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교육감들의 살아있는 교과서, 『징검다리 교육감』 – 전 서울시교육감 곽노현의 교육혁신 이야기 –
* <교육을 바꾸는 목소리>의 칼럼 고정필진으로서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을 모시게 됐다. 독자들은 이번 9월부터 한 달에 한 번 그의 글을 만나게 된다. 그의 글을 싣기 전에 그의 생각을 미리 살펴보기로 한다. 다음은 지난 4월15일에 출간된 그의 저서 『징검다리 교육감』(메디치)에 대한 리뷰이다.
‘징검다리 교육감’, 듣기만 해도 참 애잔한 말이다. ‘나는 무엇이다’라고 말하고 있으면서도 ‘나는 무엇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그 무엇을 위한 것이면 족하다’는 의미로 들리는 이 말은 ‘겸손한 존재감’을 느끼게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서는 자의 ‘회한’도 느끼게 한다. ‘곽노현’이라는 이름 석 자는 이렇게 해서 정리되는가 보다. 그는 아래를 응시하며 무슨 생각인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그의 모습은 작게 그려져 있다. 왠지 점점 작아져서 없어질 것 같은 느낌이다. 책표지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곽노현’은 이제 활동이 끝난 ‘죽은 화산’인가 보다.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긴다. ‘곽노현’이라는 ‘이름’은 익숙하지만, 곽노현의 ‘말’은 친숙하지 않다.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 나는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다. 언론과 방송을 통해 보고 들은 그의 말은 이미 ‘거짓말’과 ‘구차한 변명’이라는 낙인이 찍힌 몇 마디 ‘문장’들뿐이다. 궁금했다. 곽노현, 그의 진짜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책장을 넘겨 책의 전반부를 보니, 역시나 친숙한 말들이 먼저 나온다. 체벌금지, 학생인권, 혁신학교, 그리고 무상급식 등, 곽노현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먼저 그 부분부터 찾아서 읽어 보았다. 의외였다. ‘뻔한 변명’을 늘어놓을 법도 한데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아쉬움’과 ‘자기성찰’이 느껴졌다. 책표지에서 그가 아래를 응시하며 걷는 모습은 바로 이 점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단순한 후회나 미련이 아닌, 뚜렷한 ‘소신’ 역시 강하게 느껴졌다. 아마 그가 ‘징검다리 교육감’이라고 자처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소신’과 맞닿아 있는 것이리라. 그 중에서도 ‘혁신학교’에 대한 그의 남다른 소신과 열정을 보인 대목에서는, 그가 앞으로도 학교혁신을 위해 ‘징검다리’ 역할을 계속 할 것이라는 예상과 기대를 하게 된다.
책 전반부의 나머지 부분을 보았다. 문예체교육, 진로교육, 수학여행, 방과후학교, 장애학생 통합교육, 선행학습, 학교폭력 문제 등. 그의 넓고 깊은 교육철학을 알 수 있게 하는 주제들이다. ‘나는 처음엔 교육 문외한이었다’고 고백했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입시교육에 찌든 우리 교육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놓고자 했던 그의 교육철학은 ‘문예체교육’으로 집약된다. 이 말을 처음 사용했던 것도 그였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교육학을 전공한 나로서도 많이 반성하게 되는 대목이다. 또 기존 수학여행의 문제점을 간파하고 이를 ‘소규모 테마여행’으로 바꾸고자 했던 그의 생각에서 ‘아빠’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 ‘아빠’의 마음이 오늘, 2014년 4월 16일 이후 우리 사회와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고 ‘절실한’ 것이 될 것이라고는, 교육감 당시에는 물론이고 이 책을 쓰고 있던 시점에서도 그 역시 몰랐을 것이다. 바로 ‘지금’ 우리 교육의 문제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탐색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 교육의 희망과 미래를 볼 수 있는 것 같아 책을 읽는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그는 ‘살아 움직이는’ 교육감이었다. ‘죽은 교육학’ 교과서를 붙들고 장밋빛 미래를 그리는 교육학자들과는 달라 보였다.
책의 후반부가 궁금해졌다. 의외의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중식지원비율, 새로운 학교장평가지표, 학생행복지수, 500인 원탁회의, 시설민주주의,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는 조달행정 등이 먼저 눈에 띄었다.
