 메우기 위해 더 공부하고 있다.  한 사회가 교육과 학교에 대해 어떤 신화(상식)를 만들고 품는지, 그리고 그런 신화는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분석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인류 역사와 사회의 구분을 따라, 교육의 관습과 제도로 드러나고 또 변전해 온 신화들을 캐며 비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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