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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물 출판을 통해 돌아본 한국 교육

#1595 현병호, 교육매체 계간《민들레》발행인 2026.09.15
전집의 시대, 번역의 시대, 축약·왜곡의 시대까지 한국 아동물 출판을 돌아보며, 이 시기가 아이들의 독서 경험과 세계관 형성에 남긴 한계를 짚고, 원작이 지닌 힘과 아름다움을 훼손하지 않는 출판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전집의 시대

 

70년대까지만 해도 대학생 외에는 서점에서 책을 사는 사람이 드물었다. 대개는 집집마다 방문하는 판매원을 통해 전집을 월부로 구매하곤 했다. 웬만큼 사는 집들은 아이들 방에 수십 권짜리 <소년소녀 세계명작동화전집>, <한국위인전기전집>을 들여놓았고, 가방끈이 좀 더 긴 집에는 <한국근대문학전집>을 들여놓기도 했다. 학교 도서관도 방문판매원의 주요 고객이어서 전집류들이 도서관 서가를 채웠다. 아이들에게도 책에도 번호가 붙던 시절이었다. 중소도시 읍내에 두어 개씩 있던 서점은 대개 참고서 장사로 먹고살았다.

 

당시 전집은 책이기보다 장롱이나 책장 같은 가구에 가까웠다. 영롱한 자개장롱이 살림살이의 수준을 보여주던 시절, 책장에 꽂힌 수십 권짜리 양장본 전집은 가방끈의 길이를 증명해 주는 것이었다. 서가에 꽂아두면 ‘있어 보이는’ 책들, 금박 장식이 들어간 두꺼운 책들은 아이들이 들고 다니며 읽기에는 부적합했다. 더욱이 세계명작은 거의가 일서를 중역한 질 낮은 수준의 번역물이었지만, 볼거리도 읽을거리도 마땅찮던 시절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전집을 끼고 살았다. 영미권 아이들이 셰익스피어 원전을 읽을 때 이 땅의 아이들은 조악한 번역물을 읽어야 했다.

 

어린이용 전집 전문 출판사로는 계몽사가 유명했다. 계몽주의 시대에 어울릴 법한 이름인데, 사실상 한국의 60~70년대는 계몽의 시대였다. 세계명작전집을 통해 시골 아이들도 소공자, 소공녀를 알게 되었다. 서양을 흠모한 제국주의 일본의 시각으로 바라본 서구의 이데올로기가 번역서를 통해 그대로 들어왔으니 ‘계몽’이라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었지만, 식민 통치와 미 군정에서 벗어나 어설픈 ‘한국식 민주주의’를 내세우던 때였으니, 출판계라고 다를 수는 없었다. 산업계도 문화계도 일본을 베끼기 바쁜 시절이었다.

 

취미란에 ‘독서’라고 적던 아이들은 참고서를 사면서 삼중당 문고판도 한두 권씩 샀다. 삼중당 문고는 교복 포켓에 쏙 들어가는 크기여서 갖고 다니며 읽기에도 좋았다. 출판사는 놀라운 축약 기술을 발휘해 <죄와 벌> 같은 대작도 문고판으로 만들어냈다. 1970년대 후반 들어 서서히 단행본 시장이 확대되면서 대학가에서 사회과학 서적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유명 작가의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기 시작했다. 80년대만 해도 저작권 개념이 없어 해적판이 버젓이 서점에 깔렸다. 신생 출판사들이 너도나도 번역 출판에 뛰어들어 번역서 중복 출판이나 국내서 모방 출판이 예사롭게 이루어졌다.

 

1987년과 1996년 저작권법 개정으로 중복·모방 출판이 줄어들고 해적판들이 점차 사라져 갔다. 전문 번역가들이 등장하면서 번역서의 수준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1991년에는 방문판매법이 제정되었다. 청약을 (7일 이내) 취소할 수 있는 소비자의 권리가 법으로 보장되면서 판매원의 말빨에 덜컥 할부 구매를 약정했던 이들이 계약을 무를 수 있게 되자 전집 시장은 점점 축소되었다. 책을 읽고 자란 젊은 부모들이 직접 책을 골라 사주기 시작하면서 어린이들도 더 이상 세계명작이나 전래동화에 매이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1980년에 결성된 어린이도서연구회는 아동물 출판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단행본 사서 읽기, 학급문고 만들기 운동을 꾸준히 벌이면서 어린이책 출판 시장이 점차 활성화되었다. 또 독서능력 검정시험 반대 운동을 통해 독서의 학습 도구화를 저지하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좋은 책을 선별해 추천하면서 어린이책 기획이 눈에 띄게 좋아지고, 추천 도서는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세계명작 전질을 할부로 강매하던 시대가 저물고, 양서를 알아보는 눈 밝은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서점에 가서 책을 사주는 시대가 열렸다. 바야흐로 출판계도 다품종 소량 생산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번역의 시대