‘교육격차 해소를 위한 교육행정의 매직넘버’로서 ‘중식지원비율’을 활용한다는 발상은 정말 놀랍다. ‘중식지원비율’의 시사점에 대해서는 누구나 알 수 있지만, 지금까진 학생 개인에 대한 ‘시혜적’ 차원이었을 뿐이다. 이를 학교에 대한 재정지원 규모를 결정하는 지표로 삼은 적은 없었다. ‘곽노현’에 의해서 ‘중식지원비율’은 그야말로 ‘매직넘버’가 됐다. 게다가 인사행정에서도, ‘중식지원비율’이 높은 학교에 유능한 교장을 우선 배치하기로 한다. 이는 그동안 아무도 생각지 못한 새로운 시도였다. 교육의 본질을 꿰뚫는 놀라운 ‘역발상’이다.
‘학생행복지수’도 그렇다. 선거용 구호로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행복학교’가 아니라, 끊임없이 ‘학생행복지수’를 점검하고 이를 토대로 학사를 운영토록 하고자 했던 지점에 이르러서는 그가 정말 진정으로 우리 학생들을 생각하는 교육감이었구나 하는 점을 느끼게 해준다.
책 후반부는 이렇게 시작해서, 글을 읽는 내내 우리 교육을 향한 곽노현 교육감의 창의지성과 추진력에 놀라게 된다. 또한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깊은 철학과 실천에 경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시설’이라는 말에는 늘 ‘비리’라는 말이 붙어 다니는데, 그는 ‘시설’에 ‘민주주의’라는 말을 새로 붙였다. 또 ‘조달’이라는 말에도 늘 ‘비리’라는 말이 붙어 다니는데, 그는 ‘조달’에 ‘사회적 책임’이라는 말을 새로 붙였다. 말만 붙인 것이 아니라 실천을 했다. 현장은 바뀌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어보면 이러한 놀라운 변화를 구체적으로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정책사업 감축으로 학교자율성 회복, 교육활동에 전념하는 교원업무정상화, 쪽지인사와 결별하는 인사행정 등 우리 교육의 암초들을 하나씩 하나씩 걷어내고자 했던 그의 과감한 시책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위학교와 선생님들이 상부기관 눈치 안 보고 자율적으로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고, 또 줄서기를 안 해도 자신의 소신을 맘껏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듣기만 해도 속이 시원한 것들이었다.
이 책을 읽고자 하는 독자가 있다면, 책 후반부부터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책을 읽어보면 안다. 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지 말이다. 정책 이야기 가지고 ‘감동’을 운운하는 것은 왠지 낯설다. 그러나 이 책을 직접 읽으면 ‘감동’이 느껴진다. 아마도 그의 정책 중심에 우리 ‘아이들’이 있고 ‘사람’이 있고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물론 우리 교육문제에 대해서 평소에 조금이라도 갑갑함을 느꼈던 사람들만 보시라. 갑갑함이 없던 분들에겐 ‘감동’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곽노현’이 했던 이 많은 일들에 놀랐다. ‘곽노현의 교육혁신 701일’이 마냥 짧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곽노현이 서울교육감을 계속했었더라면’ 우리 교육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지나간 역사에는 가정이 필요 없다고 하지만, 우리 교육이 나아갈 바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역사의 가정’이라는 것이 결코 헛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은 이번에 새로 당선된 진보교육감들에겐 ‘살아있는 교과서’라 할 만하다. 곽노현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이다. 곽노현이 꿈꾸고 실천했던 것들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책을 읽는 내내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따라서 곽노현, 그 또한 ‘진행형’이다. 우리 교육에 대한 그의 열정과 에너지는 화산 용암처럼 뜨겁게 꿈틀거리고 있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다들 알게 되겠지만, 그는 고개 숙인 ‘죽은 화산’이 아니다. 그의 깊은 ‘성찰’ 때문에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그는 언제 다시 솟구칠지 모르는 살아 움직이는 ‘휴화산’이다. 곽노현의 ‘징검다리’ 역할은 이미 끝나버린 과거의 그 무엇이 아니다. 그의 역할은 앞으로도 계속돼야 하는 ‘썸’이다. 이것이 내가 읽은 ‘징검다리 교육감’이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회운동을 했다. 30대 중반부터 대안학교에 관심을 가지면서 선생님이 되기위해 서울대 사범대에 다시 들어갔다. (사)한국교육연구소와 인연이 되어 최근까지 15년간 연구위원, 부소장으로 활동했다. 이 과정에서 관심 방향을 교육정책으로 돌리게 됐고, 제대로 공부해보자는 생각으로 동국대 석박사과정에서 교육정책, 교육사회학을 전공했다. 그 후 대학강의와 교육정책 연구활동을 하던 중에 이찬승 선생님을 만나, 지금은 교육을바꾸는사람들 21세기교육연구소 부소장으로 활동하였다. 박사학위 논문은 <한국과 프랑스의 대입논술시험제도 비교 연구>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