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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교육의 문제를 푸는 책들(22) – “생각하는 교실: 학생은 언제 진짜로 생각하는가”

#1583 이찬승,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2026.08.20

 Peter Liljedahl, 『Building Thinking Classrooms in Mathematics』 (Corwin, 2020) 비평

                                                                                            

                                                                                            

수업이 시작된 지 5분. 교사는 칠판에 문제를 적고 “자, 각자 풀어보세요”라고 말한다. 교실은 곧 세 부류로 나뉜다. 이미 답을 알고 있어서 문제를 풀기도 전에 손을 드는 몇 명, 조용히 연습장에 무언가를 끄적이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다수, 그리고 옆 짝의 공책을 곁눈질하며 답을 베낄 타이밍을 재는 나머지. 교사는 교실을 순회하며 “잘하고 있어요”라고 말하지만, 그 순간 교실에서 실제로 생각하고 있는 학생은 손에 꼽을 정도다.

 

『생각하는 교실 만들기(Building Thinking Classrooms in Mathematics)』는 바로 이 익숙한 장면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학생이 게으르거나 무능해서가 아니라, 교실이라는 구조 자체가 생각을 억제하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진단한다. 책상 배치, 개별 좌석, 교과서 중심의 예제-연습 구조, 이 모든 익숙한 장치들이 학생이 스스로 생각할 여지를 조금씩 없앤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이 다시 생각하게 만들기 위해 바꿔야 할 것은 수업 내용이 아니라 교실의 구조 그 자체다.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 대학교의 수학교육학자 피터 릴제달(Peter Liljedahl) 교수는 이 진단에 이론이 아니라 15년에 걸친 현장 실험으로 답한다. 그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12학년)까지 40개 교실을 돌며, 무엇이 학생을 실제로 생각하게 만드는지 하나씩 바꿔가며 관찰했다. 이 책은 그 실행 연구의 결과를 14가지 실천 요소로 정리한 실용적 안내서다.

 

 

순응하는 교실에서 생각하는 척하는 법을 배우다

 

릴제달의 핵심 주장은 단순하고도 도발적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수학 교실은 “생각하는 교실(thinking classroom)”이 아니라 “순응하는 교실(compliant classroom)”이라는 것이다. 학생들은 생각하는 법이 아니라 생각하는 척하는 법을 배운다. 교사가 예시 문제를 풀어주면 학생은 그 절차를 그대로 모방하고, 막히면 기다렸다가 교사나 우등생의 풀이를 베낀다. 겉으로는 조용하고 질서 있는 교실이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것은 사고가 아니라 모방이다. 릴제달은 이 구조를 깨는 일이 수업 설계의 문제가 아니라 교실이라는 사회적 공간을 통째로 다시 짓는 일이라고 말한다.

 

 

“무작위로, 그러나 눈에 보이게” – 모둠을 다시 짓다

 

이 책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실천은 매 수업 학생들을 무작위로, 그것도 눈에 보이도록 3인 모둠으로 재편성해 배치하는 것이다(visibly random groups). 학생이 직접 제비뽑기나 카드로 자신의 모둠을 확인할 때, “오늘은 누구와 함께 있어도 나는 생각해야 한다”는 개인적 책임감이 생긴다. 우열반처럼 고정된 모둠에서는 잘하는 학생에게 사고가 몰리고 나머지는 침묵하지만, 무작위 모둠은 그 역할 고정을 매번 흩어놓는다.

 

 

“서서 풀기, 지워지는 표면” – 실패의 심리적 비용을 낮추다

 

두 번째 축은 학생들을 책상이 아니라 지워지는 수직 표면, 곧 화이트보드나 이젤 패드 앞에 서서 풀게 하는 것이다(vertical non-permanent surfaces). 서서 쓰면 지우고 다시 쓰는 데 심리적 부담이 없어 시행착오가 자유로워진다. 앉아서 공책에 적을 때는 오답이 기록으로 남지만, 서서 보드에 쓸 때는 오답이 그저 지나가는 과정이 된다. 릴제달은 이 사소해 보이는 변화가 학생이 틀릴까 봐 멈추는 순간을 눈에 띄게 줄인다고 보고한다.

