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정시 통합전형안을 제안한다
| 학부모, 학생, 교사의 고통을 줄이고 더 좋은 학교를 만들려면 긴 시간에 걸친 일관된 정책 패키지를 추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출발점으로 ‘수시/정시 통합전형안’을 제안합니다. |
첫 교육부 장관 후보자 지명, 「국정기획위원회」의 국민보고대회 자료, 내년도 예산안 언론 보도를 보면 적어도 내년 지방선거까지는 현행 교육 체제에 아무 변화가 없을 것 같다. 8,733억 원이 투입된다는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단지 ‘대학 재정 지원사업’의 새로운 이름이 되었고, 각 지역에 서울대 수준의 대학을 만든다는 기대는 정치적 수사에 머물고 말았다. 정교한 예산 집행이 따라온다면 조금은 변화가 있겠으나 기존의 방식으로는 언론용 성과보고회를 위한 성과에 그칠 개연성이 크다. 가을에 내놓는다는 고교학점제 개선 방안도 출석 처리 방식과 ‘최소성취수준 보장 지도’와 관련하여 교사의 업무 부담 경감 수준에 그친다면, 학교 교육에는 사실상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자율과 분권형 교육 거버넌스, 고교 체제 개편, 내신 절대평가 및 논·서술형 평가, 수능 개편, 온라인학교, 공유학교, 중·고 통합학교, 학교 통폐합, 대학입시는 하나의 정책 패키지이고, 이 정책 패키지를 설계하지 않는 정부의 정책은 “한 것도 아니고 안 한 것도 아닌” 견강부회에 그치고 만다. 교육 분야로 한정한다면, 어쩌면 정부는 그 길을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학부모, 학생, 교사의 고통을 줄이고 더 좋은 학교를 만들려면 긴 시간에 걸친 일관된 정책 패키지를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정책 패키지의 출발점은 새로운 대입 체제이다. 대입 제도는 국민 정서상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책이고, 이 정책 패키지의 다른 주제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교육 그 자체보다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한 공정성을 더 중시하는 현실에서, 민감하다는 이유로 대입 개편을 회피한다면 다른 정책도 추진할 수 없다. 반면 가장 민감한 정책이므로 잘 만들고자 한다면 다른 정책들을 추동할 힘을 얻게 된다. 그래서 대학입시와 학교 교육의 동반 개혁이라는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 대입만 혹은 학교 교육만 개편하려고 하면 개편 자체가 불가능하다. 지난 여러 정부가 대입 개편을 시도했으나 단편적인 사안만 건드렸거나 정무적 관점에 막혀서 무위로 끝났고, 때로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학생 개인별 맞춤형 교육이라는 하나의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고, 인구 감소와 맞물려 사회가 달라지므로 교육에서도 전면적 개편을 피하지 못한다. 현상 유지는 불가한 것이다. 다만 누가 언제 할지가 정해지지 않았을 뿐이다. 이 정책 패키지는 매우 복잡해서 그림을 그리기 쉽지 않고, 대입 제도 역시 이해충돌이 첨예하여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정책 패키지는, 그리고 대입 전면 개편은 어디서 출발해야 할까? 그 출발점은 수시와 정시를 통합하는 데서 찾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대학입시로 말미암아 지난 30년 동안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교육과정은 학교에서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다. 더 이상 대학입시가 학교 교육과정을 망가뜨리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2018년 교육부의 중장기 대입 연구, 2020년과 2021년 시도교육감협의회의 대입 연구, 최근 여러 교육청의 대입 제안도 이를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면 ‘수시/정시 통합전형’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모양일까? 현재의 학생부와 수능 체제를 가정한다면 그 개요는 다음과 같다.
먼저 9월 수시모집을 폐지하고, 대학입시는 수능 이후에 시작하며 고등학교 학생부는 11월 30일에 마감한다. 이에 맞춰 고등학교 학사 일정을 유연하게 운영하고, 3학년 2학기 학생부 기재 항목을 출결과 성적 등 기본적인 사항만으로 축소한다. 현재의 대입 일정이 9월 수시모집, 12월 말 정시모집, 2월 하순 추가모집으로 구성된다면, 새로운 대입 일정은 수능 이후부터 2월 중순까지 운영되는 수시/정시 통합전형과 2월 하순의 추가모집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수시/정시 통합전형은 수능 이후 11월 25일부터 12월 4일까지 마무리되는 A 기간 면접전형, 12월 5일부터 2월 중순까지 진행되는 B 기간 일반전형으로 나뉜다. 전형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인 등록 기간은 수시/정시 통합전형에서도 현재처럼 A 기간 후, B 기간 후, 추가모집 후, 이렇게 3회로 나누어진다.
