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교사이며 어떻게 성장할까?
우리나라에 근대학교가 들어온 이후 학교는 그 원형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하여 지금은 다양한 형태의 왜곡된 운영원리가 지배하는 관행의 학교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입시중심의 실적주의를 정점으로 많은 보충과 강제적 자율학습이 진행되고 아이들은 무엇을 배웠는지 보다 많은 학습량을 확보하기 위하여 쫓기듯 늦은 시간까지 사교육시장을 전전하기도 합니다.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 토론하고 대안을 모색하며 공동의 실천을 통해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보다는 수직적인 관계 속에 지시와 통제로 관계되는 일방적인 문화를 가지게 되었고 그 속에서 교육력 저하의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공동체의 주체라고 할 수 있는 구성원들의 삶의 양식은 수동적이고 개인적이며 편의적인 모습을 띄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학교의 원형, 교육의 본질에서 멀어져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학교는 더 이상 구성원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공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교사들의 고민과 실천의 담보를 통하여 공교육 정상화의 작은 사례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학교가 살맛나는 삶의 공간이 되기 위하여 정부 차원의 정책적 뒷받침도 필요하고 교육청 차원의 제도적 지원도 필요하지만 당장은 교사들의 작은 노력들을 모아 교사문화와 학교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새롭게 아이들 만나는 교사
오랫동안 관습적으로 이뤄지던 생활지도 방식의 틀을 깬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교가 그 원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시대의 흐름에 맞는 교육의 방식을 갖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두발의 상태, 치마길이, 간단한 장신구 부착 여부 등이 교육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선생님들은 아무도 안 계실 듯합니다. 우리나라 헌법 제10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되어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헌법의 조항을 신성불가침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학생은 단지 교복을 입은 국민입니다. 우리들과 똑같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니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국가의 공적기관인 학교는 학생들의 이러한 인권을 확인하고 보장할 의무를 지니는 것은 불가침의 조항이라고 볼 수 있지요.
그런 의미에서 전반적인 학교문화를 친인권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봅니다. 교사가 정보전달의 유일한 역할자이던 산업화 사회에서는 많은 수의 아이들을 효과적으로 교육하기 위해 일사불란한 지도체제가 불가피했고 그러한 역할이 오늘날의 경제적 성장을 이루는데 큰 기여를 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다양성과 특수성을 지향하는 지식정보화 사회에서는 기존과 같은 지도방식으로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에 한계가 있습니다. 친인권적인 학교문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 선생님들이 다시 마음에 새겨야 할 몇 가지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우선 아이들을 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통제하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존재로 보아야 합니다. 텍스트의 내용만을 전달하는 것은 이제 교사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특정한 분야에서는 아이들이 오히려 교사들보다 뛰어나기도 합니다. 따라서 텍스트의 내용을 재구조화하고 그것을 아이들과 고민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하려는 노력들이 필요합니다. 선생님들의 전문적인 성장을 위해 학교에서 연수를 조직하도록 하겠습니다.
둘째로 다양한 수업방법 개선을 통한 수업의 혁신과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교육과정 구축이 필요합니다. 교육부 발표에 의하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30% 정도 된다고 합니다. 다양한 적성과 재능을 가진 아이들이 한 교실에서 똑같은 일제식 수업을 듣는 것이 특정한 아이들에게는 매우 힘든 일이며 수업하는 교사와의 갈등이 불가피합니다. 협동학습, 배움의 공동체 수업, 참여소통의 수업 등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수업방법을 위한 고민들이 필요합니다. 또한 필요에 따라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개별화 교육과정은 필수적이라고 보여 집니다.
셋째로 지금까지의 생활지도 문제는 훈육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정의 결핍에 있다고 보여 집니다. 왜 지켜야 하는지도 모르는 규정을 아이들에게 지키라고 강요해왔던 측면이 있습니다. 규정을 제정하는데 아이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자기의 입장을 이야기할 수 있을 때 책무성도 높아집니다. 학교의 큰 단위에서는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학급회의의 상설화와 학급회의가 우선순위에서 밀리지 않도록 정해진 시간에 꾸준히 학급회의가 이루어지도록 보장해야 합니다.
