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문제를 푸는 책들(27) – “학교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 E. D. Hirsch, 『The Schools We Need and Why We Don’t Have Them』 (Doubleday, 1996) 비평

학교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은 질문이다. 우리는 흔히 학교의 역할을 이야기할 때 창의성, 비판적 사고, 문제 해결력, 협업 능력 같은 말을 먼저 떠올린다. 미래 사회에 필요한 역량이라는 이유에서다. 반면 역사적 사실, 과학 개념, 어휘와 같은 구체적인 지식은 암기나 주입식 교육의 대상으로 취급되곤 한다.
그런데 E. D. Hirsch는 정반대의 질문을 던진다.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는 과연 지식 없이 가능한가.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인가를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교육학 강의실의 단골 명제가 있다. “사실을 외우는 것보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중요하다.” “아이는 자연스럽게 배운다, 교사는 그 과정을 촉진하면 된다.” “창의력과 비판적 사고가 지식보다 우선한다.” 누군가 이 명제들에 이의를 제기하면 교실 분위기가 어색해진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교실 속에서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Hirsch는 바로 그 상식에 정면으로 맞선다. 그리고 학교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학생들에게 공통의 지식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식 없이는 역량도 자랄 수 없다
이 책은 Hirsch가 『Cultural Literacy』(1987) 이후 10년 가까이 발전시켜 온 문제의식을 집대성한 책이다. 그가 이 책에서 집요하게 파고드는 질문은 하나다. “학교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Hirsch의 대답은 명확하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공통의 배경 지식과 문화적 문해력을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창의성도, 비판적 사고도, 문제 해결력도 결국 지식 위에서 자란다. 따라서 학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학생들이 세상을 이해하고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공통의 지식 기반을 제공하는 데 있다.
Hirsch에 따르면 미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예산 부족이나 교사의 헌신 부족이 아니다.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 철학의 혼란이다. 그는 특히 루소 이후 확산된 진보주의 교육학 전통이 학교의 본래 역할을 약화시켰다고 본다. Hirsch는 이 흐름의 대표적 사상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존 듀이를 지목한다.
진보주의 교육학의 세 가지 오류
그가 지적하는 첫 번째 오류는 학생이 스스로 지식을 구성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물론 학생은 능동적으로 배우는 존재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스스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새로운 정보는 기존의 배경 지식과 연결될 때 비로소 이해되고 기억된다. 배경 지식이 부족하면 탐구도, 비판적 사고도 충분히 이루어지기 어렵다.
두 번째 오류는 사실 지식보다 사고 기술이 중요하다는 믿음이다. 그 결과 교육과정은 점점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보다 ‘어떻게 생각하게 할 것인가’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고는 언제나 내용에 의존한다. 역사를 모르면 역사적 사고를 할 수 없고, 과학 개념이 없으면 과학적 추론도 불가능하다. 비판적 사고는 내용 밖에 존재하는 일반 기술이 아니라 특정한 지식 위에서 작동하는 능력이다.
세 번째 오류는 아이마다 자연스러운 학습 속도가 있다는 낭만주의적 관점이다. 물론 학생들은 서로 다르다. 그러나 학교가 공통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일을 포기하면, 학생들이 공유해야 할 지식 기반 자체가 무너진다. 그 결과 교육과정은 파편화되고 학생 간 지식 격차는 더욱 커진다.
평등을 외치다가 불평등을 키우는 역설
Hirsch의 가장 중요한 통찰은 여기서 나온다. 진보주의 교육학은 평등을 지향하지만 실제로는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중산층 이상의 아이들은 학교 밖에서도 책을 읽고, 다양한 문화 경험을 하며, 부모와의 대화를 통해 배경 지식을 쌓는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학교 교육에 훨씬 더 의존한다. 학교가 체계적으로 지식을 가르치지 않으면 결국 불리한 환경에 놓인 아이들만 더 큰 피해를 입는다.
그래서 Hirsch는 체계적인 내용 중심 교육이야말로 형평성을 높이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 역설을 그람시의 통찰을 빌려 설명한다. 정치적으로 진보적이려면 교육적으로는 오히려 보수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에게 가장 먼저 제공해야 할 것은 권력의 언어와 도구, 즉 읽고 쓰고 이해하고 사고할 수 있게 만드는 공통의 지식 기반이기 때문이다.
한국 교육에도 같은 질문이 필요하다
Hirsch의 질문은 한국 교육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결국 한국 교육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만큼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를 다시 묻기 시작해야 한다.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 교육은 창의성, 문제 해결력, 협업 능력, 학생 주도 학습과 같은 역량을 강조해 왔다. 2022 개정 교육과정 역시 역량 중심 교육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그런데 Hirsch는 역량과 지식을 서로 대립시키는 순간 문제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비판적 사고는 어떤 내용에 대해 사고하는 능력이고, 문제 해결은 무엇인가를 알고 있을 때 가능하다. 결국 역량 교육 역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라는 질문 위에 서 있어야 한다.
