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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교육의 문제를 푸는 책들(3) – “AI 시대,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1481 이찬승,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2026.03.31

Priten Shah, 『AI and the Future of Education: Teaching in the Age of Artificial Intelligence』(John Wiley & Sons, 2023) 비평

                                                                                                                                 

 

AI에 관한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많은 것들이 기술의 가능성을 과장되게 나열하거나, 반대로 위험성을 경고하는 데 집중한다. 교사들은 그 사이 어딘가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서 있다. AI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프리텐 샤(Priten Shah)의 이 책은 그 질문에 정면으로 답한다. AI가 교육에서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냉정하게 들여다보고, 그 위에서 교사가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저자는 미국 시카고에서 20년 가까이 교사와 교육 혁신가로 일해 온 실천가다. 이론가가 아집니라 교실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 저술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이다.

 

AI가 할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교사가 해야 할 일도 훨씬 선명해진다. 이 책은 그 두 가지를 동시에 보여준다. 읽고 나면 AI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걷히고, 대신 더 날카로운 질문이 남는다. AI 시대에 나는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두려움과 흥분 사이에서

 

샤는 책의 첫 부분에서 교사들이 AI에 대해 갖는 두 가지 극단적인 반응을 이야기한다. 하나는 ‘두려움’이다. AI가 교사를 대체할 것이라는 불안, 학생들이 AI로 모든 과제를 처리할 것이라는 걱정, 자신이 시대에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 다른 하나는 ‘무비판적인 흥분’이다. AI를 수업에 도입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 새로운 도구를 쓰는 것 자체가 혁신이라는 착각.

 

샤는 이 두 반응이 모두 생산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두려움은 변화를 막고, 무비판적인 흥분은 방향을 잃게 한다. 그가 제안하는 것은 세 번째 태도다. AI를 하나의 도구로 냉정하게 바라보되, 그 도구가 교육의 본질적 목적인 ‘학생들이 더 깊이 생각하고, 더 의미 있게 배우고,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묻는 태도다.

 

이 태도가 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샤는 AI를 예찬하지도, 경계하지도 않는다. 그는 교사의 눈으로 AI를 관찰하고, 교사의 언어로 그것을 설명한다.

 

 

AI가 교육에서 실제로 하는 것

 

샤가 이 책에서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는 AI의 교육적 역할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개인화된 학습 지원이다. AI는 학생 개개인의 수준과 속도에 맞춰 반응할 수 있다. 전통적인 교실에서 교사 한 명이 20명이 넘는 학생을 동시에 개별화된 방식으로 가르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AI는 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다. 모르는 개념을 반복해서 설명해 주고, 이해한 부분은 건너뛰고, 틀린 부분에 즉각적인 피드백을 준다. 창피를 주지도 않고, 지치지도 않는다. 밤 11시에 물어봐도 대답한다.

 

그런데 샤는 여기서 중요한 구분을 한다. AI가 제공하는 개인화는 ‘효율성의 개인화’다. 정해진 목표에 도달하는 경로를 개인에 맞게 최적화하는 것. 그러나 교육에는 또 다른 종류의 개인화가 있다. 그 학생이 무엇에 의미를 느끼는지, 어떤 경험이 그 아이의 삶과 연결되는지, 지금 이 순간 그 아이에게 어떤 말이 필요한지를 감지하는 개인화. 이것은 AI가 할 수 없다. 그것은 교사만이 할 수 있다.

 

둘째는 글쓰기와 창작의 보조다. 이 부분에서 샤는 가장 많은 교사들이 불안해하는 지점을 직접 건드린다. 학생들이 AI로 에세이를 쓰면 어떻게 되는가. 샤는 이 불안이 이해할 만하지만, 잘못된 질문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학생들이 AI로 글을 쓰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가 아니라, “AI와 함께 글을 쓰는 것이 어떤 학습 경험이 될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드는 예가 인상적이다. 어떤 학생이 기후 변화에 대한 에세이를 써야 한다. AI에게 초안을 만들어달라고 한다. AI가 그럴듯한 에세이를 써준다. 여기서 끝나면 학습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교사가 과제를 이렇게 설계한다면 어떨까. “AI가 쓴 초안을 읽고, 무엇이 빠졌는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떤 주장이 설득력이 없는지를 찾아라. 그리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수정하라.” 이 순간 AI는 적이 아니라 학습의 소재가 된다. AI의 결과물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능력이야말로 AI 시대에 가장 필요한 능력이기도 하다.