 

 

“좋은 질문에만 답하기” – 사고를 위한 바람직한 어려움

 

세 번째 축은 교사의 질문 대응 방식이다. 학생이 막혔을 때 답을 바로 알려주는 대신, 교사가 곁에 있다는 이유로 던지는 질문(“이제 뭘 해야 해요?”)이나 자신의 판단을 교사에게 맡기는 질문(“이렇게 푸는 게 맞아요?”)에는 직접 답하지 않는다. 반면 사고를 확장하려는 질문(“다른 방법으로도 풀 수 있을까요?”)에는 힌트와 추가 질문으로 응답한다. 또 “다 풀었어요”에는 “이 문제를 조금 바꾸면 어떻게 될까?”로 확장 질문을 던지라고 제안한다. 답을 곧바로 주지 않는 이 원칙은 단순한 애먹이기가 아니라, 학생이 스스로 씨름하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확보하는 장치다.

 

 

“성적표 대신 관찰 노트” – 평가를 다시 짓다

 

책의 후반부는 평가로 향한다. 릴제달은 표준화된 시험 점수만으로는 사고 과정을 포착할 수 없다고 본다. 대신 그는 교사가 모둠을 순회하며 누가 무엇을 시도하고 어디에서 막히는지 기록하는 형성평가, 그리고 학생 스스로 자신의 이해 수준을 점검하는 자기 점검 체크리스트를 제안한다. 수업에서는 이미 학생에게 스스로 사고하고 협력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학습자 역할을 요구하면서, 평가만 여전히 정답과 결과를 중시하는 옛 방식에 머문다면, 학생들은 수업과 평가에서 서로 다른 기준에 적응해야 할 뿐이라는 것이 그의 경고다.

 

 

한국 교육의 맥락에서

 

릴제달이 묘사하는 “순응하는 교실”은 한국의 수학 교실에서 오히려 더 정교한 형태로 완성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많은 학생이 학원에서 먼저 풀이 절차를 익히고 학교에 온다. 교사가 문제를 내기도 전에 손이 올라가는 것은 이 학생이 그 순간 생각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이미 어딘가에서 풀이법을 학습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나머지 학생들은 그 손을 보며 자신이 뒤처졌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조용히 베낄 타이밍을 기다린다. 릴제달이 캐나다 교실에서 목격한 세 부류-이미 답을 알아서 바로 손 드는 학생, 풀지도 베끼지도 않고 그냥 시간만 보내는 학생, 옆 사람 답을 베낄 타이밍을 재는 학생-의 구도는 한국 수학 교실에서 선행학습이라는 변수까지 더해져 훨씬 이른 시점부터 고착된다.

 

PISA 결과는 이 역설을 숫자로 보여준다. 한국 학생의 수학 성취도는 국제적으로 최상위권이지만, 수학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은 하위권에 머문다. 정답을 맞히는 능력과 스스로 생각하려는 태도가 함께 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릴제달의 언어로 바꾸면, 한국 학생들은 오랫동안 “생각하는 법”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 법”을 매우 능숙하게 익혀 왔다고 할 수 있다.

 

릴제달이 제안하는 실천들을 한국 교실에 그대로 옮기려면 몇 가지 현실적 장벽과 마주하게 된다. 무작위 모둠 편성과 수직 표면에 서서 풀기는 학급당 인원이 많고 진도 압박이 큰 교실에서는 시도만으로도 큰 결심이 필요하다. 오답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부담도 크다. 내신 등급이 촘촘하게 나뉘는 평가 구조 속에서, 친구들 앞에서 화이트보드에 틀린 풀이를 적는 것은 단순한 시행착오가 아니라 성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행동으로 여겨지기 쉽다. “지워지는 표면”이 심리적 부담을 낮춰준다는 릴제달의 전제는, 정답과 오답이 곧바로 등급으로 환산되는 교실에서는 그대로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의 질문법 원칙은 한국 교실에서도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시도해 볼 수 있다. “이거 맞아요?”라는 질문에 곧바로 답하는 대신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되묻는 것은 모둠 구성이나 교실 배치를 바꾸지 않고도 오늘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실천이다. 큰 구조를 바꾸기 전에, 교사가 답하는 방식부터 바꾸는 것, 이것이 한국 교실이 릴제달의 제안 중 가장 먼저 붙잡아 볼 만한 지점일 것이다.