 

일본인들의 창의성이 폭발한 시기는 메이지유신 전후 200년 정도로 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17세기부터 난학1이 융성하면서 해부학 서적 등 원서 번역 작업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후쿠자와 유키치를 비롯해 서구 문명에 일찍 눈을 뜬 이들은 동아시아 언어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민주주의, 자유, 평등 같은 낯선 개념어들을 만들어내면서 2천5백 년에 걸친 서구 문명의 정수를 250여 년에 걸쳐 부지런히 자국어로 옮겼다. 20세기에 서구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일본의 힘은 거기서 나온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류 역사상 창의성이 가장 폭발했던 시대와 나라로 흔히 14~15세기 이탈리아와 11~13세기 중국 송나라를 든다. 몽골족의 침략을 피해 유럽으로 넘어온 아랍의 학자들이 갖고 있던 고대 그리스 문헌을 번역하면서 르네상스 문화가 꽃을 피웠다면, 중국에서는 오대십국의 혼란기가 끝나고 한족 통일 왕조가 들어서 공자 사상을 새롭게 해석하면서 서구의 르네상스에 버금가는 문화가 꽃을 피웠다.2 송대의 문화는 앞서 이루어진 불경 번역 작업에 힘입은 바가 적지 않다. 불교 사상의 전래 없이 주자학은 생겨날 수 없었다.

 

쿠마라지바(구마라집)와 현장은 산스크리트어를 중국어로 번역하면서 공(空)이니 업(業) 같은 새로운 개념어들을 만들어냈다. 쿠마라지바는 번역에 대해 “이미 입에서 한 번 씹은 밥을 다른 사람에게 먹이는 것과 같아, 원래의 맛을 잃는 것은 물론 심지어 구역질까지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번역의 한계에 대해 이보다 적절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천축의 풍습은 문체를 몹시 사랑하여 그 찬불가는 지극히 아름다운데 이를 한문으로 옮기면 그 뜻만 전할 수 있을 뿐”이라고도 했다. 그는 수백 권의 불경을 한자로 옮기면서 뜻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자 애썼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같은 말이 쿠마라지바의 의역으로 탄생한 표현이다.

 

서역 출신 쿠마라지바의 의역이 옳은가 중국 본토 출신 현장의 직역이 옳은가를 두고 오늘날에도 논쟁이 일어나지만, 두 사람의 번역을 통해 불교 사상이 중국에 전파되면서 동아시아 문화에 일대 변혁이 일어났다. 번역은 하나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작업을 넘어서 문명의 충돌과 변혁을 가져온다. 불경 번역 후 천 년 가까이 지나 또 한 차례 동아시아에 번역의 바람이 불었으니 17세기에 전래된 성경과 유클리드 기하학3 원론을 비롯한 수학 및 과학 서적을 번역하면서였다. 일찍이 서구 문명에 눈을 뜬 일본과 중국의 선각자들이 심혈을 기울인 것이 번역 작업이었다.

 

근대의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우리 사회에서 번역은 창의적인 작업이 되기 어려운 구조적 환경에 놓여 있었다. 일서로 번역된 책들을 가져다 재번역하며 일본인들이 앞서 만들어놓은 낱말을 그대로 가져다 쓰다 보니 독자적인 사유의 기회를 갖지 못한 채 한자 번역어들을 한글로 옮기기에 바빴다. ‘민주주의’라는 번역어 대신 원어 ‘Democracy’에 좀더 가까운 ‘민주정’이란 번역어를 썼더라면 민주화 과정에서 혼란이 덜하지 않았을까? 천황제 치하 근대 일본의 지식인들이 차마 ‘민주정’이란 표현을 쓰지 못한 한계에 우리 또한 갇혀버린 셈이다.