 

셋째는 교사의 행정 부담 경감이다. 샤는 교사들이 가르치는 일 외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행정 업무에 쓰는지를 이야기한다. 수업 계획서 작성, 학부모 통신문, 평가 루브릭 만들기, 학생 피드백 정리 등은 중요하지만 직접적인 교육 활동이 아니다. AI는 이 작업들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을 교사가 학생과 직접 관계 맺는 데 쓸 수 있다면, AI는 교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를 더 교사답게 만드는 것이다.

 

 

블룸의 분류학을 다시 보다

 

샤가 이 책에서 가장 독창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블룸의 교육목표 분류학(Bloom’s Taxonomy)이다. 1956년 벤저민 블룸(Benjamin Bloom)이 제안한 이 분류학은 인지적 학습을 여섯 단계로 나눈다. 기억(remember), 이해(understand), 적용(apply), 분석(analyze), 평가(evaluate), 창조(create). 아래 단계에서 위 단계로 올라갈수록 더 높은 수준의 사고가 요구된다.

 

샤는 AI가 이 분류학의 하위 단계(기억하고,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를 상당 부분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단순한 사실을 암기하는 것, 개념을 정의하는 것, 공식을 주어진 문제에 적용하는 것 등은 AI가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한다. 그리고 이것들이 지금까지 학교에서 가장 많이 가르치고 평가해온 것들이기도 하다.

 

여기서 샤의 핵심 주장이 나온다. AI가 하위 단계를 처리할 수 있다면, 교육은 이제 상위 단계(분석하고, 평가하고, 창조하는 것)에 훨씬 더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AI가 기억과 이해를 도와줄 수 있는 세상에서, 학생들이 수업 시간의 대부분을 기억하고 이해하는 데 쓰는 것은 자원의 낭비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역사 수업에서 학생들이 임진왜란이 일어난 날짜와 주요 사건들을 암기하는 데 시간을 쓰는 것과, 그 정보를 AI의 도움으로 빠르게 얻은 뒤 “왜 조선은 초기에 그토록 무력했는가”, “이순신의 전략이 당시 동아시아 해전 방식과 어떻게 달랐는가”, “만약 임진왜란이 없었다면 조선의 근대화는 어떻게 달라졌을까”를 탐구하는 데 시간을 쓰는 것. 전자는 AI가 하는 것이고, 후자가 이제 교육이 집중해야 할 지점이다.

 

이 주장은 교사들에게 불편하게 들릴 수 있다. 지금까지 가르쳐온 방식의 상당 부분을 재검토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샤는 이것이 교사의 역할을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격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AI가 기억과 이해를 담당할 수 있다면, 교사는 비로소 분석하고 평가하고 창조하는 수업을 설계하는 데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AI 리터러시: 새로운 필수 역량

 

샤가 이 책에서 강조하는 또 다른 핵심이 ‘AI 리터러시(AI literacy)’다. 읽기·쓰기가 현대 교육의 기본 문해력이듯, AI를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이 이 시대의 새로운 문해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샤는 AI 리터러시를 단순히 AI 도구를 사용하는 기술적 능력으로 보지 않는다. 그것보다 훨씬 더 깊은 개념으로 바라본다. AI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의 기본 원리를 아는 것, AI가 생성한 결과물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 AI의 편향과 한계를 인식하는 것, AI의 윤리적 함의를 이해하는 것 등, 이 모든 것이 AI 리터러시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그가 드는 사례는 무척이나 생생하다. 한 고등학교 학생이 역사 과제를 위해 AI에게 1930년대 독일의 경제 상황을 물어봤다. AI는 그럴듯한 답변을 내놓았다. 학생은 그것을 과제에 그대로 썼다. 그런데 그 답변 중 일부가 실제 역사적 사실과 달랐다. AI가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사실이 아닌 것을 생성하는 현상인 ‘환각(hallucination)’을 일으킨 것이다.

 

이 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AI를 활용하지 않고 글을 쓰는 능력이 아니라, AI의 결과물을 다른 출처와 대조하고, 의심스러운 부분을 확인하고, 최종적으로 자신의 판단으로 내용을 검증하는 능력이었다. 이것이 AI 리터러시다. 그리고 이것을 가르치는 것이 지금 교사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되었다.