넷째로 참여와 소통의 학생 자치문화 활성화를 통해 학생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축제, 입학식과 졸업식, 기타 학교행사에서 아이들이 기획하고 진행하며 평가까지의 과정을 통해 아이들 스스로 성장하는 힘을 갖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교내흡연, 집단따돌림 등의 학교 현안들에 대해서도 학생자치회를 통해 해결 방안을 모색하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교사들이 직접 개입하는 것보다 큰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인권감수성, 존중, 배려 우리 교사들의 모습이기를 소망합니다.
■ 뜨거운 열정과 의지가 있는 교사
교원업무경감과 관련한 설문 조사를 하면서 문득 든 생각입니다. 교원업무경감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수준 높은 교육, 질 높은 교육을 위한 과정이지요. 지금껏 교사 본연의 일들을 여러 행정적인 업무 때문에 못하게 된다고 호소해왔고 교육청에서 그 방법들에 대한 지원을 고민하며 제도적 개선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살짝 두려워집니다. ‘행정전담 선생님들이 배치되어 업무가 경감되었을 때 우리 교사는 교육과정을 재구조화하고 수업과 평가를 통하여 아이들과 삶을 나누는 행복한 수업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수업을 만들어 내겠다는 의지와 열정이 우리들에게 있느냐는 것입니다. 업무경감 이후 수업에 대해 불쑥 커진 부담을 스스로 감내하며 교사로서의 자존감으로 행복해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수업을 만들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만약 그러한 수업을 여전히 할 수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들이 크고 무겁게 가슴을 누릅니다. 선생님들의 생각은 어떠세요?
■ 능동적인 참여와 협업의 교사
아이들은 내게 어떤 존재일까? ‘교사’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처음 만날 때의 가슴 설레임이 아직 남아있는지 내게 묻고 답하곤 합니다. 가끔 정적이 흐르는 교장실에 앉아 무엇 때문에 이리 마음 고생하고 몸 고생하고 있는지 회의(懷疑)할 때가 있습니다. 모두들 힘들다고 하는데… 사실 필자도 힘들어 이에 대해 하소연도 하고 싶고, 힘들고 어려운 아이들을 우리 학교로 보내려고 할 때 혁신학교가 뭐 힘든 아이들 가려서 받느냐고, 돈으로 하는 혁신학교는 누군 못하냐고 비아냥거리는 주변 사람들이 야속하기도 하지만 내가 꿈꾸던 교사로서 아이들 앞에 당당하고 싶었던 교사로서의 자존심 곱씹으며 그 초심을 마음에 담고 늘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나자고 다짐하곤 합니다. 모두들 학교가 변해야 한다고 합니다. 교사는 학부모와 아이들을 탓하지만 학교 밖의 사람들이 학교와 교사를 바라볼 때는 변해도 한참 더 변해야 된다고 합니다. 1년에 수차례 학부모들에게 우리의 수업을 공개하고 학부모에게 평가받는 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 이제는 어쩌지 못하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들을 겸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 ‘교사’라는 이름만으로 학부모에게 권위를 인정받던 시대는 분명 아닙니다. 이제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고 우리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가슴 아프게 고민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학부모들이 어떻다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들은 그래서 나는, 우리는 이렇게 학부모들을, 아이들을 만나자고 제안하고 실천하였으면 좋겠습니다. 학교장의 판단이나 아이디어보다 여러 선생님들의 능동적 참여와 협업으로 가는 학교, 그것이 우리들의 학교, 우리의 교육을 살리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여전히 이 시대 교사로 살아가는 것은 아픔과 고난의 길임을 압니다. 하지만 확률 같지도 않은 작은 확률로 만난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교사들이 갖는 삶의 무게를 다시 되짚어 보았으면 합니다. 훌륭한 교사가 되기 전에 아픈 사람, 힘든 사람을 나 몰라라 하지 않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춘 좋은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교육이 희망이고 선생님들이 희망이었으면 합니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