 

용어만 그대로 가져왔던 것은 아니다. 일본어에 친숙했던 지식인들은 일서를 번역하며 일본어식 표현을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이오덕 선생은 번역투 문장에 누구보다 예민하여 <우리글 바로쓰기>를 비롯한 수많은 저서들에서 부적절한 번역투 문장의 사례를 하나하나 지적했다. 한자어에 대한 지나친 거부감으로 우리말의 범위를 축소시킨 면도 있지만 선생의 우리말 감각은 탁월했다. 선생이 이끈 한국글쓰기연구회 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교육 현장에서 글쓰기 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예쁜 말 꾸며내기에 가까웠던 동시가 아이들의 삶이 담긴 살아 있는 시로 바뀌었다. 어린이도서연구회와 한국글쓰기연구회가 우리 교육에 미친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축약과 왜곡의 시대

 

유감스럽게도 80년대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아동 번역물이 완역본이 아니었다.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비참함)이 ‘장발장’이란 제목의 동화책으로 소개된 것처럼, 원작 파괴 수준의 축약과 왜곡이 이루어졌다. 고전이 어린이용 이야기로 바뀌면서 본질이 훼손되는 일은 우리만의 일은 아니다. 라퐁텐의 우화는 일찍이 프랑스 초등 교과서에 실릴 만큼 널리 읽혔지만 그 풍자성은 희석되고 말았다. 역사학자 자크 바전은 “걸작을 아동문학으로 만드는 것은 폭탄의 뇌관을 제거하는 효과를 낳는다”고 했다.4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폭탄을 안겨줄 수는 없는 일이니 뇌관을 뺀 폭탄을 장난감처럼 던져준 셈이다.

 

뇌관이 제거된 이야기의 위험은 다른 데 있다. 원전과 다른 작품을 읽고선 그 작품을 읽었다고 생각하고 다시 찾지 않게 되는 것이다. 어려서 읽었던 『걸리버 여행기』가 원전의 5분의 1도 안 되는 축약본임을 알게 된 것은 어른이 되고서도 한참 지나서였다(한국어판 완역본이 처음 나온 것이 2019년이다.). 사실상 사회비평서에 가까운 책이 그저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로 읽힌 것이다. 조너선 스위프트 당대의 영국 사회상과 역사적 배경을 알고 원전을 읽는 영미권 독자와 동화책 수준의 중역된 축약본을 읽는 한국 독자의 독서 수준이 어떠할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60~70년대 번역 동화책은 대부분 일본어로 번역된 책을 중역한 것이었다. 세계명작 전집은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지향했던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선정된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소공자>, <소공녀>로 대표되는 작품들 속에 담긴 세계관이 고무신을 신고 다니던 개발도상국 아이들의 삶 속으로 파고들었다. 서구에 대한 동경이 어린 시절 영혼에 박힌 셈이다. 세계적인 동화 연구자인 잭 자이프스는 고전으로 분류되는 동화가 독자들에게 주입하는 보편적 가치가 사실은 불합리한 세상에 순응하게 만드는 은밀한 이데올로기라고 주장한다. 동아시아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아이들은 책을 읽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인종주의 세례를 받았다.

 

콩쥐나 신데렐라나 캐릭터는 비슷한데 많은 여자아이들이 신데렐라를 더 선망한 까닭은 호박마차와 무도회, 유리구두 같은 장치들이 더 있어 보여서일까. 콩쥐는 우여곡절 끝에 꽃신의 주인공이 되어 아버지뻘인 감사의 후처가 된 반면, 유리구두 한 짝을 되찾은 신데렐라는 왕자와 결혼했으니 신데렐라를 더 좋아하게 되는 것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왜 이 땅의 아이들 삶은 민담에서조차 구차하게 그려졌을까. 민담을 지어내고 전승한 민중의 리얼리즘으로 이해하면 될까. 콩쥐를 괴롭히던 팥쥐가 죽임을 당한 뒤 젓갈이 되는 이야기는 리얼리즘을 넘어 호러물에 가깝지만 민담의 잔혹성은 세계적인 현상이니 그러려니 하자(그래도 콩쥐팥쥐전은 세계에 유례없는 엽기적인 민담인 건 사실이다.).