<새로운 수시/정시 통합전형 일정>

새로운 대입제도의 중요한 변화는 A 기간 면접전형의 선발 방식이다. 이 기간에 학생은 한 번만 지원하고, 합격하면 반드시 등록해야 하며(Binding), 정부가 운영할 대입 공정관리시스템에 의해 당해 연도 추가 지원이 차단된다. 이 기간에 학생을 선발하게 될 대학은 일부 원하는 대학에 한정되며, 그 대학은 학생을 먼저 충원할 기회를 얻게 된다. 학생에게는 행정적, 경제적 부담이 거의 없다. 정부가 원서접수시스템을 갖추면 전형료가 면제되고, 그렇지 않으면 전산처리비 정도로 최소화된다. 학생은 지원서만 제출하며 학생부와 수능 점수는 제출하지 않는다. 정원에 미달한 모집 단위에서는 모든 지원자가 자동 합격 처리되고, 정원을 넘어서면 지원 동기를 확인하는 면접을 통해 합격자를 선발한다. 이 전형이 생소해 보일 수 있으나, 학생, 고등학교, 대학 모두에게 매우 간소하고 합리적인 방식이다. 합격자 발표와 등록 기간 설정도 대학과 학생이 서로 확인하는 하루면 충분하고, 학생은 추후 정해진 기간까지 등록금을 내면 입시가 마무리된다. A 기간 면접전형의 선발 방식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일정
– 11월 15일 : 수능
– 11월 25일 : 원서 접수
– 11월 30일 : 면접(모든 대학 공통 일정)
– 12월 3일 : 합격자 발표 및 등록
(2) 전형 주요 사항
– 고등학교 졸업 자격 요건을 추후 고등학교(교육청)가 확인
– 국가교육위원회 산하 ‘(가칭) 대입 공정 센터’가 수험생들의 지원, 합격, 통지 등의 전 과정을 총괄 및 관리함
– 국가 기관이 전형의 전 과정을 총괄 및 관리하므로 전형료는 발생하지 않음
– 수능, 학생부 등의 전형 자료를 일절 활용하지 않음
– 면접에서는 지원 동기나 전공 관련 분야에 대한 준비 상황 등을 판단
– 합격자는 당해 연도 일반전형 및 추가모집에 지원할 수 없음
A 기간의 합격자 발표 이후 12월 5일부터 모든 대학이 참여하는 본격적인 입시가 시작된다.
B 기간 일반전형의 구성은 크게 <가군> 정량 평가와 <나군> 정성 평가로 나뉜다. 학생은 현재 수시모집처럼 6회의 지원 기회를 부여받는데, 동일한 군에 6번의 지원 기회를 모두 활용할 수 있다. 만약 <가군> 3회, <나군> 3회처럼 군별로 지원 횟수를 제한하면 대학의 합격자 등록 과정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학생의 선택권이 줄어들기 때문에 군별 지원 횟수는 제한하지 않는다.
먼저 정량 평가를 시행하는 <가군>의 전형 방식은 2개로 나뉜다.
<가군-1> 교과 전형
<가군-2> 수능 전형
현재 정도의 변별력을 가진 내신과 수능에서는 동점자 처리 기준을 활용하면 커트라인을 만들 수 있으므로, 굳이 ‘교과+수능’ 정량 평가 방식의 전형을 도입할 이유가 없다. 다만 추후 내신과 수능 절대평가 도입이 이루어진다면 커트라인 상의 변별력을 만들기 위해 ‘교과+수능 전형’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또한 정량 평가 방식의 <가군>에서는 굳이 면접을 도입하여 대학과 학생 모두에게 새로운 부담을 만들 필요가 없다.
정성 평가를 하는 <나군>의 전형 방식도 면접 시행 여부에 따라 2개로 나뉜다.
<나군-1> 학생부+수능 종합평가
<나군-1> 학생부+수능 종합평가+면접
‘학생부+수능 종합평가’는 기존 학생부 평가에 수능 응시영역 및 점수를 결합한 방식이며, 대학과 학과의 평가 역량에 따라 ‘면접’을 시행할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수능 응시 및 점수 제출이 필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수능 점수 제출 여부에 따른 불이익이 없으므로 학생부종합전형 혹은 학생부+면접 전형은 필요하지 않다. 또한 논술 전형은 실효가 없으므로 폐지한다. B 기간 일반전형의 선발 방식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일정
– 11월 30일 : 수능 성적표 배부
– 12월 7~9일 : 원서 접수
– 12월 15일 : 학생부, 수능 등 대입 전형 자료 송부
– 12월 27일 : <가군> 합격자 발표
– 1월 15~25일 : 면접(면접 유형 및 형식은 대학의 자율)
– 2월 3일 : 최초 합격자 발표
– 2월 5~6일 : 최초 합격자 등록
– 2월 7일 : 1차 추가 합격자 발표
– 2월 8~9일 : 1차 추가 합격자 등록
– 2월 10일 : 2차 추가 합격자 발표
– 2월 11~12일 : 2차 추가 합격자 등록
– 2월 13일 : 3차 추가 합격자 발표
(2) 전형 모형
– <가군> 정량 평가 : ① 학생부교과 전형, ② 수능 전형
– <나군> 정성 평가 : ③ 학생부+수능 종합평가 전형
④ 학생부+수능 종합평가+면접 전형
B 기간 일반전형의 3차 추가 합격자 발표 및 등록이 마무리된 후 무제한 지원하는 추가모집을 실시하며, 그 방식은 현재와 같다.
수시/정시 통합전형은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살리고 복잡한 대학입시를 간소화하며, 입시 기간 단축으로 인해 사교육비도 조금은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마치 인계철선(폭발물 격발장치에 연결하는 철선)처럼 내신과 수능 평가 방식의 전환 등 정책 패키지의 다른 이슈들을 끌어들인다. 그렇게 되면 논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고교 내신 절대평가 및 논·서술형 평가 비중 상향 조정, 수능 3개 영역 체제 및 절대평가로 넘어간다. 하지만 순서가 반대로 진행되면 논의 자체가 이루어지지 못할 수도 있다.
|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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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마드리드 꼼쁠루뗀세 대학 박사 (중세 및 황금세기 문학), 페루카톨릭 대학 석사,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학사, (전)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기금 부교수