 

샤는 여기서 중요한 역설을 지적한다. AI 리터러시를 제대로 가르치려면, 교사 자신이 먼저 AI를 충분히 써봐야 한다. AI의 강점과 한계를 몸으로 경험하지 않은 교사가 학생들에게 AI를 비판적으로 사용하도록 가르치기는 어렵다. 이것이 샤가 교사들에게 가장 먼저 권하는 것이다. AI를 두려워하거나 거부하기 전에, 직접 써보라.

 

 

관계는 대체되지 않는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는 부분은 기술에 관한 것이 아니라 ‘관계’에 관한 것이다.

 

샤는 자신의 20년 교직 경험에서 학생들이 가장 많이 성장했던 순간들을 돌아본다. 그 순간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어떤 도구나 기술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 사이의 연결이 있었다. 교사가 그 학생을 한 개인으로 인정해 주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었고, 포기하려 할 때 곁에 있었다.

 

그가 예로 드는 장면은 단순하지만 강렬하다. 어떤 중학생이 글쓰기를 심하게 두려워했다. 틀릴까 봐, 창피당할까 봐. 교사는 그 학생과 따로 앉아 이야기했다. 왜 글쓰기가 무서운지,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은지. 그 대화 하나가 그 학생의 글쓰기에 대한 태도를 바꿨다. 이는 AI가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보인다는 느낌, 자신이 중요하다는 느낌, 그것은 사람만이 줄 수 있는 것이었다.

 

샤는 이것을 ‘인간적 접촉(human touch)’이라고 부른다. AI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이 인간적 접촉은 대체되지 않는다. 오히려 AI가 효율적인 것들을 처리해 줄수록, 교사는 이 인간적 접촉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AI 시대에 교사가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다.

 

 

AI 시대의 평가는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샤가 이 책에서 가장 도전적인 주장을 펼치는 부분은 ‘평가’에 관한 것이다. 그는 AI 시대에 지금의 평가 방식 대부분이 의미를 잃었다고 말한다.

 

전통적인 평가는 학생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를 측정하도록 설계되었다. 시험 문제에 정답을 쓰는 것, 에세이를 혼자 작성하는 것, 주어진 문제를 푸는 것. 그런데 AI가 이 모든 것을 순식간에 해줄 수 있는 세상에서, 이런 평가로 무엇을 측정하는가. 학생의 능력인가, 아니면 AI를 쓰지 않을 의지인가.

 

샤는 평가의 목적을 다시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평가는 학생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AI 시대에 가장 가치 있는 ‘할 수 있는 것’은 AI와 함께 생각하고 창조하는 능력, AI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능력, 복잡한 문제에 다양한 관점을 적용하는 능력임을 강조한다.

 

그가 제안하는 평가 방식들이 흥미롭다. AI와의 협업 과정 자체를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AI에게 어떤 질문을 했는지, AI의 결과물을 어떻게 수정했는지, 왜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구술 평가를 강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글로 쓴 것에 대해 교사가 직접 질문하고 대화를 나누면 AI가 쓴 것인지 학생이 이해한 것인지가 바로 드러난다. 프로젝트 기반 평가에서는 과정 포트폴리오를 요구할 수 있다. 최종 결과물이 아니라 생각이 발전해 온 과정을 보는 것이다.

 

 

한국 교육에 비추어보면

 

샤의 논의를 한국 교육에 대입하면 몇 가지 날카로운 지점이 드러난다.

 

한국의 학생들은 이미 AI를 광범위하게 쓰고 있다. 숙제에, 독후감에, 탐구 보고서에. 그런데 학교의 공식적인 태도는 대부분 이것을 부정적으로 보거나 금지하려 한다. 이 간극이 문제다. 학교 밖에서는 AI를 쓰고, 학교 안에서는 쓰지 않는 이중성. 이것은 아이들에게 AI를 비판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의 눈을 피해 AI를 쓰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블룸의 분류학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수능은 더욱 불편하게 다가온다. 수능은 본질적으로 기억과 이해와 적용을 측정하는 시험이다. AI가 가장 잘하는 것들이다. 수능 준비에 12년을 쏟아붓는 교육 체제가, 정작 AI가 가장 잘 대체할 수 있는 능력들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는 셈이다.