 

 

그러나 남는 아쉬움

 

이 책의 한계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맥락의 특수성이다. 릴제달의 실험은 대부분 캐나다의 학급 규모와 교실 문화 안에서 이루어졌다. 한 학급 인원이 훨씬 많고 입시 중심의 평가가 지배적인 한국의 교육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상당한 번역 작업이 필요하다. 둘째, 근거의 층위 문제다. 40개 교실 관찰은 방대하지만 통제된 실험이라기보다는 실행 연구에 가까워서, “왜 효과가 있는가”에 대한 이론적 설명은 탄탄한 반면 “얼마나, 어떤 조건에서”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정량적 답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셋째, 교사에게 요구하는 자기 절제의 수준이 높다. 답을 알려주고 싶은 충동을 참고 질문만 던지는 일은 원칙으로는 명료하지만, 이를 몸에 익히기 위한 구체적인 훈련 방법까지는 충분히 제시되지 않는다.

 

 

맺으며: 교사들에게

 

릴제달은 40개의 교실을 돌아다니면서, 교사들이 진짜로 학생을 생각하게 만들고 싶어 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들을 가로막은 것은 의지의 부재가 아니라 익숙한 교실 구조였다. 이 책은 지금 당장 수업 전체를 바꿀 수 없더라도, 교사는 오늘 하나의 질문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하며, 교사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넨다. “이 내용을 어떻게 설명할까”를 “이 학생들이 오늘 무엇을 가지고 씨름하게 할까”로. 그 작은 방향 전환이 쌓일 때 교실의 성격은 조금씩 달라진다.

 

 

<교실 적용 팁>

 

1. 좋은 과제로 문을 열기
정답이 하나로 정해지지 않은 문제를 골라 수업의 첫머리에 놓아본다. 학생이 풀이 절차를 몰라도 일단 시도해 볼 수 있는 문제가 좋은 시작점이 된다.

 

2. 무작위, 그리고 눈에 보이게
카드나 제비뽑기로 학생을 완전히 무작위로 뽑아 모둠을 재편성하고, 그 결과를 학생들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한다.

 

3. 책상 대신 보드 위로
교실 벽이나 창문에 화이트보드지를 붙이고 모둠별로 서서 풀게 한다. 처음 몇 주는 소란스럽게 느껴질 수 있으나, 대개 3주에서 6주 사이에 학생들의 참여도가 눈에 띄게 달라진다.

 

4. 답 대신 질문으로
“맞아요?”라고 물으면 “다른 방법도 있을까?”라고 되묻고, “다 풀었어요”라고 하면 “조건을 바꾸면 어떻게 될까?”라는 후속 질문을 던지는 연습을 한다. 이러한 질문 방식은 교사의 역할을 지식 전달자에서 사고를 돕는 코치로 바꾼다.

 

 

※ 이 시리즈는 AI 도구를 활용해 원서의 핵심 내용을 추출하고, 필자가 내용을 검토·수정하여 한국 교육 현실에 맞게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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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이찬승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짧은 직장 생활을 경험한 후 지금의 능률교육(NE능률)을 창립하여 30년을 경영하면서 영어교과서와 참고서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다. 2009년 회사를 매각하고,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이란 비영리 공익단체를 설립하여, 현재 이 단체 대표직을 맡고 있다. 국가 교육시스템 재 디자인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 청소년들도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개혁에 특히 관심이 많다. 수업혁신과 교육격차 완화를 위해 학습과학의 연구와 전파, 그리고 교원 연수에도 힘쓰고 있다.

  • 이메일 : eduinnovator@21erick.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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