한국 교육은 흔히 암기 위주의 교육을 비판해 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체계적인 지식 교육 자체까지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버리려는 것이 정말 버려야 할 것인지, 아니면 지켜야 할 것까지 함께 버리고 있는 것인지는 진지하게 따져볼 문제다.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한국 역시 교육 격차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 교육과정과 공통 교과서가 존재하지만 학업성취도 격차는 여전히 크다. Hirsch의 관점에서 보면 그 원인 중 상당 부분은 학교 밖 배경 지식의 차이에 있다.
학교가 명시적이고 체계적으로 지식을 가르치지 않으면, 배경 지식이 풍부한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 사이의 간격은 학교 교육만으로 좁혀지지 않는다. 교사에게 재량을 주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재량이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공통된 기준의 부재를 의미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남는 질문들
그렇다고 Hirsch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몇 가지 아쉬움도 남는다.
무엇보다 그는 진보주의 교육학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 미국 학교는 진보주의 교육만으로 운영된 적이 없으며, 직접 교수와 표준화 시험 역시 오랫동안 강력한 영향력을 유지해 왔다. 미국 교육의 모든 문제를 진보주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일 수 있다.
또한 Hirsch가 강조하는 ‘공통 핵심 지식’의 내용을 누가 결정하는가의 문제도 남는다. 문화적으로 다양한 사회에서 어떤 지식을 공통의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는 본질적으로 정치적 질문이다. 이 문제를 충분히 다루지 않는다면 지식 교육은 기존 문화 권력을 재생산하는 수단이 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Hirsch의 주장은 지식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강력한 문제 제기이지만, 그가 제시한 해법 자체도 비판적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
맺으며: 교사들에게
Hirsch의 책을 읽고 나서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나는 지금 수업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역량인가, 내용인가. 탐구의 과정인가, 알아야 할 것인가. 사실 이 둘을 대립시키는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일지 모른다. 좋은 수업은 내용과 과정을 분리하지 않는다. 풍부한 지식을 배우게 하고, 그 지식을 활용해 생각하게 하며, 연결하고 적용하도록 돕는다.
배경 지식이 풍부한 학생이 더 깊이 이해하고, 더 잘 연결하고, 더 오래 기억한다는 사실은 오늘날 학습과학이 반복적으로 확인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학교가 지식 전달에만 머물러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Hirsch의 진짜 메시지는 지식과 역량을 대립시키지 말라는 데 있다.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원한다면 먼저 생각할 재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Hirsch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교사는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만큼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도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을’이 빠지면 ‘어떻게’는 방향을 잃는다.
학교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Hirsch의 책은 그 오래된 질문을 다시 우리 앞에 놓는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명확하다. 공통의 지식 기반 없이는 역량도 자랄 수 없다.
| <교실 적용 팁>
1. 단원을 시작할 때 ‘이 수업이 끝나면 알아야 할 핵심 지식’을 명시한다. 역량 중심 수업이라 해도 그 역량이 작동하려면 구체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단원 목표를 “비판적으로 사고한다”가 아니라 “산업혁명이 노동 조건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세 가지 이상 설명할 수 있다”처럼 지식의 형태로 진술한다. 목표가 구체적일수록 배경 지식이 부족한 학생에게 더 공평한 수업이 된다.
2. 새 개념을 도입하기 전에 연결될 사전지식을 먼저 확인한다. “이것을 배우려면 저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지식의 누적적 구조를 의식한다. 수업 초반 5분, “지난 시간에 배운 것 중 오늘 수업과 이어질 내용이 뭐가 있을까?”라는 짧은 회상 질문이 배경 지식 없는 학생을 수업 안으로 끌어들이는 중요한 다리가 된다.
3. ‘탐구 학습’과 ‘직접 교수’를 이분법으로 보지 않는다. 모든 개념을 스스로 발견하게 할 필요는 없다. 처음 접하는 개념은 교사가 명확하게 설명하고, 학생이 이를 이해한 다음 적용과 연결을 탐구하게 하는 방식이 인지 부하를 낮추고 학습 효율을 높인다. 특히 배경 지식이 부족한 학생에게 ‘발견 학습’을 고집하는 것은 수영 방법을 모르는 아이를 물에 던져 넣는 것과 다를 바 없다. |
| ※ 이 시리즈는 AI 도구를 활용해 원서의 핵심 내용을 추출하고, 필자가 내용을 검토·수정하여 한국 교육 현실에 맞게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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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짧은 직장 생활을 경험한 후 지금의 능률교육(NE능률)을 창립하여 30년을 경영하면서 영어교과서와 참고서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다. 2009년 회사를 매각하고,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이란 비영리 공익단체를 설립하여, 현재 이 단체 대표직을 맡고 있다. 국가 교육시스템 재 디자인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 청소년들도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개혁에 특히 관심이 많다. 수업혁신과 교육격차 완화를 위해 학습과학의 연구와 전파, 그리고 교원 연수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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