 

민담은 구세계의 질서를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새로움의 탄생성을 간직한 아이들은 옛이야기를 들으며 자신도 모르게 그 질서에 물들어간다. 그렇게 세상은 안정되고 정체되어간다. 드물게 물들지 않는 반항아들이 등장함으로써 세상이 다시금 리셋되기도 하지만 대개는 좌절한다. 구세계가 갖고 있는 관성의 힘을 거스를 수 있는 내공을 길러주는 것이 문학의 역할이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은 곳곳에 은밀히 폭탄을 설치하고, 구세계를 지키고자 하는 이들은 폭탄의 뇌관을 제거하려 애쓴다. 교과서에 실리는 문학 작품은 모조 폭탄이거나 뇌관이 제거된 것들이기 십상이다.

 

동화는 흔히 권선징악 같은 판에 박힌 도덕 관념을 심어주지만 벌거벗은 임금님에게 진실을 알려주는 어린아이처럼 오염되지 않은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돕기도 한다.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고 진실을 말하는 용기를 일깨운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동화는 삶의 진실을 은폐하는 듯하지만 유토피아를 꿈꾸며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 애니메이션 <슈렉>에서처럼 슈렉의 아내가 된 피오나 공주가 녹색 피부의 뚱보인 채 끝나버리면 어른들은 통쾌함을 느낄지 모르나 아이들은 희망을 잃는다. 성에 갇혀 사는 공주의 삶보다 슈렉 아내의 자유분방한 삶이 더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인생의 쓴맛 단맛 다 본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와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이야기를 뒤섞으면 곤란하다.

 

오늘날 동화의 왜곡은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난다. 디즈니는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프리즘으로 흑인5 인어공주를 등장시키지만 아이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녹색 피부의 뚱보 공주를 좋아하지 않듯이. 그 이면에 뿌리 깊은 인종주의가 스며들어 있을지라도 원작을 훼손하는 것은 곧 아름다움을 훼손하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인종을 넘어서 인간 보편의 정서다. 아이들도 예쁜 사람보다 아름다운 사람을 따른다. 잘생긴 사람은 시선을 끌지만 아름다운 사람은 영혼을 끌어당긴다.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참됨이나 선함이 아니라 아름다움임을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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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난학(蘭學)은 네덜란드의 대표 주 홀랜드(Holland)의 일어식 표기인 화란(和蘭)의 학문이라는 뜻이다. 일본은 17세기 초부터 네덜란드와 무역을 시작해 1609년 나가사키에 상관이 설치된 이후 서구 문명과 활발히 접촉했다.
  2. 송대에는 양쯔강 이남이 개발되면서 이앙법이 보급되어 쌀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늘고,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게 되면서 제철업이 발달하여 각종 연장이 널리 보급되었다. 종이를 비롯해 화약, 나침반, 활자 인쇄술 등이 실생활에 쓰이기 시작하고, 세계 최초로 지폐가 등장할 만큼 상업혁명이 일어나 18세기 영국 산업혁명에 견줄 만한 경제 발전이 이루어졌다.
  3. 17세기 초 마테오 리치와 서광계가 함께 유클리드 『원론』을 번역하면서 만든 말이다. geometry를 ‘기하학’이라 옮긴 것은 절묘한 번역이다. ‘幾何’는 ‘얼마인가’라는 뜻으로, 중국인들이 값을 물어볼 때 흔히 쓰는 말이다. ‘幾何’의 중국식 발음이 geo와 비슷해 음차 번역을 한 것이다. 원어 의미에 가깝게 번역하자면 측지학(測地學)이 더 정확할 것이다.
  4. 자크 바전, 이희재 역, 『새벽에서 황혼까지: 1500~2000』(1), 서울: 민음사, 2006, p.654.
  5. PC주의에 따르면 흑인(Black)도 금기어여서 ‘아프리칸 아메리칸’이라 불러야 한다. 하지만 우피 골드버그 같은 배우는 자신이 그냥 ‘아메리칸’이라고 항변한다. ‘유러피안 아메리칸’이 없는 마당에 아프리칸 아메리칸이 차별적 언어가 아니면 무엇일까. 가리려고 뭔가를 덧대면 더 두드러지는 법이다.
교육매체 계간《민들레》발행인 현병호

교육 매체 계간 《민들레》 발행인. 저서로는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이 있고, 《대안교육 20년을 말하다》, 《재난의 시대, 교육의 방향을 다시 묻다》 외 여러 권을 함께 썼다.  옮긴 책으로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 《소통하는 신체》(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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