 

샤가 강조하는 ‘분석, 평가, 창조’의 고차원적 사고가 한국 교육과정에서도 많이 언급되지만, 그것이 실제로 평가되지 않는 한 교실에서 살아남기는 어렵다. 자유학기제나 고교학점제가 이 방향을 향한 시도들이지만, 수능이라는 종착지가 바뀌지 않는 한 이 시도들은 구조적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교사 개인의 차원에서는 샤의 제안이 당장 실천 가능하다. AI를 수업에서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명시적인 논의를 학생들과 하는 것, AI를 활용하되 그 결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도록 가르치는 것, 평가에서 과정을 더 중요하게 보는 것. 이것들은 제도가 바뀌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오늘 교실에서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남는 아쉬움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이 모든 면에서 완벽하지는 않다. 몇 가지 한계가 있다.

 

샤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근거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교육학자가 아닌 실천가로서의 경험에 많이 의존하다 보니, 일부 주장은 개인적 관찰 수준에 머무르기도 한다. 또한 미국의 교육 맥락을 기반으로 쓰였기 때문에, 한국처럼 표준화 시험이 교육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에서 그의 제안들이 얼마나 현실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다.

 

그러나 이 책의 가치는 완벽한 이론 체계에 있지 않다. 교실을 경험한 사람이 교실의 언어로 AI와 교육의 관계를 이야기한다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가 교사들이 실제로 씨름하는 질문들에 직접 답하려 한다는 것, 그것이 이 책이 다른 AI 교육서들과 구별되는 이유다.

 

 

맺으며: 교사들에게

 

『AI and the Future of Education』을 읽고 나면 한 가지가 선명해진다. AI 시대에 교사가 살아남는 방법은 AI를 피하는 것도, AI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도 아니다. AI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냉정하게 살피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AI가 할 수 있는 것(정보 전달, 반복 훈련, 즉각적 피드백, 개인화된 연습)을 교사가 대신하려 할 필요가 없다. ‘학생과의 진짜 관계, 고차원적 사고의 안내, 배움의 의미에 대한 대화, 인간적 접촉’과 같이 AI가 할 수 없는 것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면, 교사는 AI 시대에 오히려 더 교사다워진다.

 

샤가 이 책을 통해 교사들에게 건네는 말은 단순하다. AI를 두려워하기보다 직접 써보라. 그리고 AI를 써보면서 자신이 교사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더 선명해지는 경험을 해보라. 그 경험이 AI 시대의 교사로서 어디에 서야 하는지를 알려줄 것이다.

 

“AI는 학생들에게 정보를 줄 수 있다. 그러나 교사만이 학생들에게 그 정보가 왜 중요한지를, 그리고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가르칠 수 있다.”

 

샤의 이 문장은 AI 시대에도 교사가 필요한 이유를 가장 간결하게 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교사가 어떤 교사여야 하는지를 묻는 가장 날카로운 질문이기도 하다.

 

 

※ 이 시리즈는 AI 도구를 활용해 원서의 핵심 내용을 추출하고, 필자가 내용을 검토·수정하여 한국 교육 현실에 맞게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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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이찬승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짧은 직장 생활을 경험한 후 지금의 능률교육(NE능률)을 창립하여 30년을 경영하면서 영어교과서와 참고서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다. 2009년 회사를 매각하고,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이란 비영리 공익단체를 설립하여, 현재 이 단체 대표직을 맡고 있다. 국가 교육시스템 재 디자인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 청소년들도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개혁에 특히 관심이 많다. 수업혁신과 교육격차 완화를 위해 학습과학의 연구와 전파, 그리고 교원 연수에도 힘쓰고 있다.

  • 이메일 : eduinnovator@21erick.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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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1. 교사 수정 삭제

    매우 좋은 책에 대한 비평을 남겨주셨네요. 귀하게 잘 읽었습니다. 책을 찾아보아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 keinz 수정 삭제

    존경하는 이찬승 선생님의 글은 항상 찾아서 읽고 있습니다.

    교사 입장에서는 AI는 ‘무조건’적으로 사용해야 할 것으로 판단합니다. 말씀하신 행정적 업무 및 데이터 분석에도 AI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동의합니다. 다만,이 부분은 AI의 너무나 빠른 발전 속도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매우 한계가 뚜렷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느정도 숙련된 사용자와 그렇지 못한 사용자간의 아웃풋이 엄청나게 차이가 나고, 설령 숙련된 사용자라 할지라도 현재 AI는 뚜렷한 한계가 있어서 업무에 원활하게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문서작성도 그렇고 데이터 해석과 처리에서도 아직도 한계가 명확합니다. 오류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교원을 중심으로 한 AI사용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생각하며, 더 나아가 한국과 같은 교육환경에서 좀 더 나은 평가의 방향을 고려할 때 AI를 사용한 주관식 문제의 평가기술을 발전시켜 평가방식을 개선하고 그로 인한 교육개선을 고민해야 할 시점은 맞다고 생각합니다.

    저자의 블룸의 인지학에 근거한 생각에 대해서 읽는 독자들이 오해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고 봅니다. (일단 원문을 읽지 않은 터라 실제 저자의 생각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이찬승 선생님이 연재하시는 ‘학습과학’시리즈만 읽어도 블룸의 상위인지단계의 일종의 ‘통찰’적 지혜는 하위단계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 하위단계의 ‘암기’를 기반으로 한 장기기억화 된 ‘스키마’에서 발현되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글을 피상적으로 이해하면 하위단계의 ‘암기’는 AI시대에 필요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의 추론은 원문을 봐야하겠지만 아마도 ‘지엽’적이고 ‘단편’적인 암기의 나열 같은 것을 피하고 상위인지단계 학습에 골몰하라는 뜻일거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한국 중등학교에 특히 고등학교에서 AI사용을 금지한다는 내용은 기실 이렇습니다. 아마도 작년인가부터 국내유명대학교 재학생들의 커닝 사태가 보도화 되면서 부랴부랴 교육부에서 AI사용에 대한 명목적 가이드라인을 내려주기 시작했고 교육청에서 각 학교의 수업계획서 및 수행평가 지침에 넣으라고 강요하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이게 명목상으로는 AI사용을 금지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혀 그런게 아닙니다. 수행평가의 경우 잘 살펴보면 ‘과제 조사 과정에서는 사용가능하나 실제 수행평가에 사용금지’라는 식으로 많이 표기되는데 저게 웃긴게 실제로 AI사용에 있어서 경계선이 너무 애매하고 단속하는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한마디로 실제수행평가의 내용에 AI의 도움을 받는 것을 단속하는 건, 고도로 수행평가를 기획하지 않는 이상 거의 불가능합니다. 즉, 명목은 사용상 주의, 금지 위주인것 같지만 실제로는 표방하는 그런 효과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구호를 위한 구호처럼 들리기만 합니다.)

    저는 가끔 이 상황(AI시대의 교육)을 운동선수의 퍼포먼스에 비유하곤 합니다. AI업계에서 유명한 박태웅님께서 그런 말을 하셨는데 어떤 사람이 근육을 키우기위해서 헬스 트레이너를 고용하는 상황과 사람들이 AI를 사용하는 상황에 비유한 것이 매우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AI를 사용해서 학습하는 상황이 자칫하면 근육을 키우려는 사람이 자신은 운동하지 않고 헬스트레이너만 운동시키는 상황처럼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자신의 뇌는 발달하지 못하고 순두부와 같은 뇌가 된다는 우스개소리가 농담처럼 들리지 않을정도로 되새겨봐야 할 점이라고 생각했고 저는 이 비유가 학습자인 학생들에게 실제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기억하고 되뇌이는 것이 ‘학습’이 무엇이냐는 정의인데 역시 이찬승 선생님의 학습과학이론에서 배우기로는 학습을 가장 간단히 정의하자면 ‘장기기억’화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곳까지 도달하는데 AI가 도와주든, 아날로그적인 단순 반복 암기를 동원하든, 학생주도형 토론과 글쓰기를 통해 기억을 공고히 하든 ‘효과’성과 ‘효율’을 따져서 도구로서 사용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런 과정에서 자칫 헬스트레이너만 운동하는 상황처럼 정작 학습자는 학습하지 않고 AI만 활용하게 되는 상황이 와서는 안된다는 점을 항상 스스로 따지고 되묻고 있습니다. 좀 더 평이한 표현으로 말하자면 저는 ‘학습’ 그 자체는 ‘아날로그’적이며 그것의 본질은, 일론 머스크가 얘기한 뇌를 보조하는 혹은 아예 뇌를 대체할 수 있는 칩을 뇌에 이식하는 상황이 아닌이상(이걸 저는 뇌에 주사하는 뇌 스테로이드로 비유하곤 합니다.) 결코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유명한 클로드의 창업자인 아모데이도 대담에서 AI사용이 반드시 암기 혹은 뇌 사용의 퇴화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방향으로 표현했더군요-자신도 여전히 암산을 많이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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